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승기] 링컨 컨티넨탈, "Make America Great Again"
[시승기] 링컨 컨티넨탈, "Make America Great Again"
  • 이재욱 에디터
  • 승인 2017.06.21 13:46
  • 조회수 33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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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 링컨이에요? 링컨 컨티넨탈? 고급차 타고 오셨네.” 단골 식당 사장님이 풍채 당당한 컨티넨탈을 보자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젊은 세대는 공감하기 어렵겠지만 ‘대통령의 차’ 링컨 컨티넨탈은 중장년층에게 벤츠 버금가는 럭셔리 세단이다. 아메리칸 드림, 풍요로움, 성공한 비즈니스맨의 상징이다. 21세기, 미국적 가치가 도전받는 변화의 시대에도 여전히 컨티넨탈은 황금기 미국의 풍요로움을 오롯이 담고 있다.


지난해, 모두의 예상을 깨고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의 45대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지난 70년간 세계 정치와 경제를 지배해 온 미국의 헤게모니에 대한 저항의 움직임이 커지면서 요 몇 년 새 탈미국주의가 유행처럼 번졌다. 풍요로움으로 대변되는 미국적 가치가 실패한 것으로 간주되면서 상심에 빠진 미국인들에게,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겠다”는 트럼프의 당돌한 선언은 다시금 미국의 전성기가 찾아오리라는 믿음을 심어주기 충분했다.

90년대 초만 해도 미국적 가치는 세계의 유일무이한 질서처럼 보였다. 반세기동안 대립하던 사회주의 진영이 붕괴하고, 모스크바의 맥도날드에는 구름처럼 많은 사람이 몰려들었다. 패스트푸드, 헐리우드 블록버스터, 마천루, 그리고 V8 리무진은 세계인의 선망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도전받지 않는 1등은 없다. 미국적 가치에 대한 도전이 시작된 건 9.11 테러였다. 초강대국 중심의 질서에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이 늘어났고, 영원할 것 같았던 금융시장의 위기와 제조업의 붕괴로 아메리칸 드림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유럽식 사회민주주의가 대안으로 떠오르면서 자연스럽게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미국적 가치=부작용 투성이 실패작’이라는 등식이 세워졌다.

미국 자동차 산업이 위기를 맞이한 것도 그때쯤이다. 빅3라 불리던 자동차 공룡들이 경제위기에 맥없이 무너졌고, 소비자들은 등을 돌렸다. 자동차 시장의 패권도 자연스럽게 독일을 위시한 유럽차에게 넘어갔다. 헨리 포드의 모델 T 이래로 세계 자동차 산업을 이끌어 온 미국차가 전례없는 위기를 맞이한 것이다. 빅3가 재기하기 힘들 것이라고 내다본 전문가도 적지 않았다.

2017년 오늘, 어쨌거나 미국차는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거쳐 반격을 준비하고 있다. 그런데 미국차의 양대산맥이 된 GM과 포드의 셈법은 조금 다르다. GM의 차들은 유럽차를 좇아 단단하고 예리하게 다듬어진 반면, 포드는 ‘미국에서는 미국적인 차로’ 승부하기로 방향을 잡았다. 큼지막한 차체와 아메리카 대륙의 기상이 느껴지는 웅장한 디자인, 여유로운 거동 등 미국차의 색깔이 아직도 선명하다.



자, 서론이 길었다. 포드 그룹의 기함인 링컨 컨티넨탈은 그렇게 탄생했다. 1939년 원-오프 모델로 탄생한 이래 이번이 10세대다. 플래그십 답게 가장 먼저 링컨의 새 얼굴을 두르고 나왔다. 이전 링컨의 패밀리 룩은 날카로운 헤드라이트와 날개 모양으로 갈라진 라디에이터 그릴이었지만, 이제는 웅장하고 권위적인 메쉬타입 라디에이터 그릴과 링컨 스타 실루엣을 형상화한 LED 헤드라이트로 바뀌었다. 수평적으로 늘어선 헤드라이트와 라디에이터 그릴은 이전보다 훨씬 무게감 있다. 젊고 스포티해 보이려고 애쓰기보단 아예 보수적이고 중후한 스타일로 돌아서겠다는 전략이다. 이미 MKZ와 내비게이터가 새 패밀리 룩을 둘렀고, 다른 식구들도 이 디자인을 따라갈 예정.



뒷모습 역시 좌우 테일램프가 연결된 링컨 패밀리 룩을 답습한다. 최근 많은 브랜드가 선보이는 연결형 테일램프는 가로선을 강조해 차체를 더욱 넓어보이게 만든다. 시각적인 안정감을 줘 중후함을 더해주는 효과도 있다.

앞서 공개됐던 콘셉트카의 디자인이 거의 그대로 양산 모델에 적용됐다. 헤드라이트의 면적과 같은 약간의 비례감만 조정됐을 뿐, 전체 실루엣이나 이미지는 그대로다. 특히나 옆에서 바라보는 비례감이 하이라이트다. 롱노즈 숏데크, 쿠페라이크 스타일 같은 트렌드는 아랑곳하지 않는 묵직한 사이드라인을 보라! 한껏 앞으로 전진한 A필러와 두툼한 C필러, 불필요한 디테일을 지운 측면의 볼륨감이 대단하다. 5m가 넘는 세단은 많지만, 유독 컨티넨탈의 존재감이 두드러지는 것도 그런 까닭이다.



그러면서도 차별화된 디테일은 눈을 즐겁게 한다. 크롬 몰딩에서 연장돼 나온 독특한 사이드 미러 연결부와 ‘E-랫치’ 전자식 도어 핸들이 대표적이다. 도어 핸들을 윈도우 몰딩에 단 차는 컨티넨탈이 처음이다. 게다가 버튼을 누르면 찰칵 소리와 함께 열리는 도어의 느낌도 남다르다. 과거의 영광을 그리며 만들어진 차지만, 어느 경쟁자보다도 진보적인 아이디어가 담겼다.



실내도 마찬가지다. 디테일을 절제하고 보수적인 격자 구조의 센터페시아를 채택했다. 함께 시승했던 동료는 “90년대 차 같다”고 혹평했지만, 보수적이라는 건 편안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전성기를 그리워하는 중장년층에게 대담한 기교와 화려한 디테일은 맞지 않는 옷처럼 불편하다. 익숙하고 편안한 레이아웃은 컨티넨탈의 타겟 소비자층을 잘 보여준다.



1열에 적용된 30-way 퍼펙트 포지션 시트는 흥미롭다. 유독 미국 플래그십들은 특정 기능에서 숫자를 강조한다. 미국 럭셔리카 라이벌인 캐딜락 CT6는 34-스피커 보스 파나레이 오디오 시스템을 세일즈 포인트로 내세운다. 적어도 한 가지만큼은 독일 플래그십을 이기겠다는 의지의 표현일까? 사실 복잡한 시트 조작보다 마음에 든 건 마사지 기능이다. 대형 세단의 마사지 기능은 으레 시원찮지만, 컨티넨탈의 것은 제법 그럴싸하다.

시승차는 상위 트림인 프레지덴셜이다. 기능적인 특징은 없지만 실내에 최고급 소재를 아낌없이 둘렀다. 살아있는 것처럼 부드러우면서 청바지를 입고 타도 이염되거나 주름지지 않는 베네시안 가죽과 링컨 스타 패턴, 알칸타라 마감재, 그리고 전용 우드 트림이 적용된다. 프레지덴셜에는 3가지 테마 컬러가 있는데, 시승차는 우아한 흰색의 샬레(Chalet) 테마.



리어 모니터와 온갖 편의장비로 무장한 경쟁 모델에 비하면 단촐하지만, 뒷좌석도 충분히 안락하고 고급스럽다. 2열 독립 공조는 물론이고 전동식 리클라이닝도 제공한다. 아예 동승석 시트까지 뒷좌석에서 조작이 가능해 쇼퍼 드리븐으로서 부족함이 없다. 아무렴, 대통령도 탔던 컨티넨탈이다. 운전석에서는 운전석대로, 뒷좌석에서는 뒷좌석대로 만족할 수 있다는 점이 큰 매력이다.

권위적인 디자인과 보수적인 인테리어, 드넓은 뒷좌석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컨티넨탈이 쇼퍼 드리븐이라고 지레짐작한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컨티넨탈에서 가장 짜릿한 부분은 드라이빙 퍼포먼스다. 플래그십 세단이 반드시 부드럽고 편안한 뒷좌석용 차라는 편견을 버리자. 컨티넨탈은 편견을 뛰어넘는 우수한 스프린터다.



9세대 컨티넨탈에는 V8 엔진이 들어갔었지만 작금의 포드는 일부 차종을 제외하고 V8 엔진을 사실 상 퇴출시켰다. 심지어 아메리칸 슈퍼스포츠의 상징인 포드 GT에 V6 터보 엔진이 들어가는 시대다. 플래그십 세단도 예외가 아니다. V8 엔진 대신 3.0L V6 에코부스트 엔진이 얹혔다. 물론 성능은 V8 못지않다. 393마력의 최고출력과 55.3kg.m의 최대토크가 네 바퀴에 고르게 전달된다. 변속기가 트렌드와 동떨어진 6단 자동이라는 점이 옥에 티.

배기량이 넉넉한 덕에 초반 터보래그는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락업 클러치 개입이 늦고 부드럽게 세팅된 변속기 덕도 크다. 평소에는 구름 위를 떠가듯 부드럽게 가속하지만,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폭발적인 가속력을 선보인다. 추월가속은 물론 초고속 주행에서도 지치지 않고 가속을 이어간다.



전장이 5115mm, 전폭이 1910mm나 돼 좁은 길에서는 거대한 차체가 새삼 와 닿지만, 막상 도로 위에서는 그렇게 차가 크다는 느낌을 받을 수 없다. 예리하게 다져진 스티어링과 빠릿빠릿한 서스펜션 덕이다. 평상시에는 부드럽게 모든 충격을 걸러 범선처럼 유유자적하지만, 스포츠 모드로 전환하면 전자식 가변댐핑제어 서스펜션이 이내 스포츠카처럼 단단하게 거구를 지탱한다.

일상 범위에서 여유롭게 움직이던 스티어링 휠도 깊은 코너에서는 록-투-록 2회전에 불과한 기어비로 날카롭게 코너를 파고든다. 휠베이스가 2994mm에 달해 잘 돌지 못할 것 같다고? 천만의 말씀. 전자제어식 다이내믹 토크벡터링 덕에 코너를 돌아나가는 솜씨가 제법이다. 마치 대형차가 아니라 중형차를 모는 것 같은 민첩함이다.

대형 세단이 이렇게 기민하게 움직이기는 쉽지 않다. 옆에서 보면 마치 거대한 범선이 쾌속정마냥 도로를 가르며 질주하는 것처럼 보인다. 점잖은 모양새라고 얕잡아봤다간 큰코다칠 수 있다.



이렇게 매섭게 질주해도 실내는 시종일관 평화롭다. 액티브 노이즈 캔슬링이 외부 소음을 극적으로 억제해 카랑카랑한 엔진 사운드 외에는 차 안에서의 휴식을 방해할 것이 없다. 매력적인 퍼포먼스를 즐길 수 있는 앞좌석도, 그러거나 말거나 아늑하게 자기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뒷좌석도 모두 꽉 조여지기보다는 여유를 뽐내는 링컨만의 색깔을 오롯이 드러낸다.

단지 흠잡을 거라곤 잘 달리는 만큼 좋은 먹성뿐이다. 공인연비가 복합 7.5km/L에 불과하다. 실연비도 6~7km/L을 오갔다. 철철 넘치는 풍요로움에 푹 빠져있다 보면 연비 같은 건 아무렴 어떤가 싶다. 아메리칸 플래그십은 원래 이렇게 타는 거다.



가장 미국다운 플래그십인 컨티넨탈은 모든 이들의 동요에도 아메리칸 플래그십의 지조를 지키기로 했다. 황금기 미 대륙을 수놓았던 거대한 차체와 웅장한 디자인, 넉넉함으로 무장했다. 유럽차나 그 아류들과는 궤를 달리 한다. 여전히 아메리칸 드림에 향수를 가진 중장년층에게 가장 미국적인 모습으로 돌아온 컨티넨탈이 매력적인 이유다. 꽉 조여진 최신 럭셔리 카에 피로감을 호소하는 이들이다.

트럼프 정권이 시작부터 삐걱대고 있는 것처럼, 눈 높은 소비자들에게 미국식 플래그십으로 승부를 거는 컨티넨탈의 전략이 잘 먹힐 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컨티넨탈에는 분명 그만의 멋이 있다.귀족적인 영국차나 이성적이고 계산적인 독일차와는 다른 카리스마 말이다. 성공한 중산층의 종착점과 같은 여유로움이다. 철 지난 유행? 그럴 리가. 링컨 컨티넨탈은 독일차 일색의 플래그십 전장에서 “다시 미국차를 위대하게” 만들겠다는 야심찬 아메리칸 드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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