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PHEV는 지구를 구원할 수 있을까?
[칼럼] PHEV는 지구를 구원할 수 있을까?
  • 이재욱 에디터
  • 승인 2017.07.26 13:45
  • 조회수 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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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EV는 이제 부정할 수 없는 시장의 트렌드다. 디젤게이트 이후 유럽 제조사를 중심으로 PHEV가 우후죽순처럼 쏟아져 나왔다. 종류도 다양해서 소형차부터 SUV, 대형 세단은 물론 수십억원을 호가하는 슈퍼카에도 충전용 콘센트가 생겨났다. 그러나 시장의 반응은 엇갈린다. 혹자는 PHEV가 전기차 시대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불과하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PHEV는 정말 스쳐지나가는 트렌드일 뿐인가, 아니면 전기차의 단점을 보완한 현실적 대안인가?


PHEV는 일반적인 하이브리드 자동차의 2차전지 용량을 키워 전기만으로 주행할 수 있도록 만든 차다. 하이브리드와 전기차의 중간쯤에 위치한다. 하이브리드 자동차는 연비가 뛰어나지만 아무리 조심스럽게 가속페달을 밟아도 연료를 소비한다. 전기차는 화석연료로부터 자유롭지만 배터리 기술의 한계로 충전시간과 주행거리의 한계가 뚜렷하다. 현 시점에서는 둘 다 이상적인 미래 모빌리티가 될 수 없는 것도 그런 까닭이다.

PHEV는 대용량 배터리에 힘입어 20~40km정도를 전기로만 갈 수 있다. 전기가 다 떨어지면 엔진을 돌려 일반 하이브리드 자동차처럼 달린다. 평소 출퇴근 때는 전기만으로 하고 장거리 여행을 갈 때는 연비 좋은 하이브리드로 변신해 두 차의 장점만을 합쳐 놨다.

운행 전 전기를 충전하고 엔진의 보조로 주행하는 PHEV의 개념은 19세기부터 있었지만 현대적인 PHEV의 개념이 정립된 건 1970년대다. 1969년 GM에서 최초의 PHEV 콘셉트카인 XP-883을 만들었고, UC 데이비스의 앤드류 A. 프랭크 교수가 ‘PHEV’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정의했다. 그러나 당시 기술력의 한계로 PHEV는 내연기관 자동차만큼의 효율을 낼 수 없었고, PHEV는 오랫동안 미완의 기술로 남아있었다.

PHEV가 다시 조명 받은 건 21세기 들어서다. 세계 최초의 하이브리드 양산차 프리우스가 모습을 드러내자 사람들은 여기에 더 많은 배터리를 싣고 전기로만 주행할 수 있는 차를 구상했다. 실제로 2000년대 들어 ‘CalCars’같은 실험적인 튜너들은 프리우스에 납산전지를 얹은 PHEV 튜닝카를 만들기도 했다.



PHEV의 방향이 두 갈래로 나뉜 것도 이때쯤이다. 르노는 2003년 상용 밴 ‘캉구(Kangoo)’에 150km 주행이 가능한 니켈 카드뮴 배터리를 얹은 ‘일렉트로드(Elect’road)’를 시판했다. 일렉트로드에는 500cc 가솔린 엔진이 실려 있었는데, 이 엔진은 오직 발전용으로만 사용되는 레인지 익스텐더였다. 즉, EREV(주행거리연장전기차) 형태의 PHEV가 등장한 것. 이 개념은 2007년 소개된 쉐보레 볼트(Volt) EREV 콘셉트카로 이어진다. 뒤이어 2008년에는 중국의 BYD가 세계 최초의 양산 PHEV 승용차 ‘F3DM’을 시판하면서 바야흐로 PHEV의 시대가 도래했다.

이처럼 PHEV 기술은 100년 넘게 연구돼 왔고, 승용차에 PHEV 구동계가 얹힌 지도 어언 10년이다. 그럼에도 PHEV가 우리에게 여전히 낯선 존재인 까닭은 무엇일까?

우선 그간 대부분의 완성차들이 PHEV 개발에 소홀했던 이유가 크다. 2000년대 들어 탄소감축이 환경정책의 주축으로 떠올랐다. 수송부문에서는 완성차업체에 대한 배출가스 규제가 강화됐다. 자동차가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이는 방법은 의외로 명쾌하다. 연비를 높이면 된다. 기존 자동차 시장의 주류였던 가솔린 엔진을 대체해 연비를 높이는 방법은 두 가지, 디젤과 하이브리드다.

그러나 복잡한 제어 시스템과 값비싸고 무거운 배터리가 필요한 하이브리드는 인기가 없었다. 게다가 대부분의 하이브리드 특허는 도요타가 쥐고 있었기 때문에 비싼 로열티를 지불해가며 하이브리드 자동차를 만들어서는 수익성을 내기 어렵다는 현실적인 문제도 상존했다.

반면 전자제어식 연료분사를 통해 연비와 성능, 소음진동을 모두 잡은 디젤 엔진은 탄소 감축 시대에 최저 비용을 최대효과를 낼 수 있는 대안으로 각광받았다. 디젤에 대한 시장의 거부감이 강한 미국이나 일본에서는 하이브리드가 인기를 끌었지만 유럽에서는 승용 디젤이 시장의 주류로 떠올랐다. 디젤의 전성기였다.



디젤 신화가 깨진 건 2015년의 일이다. 폴크스바겐은 홈그라운드인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디젤 신차를 한창 소개 중이었다. 더 많은 모델에 더 효율 좋고 강력한 디젤 엔진을 얹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미국에서 폴크스바겐 자동차에 배출가스 조작 소프트웨어가 탑재된 사실이 드러났다. 자동차 산업 역사 상 최악의 스캔들인 디젤게이트의 시작이다. 문제가 됐던 EA189 엔진을 시작으로 3.0L급 엔진, 가솔린 엔진, 변속기 등 여러 부분에서의 조작이 발각됐고 그 여파는 아직까지 이어지고 있다.

탄소감축의 이상적인 대안으로 여겨지던 디젤 엔진에 대한 신뢰가 추락하면서 제조사들은 새로운 대안을 찾기 시작했다. 여전히 배터리 용량과 충전 문제를 극복하지 못한 전기차, 도요타가 독보적 우위를 차지한 하이브리드는 제조사들에게 매력적이지 못했다. 두 차의 단점을 커버하면서도 탄소배출량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PHEV가 주목받았다. 그렇게 PHEV는 단기간에 입지를 넓힐 수 있었다.

PHEV가 제조사들에게 인기있는 이유는 그뿐이 아니다. 전기차와 완속충전기를 공유하기 때문에 PHEV 공급 확대는 향후 전기차 공급을 위한 포석이 된다. 장기적으로는 전기차에 대한 소비자의 거부감을 줄여주는 완충재 역할도 한다.



특히 유럽 제조사들은 중대형 모델의 PHEV 라인업을 강화하는 추세다. 차체가 커 대용량 배터리를 싣기도 부담이 없고 높은 가격대 덕에 PHEV 구동계 추가로 인한 가격인상의 영향도 적다. 뿐만 아니라 평균 탄소배출량이 많은 중대형차의 평균연비를 높여 브랜드 전체 배출량을 낮출 수 있다.

고성능차 시장에서도 PHEV는 요긴하다. 비록 무게가 늘어나지만 외부 동력원을 쓸 수 있기 때문에 단시간이나마 폭발적인 성능을 낼 수 있다. 최고출력과 최대토크가 초반에 나오는 전기모터의 특성을 살리면 0-100km/h 가속시간 기록을 줄이고 연속 코너에서의 재가속 성능을 높여 서킷 랩타임을 앞당기는 등 수치상으로 드러나는 차의 성능을 끌어올리기도 최적이다. 포르쉐 918 스파이더, 페라리 라페라리같은 내로라하는 하이퍼카들이 PHEV를 채택한 이유다.

그러나 제조사의 뜨거운 PHEV 사랑과는 대조적으로 소비자의 반응은 여전히 뜨뜻미지근하다. 일반 모델보다 가격이 비싼 게 일반적인 데다 PHEV 자체도 낯설기 때문. 그나마 전기차가 제법 보편화된 유럽이나 미국 캘리포니아 지역은 PHEV가 제법 흔해졌지만, 다른 지역에서는 PHEV에 대한 경계심이 적지 않다. 미국의 경우 일부 PHEV 차종은 불과 10개 주에서만 판매되며 연방 보조금도 전액 지급되지 않는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PHEV는 전기차보다도 낯선 존재다. 가장 저렴한 제품도 3000만원이 넘는 가격이지만 지자체에 따라 수천만원의 보조금이 나오는 전기차와 달리 PHEV 보조금은 500만원에 그친다. 그나마도 매년 선착순 300명에게만 지급될 뿐이다. 더군다나 우리나라는 아파트 식 집단거주 형태가 보편적이다. 여러 세대가 하나의 주차장 공간을 공유하기 때문에 전기차나 PHEV만을 위한 충전설비 설치에 현실적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정부가 220V 콘센트를 통해 충전할 수 있는 RFID 태그 공급을 시작했지만 기존 아파트 단지에서는 충전에 어려움이 많다. 일반 하이브리드보다 수백만원 비싼 PHEV지만 충전기능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면 무겁고 비싼 하이브리드에 불과하다.

하지만 크고 작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PHEV가 가까운 미래에 가장 현실적인 친환경차가 될 것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전기만으로 단거리 운행이 가능하기 때문에 유지비 절감 효과가 크고, 보급량이 확대되면서 판매 단가 역시 내려가고 있어 소비자 인식 개선만 이뤄진다면 단시간에 폭발적인 보급 확대도 가능하다는 관측이다.

배터리 용량이 순수전기차보다 작아 가정용 콘센트에 연결해 충전하더라도 3~4시간이면 완충이 가능한 점도 매력적이다. 이미 지난해 정부는 전국 71개 아파트 단지에 1202개의 RFID 콘센트를 설치했고, 부산시 등 지자체도 RFID 보급에 나섰다. 복잡한 전용 충전기 설치 절차 없이 RFID 콘센트만 보편화되면 어디서나 간단히 충전이 가능하다.



관건은 정부 차원의 보급 장려정책과 제조사의 공급 노력이다. PHEV보다 현실적인 운용의 어려움이 많은 전기차가 더 많이 판매되는 데에는 대규모의 구매보조금이 큰 역할을 했다. PHEV에도 보다 적극적인 보조금 지원이 이뤄지면 자연스레 판매가 늘어난다. 그러나 보조금은 어디까지나 초기 판매견인 효과가 있을 뿐이다.

장기적으로는 PHEV를 제조·판매하는 완성차 업체에 대한 세금감면이나 각종 혜택 제공을 통해 제조사가 PHEV 공급에 자발적으로 나서도록 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많은 제조사들이 PHEV를 평균탄소배출량 감축을 위한 ‘얼굴마담’으로 팔고 있는 실정이다. 중소형 모델 위주로 PHEV 공급이 잰걸음인 외국과는 대조적이다. 결국 정책적 지원과 제조사의 적극적 판촉, 소비자의 인식 전환이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

수소연료전지차(FCEV)나 순수전기차 지지자들은 PHEV가 어정쩡한 과도기에 불과하며, 궁극적으로는 FCEV나 전기차 시대로 전환돼야만 지구온난화를 멈출 수 있다고 외친다. 하지만 PHEV는 과도기라기보다는 현실적인 대안으로 봐야 한다. 되려 아직까지 완벽하게 내연기관 자동차를 대체할 수 없는 FCEV와 전기차가 과도기를 겪고 있다고 보는 것이 맞다.

FCEV는 가장 이상적인 전기 모빌리티로 추앙받지만 여전히 수소의 대량공급도 어렵고 차량 자체의 생산비용도 비싸다. 전기차에게는 배터리가 걸림돌이다. 화학배터리는 기술적 한계에 도달해 효율과 충전 속도를 더 이상 끌어올리기 힘들고 단가 역시 아직까지 수익성과는 거리가 멀다. 배터리 스와핑을 통해 충전 문제를 해결하는 아이디어도 나왔지만 모든 차에 적용하기에는 규격 표준화 등 문제가 많다. 결국 내연기관차를 대체하기는 힘들다.



굳이 비유하자면 자동차는 진화의 과정에 서 있는 셈이다. 유인원이 오스트랄로피테쿠스를 거쳐 인간으로 진화했듯, 내연기관으로 시작된 자동차는 하이브리드를 지나 PHEV, 전기차, 수소연료전지차로 진화 중이다. 그러나 생물의 진화와 마찬가지로 ‘궁극의 종착점’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순수전기차나 FCEV가 대량 공급됐을 때 생겨날 새로운 문제를 우리는 아직 알지 못한다. 결국 자동차 산업은 매 순간마다 당면하는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생물처럼 끊임없이 진화해야 하는 숙명을 지녔다. 때문에 ‘진화의 과도기’라고 그 가치를 인정하지 않을 이유도 없다.

결국 소비자는 지구를 지키는 숭고한 희생정신이 아닌 현실적인 문제들을 고려하며 자동차를 구입하고, 그렇다면 소비자가 지금 현재 가장 만족할 수 있는 차는 그 자체로서 가치가 있다고 해도 될 것이다. PHEV가 단순한 과도기가 아닌, 가까운 미래까지 책임질 현실적인 친환경 모빌리티의 주류라고 평가받는 것 역시 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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