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승기] 쉐보레 볼트EV, 힘세고 오래가는 오늘의 전기차
[시승기] 쉐보레 볼트EV, 힘세고 오래가는 오늘의 전기차
  • 이재욱 에디터
  • 승인 2017.05.04 15:12
  • 조회수 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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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차를 타는 일은 언제나 즐겁고 신난다. 전기차 특유의 운전 재미가 있을 뿐 아니라 남보다 빨리 미래를 경험해 본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일종의 얼리어답터가 된 기분이랄까? 그러나 볼트EV는 지극히 현실감각 넘친다. 내일이 아닌 오늘을 달린다. 미완의 미래가 아닌 완성된 현재를 보여주는 전기차다.

국내에 전기차가 본격 도입된 지 벌써 5년차다. 국내 첫 전기차는 2011년에 나왔지만 2013년부터 정부 보조금이 풀리면서 조금씩 일반판매가 생겼고, 대중의 관심도 조금씩 커져 이제는 적잖은 사람들이 전기차의 존재를 인식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전히 한국에서 전기차는 낯선 존재다. 지난해 국내에 판매된 전기차는 5858대에 불과하고 그나마도 절반 이상이 제주도에서 팔렸다. 섬이라는 특수 지형으로 말미암아 전기차 운행에 유리한 제주도를 제외하면, 여전히 한국에서 전기차는 환경에 대한 특별한 사명감이나 남다른 라이프 스타일을 지닌 얼리어답터의 장난감으로 여겨지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이런 가운데 쉐보레 볼트EV는 꽤나 반향을 낳은 차다. 3월 사전계약을 실시한 지 2시간 만에 초도물량이 완판됐다. 전기차로선 이례적인 기록이다. 한국 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인기가 뜨겁다. 긴 주행거리와 공격적인 가격정책이 주효했다. 과연 볼트EV가 무엇이 다르기에 전기차에 관심 없던 소비자들조차 볼트EV를 주목하는 걸까?



GM은 변신 중인 회사다. 메리 바라 체제가 시작된 이래 수익성 나지 않는 시장을 모두 정리하고 전기차·자율주행 등 미래 먹거리가 될 산업에 투자를 집중하고 있다. 볼트(Volt)PHEV와 볼트(Bolt)EV는 그런 변화의 과정에서 탄생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들은 당장 수익을 가져다주진 않는다. 볼트EV는 한 대 팔 때마다 9000달러(한화 약 1020만원)씩 손해가 발생한다. 저렴한 가격으로 친환경차 시장을 선점해 미래 모빌리티의 패권을 장악하기 위해서다.

그런 전략이 잘 먹혀 들어갔는지, 캘리포니아에서도 인기가 높다. 현존하는 대부분의 순수전기차는 1회 충전 주행거리가 200km을 넘지 못한다. 그나마 테슬라 모델 S나 모델 X는 400~500km 이상 달릴 수 있지만 애초부터 럭셔리카로 만들어진 이들은 아무나 사기엔 너무 비싸다. 작고 실용적이면서 주행거리도 긴 전기차를 오래 전부터 대중은 기다려 왔던 것.

전기차 시장이 다각화되고 있다 해도 여전히 소비자의 주된 관심사는 주행거리다. 내연기관 자동차야 지천에 널린 게 주유소니 항속거리를 크게 신경 쓰지 않지만, 전기차는 사정이 다르다. 전기차 보급이 활발한 미국조차 캘리포니아를 벗어나면 충전소가 제한적일뿐더러 충전도 오래 걸리니 대부분이 시티커뮤터 용도로만 사용된다. 그런 와중에 볼트EV의 383km라는 주행거리는 너무나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383km! 그야말로 경이로운 발전이다. 3년 전만 해도 대부분의 경쟁 전기차들이 100km대 초반의 주행거리를 지녔었다. 현대 아이오닉 일렉트릭이 공인 191km의 주행거리를 인증 받아 지난해 전기차 시장을 주도했던 걸 생각해 보라. 볼트EV가 불과 1년 뒤 주행거리를 두 배로 늘린 셈이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상징적 의미가 크다. 1회 충전으로 서울에서 부산까지 갈 수 있다는 뜻이기 때문. 서울-부산 편도는 대략 350km 내외다. 다른 전기차는 꿈도 못 꿀 일이다.

볼트EV가 이 주행거리를 달성한 비결은 최적화된 설계와 강력한 배터리 팩이다. LG화학이 생산하는 배터리 팩은 288개의 리튬-이온 배터리 셀로 구성되며 10개의 모듈로 묶여 차체 밑바닥에 배치된다. 차에서 가장 무거운 배터리를 밑바닥에 깔아 무게배분이 안정될 뿐 아니라 배터리 팩 자체가 프레임 역할을 겸해 차체 구조물의 무게도 덜어냈다는 게 GM의 설명.



그 위에는 MPV 형태의 바디를 올렸다. 엔진이 없기 때문에 A필러는 한껏 앞으로 전진했고, 시원시원한 윈도우 라인 덕에 시각적으로 더 크게 느껴진다. 전장 4.2m가 채 안 되는 규격 내에서 최대한 넓은 공간을 만들어내기 위한 고민이 담겼다.

전면부의 듀얼 포트 그릴과-실제로는 플라스틱으로 막혀있기 때문에 그릴이라고 하기 애매하지만- LED 주간주행등은 영락없는 쉐보레의 얼굴. 헤드라이트 끝단부터 C필러까지 블랙 하이글로시 재질로 마감한 플로팅 루프 스타일 덕에 차체가 길어 보이는 점도 재미있다. A필러 부근에서 꺾여있는 숄더 라인은 자칫 단조로울 수 있는 측면 캐릭터 라인에 변주를 줄 뿐 아니라 개방감을 키워주는 역할도 한다. 또 번개 이미지를 형상화해 전기차의 성격을 은연중 드러낸다는 느낌도 든다.



특이한 그래픽이 담긴 LED 테일램프 정도를 제외하면 볼트EV는 정말 일반 자동차같다. 대단히 미래적인 디테일이 들어간 것도 아니고, 친환경차라고 생색을 내지도 않는다. 미래의 차보다는 현재를 위한 차로 만들었다는 관계자의 설명이 새삼 와 닿는다.

그런 특징은 실내에서도 잘 드러난다. 개방감을 극대화하기 위해 센터페시아와 센터콘솔이 직접 연결되지 않은 디자인을 채택하고 가운데는 수납공간으로 활용했다. 전형적인 쉐보레 듀얼콕핏 인테리어가 적용됐지만 유별난 소재를 쓰거나 완전히 차별화된 디자인을 적용하지는 않았다. 단지 독특한 패턴의 흰색 트림을 적용했을 뿐. 작은 차이지만 제법 색다른 느낌을 준다.



메인 디스플레이는 마이링크 기반이지만 전기차를 위한 각종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가령 충전 소요 시간이나 주행 환경 분석, 에너지 소모량 분석표 등이 표시된다. 순정 내장형 내비게이션이 없는 건 아쉬운 부분. 아이오닉 일렉트릭에는 내비게이션 연동 충전소 안내 시스템이 탑재돼 있다. 볼트EV에 이 기능이 없는 건 1회 충전으로 웬만한 곳은 다 갈 수 있다는 자신감의 표현일 지도 모르겠다.



계기판도 싱그러운 흰색과 녹색으로 표시되는 점이 마음에 든다. 왼쪽은 큼직한 게이지로 배터리 잔량을 나타내고 오른쪽은 실시간 전력 소모량 도는 충전량을 표시한다. 처음 차를 받았을 때의 주행가능거리는 391km. 주행가능거리는 운전 습관에 따라 수시로 오르내린다.

의도한 건 아니지만 200km가량 시승하면서 시내와 고속 구간을 고르게 오갔다. 이번 시승에서는 나름의 목표를 세웠다. 바로 일반 자동차처럼 운전하기. 전기차를 탈 때면 주행거리의 압박에 끊임없이 시달리며 조금이라도 배터리를 아끼기 위해 친환경 전사가 되곤 한다. 하지만 볼트EV는 공인 주행거리와 실주행거리 차이가 크지 않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기에, 과연 평소 습관대로 운전했을 때 어느 정도 달릴 수 있는 지가 궁금했다.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차를 받아 도심 주행부터 나섰다. 전기차는 도심에서 운용하기 최적이다. 엔진 회전수가 올라야 최고출력과 최대토크가 나오는 내연기관과 달리 모터가 회전하는 순간부터 출력과 토크를 100% 발휘하기 때문에 도심에서의 재출발 때마다 경쾌한 움직임을 보여준다.

뿐만 아니라 가속 페달을 계속 밟아야 하는 고속도로보다 회생 제동을 적극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도심에서 효율도 좋다. 회생 제동이란 말 그대로 자동차의 운동에너지를 이용해 발전기를 돌려 배터리를 충전하는 기능. 전기차나 하이브리드차에는 대부분 투입되고 있다. 시내에서는 정차 시마다 회생 제동을 통해 조금씩이나마 배터리를 재충전하는 게 가능하다.



특히 리젠 온 디맨드(Regen on Demand) 기능은 상당히 흥미로운 부분. 이전 볼트PHEV에서도 경험해 봤는데, 스티어링 휠 왼쪽에 패들 스위치를 장착해 이를 누를 때만 적극적인 회생 제동을 활용하는 장치다. 변속 레버를 아래쪽으로 당겨 L 모드로 바꿔도 회생제동을 사용할 수 있지만, 리젠 온 디맨드를 사용하면 매번 변속 레버를 조작할 필요 없이 도로 환경에 따라 필요할 때만 회생 제동을 사용할 수 있는 점이 매력이다.

특히 볼트EV는 회생 제동이 매우 강력해 풋 브레이크를 사용하지 않아도 충분히 제동이 가능한 수준. 가속 페달과 왼손만으로 가속과 제동이 가능하니 BMW i3가 처음 나왔을 때 등장한 ‘원 페달 드라이빙’을 보다 발전시킨 셈이다. 다만 한 가지 문제라면 회생 제동으로 속도가 줄어들 때는 제동등이 작동하지 않는다는 점. 정체 구간에서 회생 제동을 사용하다가는 뒷 차를 놀래킬 수도 있겠다. 제도적 문제도 있겠지만 회생 제동을 사용할 때 뒷 차에게도 충분히 알릴 방법을 고민해 봐야 한다.



전기차라고 하면 기껏해야 골프 카트정도 성능이 나올 줄 알지만 천만의 말씀, 전기차의 묵직한 토크감은 내연기관 자동차 못지않은 가속감을 준다. 볼트EV의 전기 모터는 환산 시 최고출력 204마력, 최대토크 36.7kg.m에 달한다. 어지간한 고성능 터보 엔진과 맞먹는 수준. 안전과 내구성을 위해 최고속도는 150km/h에 제한돼 있지만, 0-100km/h 가속을 7초대에 끊을 정도로 발군의 스프린터다.

시내에서는 조금만 가속 페달을 깊게 밟으면 휠 스핀을 일으키며 튀어나갈 정도로 초반 가속력이 상당하다. 고속도로에서도 100km/h의 속도까지 전혀 답답함 없이 가속되며,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추월 가속도 가능하다. 연비를 위해 성능을 억제하는 하이브리드 자동차나 소형차에서는 결코 느낄 수 없는 퍼포먼스다.



MPV형 바디라 큰 기대를 걸지 않았던 하체 세팅도 상당한 수준. 시트 포지션은 높은 편이지만 서스펜션 세팅도 매우 탄탄하고 스티어링 감각도 묵직하다. 제법 속도를 높인 상황에서 급차선변경을 해 보거나 와인딩 로드를 달려 봐도 허둥대지 않고 노련하게 움직인다. 온순한 외모와 공격적인 주행감각의 괴리감이 퍽 낯설다. 평소에는 스트레스 없이 타는 친환경차지만 마음만 먹으면 재미있는 핸들링의 스포츠 드라이빙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이다.

하지만 뭐니뭐니 해도 역시 전기차에게 요구되는 덕목은 주행거리에 대한 신뢰도다. 앞서 이야기했듯 이번 시승은 정말 ‘내 멋대로’ 탔다. 막히는 시내, 쭉 뻗은 고속도로, 출퇴근길과 이른 새벽시간을 넘나들었고 심지어 와인딩 로드 주행까지 했다. 일교차가 심해진 날씨에 아침에는 히터를 켜고 한낮에는 에어컨을 켰다. 이렇게까지 해도 충분한 주행거리를 보일까?

놀랍게도 ‘Yes’다. 누적 200km를 달렸을 때 남은 주행가능거리는 153km. 도합 353km 정도 되겠다. 물론 에어컨이나 히터를 켜면 10%가량 줄어들지만 감안할 수 있는 수준. 솔직히 300km만 유지해도 대단할 거라 생각했는데, 볼트EV의 최적화된 에너지 관리 능력은 기대를 뛰어넘는 수준이었다. 전기차에 맞는 연비주행을 계속하고 회생 제동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면 실주행거리가 450km 이상으로 늘어나기도 한다니 정말 지금 당장 탈 수 있는 전기차다.



볼트EV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점은 전기차를 타면 으레 느끼는 주행거리에 대한 공포감을 완전히 잊게 해 줬다는 점이다. 주행거리가 130km 남짓인 다른 전기차를 타면, 70km 정도를 달렸을 때부터 눈빛이 흔들리고 100km를 넘으면 불안감에 더 이상 차를 타지 못할 지경이다. 아무리 전기차 충전 인프라가 많아졌다지만 여전히 미비한 점 투성이다. 서울을 벗어나려면 많은 용기가 필요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볼트EV는 이틀 내내 서울 안팎을 오가도 충전량의 절반가량을 썼을 뿐이다. 자, 이제 누가 전기차를 ‘아직 이르다’고 말할 수 있는가? 매일 타고 출퇴근할 수 있고, 충전은 사흘에 한 번이면 충분하다. 퇴근길에 마음이 내키면 동해바다를 보러 떠날 수도 있다. 더 이상 전기차를 세컨드 카에 머무르게 두지 않고 퍼스트 카로 사용할 수 있도록 외연을 넓혔다.



많은 이들이 내일의 모빌리티를 이야기한다. 전기차는 아직 이르다고, 타 보고 싶지만 내가 타기는 좀 그렇다고 망설인다. 하지만 볼트EV는 다르다. 작은 몸집이지만 내일이 아닌 오늘의 전기차에 대한 뚜렷한 비전이 담겼다. 볼트EV가 지구 환경의 구원자가 될 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전기차를 고민 중인 당신을 위한 모범답안이 되리라는 건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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