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시승] 랜드로버 디스커버리 5, 아직 모험가를 꿈꾸는 당신에게
[최초시승] 랜드로버 디스커버리 5, 아직 모험가를 꿈꾸는 당신에게
  • 이재욱 에디터
  • 승인 2017.06.29 00:00
  • 조회수 44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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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누구나 한 번쯤은 모험을 꿈꾼다. 사회에서 겪는 비유적 의미의 모험 말고, 정말로 아무도 가 보지 않은 오지로 떠나는 그런 모험 말이다. 시베리아 대평원부터 유럽의 도시들과 안데스 산맥, 미국 루트 66까지 지구를 한 바퀴 도는 것도 좋겠다. 편안하고 안전한 모험의 동반자를 한 대 선택해야 한다면, 랜드로버는 분명 1순위 후보에 올라있을 것이다.

“오프로드 좀 탄다” 하는 자동차를 떠올려 보자. 오프로드 SUV의 시조인 지프가 당장 떠오른다. 사막과 정글에서 신뢰받는 도요타 랜드크루저도 꼽을 수 있겠다. 각지고 카리스마 넘치는 메르세데스-벤츠 G클래스를 생각하면 입가에 미소가 떠오른다. 그러나 정통 오프로더의 성능과 럭셔리함을 모두 갖춘 랜드로버를 빼놓을 수 없다.

랜드로버는 군용차와 상용차를 만드는 회사로 시작했다. 로버 사의 책임 디자이너였던 모리스 윌크스가 지프의 프레임에 차체를 얹어 실용적인 다목적차로 만든게 최초의 랜드로버인 시리즈 I이다. 브랜드 역사에 변곡점이 나타난 건 1970년이다. 미국에서 트럭 프레임에 스테이션 왜건 차체를 얹은 SUV가 유행하는 걸 보고 찰스 스펜서 킹은 기존 랜드로버의 4륜구동 프레임 바디에 크고 고급스러운 왜건 차체를 얹어 럭셔리 카를 만들기로 한다.

당시만 해도 SUV는 상용차에 가까웠고, 승차감이 나빠 상류층은 SUV를 거의 사지 않았다. 하지만 세련된 디자인에 4륜구동 시스템과 3.5톤의 견인력, 디스크 브레이크와 승용차같은 승차감의 코일 스프링을 갖춘 새 차는 랜드로버를 단숨에 럭셔리 브랜드로 탈바꿈시켰다. 1970년 등장한 레인지로버의 이야기다.



레인지로버의 성공과 함께 랜드로버는 글로벌 시장에서 존재감을 알렸지만, 가격대비 뛰어난 상품성을 내세운 일본산 SUV들의 공세에 레인지로버보다 저렴하면서 실용적인 라인업이 필요해졌다. 레인지로버의 플랫폼을 바탕으로 7명이 탈 수 있는 넓은 공간을 지닌 실속형 SUV를 만들어냈다. 등장과 함께 또 한 번의 돌풍을 불러 온 디스커버리다.

이번에 시승한 차는 5세대인 디스커버리 5. 플랫폼 형식으로만 구분한다면 1·2세대, 3·4세대가 같은 플랫폼을 사용하기 때문에 풀체인지된 디스커버리 5는 3세대에 해당한다. 선대 모델들의 실용성과 거주성, 뛰어난 오프로드 성능은 그대로 물려받으면서 역대 가장 호화롭고 고급스러운 모델로 재탄생했다.



가장 큰 변화라면 모노코크와 래더 프레임 구조를 섞어 만들었던 IBF(Integrated Body Frame) 구조에서 알루미늄 모노코크 바디로 전환된 것. 과거에는 프레임 바디가 아니면 오프로드 주행이 어렵다는 게 중론이었지만 신소재와 새로운 설계 구조가 도입되면서 모노코크 바디로도 프레임 바디 못지않은 강성을 확보하는 게 가능해졌다. 그러면서도 무게는 기존대비 450kg나 줄었다. 체중감량은 퍼포먼스 뿐 아니라 연비 개선에도 도움이 된다. 디스커버리 4보다 100mm 이상 길어졌음에도 주행성능과 효율 모두 개선된 비결이다.

전체적인 디자인은 랜드로버 최신 디자인 언어를 따르면서도 디스커버리만의 무게감을 살렸다. 2014년 공개된 디스커버리 비전 콘셉트카의 외관 디자인을 거의 그대로 물려받았다. 이보크에서 시작된 디자인 혁신은 레인지로버 라인업에는 보다 고급스럽고 우아함을 살린 쪽으로, 디스커버리 라인업에는 남성적이고 중후한 스타일로 반영됐다. 동생 디스커버리 스포츠보단 고급스러우면서도 디스커버리만의 색을 잃지 않았다.



가령 디스커버리의 상징적인 계단형 루프나 비대칭 테일게이트는 그대로다. 수직으로 서 있었던 C필러는 상어 지느러미처럼 기울여 역동성을 더했다. 기존에는 펑퍼짐하고 마치 철벽처럼 묵직한 이미지였다면 이제는 웅장하면서도 미래적이고 동적인 분위기다.



모든 랜드로버가 다 똑같은 모습으로 바뀐다는 비판도 있지만, 호감형이라는 건 부정할 수 없다. 앞모습은 최신 랜드로버를 보면서 으레 예상할 수 있는 변화지만, 뒷모습은 역대 디스커버리 중 가장 파격적이다. 디스커버리로선 역대 최초로 가로형 테일램프가 적용됐다. 아쉬운 건 이전 세대의 실용적인 클램쉘 테일게이트가 사라진 점. 대신 테일게이트를 열면 내부에 작은 전동식 선반이 마련돼 비슷하게 활용할 수 있다.



실내는 호화로움 그 자체다. 과거 레인지로버와 디스커버리의 차이가 뭐냐고 물으면, “레인지로버는 고급스럽고 디스커버리는 실용적”이라고 답했다. 하지만 이런 등식은 더 이상 성립하지 않는다. 레인지로버 뺨치게 고급스러워졌기 때문이다. 눈에 보이는 거의 모든 부위가 가죽으로 씌워졌고 우아하게 작동하는 기능들이 즐비하다.



가령 보는 사람마다 감탄을 자아내는 전동식 시트 폴딩 같은 것들이다. 트렁크 측면의 전동 스위치나 2열 도어 옆에 붙어있는 버튼 원터치 조작으로 2·3열 시트를 접을 수 있다. 심지어 어플리케이션을 통해 집을 나서기 전에 시트를 접어둘 수도 있다. 큰 짐을 실어야 할 때, 차에 타기 전 전자동으로 시트를 접어두는 편안함을 생각해보라. 기계식 레버를 당기는 것보다 작동이 느리지만 훨씬 품위있다. 시트를 모두 접었을 때 트렁크 용량은 무려 2406L에 달한다.



디스커버리의 또 다른 장점은 성인 7명이 타도 전혀 불편하지 않다는 것이다. 전폭이 2m가 넘어 2열에 3명이 앉기도 충분히 넉넉하고, 특히 계단식 루프 덕에 3열에 성인이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앉아 장거리를 탈 수 있다. 실제 3열 탑승을 고려했기 때문에 USB포트나 송풍구같은 편의사양도 마련돼 있다. 이 차만 있으면 미니밴도 필요 없다는 뜻이다.

USB 포트가 엄청나게 많은 점이 특이하다. 12V 시거잭보다 USB 포트가 많다. 디스커버리는 정처 없이 세계를 떠도는 여행자와 함께 할 일이 많은 차다. 십수 가지 전자제품을 동시에 충전하며 부담없이 여행하라는 배려다. 물론 고급진 가죽과 첨단 전자장비로 무장한 디스커버리로 차를 아끼지 않고 오지 탐험 할 사람이 그리 많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상당히 시트 포지션이 높은 편인데, 온로드에서 스포티한 주행감각을 살리기보다는 오프로드에서 시야를 확보하기 위한 설계다. 물론 온로드에서도 빛을 발한다. 에어 서스펜션으로 지상고를 껑충 높이면 트럭보다도 높은 시야로 도로를 관망하면서 달릴 수 있다. 큰 차체에도 운전하기가 편하다.

그 밖의 조작 장치들도 무엇 하나 어설픈 법이 없다. 변속 다이얼 바로 아래에는 터레인 리스폰스 시스템의 조작 다이얼이 달려있다. 오토모드에 두면 평상시에는 쏙 들어가 있지만 꾹 누르면 위로 올라와 다이얼로 지형을 설정할 수 있다. 다른 차 같았으면 그냥 다이얼이나 버튼으로 조작할 것조차 남다른 아이디어로 감성적 만족도를 주는 게 랜드로버의 장점이다.



디스커버리에 올라타 시동을 건다. 정말이지 ‘올라탄다’는 말이 잘 어울린다. 에어 서스펜션은 오프로드·노멀·액세스 등 3단계로 작동한다. 지상고가 75mm 높아지는 오프로드 모드에서는 성인 남성도 올라타기 어려울 정도로 높아지고, 액세스 모드에서는 60mm 하강해 일반적인 도심형 SUV만큼 낮아진다. 안전벨트를 풀고 문을 열면 자동으로 액세스 모드로 내려오도록 설정할 수도 있다.

이번 세대에는 2.0L 직렬4기통 인제니움 엔진이 들어간 디스커버리도 출시된다. 240마력을 내는 2.0이 궁금하지만 시승차는 3.0L V6 디젤 엔진이 탑재된 TD6. 258마력의 최고출력을 낸다. 오프로드 주행을 염두에 둔 만큼 출력보다는 토크 중심으로 세팅돼 1750rpm부터 61.2kg.m의 토크를 뿜어내는 데 주목해야 한다.



엔진의 회전질감은 상당히 부드럽고 실내로 유입되는 소음도 적다. 가다 서다를 반복하는 도심에서는 정차 후 출발할 때 약간의 터보래그가 느껴지지만 거북할 정도는 아니다. 회전수를 높이면 노면을 박차고 나가는 가속감은 상당한 편. 0-100km/h 가속을 8.1초만에 마치니 웬만한 승용차와 견줘도 부족하지 않다.

서스펜션은 전반적으로 상당히 부드럽게 세팅돼 있다. 최근 많은 SUV들이 온로드 주행을 상정하고 설계돼 단단하고 스포티한 서스펜션을 채택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매끄럽게 요철을 걸러줘 구름 위에 떠가는 듯한 승차감이다. 전고가 성인 남성 키를 넘는 1850mm나 되는 데다 롤링과 피칭을 허용해주기 때문에 급격한 코너에서는 약한 모습을 보인다. 편안함으로 따라갈 상대가 없지만 스포티하진 않다.

하지만 디스커버리 5를 온로드 주행성능만 두고 평가해서는 안 된다. 디스커버리는 그 이름처럼 새로운 길을 찾고 개척하는 차다. 비포장 도로에서의 퍼포먼스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



서울 근교의 가벼운 비포장도로를 찾아 달려봤다. 작은 자갈과 모래로 다져진 길이다. 터레인 리스폰스를 모래 모드로 바꾸고 지상고를 최대한 높였다. 노면을 확인하면서 천천히 달려 나갔다.



오프로드의 양대 산맥이라면 지프와 랜드로버다. 하지만 두 오프로더를 모두 타 보면 확연히 다른 성격이 느껴진다. 지프가 마치 북극의 얼음을 깨고 거침없이 나아가는 쇄빙선 같다면, 랜드로버는 집채만 한 파도에도 흔들림 없이 대양을 항해하는 크루즈선 같다. 저돌적이기 보단 우아하다.

서스펜션은 아무리 고약한 노면이라도 부드럽게 걸러주고, 차 안은 시종일관 평화롭다. 메리디안 오디오 시스템은 가파른 흙비탈에서도 청아한 음색의 클래식을 틀어주고, 보드라운 가죽시트는 장시간의 비포장 주행조차 피곤하지 않게 감싸준다.



랜드로버 가문의 이름이 부끄럽지 않게 마음먹고 달리면 못 갈 길은 없다. 오프로드 모드에서 지상고는 무려 283mm까지 올라가고, 진입각 34도·여각 27.5도·탈출각 30도를 확보한다. 도섭심도는 자그마치 900mm. 어지간한 군용차보다도 뛰어나다. 당연히 로우기어와 50:50 4WD 락 기능까지 갖췄다. 단지 필요한 건 미려한 외모의 이 차를 거침없이 흙투성이로 몰아넣을 운전자의 용기뿐이다.



디스커버리 5는 도로 위의 응접실이다. 아니, 정확히는 도로 뿐 아니라 어디든 갈 수 있는 응접실이다. ‘사막의 롤스로이스’라 불리는 레인지로버 형제들과 견줘도 부족함 없는 고급스러움과 아늑함으로 무장하면서도 성인 7명이 탈 수 있는 넓은 공간까지 갖췄다. 게다가 정통 오프로더인 디펜더 못지않은 퍼포먼스까지 갖췄으니 이 차에게 불가능이란 없다.

랜드로버가 처음 레인지로버를 만들 때 구상했던 제품 콘셉트는 ‘모든 용도의 자동차’였다. 승용차같은 승차감, 귀족적인 디자인과 인테리어, SUV다운 오프로드 성능, 넓은 공간과 실용성까지 모두 지닌 차를 만들겠다는 야심이었다. 세월이 지나 오늘날에는 오히려 레인지로버보다 디스커버리 5가 이 콘셉트에 맞는 모습이 됐다. 이쯤 되면 레인지로버의 가장 큰 라이벌이 디스커버리가 아닌가 싶을 정도다. 고급스러움을 포기할 수 없지만 아직도 모험을 꿈꾸는 당신에게, 디스커버리 5는 거부할 수 없는 최선의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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