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모건 자동차: 21세기 클래식을 찾아서
[르포] 모건 자동차: 21세기 클래식을 찾아서
  • 이재욱 에디터
  • 승인 2017.08.09 13:36
  • 조회수 4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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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이들이 영국의 자동차 산업을 지나간 영광에 빗대지만, 모건만큼은 예외다. 107년의 역사 속에서 단 한 번도 다른 자동차 회사에 인수된 적 없는 모건은 영국을 대표하는 클래식 스포츠카 제조사다. 전통과 장인정신을 고집하면서도 독자적인 기술력을 바탕으로 미래를 개척하는, 21세기의 살아있는 화석을 만났다.

모건은 한국인들에게 낯선 회사다. 자동차를 제법 좋아하는 사람도 영국의 모건은 ‘독특한 클래식카를 만드는 회사’ 정도로만 기억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모건은 영국 최대의 자동차 회사다. 순수 영국 자본으로 경영되는 회사 중에서 말이다. 영국 초기 자동차 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을 뿐 아니라 지금은 세계에서 가장 독특한 수제 자동차를 만드는 회사이기도 하다.

전기차와 수소차 시대가 성큼 다가온 21세기, 최후의 클래식 감성을 찾는 800명의 고객이 매년 32개국에서 모건 자동차를 주문한다. 갈수록 몰개성화되고 있는 글로벌 자동차 시장에서 자신의 색을 오롯이 드러내는 모건의 생존비결이 궁금했다. 영국답지 않게 맑고 화창한 날씨가 이어졌던 지난 7월 초순 맬번의 모건 공장을 찾은 것도 그 때문이다.



모건 자동차의 본사는 영국 우스터에서 가까운 작은 마을, 맬번(Malvern)에 위치하고 있다. 영국 제2의 도시 버밍엄 바로 옆이다. 산업혁명의 주역이자 20세기 영국 자동차 산업의 중핵이었던 버밍엄 주변에는 모건 외에도 많은 자동차 공장이 자리한다. 코번트리와 솔리헐에는 재규어 랜드로버 본사와 공장이 있고 레디치에는 MG 본사가 있다. 모건 역시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영국의 자동차 제조사 중 하나였다.

1909년, 대서부철도를 나와 자동차 딜러를 하던 헨리 F. 스탠리 모건은 자신이 탈 자동차를 직접 설계하고 만들었다. 당시만 해도 자동차는 엄청난 고가에 아무나 가질 수 없는, 자본가와 귀족들의 장난감이었다.



모건은 구조가 복잡하고 값비싼 자동차 대신 모터바이크의 설계를 유용한 세 바퀴 자동차를 고안해 냈는데, 이것이 모건 자동차의 시작이다. 구조는 단순했다. 앞쪽에는 V형 2기통 공랭식 엔진을 얹고 좌우로 바퀴를 달았다. 그리고 오토바이처럼 하나의 뒷바퀴를 굴려 구동력을 얻는 방식. 앞은 자동차, 뒤는 오토바이인 셈이다. 당시 영국의 까다로운 세금 규정 때문에 탄생한 변종이었다. 하나의 뒷바퀴를 굴리는 모건의 3륜 자동차는 세법의 빈틈을 파고들어 오토바이로 분류됐고, 덕분에 세금이 4륜차의 1/4에 불과했다.

세금은 물론 단순한 구조 덕에 차 가격도 저렴하고 유지비도 적게 들었다. 그러면서도 모델에 따라 2명 혹은 4명이 탈 수 있어 실용적이었다. 이렇게 파격적인 발상으로 탄생한 모건 자동차는 1910~1920년대 영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대중차였다.

모건의 3륜차는 실용적인 데다 빨랐다. 모터스포츠 태동기 유럽 각지의 모터스포츠 대회에서 가볍고 강력한 성능을 갖춘 모건 3-휠러는 눈부시게 활약했다. 오늘날까지도 모건 스포츠카가 아름다울 뿐 아니라 뛰어난 퍼포먼스를 자랑하는 데에는 이처럼 오랜 모터스포츠 경험도 한 몫 한다.

1935년 모건 최초의 4륜차인 4-4(Four-four)가 등장한다. 네 바퀴, 네 개의 실린더라는 뜻이다. 1938년에는 르망 24시간 내구레이스에 참전해 성능을 검증하기도 했다. 2차 세계대전으로 생산이 중단됐다가 재개됐지만, 전쟁 체제로 개발 및 생산능력을 쌓은 여러 제조사가 치열하게 경쟁하면서 모건 자동차는 예전처럼 인기를 끌지 못했다. 다른 회사들을 따라 평범한 승용차도 만들어 봤지만 역부족이었다.

선택의 기로에 놓인 모건은 여기서 남들과는 다른 길을 걷기로 한다. 바로 같은 차를 계속 만드는 것이다. 물론, 최고의 기술력과 최고의 성능을 포기하지 않으면서다. 그렇게 모건은 대량생산체제 대신 전통을 이어가는 길을 선택했다.



맬번의 피커슬리 애비뉴에 자리잡은 붉은 벽돌 건물이 바로 모건 본사 겸 공장이다. 1914년 세운 공장 건물을 그대로 쓰고 있다. 이곳에서 200여명의 직원들이 모건 자동차를 설계하고, 시험하고, 조립한다. 100년 전과 같은 방식으로 차를 만들지만 연간 수백만 대를 만드는 대기업 못지않게 뛰어난 첨단 기술력을 갖춘 것이 모건의 경쟁력이다.

최근에는 대부분의 자동차들이 모노코크 구조로 만들어지지만, 모건 자동차는 레이스카와 흡사한 프레임 구조를 채택했다. 로드스터는 스틸 프레임을, 플래그십 모델인 에어로 8은 알루미늄 프레임을 사용한다. ‘수제 자동차’라는 명성답게 프레임 조립단계부터 모든 작업은 인력으로 이뤄진다.



에어로 8의 경우 50개의 알루미늄 패널을 조립해 완성되는데, 여러 사람이 작업할 경우 차체의 밸런스가 흐트러질 수 있어 한 사람이 5일에 걸쳐 한 대의 섀시를 완성한다. 보다 단순한 구조의 로드스터 섀시는 2일이면 완성된다. 로드스터 라인업의 4기통과 6기통 엔진은 포드에서, 에어로 8의 8기통 엔진은 BMW에서 공급받는다. 완조립된 상태로 납품받은 엔진은 꼼꼼한 검수를 거쳐 섀시에 장착된다. 이 경량 차체에 엔진을 얹고 바퀴만 끼우면 바로 주행 가능한 상태가 된다.

섀시가 조립되는 동안, 차체동에서는 모건 특유의 아름다운 바디가 다듬어진다. 놀라지 마시라, 모건은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아직까지 차체 제작에 나무를 사용하는 회사다. 최상급 물푸레나무는 유선형 알루미늄 바디의 골격을 이룬다. 그 위에 알루미늄 카울을 덮어 차체가 완성된다.



나무로 차를 만든다고 하면 충격에 약하지 않을까 걱정이 들지만, 잘 가공된 목재는 오히려 금속보다 가볍고 강성이 높다는 게 모건의 설명이다. 충격을 받으면 찌그러져 버리는 금속과 달리 목재 프레임은 탄성이 강해 작은 충돌에는 원형을 잃지 않고 사고가 나도 충격을 부드럽게 흡수한다. 나무 프레임을 사용하는 모건 로드스터는 실제로 영국의 모든 충돌안전규제를 충족한다.

목재의 단점은 단 하나, 낮은 생산성이다. 우수한 품질의 나무는 금속보다 비쌀 뿐 아니라, 깎고 다듬어 형상을 잡는 일은 온전히 사람의 몫이다. 때문에 차마다 조금씩 공차가 생겨 같은 차라도 외부 패널을 서로 맞바꿔 끼우면 어긋나게 된다. 장인들은 조립과정에서 이런 공차를 완벽하게 수정한다. 모든 과정이 100% 장인의 손을 거치기 때문에, 모건에게 조립불량이나 단차 같은 건 남의 이야기다.



고집 센 모건이지만 낡은 방식만 따른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특히 모건의 플래그십 모델, 에어로 8은 항공기술까지 결합된 모건의 자랑. 특유의 유선형 바디를 가볍고 튼튼하게 구현하기 위해 ‘슈퍼 포밍’이라는 기술이 사용된다. 항공기 동체 제작에 활용되는 슈퍼 포밍은 뜨겁게 달군 알루미늄 강판을 진공으로 주형에 흡착, 원하는 형태로 가공하는 공법이다. 완성차 업체 중 슈퍼 포밍을 차체 제작에 활용하는 것은 모건이 유일하다.

그 결과 367마력의 V8 엔진을 얹었음에도 공차중량은 1180kg에 불과하다. 마력당 무게비로 환산하면 포르쉐 911 터보와 맞먹는 수준이다. 모건을 단순히 컬트적인 디자인의 패션카로 치부할 수 없는 것도 그 때문이다.



성능 이야기가 나왔으니 덧붙이자면 모건 스포츠카들은 전 세계 모터스포츠 무대에서 크고 작은 활약을 이어 왔다. 차의 한계를 시험하는 르망 24시 내구레이스를 두 번이나 완주했고, FIA GT 시리즈와 영국 GT 시리즈, FIA GT3 챔피언십 등에 출전했다. 일견 특이한 외관에 성능을 얕잡아볼 수도 있지만 수많은 우승컵을 거머쥐었다. 그 밖에도 로드스터와 3-휠러 등 여러 모델이 지역 레이스에 출전 중이며, 아예 모건 오너를 위한 원메이크 레이스 이벤트도 개최되고 있다. 모터스포츠는 단순한 수치상의 성능만으로 활약할 수 없는 무대다. 100년 넘는 시간동안 끊임없이 다듬어진 모건의 퍼포먼스는 클래식한 외관과 별개로 21세기까지 건재함을 과시한다.

며칠에 걸쳐 완성된 차체가 섀시 위에 얹어지면, 그 다음엔 도색 과정과 내장재 부착을 거친다. 완전무결을 추구하는 모건답게 네 겹의 페인트와 두 겹의 클리어 도색이 올라가며, 도장 작업 역시 수작업으로 진행된다. 그 다음에는 몇 시간에 걸친 광택 작업을 통해 거울처럼 반짝이는 도장면을 갖게 된다. 모건을 주문한 오너는 4400여 종의 컬러를 선택할 수 있고, 원한다면 알루미늄 차체를 연마해 금속 질감을 살릴 수도 있다.



내장재 역시 최고급 요크셔 가죽만 사용된다. 가죽과 스티치 색을 선택할 수 있는 건 기본. 좋아하는 문구나 도형을 자수로 박아넣을 수도 있다. 이렇게 완성된 차는 마지막으로 내·외관 검수와 주행 시험을 마친 뒤 고객에게 인도된다. 적잖은 고객들이 모건 자동차를 직접 인수하기 위해 이 작은 마을을 찾는다고.

모건은 현재의 안정된 판매에 만족하지 않는다. 2012년에는 브랜드의 근간이자 가장 원초적인 주행 감각을 즐길 수 있는 3-휠러를 부활시켰다. 100년 전과 다르지 않은 디자인이지만 모터사이클만큼 가벼운 차체에 강력한 엔진을 얹어 운전의 즐거움을 극대화했다. 출시 1년 만에 1000대가 넘는 계약을 받아-모건의 연간 생산량은 800대 가량이다- 지금도 3-휠러를 구입하려면 한참을 기다려야 한다.



이게 다가 아니다. 2015년에는 3-휠러에 전기 구동계를 얹은 EV3를 공개했다. 500kg에 불과한 경량 차체 덕분에 1회 충전으로 240km를 달릴 수 있다. “배출가스 없는 미래 모빌리티도 클래식하고, 수제차의 고급스러움을 간직하면서도, 운전이 즐거울 수 있다”는 것이 모건의 생각이다. 가볍고 튼튼한 차체는 경량화와 주행거리 연장이 중요한 전기차 시대에도 여전히 매력적이다. 모건은 EV3 외에도 향후 전기 구동계를 라인업을 확장해 나갈 계획이다.

모건은 가슴으로 운전하는 차다. 지조높은 정통파 영국 자동차 제조사이자 장인정신으로 무장한 살아있는 화석이다. 지난 세기를 추억하는 운전자들에게 모건은 특유의 감성으로 추억을 전한다. 하지만 변화무쌍한 자동차 업계에서 ‘21세기 클래식’이라는 것만으로 살아남을 수는 없다. 오랜 시간 살아남은 생물들이 자신만의 생존전략을 세우며 환경에 적응하듯, 모건 역시 변화에 발맞춰 걸어왔기에 살아남았다.

설계와 생산 단계에서의 첨단 공법 도입은 물론 공장의 오염물질 배출량도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춰 감축했으며, 전동화 시대에 필요한 변신도 준비 중이다. 옛날 차를 그대로 만들거나 그 디자인을 따라한다고 클래식이 되는 건 아니다. 전통을 잃지 않으면서 시대의 가치를 담아내는 것, 그것이야말로 모건이 21세기 클래식으로 사랑받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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