[현장칼럼]빚덩이 한전·도로공사, 전기차·자율주행차 인프라 이끈다
[현장칼럼]빚덩이 한전·도로공사, 전기차·자율주행차 인프라 이끈다
  • 카가이 취재팀
  • 승인 2017.04.24 15:06
  • 조회수 62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장은석 자율주행연구소 부소장(박사)  carguy@globalmsk.com

전기차와 자율주행차 기술 개발이 미국을 중심으로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여기서 낙오하면 ·기존 선진국에서 탈락할 수 있다는 치열함까지 느껴질 정도다.

전기차는 이미 1900년대 초반부터 시작됐다. 줄곧 시제품이 출시됐지만 결과적으로 상업화엔 실패했다. 최근 니켈수소 전지, 리튬이온 전지 같은 2차전지 개발에 힘입어 전기차의 상업화가 가속화한다. 아울러 자동차의 전자장비인 전장 분야와 각종 센서 및 제어 기술의 발달은 관련 통신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교통문화의 급격한 변화까지 예고한다.

2차전지·전자·전장·소재 등이 유용한 기술(Enabling Technologies)로 활용돼 전기차의 상업화가 가능해졌다. 지금으로선 전기차가 자율주행차의 기본 플랫폼이 될 것으로 보인다.

전기차 상용화에 중요한 것은 전기차 생산 자체보다는 충전 인프라의 완비다


한국은 전기차·자율주행차의 후발 주자다. 다른 산업분야에서 그랬듯이 기술적으로 앞선 나라들이 내놓은 결과물을 가까스로 따라잡고 있다. 여전히 패스트 팔로워다. 전기차·자율주행차가 상용화되고 관련 산업이 발전하려면 각 국가의 기반시설을 충분히 고려한 장기적이고도 차별화된 전략이 필요하다. 이런 전략을 바탕으로 운영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한국은 출발은 늦었지만 나름의 장점을 발휘해 효과적인 장기 전략을 세운다면 고유한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다. 나아가 세계 시장에서 통용되는 표준을 개발할 가능성이 크다. 관련 전후방 산업을 발달시키고 고용 및 부가가치도 창출할 수 있다. 이런 전제 위에 우리보다 앞선 나라는 어떤 문제와 한계가 있는지, 우리에겐 어떤 장점이 있는지 따져보자.


전기차와 이를 기반으로 하는 자율주행차는 충전시설이 가장 중요하다. 충전시설의 완비는 상용화의 필요충분조건이다. 차량 및 부품 관련 제조기술 개발은 민간이 담당할 수 있다. 하지만 충전 및 관련 서비스는 국가가 제공하는 게 효율적이다. 아직 어느 나라도 이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했다. 앞으로도 상당 기간 해결이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한 마디로 전기차 보급에 가장 큰 걸림돌이 충전 및 관련 서비스 네트워크다.

한전과 같은 공기업들이 충전 인프라 구축에 나서야 한다



전기차·자율주행차 테스트 베드 최적 입지

특히 미국·유럽 등 전력 부문이 민영화된 국가는 통일되고 효율적인 충전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게 가장 어려운 과제다. 미국은 영토가 광대해 이런 충전 네트워크를 만드는 게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테슬라·닛산 등 일부 회사는 노변이나 쇼핑몰 등 공공시설에 충전설비를 설치하고 있다. 아직까지 해당 지역에서 충분한 충전 인프라를 갖추지 못했다. 이밖에 충전설비 간 호환성이 낮아 문제가 종종 발생한다. 이런저런 제약으로 미국인은 전기차를 ‘근거리용 세컨드 패밀리카’로 간주하는 경향이 생겼다. 충전은 자기 집 차고에서 하는 게 기본이다. 가정용 충전설비는 이미 미국의 여러 회사가 상품화했다. 전국망을 갖춘 DIY 매장에서 구입할 수 있다. 이런 방식의 충전은 고밀도 아파트가 중심인 한국의 주거 문화와는 잘 맞지 않는다. 더구나 대형마트 같은 상업시설의 주차 환경에도 충전시설을 확충하기 어렵다.


유럽은 EU의 복잡한 관료체계가 장애물이다. 이 때문에 통일된 충전 네트워크를 확보하기 어렵다. 일본은 일찍이 내수 중심의 폐쇄적 사업 방식을 고집했다. 그 결과 관련 단위 기술면으로는 우수하지만 세계 시장에서 통용되는 표준으로 전환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한 마디로 전 세계 어느 나라도 국가 단위의 통일된 충전 네트워크를 구축하지 못했다. 선도 국가들도 전기차의 확산과 관련 산업 발전을 위해 국가 단위의 충전 네트워크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걸 안다. 하지만 이를 구축하기는 매우 어려운 실정이다.

테슬라 모델 S의 배터리팩


한국은 발전·변전·송전·배전 모든 부문을 국영기업이 운영한다. 자율주행에 필수적인 5G 와이어리스(Wireless) 통신망과 국가 전체의 광통신망(Optical Communication Loop)도 국영기업이 구축했다. 고속도로와 충전 시설이 들어설 토지 역시 국영기업이 건설 내지 관리를 담당한다. 전기차 산업과 자율주행차 산업에 절대적으로 유리한 조건이다. 이렇게 한국처럼 국가 기반시설의 설치 및 운영을 소수의 국영기업이 담당하는 국가는 많지 않다. 경쟁 국가가 상상하기 힘든 차별성이자 매우 매력적인 조건이다.


한국이 이 조건을 최대한 활용해 전 세계 최초로 국가 차원의 충전 네트워크를 만든다면, 전기차 및 자율주행차 부문에서 세계 최고가 될 수 가능성이 커진다. 세계 최초로 여러 기술을 활용해 충전 네트워크를 구축하면 국내는 물론 각 분야의 세계적인 기술 선도 기업이 국내로 들어올 것이다. 사계절이 있고 산악, 고밀도 도심, 해안 등 거의 모든 지리적 실험 요소를 갖춘 한국은 호환성 문제가 없다. 더욱이 교류· 직류의 제한 요소도 없다. 향후 10 년 간의 기술변화를 수용할 수 있는 국가 차원의 충전 네트워크를 구축하면 한국은 전 세계 신기술의 각축장이 될 수 있다. 고용과 부가가치 창출도 가능해 진다. 여기에 5G 통신망을 갖추면 자율주행기술 개발에 최적의 실험장이 된다. 이 과정에서 적지 않은 부품· 소재·소프트웨어 관련 신규업체가 만들어 질 수 있다. 이미 들어온 외국의 기술 선도업체와의 경쟁 및 협력 관계를 통해 세계 시장으로도 뻗어나갈 수 있다. 청년 실업을 해결할 수 있는 일자리 창출뿐 아니라 관련 스타트업도 글로벌로 성장할 기회인 셈이다.

여기서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 있다. 일부 대기업에 특혜를 주는 일은 절대 있어서는 안 된다. 기존 대기업이 이 분야에서도 중심이 되는 구조가 만들어지면 일을 그르칠 수 있다. 중소·중견기업을 포함하는 가치사슬을 구축하고 운영하는 게 불가능해진다. 단적으로 일부 대기업을 보호하기 위한 비관세 장벽, 제반 법규 및 규정을 만들어 보호해서는 안 된다. 처음부터 시장을 완전 개방해야 한다. 기반·요소 기술이 많이 부족한 상황에서 완전 개방을 통한 경쟁 환경 조성과 제대로 된 산업구조의 신속한 구축이 성공의 관건이다. 정부로서도 국영기업을 동원해 세계 최초로 최적의 사업 환경을 조성하면 대기업의 로비를 신경 쓸 필요가 없다. 상대적으로 빈약한 자동차 관련 독립 연구 및 설계 서비스 능력도 해외 선도업체가 들어오면 향상될 수 있다.


자동차용 반도체 경쟁력 취약

한국이 반도체 강국이지만 자동차에 들어가는 반도체 경쟁력은 매우 취약하다. 전기차·자율주행차뿐 아니라 기존의 내연기관 차량과 관련한 전장산업에 반도체 기술은 매우 중요하다. 상대적으로 부가가치가 떨어지는 메모리 반도체 대량 생산에 특화된 국내 반도체 산업은 특수 반도체 제조기반에서는 불모지나 다름없다. 이 분야도 패러다임의 변화가 필요하다. 중소 규모의 다양한 고부가가치 반도체 업체가 생길 수 있는 기반이 갖춰져야 한다. 또 연구·설계 서비스 및 반도체 부문에서 특화된 중소기업이 성공적으로 만들어져야 한다. 그래야만 이미 우리를 앞지른 중국을 따라잡을 수 있다. 중국은 아직 최종 제품 생산에만 집중해 세계 시장에서 부가가치를 스스로 훼손하고 있다. 이런 전략은 중국을 확실히 따돌릴 수 있는 차별화한 전략이다. 최근 중국 정부가 가치사슬을 재인식하고 구조조정을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 분야는 한국이 빠르게 앞지를 여지가 충분하다.

충전 네트워크 구축은 중국에 뒤처진 차량용 반도체 분야에서도 역전의 기회를 만들 수 있다


그 동안 국영기업체의 효율성 향상을 위해 민영화를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국영기업체는 효율성 향상을 위해 신규 사업 진출을 통한 수익성 증대를 끊임없이 모색해 왔다. 만일 이들 국영기업이 세계 최초로 완벽한 충전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이런 네트워크가 향후의 기술변화를 수용한다면 세계 처음으로 새로운 산업 환경을 창출할 것이다. 민간부문에서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음은 물론이다. 전력·통신·건설 관련 국영기업은 기술과 노하우 면에서 경쟁국가보다 높은 수준이다. 협력 가능한 국가 연구기관도 있다. 국영 기업은 충전 네트워크 구축 과정에서 획득한 건설 및 서비스 콘텐츠로 새로운 사업 모델을 만들 수도 있다. 턴키 방식 수출 등 고부가가치 사업을 창출해 낼 가능성도 커진다.


이해관계 얽힌 정치·지자체 입김 차단

국영기업을 활용해 국가 충전 네트워크를 구축하려면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이런 국가적인 프로젝트를 성공시키려면 특별한 이해관계에 얽힌 정치적 입김, 특히 지자체의 입김을 차단해야 한다. 철저히 지리적·기술적 내용을 바탕으로 일관성 있는 계획을 세워 장기간에 걸쳐 단계적으로 집행해야 한다. 각 국영기업체의 프로젝트 시간표와 관련기술 개발 일정의 통제 내지는 조정도 필수적이다. 기술도 편협하게 국내 조달만을 고집할 필요가 없다. 전 세계 어디든 가장 우수한 기술을 도입해야 한다. 이런 조건이 충족돼야 관련 기업이 공정한 경쟁을 통해 세계 표준이 될 만한 기술을 개발할 수 있다. 말하자면 싱가포르처럼 국가 차원의 전략을 수립하고 집행해야 한다. 한국 정부는 여태껏 싱가포르에 적지 않은 공무원을 보내 연수를 시켜왔다. 무엇을 배워 적용할 건지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무엇보다 국민에게 ‘보여주기식’이 돼서는 안 된다. 단기적으로 정치적 이해관계를 달성하거나 과거처럼 참여업체에 대해 세세한 간섭을 하고픈 유혹에서도 벗어나야 한다. 한 마디로 전기차·자율주행차 프로젝트는 철저히 관련 인프라 구축에 국한돼야 한다.




한국은 이런 4차혁명 시대에 딱 맞는 영토 크기와 경제구조를 가진 몇 안 되는 나라 중 하나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미국·유럽에서는 하고 싶어도 못하는 제약이 많다. 우리는 이런 근본적인 제한요소로 만들어진 로드맵(Roadmap)의 결과만 보고 따라갈 것이 아니라, 이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을 건너뛰어 세계 표준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정도까지 가야 한다. 사실적이고 정확한 분석 없이 그저 남의 뒤 따라가는 짓은 더 이상 하지 말아야 한다. 이러한 공세적 전략을 통해 전기차·자율주행차 부문에서 국영기업체들이 진정한 성공스토리를 만들어 낼 수 있다. 그동안 수 없이 들어온 패러다임 쉬프트(Paradigm Shift)의 호기인 셈이다. 문제는 남은 시간이 별로 없다는 점이다. 올해 5월 말이면 새로운 정부가 들어선다. 어느 때보다 기대를 한 몸에 받는 정부다. 정치·외교로 풀어야 할 국가 과제도 많지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4차산업혁명의 키인 전기차·자율주행차의 청사진이다. 아울러 이를 완수할 강력한 리더십과 정부 조직이 필요하다. 어쩌면 반 세기 만에 찾아온 선진국 진입의 호기일 수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