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미니멀리즘의 걸작, 테슬라 모델 3
[칼럼] 미니멀리즘의 걸작, 테슬라 모델 3
  • 안혜린 인턴
  • 승인 2017.09.13 06:58
  • 조회수 2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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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호 칼럼니스트 carguy@globalmsk.com

‘테슬라’ 하면 전기자동차가 떠오른다. 내연기관을 필요치 않는다. 엔진과 변속기같은 무거운 질량으로부터 해방된다는 건 디자인 자유도가 증가함을 의미한다. 당장 엔진의 열을 식혀주는 라디에이터 그릴부터 없앨 수 있다. 하지만 테슬라 수석 디자이너 프란츠는 첫 작품 모델 S에는 라디에이터 그릴을 그대로 두고 세 번째인 모델 3에 와서야 없앴다. 새로운 미니멀리즘 디자인의 반영이었다. 소비자는 환호로 답했다.


기술 발전은 디자인의 발전으로 이어진다. 1950년대 등장한 메르세데스 300SL은 펜더의 볼륨이 특징이 다. 철판에 철판을 덧붙여 표현했다. 지금은 핫 스탬핑이란 기술로 하나의 철판에서 3D 형태를 구현할 수 있다. 열을 가해 성형하고, 급속 냉각하는 반복적인 과정을 거친다. 헤드라이트도 광량 확보를 위해서 광원
사이즈가 커야 했다. LED 기술의 발전은 그런 제약을 없앴다. 날카로운 눈매의 LED 헤드라이트가 그것이다.는 기술의 발전을 보여주는 디자인이다. 뒷문 엣지는 캐릭터 라인과 웨이스트 라인을 합쳐
3개나 된다. 펜더에는 풍성한 볼륨까지 표현해냈다. 헤드라이트는 소형화된 LED 모듈을 통해 사이즈를
줄였다. 자동차 헤드램프는 ‘사람의 눈과 동일하다’고 주장하는 디자이너가 꽤 있다. 그 동안 할로겐 램프는
커다란 크기로 인해 약간은 어벙한(?) 인상을 줬다.

임팩트가 있고 캐릭터 넘치는 표정을 요구하는 요즘 트렌드와는 어울리지 않는다. 임팩트를 주기 위해 헤드라이트 디자인의 형태가 과했었다. 그런 과도기를 지나 기술이 발전하면서 헤드라이트는 작아졌다. 작지만 전체적인 디자인 밀도가 높아졌다. 헤드라이트가 작아져 생긴 여백을 L-finess 스타일의 주간등(DRL)으로 꾸몄다. 헤드라이트 내에 DRL이 존재할 때와 다르다. 헤드라이트와 DRL의 캐릭터가 독립했다. 그만큼 존재감은 뚜렷해졌다. 여기에 일루미네이션(조명 예술)까지 더 했다. 공간적으로나 표현성으로나 디자인의 밀도가 높아졌다. 현재 자동차 디자인에 트렌드가 존재한다면를 지향해야 한다고 필자는 주장한다. 그게 곧 최신 기술의 반영이고 최신 디자인의 자랑이기 때문이다. 디자인은 참 오묘하다. 최신이라고 해서 최선이 되지 못한다. 이유는 미니멀리즘(Minimalism)이 아직도 디자인에 영향을 끼쳐서다.

단순함의 미학

바실리 체어


미니멀리즘의 태동은 세계 1차 대전 이후인 1918년이다. 전후 독일은 쑥대밭이 된 도시를 빨리 재건해야
했다. 이런 시대적 요구로 탄생한 디자인 학교가 바우하우스(Bauhaus)다. 건축가 발터 그리피우스가
설립했지만 정신적 토대는 바실리 칸딘스키가 근원이다. 그는 바우하우스 교수로 재직하면서 가장 기초적인 형태에 집중했다. 점·선·면·원과 같은 단순하고 순수한 조형 요소만으로도 감동을 줄 수 있다고 믿었다. 추상회화의 시작이고 구성주의의 발단이었다.

바우하우스에서 칸딘스키의 수학적 명료함은 정신적 철학이 됐다. 디자인을 심플하게 만들었다. 장식을 배제하고, 거추장스러운 요소는 빼버렸다. 바우하우스 건축물은 네모 반듯했고, 파사드(facade, 건축물의 주된 출입구가 있는 정면부)는 유리창으로 채워졌다. 이런 결과로 공기(工期)를 단축함은 물론, 유리로 된 파사드는 자연 채광의 역할까지 해 효율적이었다. 현대 건축양식에서 이 고전적 방식은 아직도 유효하다. 미니멀리즘의 대단한 영속성(timeless)이다.

제품 디자인도 마찬가지다. 단순하고 효율적이었다. 마르셀 브로이어는 바우하우스를 대표하는 디자이너다. 바실리 칸딘스키의 이름을 딴는 그의 대표작이다. 스틸 파이프를 밴딩 했다. 패브릭을 얹어 의자를 완성했다. 나무 소재를 쓰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도 파격이었다. 규격화된 스틸 파이프는 생산과 가공이 나무보다 훨씬 쉬웠다.

스펀지를 가죽으로 감싸던 쿠션도 파이프에 패브릭을 팽팽하게 연결시켜 대신했다. 조립도 간편했고, 가격도 훨씬 낮출 수 있었다.는 저렴한 가격, 청소와 관리의 용이성, 이동의 간편함, 튼튼한 구조가 장점이었다. 미니멀리즘이 추구하는 철학 그 자체였다. 미니멀리즘이 자동차 디자인에 접목된 시기는 한참 뒤인 이탈리아 조르제토 주지아로 시대이다.

주지아로는 1980년대 자동차 디자인을 주지아로 스타일로 명명할 만큼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피아트 소형차 판다를 시작으로 폴크스바겐 골프까지 단순한 직선·원·사각형·아치로 이뤄진 디자인은 칸딘스키 정신을 빼다 박았다. 그의 디자인이 시대의 흐름을 탈 수 있었던 이유는 디자인에 기교가 없었기 때문이다. 제작자 입장에서 원가절감이 컸다. 아울러 면이 단조로워 단차를 줄이고 완성도를 높일 수 있었다. 주지아로 이전까지 곡선의 풍부한 볼륨이 유행을 선도했다. 주지아로의 단순한 직선으로 이뤄진 쐐기꼴 디자인은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를 만족시켰다. 여기에 더해 경기 호황이 자동차 소비를 부추겼다.

한국이 대표적이다. 현대차 포니는 주지아로 디자인을 세계화시키는데 영향을 끼쳤다. 포드 모델 T를 생산한 컨베이어 벨트가 19세기 자동차 대중화를 선도했다면, 주지아로의 미니멀리즘 디자인은 20세기 자동차 대중화를 선도했다.

우린 지금 21세기에 살고 있다. 미니멀리즘은 구식으로 치부할 수 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컨베이어 벨트가 아직도 생산라인에 존재하듯이, 미니멀리즘도 아직 존재한다. 미니멀리즘은 유행이 아니라 하나의 디자인 공식이기 때문이다.

렉서스 NX


앞서 제시한는 미니멀리즘과 거리가 먼 디자인이다. 3D 핫 스탬핑에 LED 라이트를 늘린 건 제작비를 높인 방식이다. 소비자들은 이구동성으로 디테일이 좋다고 한다. 최신 기술을 이용해 화려한 기교를 맘껏 부리는 디자인은 호평을 받기 충분하다. 충분히 트렌디하고 이를 추종하는 브랜드도 늘고 있다. 문제는 상당히 빠르게 전환하는 소비자의 감각이다. 20세기만 하더라도 트렌드 속에서 개성을 찾았다면, 지금은 개성 속에서 트렌드를 찾는다. 디자인은 기본적으로 개성을 갖춰야 한다. 렉서스에 반기를 든 미니멀리즘적 디자인으로 소비자의 구매력을 상승시킨 브랜드가 바로 테슬라다.

테슬라는 전기차 생산 메이커다. 테슬라 설립자인 일론 머스크는 트위터에서 코크 형제의 전기차 억제 로비에 비판하는 글을 올렸다. 코크 형제는 석유 정제 업체 코크 인더스트리를 운영하는 인물로 월마트에 이어 미국에서 두 번째로 규모가 큰 개인소유 회사다. 화석 연료와 연관된 산업은 세계 경제를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손이다. 즉, 테슬라는 전통적인 산업 강자와 싸워야 하는 혁신을 단행해야 생존할 수 있었다. 테슬라의 어려움은 여기에만 머물지 않는다. 낮은 주행거리에 따른 충전의 불편을 느끼는 소비자도 설득시켜야 한다. 물론 비싼 배터리 구매 비용도 있다. 테슬라 디자인이 안고 가야 할 문제는 산더미였다.

테슬라의 수석 디자이너인 ‘프란츠 폰 홀츠하우젠 (Franz von Holzhausen, 1968生)’은 2008년 합류했다.
당시 소형 전기차 스포츠카인 로드스터(Roadster) 하나뿐이라 테슬라는 라인업 확장을 위해 디자인 스튜디오를 강화했다. 그 결과 2012년 세단인 모델 S가 데뷔했다. 2015년엔 SUV인 모델 X가 등장했다. 그리고
2016년 모델 3를 발표하며 라인업을 확장했다.

프란츠는 테슬라로 오기 전 폴크스바겐에서 뉴 비틀 컨셉트 프로젝트에 참가했었다. 이후 GM으로 옮겨 폰티악 솔스티스(Solstice)를 디자인했다. GM대우 G2X와 같은 모델이다. 2005년부터는 마쓰다에서 근무를 했다. RX8의 모체가 됐던 콘셉트카 카부라(Kabura)가 대표작이다. 비틀을 제외하면 스포츠 성향이 넘치는 모델을 디자인한 셈이다.

프란츠가 테슬라에 합류한 다음 해 모델 S 콘셉트가 등장했다. 그로부터 4년 후인 2013년 콘셉트와 거의
동일한 양산형이 나왔다. 모델 S 디자인엔 특별함이 없다. 트렌드적인 요소는 오로지 한가지 뿐이다. 바로
4도어 쿠페이자 스포츠 세단 스타일이다. 전기차는 내연기관이 없다. 무게와 공간에서 자유로운 만큼 디자인의 자유도도 증가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연기관 디자인을 탈피하지 못한 창조성은 실망이었다. 좋은 측면 비례를 완성했지만 그 정도는 아우디 A7, 애스턴 마틴 라피드에서도 충분히 구현됐다. 디테일은 어떨까? 디테일도 마찬가지다. 독창성은 찾기 힘들다. 헤드라이트와 리어 컴비네이션 램프는 20세기에서나 봤을 듯한 밋밋함 뿐이다. 꼭 21세기 트렌드를 따를 필요는 없지만 심심함을 지울 수 없다.

‘전기차-미니멀리즘-프란츠’

모델 X의 라디에이터그릴, 인테리어 디자인


공식전기차에선 불필요한 라디에이터 그릴도 내연기관 자동차와 동일한 레이아웃과 윤곽선을 갖고 존재한다. 테슬라는 급했다. 모델 S의 플랫폼으로 만든 모델 X에 SUV란 세그먼트를 붙였다. 모델 X는 결코 SUV가 될 수 없다. 이 차의 지상고는 눈대중으로 봐도 모델 S와 동일해 보인다. 험로 주파는커녕 임도에서도 불안할 지경이다. 살찐 모델 S와 같다. 이런 부담감을 떨쳐내기 위해 팔콘 윙(걸윙 도어)을 달았다. 독특함은 살렸지만, 매력은 다른 곳에 있다. 무릎을 굽히고 조금만 시선을 아래로 떨구면 스포츠카와 버금가는 근육질의 하체를 볼 수 있다. 프란츠의 경력이 제대로 드러난 결과다.

다행스러운 건 전기차 다운 라디에이터 그릴을 갖췄다. 헤드라이트도 매끈해졌다. 점차 테슬라 디자인이 미니멀하게 변모한 게 모델 X 디자인의 강점이다.

저렴한 가격으로 핫이슈를 만들어낸 모델 3에 와서는 ‘전기차 - 미니멀리즘 - 프란츠’라는 공식이 완성됐다.
미니멀리즘은 무언가를 더하는 게 아니라 빼는 디자인이다. 모델 3는 과감히 그릴을 뺐다. 생산비용 절감에 이점이 생긴다. 비주얼적으론 허전함이 들 법도 한데, 전혀 그렇지 않다. 헤드라이트 전체를 블랙 베젤로 단장했고 앞부분 노즈를 낮추고 오버행을 극강으로 줄였다. 헤드라이트를 보자. 베젤을 새까맣게 처리한 후 DRL처럼 반짝이는 라인 포인트를 줬다. 그릴의 부재로 생성된 이질감을 분산한 셈이다. 처음 모델 3를 볼 때 그릴보다는 헤드라이트에 시선이 먼저 간다. 다음으로 측면 비례를 보자. 어떠한 구동 레이아웃에서도 볼 수 없는 스타일이다. A필러의 라인을 이어보면 전륜구동 캡 포워드 스타일이다. 당연히 가로 배치 엔진은 앞바퀴 축보다 더 전진해야 한다. 그만큼 라디에이터도 앞으로 옮기고 오버행은 돌출될 수밖에 없다.



이는 어디까지나 내연기관 자동차 얘기다. 모델 3는 전기 자동차다. 내연기관의 제약에서 벗어난 모델 3의 오버행은 FR 레이아웃에 버금갈 정도로 짧아졌다. 오버행을 맘껏 줄여서 에이프런 디자인에 밀도를 높였다. 오버행이 길었다면 헤드라이트와 에어 인테이크, 턴 시그널의 디테일들이 그릴이 있던 노즈와 멀어졌을 것이다. 여백이 늘어나면 이질감은 커질 수밖에 없다. 노즈를 최대한 낮추고 그릴 형상도 없앴다. 보행자 충돌 안전 규정은 자연스럽게 맞춰졌다. 루프도 리어 글래스와 단일하게 했다. 리어 램프도 블랙 베젤을 사용했다. 결과적으로 2가지 컬러만 존재한다. 2가지 컬러는 형태를 미니멀화시킨다. 모델 3 디자인엔 화려한 기교는 찾을 수 없다.

헤드라이트와 리어 램프는 바디와 일체화됐다. 홈을 파고 바디 밖으로 돌출시키는 트렌드랑 상당히 멀다. 측면 엣지도 웨이스트 라인을 제외하고는 심플하다. 장식성을 위해 크롬 가니시를 남발하는 여타 브랜드와는 등을 돌린다. 휠 디자인 역시 흔한 다이아몬드 커팅을 배제했다. 이래도 될 정도인가 걱정이 될 만큼 디테일이 부족하지만 미니멀하다는 것으로 대신했다. 콤팩트 세단답게 오버행 사이즈는 과감히 줄이고, 이질적 비례감이 없는 완벽한 라인으로 꾸몄다. 헤드라이트에서 시작한 곡선이 루프를 타고 내려와 패스트백에서 끝난다. 펜더를 타고 흐르는 라인이 C 필러에서 감각적으로 솟아오른다. 완벽한 비례를 위해 휠은 황금구경(황금비율과 대구경을 합쳤다는 의미)을 이룬다.

미니멀 디자인의 걸작 모델 3



20세기 주지아로의 미니멀리즘과 21세기 테슬라의 미니멀리즘은 다르다. 미니멀리즘은 진보한다. 저렴한
가격으로 대중성을 위했던는 1962년 미국 사무가구 회사 ‘놀’이 생산하면서 고가의 제품이
되었다. 패브릭이 가죽으로 바뀌고, 고광택 크롬 파이프를 쓰면서 비싸졌다.  디자인이 손색없는 이유는, 미니멀리즘의 타임리스에 트렌드를 디테일로 입혔기 때문이다.

테슬라는 전통적인 자동차 산업 패러다임을 뒤흔들 게임 체인저의 위치다. 태생적으로 독특할 수밖에 없고, 이질감을 줄여야 하는 숙명도 타고났다. 모델 S로 시작한 첫 발걸음은 조심스러웠다. 모델 X의 디자인은 과도기적이라 뛰어난 매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모델 3에 와선 테슬라만의 아이덴티티가 분명해졌다. 일련의 과정을 통해 디자인이 농후해졌다. 소비자들은 테슬라의 이질감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대중적인 모델 3는 지금까지 모델 중 가장 미니멀해졌고 판매량은 폭발했다.

테슬라 디자인은 마치 주지아로 시대가 그러했듯이 미니멀리즘을 미래 지향성으로 이용했다. 방식은 같지만처럼 최신 트렌드를 디테일로 입혔다. 재규어의 수석 디자이너 이안 칼럼은 “전기차 디자인에서 라디에이터 그릴을 없애지 않겠다”고 말한 바 있다. 보수는 혁신이 될 수 없다. 테슬라 모델 3의 디자인은 미니멀리즘의 진보로 받아들여야 한다. 자동차 디자인에서 미니멀리즘 추구는 효율을 높여준다. 생산 원가가 절감된다는 의미다. 간결함에서 오는 순수함은 타임리스가 된다. 단, 소비자가 미래지향적인 트렌드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조건이 전제다. 지금이 그 때다. 테슬라 모델 3의 놀라운 성공을 보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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