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륙의 롤스로이스, 홍치... 붉은 깃발의 클래식 카
대륙의 롤스로이스, 홍치... 붉은 깃발의 클래식 카
  • 홍성국 인턴
  • 승인 2017.08.21 15:34
  • 조회수 26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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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퉁차 천국 중국에도 엄연한 클래식 카가 있다. 바로 60년의 역사를 지닌 '홍치(紅旗)' 다. 붉은 깃발이라는 뜻의 홍치는 공산당과 마오쩌둥 사상을 상징한다. 신중국 건립과 역사를 같이하는 홍치는 중국인들에게 탈것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홍치는 중국의 역사며 자긍심이다.



CA72, 홍치의 탄생
홍치는 중국 최초의 자동차 회사인 FAW(First Automobile Works)의 고급 승용차 브랜드다. 마오쩌둥 주석의 애마로 유명세를 탄 이 차는 2015 년 사상 최대 규모의 열병식에 시진핑(習近平)주석이 타고 나와 다시 주목 받았다.

FAW가 만든 둥펑(东风, CA71)은 중국의 첫 국산 승용차다. FAW는 저우언라이(周恩來) 국무총리의 지시로 설립됐지만 3년 동안 상용 트럭 지에 팡(解放)이 유일한 생산품이었다. 지에팡이 나온 1956년에 마오쩌둥은 정치국 회의에서 "책상과 의자 말고 중국이 만들 수 있는 건 무엇인가? 승용차 한 대도 못 만들고 있다" 며 개탄했다. 이 발언으로 FAW는 승용차 개발에 적극 착수했다. FAW는 프랑스 심카 사의 베데뜨를 기반으로 1958년 5월 12 일 중국의 첫 국산 승용차 둥펑을 생산했다. 둥펑 을 본 마오쩌둥이 "드디어 우리 손으로 만든 자동 차를 탈 수 있게 됐다" 며 감격한 것은 유명한 일화다.

1959년, FAW는 둥펑을 토대로 홍치의 첫 모델 CA72를 제작한다. CA72의 내외관은 신중국의 사상과 옛 중국의 분위기를 조화롭게 담아냈다. 휀 더에 자리한 붉은 깃발은 노동자, 농민, 상민, 학생, 군인을 상징한다. 엠블럼인 한자 '红旗' 는 마오쩌 둥의 친필이다. 중국 황실의 등(燈)을 형상화한 테 일램프는 전통적인 분위기를 한껏 살린다. 중국 고대 왕실의 위엄을 상징하는 경태람(푸른 페인트) 을 사용해 실내를 꾸몄다. 당시로선 최첨단이었던 수냉식 V8 엔진을 장착했다.


CA72는 1959년 건국 10주년 행사에 의전차량으로 사용됐다. 국제무대에 처음 선보인 차도 CA72 다. 1960년 홍치는 라이프치히 세계자동차박람회 에 CA72를 전시했다. 첫 전시 이후 홍치는 매회 박람회의 초청을 받아 중국전용 부스를 운영한다.
1966년, 홍치는 메르세데스-벤츠의 770K 리무진을 베껴 국빈용 차량 CA770을 제작한다. CA770 의 전체적인 외관은 CA72를 계승한다. 차체 길이 를 5.8m로 늘렸고 5.6L V8 엔진이 탑재 됐다. 중국의 장관과 당 위원이 사용하는 관용차로 지정되기도 했다. 고위 관료가 마오쩌둥을 접견하거나 외국 정상이 중국에 머무를 때 어김없이 CA770을 탔다. 홍치는 이때부터 국빈용 차 브랜드의 위상을 얻기 시작했다. 1966년부터 10년간 이어진 문화대혁명 동안 홍치는  소형차 CA771, CA773, 구급차 CA770 JH 등을 개발했다. 1976년 10월엔 필리핀 국제 전시회에 참가했다.

오일쇼크, 홍치의 첫 위기

CA770으로 홍치는 탄탄대로를 달리는 듯 했으나 이내 위기에 직면한다. 비싼 생산원가 탓에 적자가 불어난 것이다. 1981년까지 1492대를 판매하고도 6천만 위안(한화 약 100억원)의 적자를 냈다. 소비자의 불만도 홍치의 걸림돌이었다. 당시 홍치는 매우 비싼 차였다. 한 대에 6~20만 위안을 호가했 다. 하지만 비싼 값을 하지 못한단 평이 지배적이 었다. 주행 중 차가 자주 멈추는 등 고장이 끊이지 않았다. 고위 간부가 탄 업무용 차량이 고장나 길가에 멈추기도 했다.

위태롭던 홍치는 1981년 오일쇼크까지 겹치며 생산 중단이라는 최대 위기에 봉착한다. 중국 당기관 지 <인민일보>는 오일쇼크에 대응하기 위해 절전, 절유(节油)하자는 공문과 함께 홍치의 생산을 중단한단 글을 게재한다. 홍치의 차는 연비가 나빠 석유 소모량이 많았기 때문이다. 홍치는 1991년 국가주석 장쩌민이 재생산을 결정할 때까지 10년간 생산을 중단한다.

생산을 중단한 10년 동안 지방 정부의 관용차량 규제가 완화돼 홍치의 자리는 각종 '외제 자동차' 로 대체됐다.

1991년 재생산을 허가받은 홍치는 외국 기업과 합자기업을 설립해 재기에 도전했다. 1992년 아우디 100을 기반으로 작은 홍치라는 뜻의 샤오홍치(小 红旗)를 생산했다. 1998년엔 포드 타운카를 기반으로 큰 홍치라는 뜻의 기함 따홍치(大红旗)를 선 보인다. 2006년부터는 토요타 크라운을 플랫폼 으로 HQ3를 선보이며 중국의 대표브랜드 자리를 되찾았다. 반면 휀더의 붉은 깃발 문양을 없애고 새로운 엠블럼을 적용해 홍치의 아이덴티티를 버렸다는 비판을 받았다.


홍치 L5, 역사를 계승하다

현재 홍치의 라인업은 H 시리즈와 L 시리즈로 나뉜다. L시리즈는 차체 가 긴 스트레치드 리무진이다. L 시리즈 중 가장 긴 L9는 차체 길이만 6395mm다. 대부분 국가행사 의전차량으로 사용된다.

2009년 홍치는 CA770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L5를 선보였다. 건국 60주년 군사퍼레이드에서 처음 공개했다. 휀더의 붉은 깃발, 등(燈)을 형상화한 태일램프, 마오쩌둥 친필 엠블럼을 그대로 옮겨왔다. 휠 캡에 는 장수와 힘을 상징하는 해바라기를 문양을 사용했다. 초창기 홍치를 완벽히 재현했다.

홍치 L5는 전장*전폭*전고 5555*2018*1578(mm)로 제네시스 EQ900보다 크다. 보닛아래 탑재된 6.0L V12 가솔린 엔진은 최고출력 408마력, 최대토크 55.9kg.m 를 발휘한다. 실내는 중국 전통문양이 새겨진 원목마감제, 천연가죽 시트가 제공된다. 문양 가짓수만 10가지다. 가격은 500만 위안(한화 약 8억 3000만 원)이다.



중국의 마치 백작 뤄원요우, 자동차로 써내려간 중국의 역사

중국의 뤄원요우(雒文有)는 유명한 클래식 카 콜렉터다. 그는 1998년 루이비통 클래식 카 경주대회에 참가한 후 중국 클래식 카의 부재를 몸소 느꼈다. 클래식 카 박물관 설립을 계획한 그는 2009년 베이징에서 그 꿈을 이룬다.

뤄씨는 중국의 클래식 카를 수집하면서 신중국의 역사를 알 수 있었다고 한다. FAW가 처음 생산한 승용차의 둥펑(東風, CA71)의 명칭은 마오가 직접 지었다. 원명 칭은 중국어 한자음을 로마자로 표기한 Dongfeng이었으나 영어를 읽지 못하는 마오가 지금의 한자로 바꾸도록 지시했다. 소련으로부터 받은 ZIS 자동차의 유리창 에는 문화대혁명 당시 홍위병들의 역사가 깃들어 있다. 중화인민공화국 2대 주석을 역임한 류샤오치(劉少奇)는 마오쩌둥의 대약진운동을 비판해 문화대혁명 동안 홍 위병(紅衛兵)의 돌세례를 받아야만 했다. 홍치 CA770은 중국 클래식카를 전세계 에 알렸다. 뤄씨는 베이징에서 열린 1998 년 루이비통 클래식 카 경주에 CA770을 타고 참가해 다롄(大連)에서 베이징(北京) 까지 80마일을 달렸다.

혹자는 홍치의 60년 역사가 짧고 클래식 카가 아니라고 비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홍치의 역사는 현재진행형이라는 것이다. 홍치는 중국의 자존심이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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