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승기] 지프 레니게이드 트레일호크, "산이여 오라!" 겁없는 막내 오프로더
[시승기] 지프 레니게이드 트레일호크, "산이여 오라!" 겁없는 막내 오프로더
  • 이재욱 에디터
  • 승인 2017.06.15 00:59
  • 조회수 3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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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달에는 유독 신차나 시승차나 SUV가 많았다. 새삼 SUV의 인기가 느껴지는 순간이다. 지난 2010년 이래 글로벌 시장에서 SUV는 연평균 20%의 성장세를 기록했다. SUV 점유율은 글로벌 시장의 50%를 바라보고 있다. 그 중에서도 최근 몇 년 사이 가장 무섭게 성장하는 건 소형 SUV다.

한국에서도 소형 SUV의 인기는 대단하다. 2013년 1만 2000대에 불과했던 게 9배가량 늘어 이제는 한국에서만 연간 10만 대 넘게 팔린다. 사회초년생의 생애 첫 차, 젊고 활동적인 청년층의 액티비티 카, 중장년층의 데일리 카 등 용도도 다양하다. 이제 소형 SUV는 더 이상 니치 마켓이 아닌 주류다.

그러나 많은 모델들이 SUV보다는 키높이 해치백에 가까운 구성이다. 몸집을 불리고 지상고도 높였지만 많은 이들이 SUV에 기대하는 오프로드 주행능력은 거추장스럽단다. 도시에서만 탈 차에 오프로드가 웬 말이냐고 되묻는 이도 있다. 하지만 소형 SUV에 공격적인 오프로드 주파능력을 기대하는 소비자는 분명 있다.

가령 지프 레니게이드가 그런 니즈를 충족해주는 차다. '지프차'의 원조인 지프답게 작고 귀여운 막내도 어지간한 도심형 SUV보다 월등한 험지주파능력을 갖췄다. 그래도 만족하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 마련된 게 이번에 출시된 레니게이드 트레일호크다.



지프는 오프로드를 위해 탄생한 브랜드다. 잘 알려진 대로 2차대전 당시 미군의 군용차를 만들면서 그 역사가 시작됐고, 지금은 세계에서 가장 아이코닉한 SUV 브랜드로 탈바꿈했다. 영국의 랜드로버도 미군의 지프를 보고 흉내내 만든 군용차에서 시작된 것을 생각해보면, 지프를 오프로더의 원조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래서 지프의 모든 모델은 기본적으로 오프로드 주행을 상정하고 개발된다. 도심주행을 하다가도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흙밭으로 뛰어들 수 있다는 거다. 그런데 이미 우수한 험지 주파능력을 갖춘 차를 본격 오프로더로 업그레이드한 게 바로 트레일호크 버전이다.



트레일호크는 '트레일 레이티드(Trail Rated)' 인증을 받은 고성능 오프로드 지프다. 지프의 테스트 코스인 루비콘 트레일(Rubicon trail)을 주파할 수 있는 모델에만 붙여지는 뱃지다. 승용차 브랜드가 고성능 모델에 전용 엠블럼이나 이니셜을 달아주는 것처럼, 지프에서는 트레일호크에만 이 뱃지를 붙여준다. 미국 군용차 평가 기관이 오프로드 성능을 검증했다는 뜻이다.

미국에서는 그랜드 체로키, 체로키, 컴패스 등 형님들도 트레일호크 버전이 시판 중이지만 국내에 소개된 건 레니게이드 트레일호크가 처음이다. 한국에도 오프로드 수요가 갈수록 늘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레니게이드의 겉모습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호감형이다. 태초의 지프인 윌리스 MB의 비례와 디테일에서 영감을 받았다. 동그란 헤드라이트와 고유의 그릴이 영락없는 지프다. 연료통에서 따 온 'X'자 테일램프 디테일은 유머러스할 뿐 아니라 오프로드 분위기를 강하게 풍긴다.



얼핏 보기에는 일반 레니게이드와 크게 다른 점을 찾을 수 없지만, 사실 바뀐 부분이 더 많다. 당장 범퍼 디자인부터 다르다. 일반 레니게이드는 끝단까지 수직으로 떨어지는 범퍼를 달고 있지만 트레일호크는 비스듬하게 깎아낸 범퍼다. 또 한 가지 눈에 띄는 점이 확연히 높은 지상고다. 최저지상고가 동급 최고인 210mm에 달해 타고 내릴 때 소형 SUV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 전용 범퍼와 높은 지상고 덕에 진입각 30도, 여각(break-over angle) 24도, 이탈각 34도를 확보했다.

사실 이런 제원들은 잘 몰라도 그만이다. 딱 봐도 레니게이드 트레일호크의 카리스마는 대단하다. 작고 다부진 차체에 순정으로 군용차를 연상시키는 오프로드 타이어가 조합되고, 차체 뒷편에는 붉은색 견인고리도 달려 있다. 원래는 앞범퍼에도 견인고리가 달려 있지만 국내 법규 상 앞쪽 고리는 생략됐다. 보닛 정중앙은 무광 블랙으로 칠해 카리스마를 더했다. 트레일호크만의 붉은 독수리 엠블럼은 마초적인 디테일을 더한다.



실내에는 검은색 인테리어를 기본으로 붉은 포인트가 추가된다. 스피커 주변에 지프의 헤드라이트와 세븐-슬릿 그릴 실루엣을 그려넣은 유머도 재치있다. 묵직하고 남성적인 카리스마를 오롯이 드러내면서도 개성을 추구하는 젊은 소비자들을 위한 아이덴티티를 잃지 않았다. 편의사양이나 고급스러운 마감이 없는 게 불만이라면 오프로드 성능보다 도심 주행감각을 강조한 일반 레니게이드를 사면 된다.

직물 시트와 방수 바닥매트가 적용된 게 트레일호크만의 차이점이다. 오염에 강한 직물 시트와 고무 매트는 오프로드 주행을 위한 배려. 시트와 플로어에 흙이 묻을까 걱정할 필요가 없다. 툭툭 털어내고 매트를 꺼내 물청소하면 그만이다. 오프로드의 달인 지프다운 패키징 노하우가 드러난다.



4225mm의 전장과 1805mm의 전폭, 박스형 차체 덕에 공간은 앞뒤 모두 넉넉하다. 뒷좌석이 답답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성인 남성이 타기에도 좁지 않다. 헤드룸이 넓어 오래 타도 피곤하지 않은 게 장점. 키가 크고 디자인의 선이 굵어 작은 차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이런 차로 서울 시내만 달리는 건 차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어디든 가까운 비포장 도로라도 가 보기로 하고 차에 올라탔다. 시동을 걸자마자 옆에 탄 동료 기자가 깜짝 놀란다. "이거 레니게이드 맞아? 가솔린이야?"



솔직해지자. 기존의 레니게이드 디젤은 정말 끔찍하게 시끄러웠다. 천둥같은 엔진소리는 물론이거니와, 엉덩이가 간지러울 정도로 진동도 심했다. 너무 시끄러우니 차에 문제가 있나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랬던 과거의 레니게이드는 잊어도 좋다. 트레일호크에는 새로운 엔진 마운트가 적용되면서 소음과 진동이 대폭 줄었다. 이제 회전질감은 매끄럽고, 평범한 요즘 디젤 엔진 정도의 소리만 들린다. 변속 충격도 언제 그랬냐는 듯 사라졌다. 이 개선사항은 트레일호크 뿐 아니라 17년형 레니게이드 전 모델에 적용된다.

트레일호크는 디젤 단일트림으로 제공된다. 2.0L 직렬4기통 멀티젯2 엔진이 탑재되며, 최고출력 170마력에 최대토크 35.7kg.m의 평범한 성능을 낸다. 변속기는 ZF제 9속 토크컨버터가 조합된다. 여기까지는 대단할 것 없다.



핵심은 액티브 드라이브 로우 AWD 시스템. 평상시에는 전륜구동으로 주행하다가 필요할 때 뒷바퀴로도 구동력을 전달하는 전자제어식 4륜구동 시스템이다. 여기에 20:1 기어비의 로우기어를 장착, 험지에서 강력한 등판성능을 낸다. 소형 SUV 중 로우기어가 장착된 건 레니게이드가 유일하다. 트레일호크 전용의 셀렉-터레인 지형설정 시스템에는 바위 모드가 추가돼 4가지 노면환경에 대응할 수 있다.

다른 오프로드 기능은 레니게이드에도 있지만 바위 모드는 트레일호크에만 있으니 자갈과 돌무더기가 무성한 오솔길을 찾아갔다. 커다란 올터레인 타이어를 끼운 SUV들이 줄줄이 들어가는 데에 뒤따라 바위 모드로 전환하고 출발 준비를 했다. 바위 모드는 로우기어에서만 작동한다.

아, 오프로드 코스에 들어가기 전 한 가지 더 해야 할 게 있다. 바로 루프탑을 여는 것. 랭글러를 타 본 사람이라면 루프를 모두 뜯어내고 자연을 느끼는 드라이브의 쾌감을 알 것이다. 랭글러보다는 덜하지만 레니게이드도 루프를 탈거할 수 있는 마이스카이 오픈 루프가 적용돼 있다.

조작은 간단하다. 전용 툴로 키를 풀고, 레버를 당기며 힘껏 밀어주기만 하면 루프가 두 조각으로 분리된다. 트렁크 바닥에 꼭 맞게 수납할 수 있다. 순식간에 소형 SUV가 바람과 햇살을 느낄 수 있는 진짜 지프로 탈바꿈한 것이다. 이제 남은 건 자연으로 뛰어드는 일 뿐이다.



개울을 건너 자갈길을 달렸다. 로우기어 덕에 거친 길에서도 높은 출력과 토크를 유지하며 가속이 가능했다. 로우기어가 없는 차로 왔을 땐 돌부리 하나를 넘을 때마다 움찔거렸던 길이다. 군용차를 연상시키는 오프로드 타이어가 불규칙한 노면에서도 꾸준히 접지력을 확보하며 속도를 냈다.

새롭게 추가된 바위 모드는 '진짜배기' 오프로더를 위한 선물이다. 모래, 진흙, 눈길용 프로그램은 전륜구동 차량의 트랙션 컨트롤 시스템으로도 비슷하게 흉내낼 수 있지만 노면이 변화무쌍한 바위 위에서는 어설픈 실력으로는 명함도 못 내민다. 바퀴 하나가 허공에 붕 뜨거나 비스듬한 돌을 밟아 접지력이 약해지면 재빨리 구동력을 제어해 노련하게 구간을 탈출한다. 세상에 거칠 것이 없는 것처럼 매서운 기세로 산을 오른다.

높아진 지상고도 요긴하다. 당장 시야가 높아져 길을 내려다보며 운전하기가 훨씬 수월해졌다. 넉넉한 댐핑 스트로크는 비포장도로의 요란한 진동도 걸러낸다. 무엇보다 툭 튀어나온 돌부리를 지날 때도 바닥이 긁힐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심리적 안정감을 준다. 만약 긁힌다면? 그래도 문제 없다. 모양만 낸 게 아닌 제대로 된 금속제 스키드 플레이트를 차체 하부에 둘러 구동계를 보호한다.



사실 국내 대다수의 비포장도로는 꼭 제대로 된 오프로더가 아니더라도 통과할 수 있다. 간혹 오프로드 성능을 테스트한다고 산길을 찾아갔다가 승용차를 타고 태연하게 오가는 지역주민들을 만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트레일호크가 주는 심리적 안정감은 단순히 '통과가 가능한 것' 이상이다. 어딘가에 차가 빠지거나 배가 닿아 망가지지는 않을까, 그런 걱정을 완전히 덜 수 있다는 뜻이다.

이렇게 산길을 오르니 군 생활 시절 운전했던 군용차가 떠오른다. 철제 범퍼에 보조 연료통을 달고 기계식 파트타임 4륜구동이 달렸던, 그런 차들 말이다. 하지만 그저 물렁거리는 차체에 좁고 더웠던 군용차보다 레니게이드는 훨씬 탄탄하고 쾌적할 뿐 아니라 거침없다. 탱크처럼 자갈길을 뚫고 올라가는 내내 입꼬리가 올라간다.

비포장길을 나와 도로로 돌아가도 불편함이 없다. 잔뜩 개조된 오프로더들은 산 속에서는 강하지만 고속도로에서 피곤함이 배가된다. 반면 레니게이드 트레일호크는 오프로드를 내달린 그대로 집까지 돌아가는 길도 안락한 게 장점이다. 높은 시야 덕에 운전하기도 편하고 유난스럽게 시끄럽지도 않다. 매일 타고 다니기에 부담이 없다. 단지 짧은 기어비와 구름저항 심한 타이어, 박스형 차체 탓에 평균 연비가 10~11km/L에 불과한 점만 감수할 수 있다면 말이다.



지금까지 소형 SUV는 '더 편하게 운전할 수 있는 도심형 퍼스널 카'의 성격이 강했다. 아기자기한 디자인에 화려한 옵션을 넣기 바빴을 뿐이다. 혹자가 SUV인데 오프로드는 잘 달릴 수 있냐고 물으면, "누가 이런 차로 오프로드를 가?"라고 핀잔이나 듣기 일쑤였다.

하지만 지프는 도시 샌님이 되기엔 너무 마초적인 브랜드다. 남성미 넘치는 레니게이드를 만든 것도 모자라 군용차도 울고 갈 트레일호크까지 만들었으니 말이다. 마치 막내조차도 지프 가문의 일원이 되기 위해서는 이 정도 실력은 갖춰야 한다고 자랑하는 것 같다.

레니게이드 트레일호크의 여운은 꽤 오래 갔다. 소형 SUV는 관심도 없었는데, 이런 차라면 타고 싶겠다는 생각이 며칠간 머릿속을 맴돌았다. 정통 오프로더인 랭글러는 너무 부담스럽고, 그렇다고 도심형 SUV를 사고 싶지는 않다면 트레일호크가 좋은 대안이 되겠다.



레니게이드(Renegade)는 이단아라는 뜻이다. 지프 레니게이드는 정말이지 이단아다. 트레일호크는 더욱 그렇다. 소형 SUV는 오프로드에 약하다는 편견, 지프는 불편하다는 편견을 동시에 통쾌하게 날려버렸다. 당신이 레니게이드를 사는 이유가 산 속 오지로 여행을 떠나기 위해서라면? 두 말할 필요도 없다. 트레일호크를 골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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