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올드카 천대받는 한국, '코리안 클래식'을 기다리며
[칼럼] 올드카 천대받는 한국, '코리안 클래식'을 기다리며
  • 이재욱 에디터
  • 승인 2017.09.16 07:35
  • 조회수 10863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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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클래식 카를 타기란 쉽지 않다. 오래된 차의 반입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낡고 권위적인 법제도와 복원 및 유지가 어려운 빈약한 정비 인프라는 차치하더라도 클래식 카를 바라보는 차가운 시선을 견뎌내기란 쉽지 않다. 자동차 문화의 획기적 터닝 포인트가 될 '코리안 클래식' 이 탄생하기까지 우리는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할까?


자동차는 소비재다. 사람들에게 이동의 편익을 제공하다가 오래되면 폐기된다. 하지만 자동차는 소비재 중에서도 아주 특별한 감성을 지녔다. 안팎의 디자인을 통해 미적 만족감을 충족시키고 강력한 달리기 성능과 사운드로 쾌감을 준다.

그 뿐이랴, 자동차는 일반인들 손에 닿는 가장 최첨단의 기계이자 당대의 시대정신을 담는 그릇이다. 전쟁과 평화, 호황과 불황, 트렌드와 혁신까지 탄생 이래 130여년의 세계가 자동차 속에 담겨 있다.  미술품과 문화유산처럼, 클래식 카 역시 그런 역사적 가치를 지녔기에 사랑받아 왔다.

클래식 카 를 통해 당대의 삶을 엿보거나 완벽을 추구했던 엔지니어들의 놀라운 아이디어를 체험할 수 있다. 2000년대 이후 환경과 안전이 자동차 산업의 지상 과제로 떠오르고 소량 생산하던 프리미엄 브랜드가 판매량을 늘리면서 다채로웠던 20세기 자동차의 개성을 회상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클래식 카의 가치는 갈수록 높아지는 추세다.



감성적 미사여구를 갖다 대지 않더라도 클래식 카는 경제적으로 높은 부가가치를 창출한다. 해외에서 클래식 카는 각광받는 수집품 중 하나다. 영국 부동산 컨설팅 업체 '나이트프랭크' 가 발표 한 2017년 1분기 사치품 투자지수에 따르면 클래식 카의 투자수익률은 6%로 시계·동전(4%), 보석 (3%)보다 높았다. 수익률 상승 지표를 보면 클래식 카의 수익률은 지난 5년간 129%, 10년간 404% 성장했다. 즉 앞으로도 높은 성장가능성을 지녔다고 볼 수 있다.

클래식 카는 매매 뿐 아니라 제반 자동차 산업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 클래식 카 수요가 증가하면 정비 시장이 활성화되고, 부품 생산 및 유통 산업도 성장한다. 클래식 카 페스티벌이나 전시 등을 통해 문화, 관광 분야에서도 부가가치를 만들어낸다. 그야말로 '황금알을 낳는 거위' 인 셈이다.

오래된 중고차가 인기를 끌면 새 차 판매가 위축 될까? 천만의 말씀. 오히려 완성차의 판매를 촉진하고 브랜드 가치를 높일 기회가 찾아온다. 클래식 카는 그 자체로서 자동차 산업의 역사이자 문화유산이다. 브랜드의 가치와 신념을 담은 클래식 카가 인기를 끌면, 자연스레 그 가치를 계승하는 최신 모델들도 재조명받는다. 메르세데스-벤츠나 BMW 같은 주요 프리미엄 브랜드들이 박물관을 세우고, 클래식 센터를 설립해 오래된 차를 복원하며 그 역사를 알리는 것이 단순한 '팬 서비스' 가 아닌 이유다.



한국도 클래식 카가 새로운 미래 먹거리로 성장할 가능성을 충분히 내재하고 있다. 수입차의 가파른 성장이 그 증거다. 과거의 소비자들은 단순한 이동수단으로서의 자동차를 추구했다면, 이제는 자신의 라이프스타일과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비교하며 개성을 드러낼 수 있는 분신(avatar)로서의 자동차를 추구하기 시작했다. 정형화된 중형 세단 위주의 판매가 틈새 모델이나 개성 강한 소형차로 분산되는 것도 비슷한 까닭이다.

클래식 카는 이처럼 급변하는 수요에 대한 대안이 될 수 있다. 수입차 진입장벽이 낮아지면서 더 이상 수입차를 구입하는 것만으로는 남과 달라질 수 없기 때문. 실제로 적잖은 소비자들이 신차 대신 소장가치 높은 올드 카를 구입하는 경우가 늘어나는 추세다. 첨단 전자장치가 가득한 신차에 피로를 호소하며 조금 불편하지만 기계적 감성이 남아있는 '아날로그적' 인 올드 카에 매력을 느끼는 것이다.

가령 BMW E30 3시리즈는 2~3년 전까지만 해도 1000 만원대에 팔렸지만 최근에는 2000만~3000만원, 상태가 좋고 희소한 모델은 그 이상의 가격에 거래되기도 한다. 메르세데스-벤츠 190E, W140 S-클래스 등 80~90년대를 풍미했던 다른 올드 카들도 중고 시세가 치솟는다. "오래된 중고차는 무조건 가격이 내려간다" 는 통념을 완전히 깨뜨렸다. 아직은 소수에 불과하지만 이러한 수요가 본격적으로 늘어나면 올드 카, 나아가 클래식 카도 한국 자동차 시장의 새로운 장르로 자리잡을 수 있다.



그러나 장밋빛 전망만 내놓긴 힘들다. 당장 제도가 발목을 잡는다. 자동차 교체 주기가 빠른 우리나라에서 잘 관리된 클래식 카를 찾긴 쉽지 않다. 자연히 직수입으로 눈을 돌리게 된다. 하지만 한국의 자동차 인증 절차는 클래식 카의 국내 인증을 원천적으로 봉쇄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직수입 절차를 통해 들여온 수입차는 자기인증 절차를 거쳐야 한다. 한국의 도로교통법과 자동차관리법에 준하는 차량임을 인정받아야만 합법적으로 도로를 달릴 수 있는데, 문제는 그 규정이 지나치게 까다롭다는 데 있다. 작은 배선 하나의 배치까지도 관련 법령을 철저히 엄수해야 하고, 오래된 차에 현실적으로 장착돼 있을 수 없는 헤드레스트나 에어백 등 최신 안전장치 탑재를 요구한다.

가장 큰 난관은 배출가스다. 대기환경보전법에 따라 인증절차를 통과하기 위해서는 배출가스 자기진단장치(OBD-II)가 반드시 장착돼 있어야 한다. OBD-II는 스캐너를 통해 차량의 배출가스를 진단할 수 있는 전자제어 시스템이다. 1996년 미국에서 처음으로 의무 장착되기 시작했지만 글로벌 스탠다드로 자리잡는 덴 10년이 넘게 걸렸다. 해당 규격이 적용되지 않은 차는 아예 인증절차가 진행되지 않는다. 90년대 이전 모델이라면 '정상적인 절차' 로는 한국에 반입이 불가능한 것이다.

현재로선 외국에서 장기간 거주하며 오랫동안 소유하던 차를 한국으로 이주하면서 '이삿짐'으로 가져오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다. 그러나 조건도 까다롭고 현실적으로 클래식 카 문화가 꽃피우기 위해서는 이런 '꼼수'에 의존한 방법으로는 한계가 있다.



이처럼 불합리한 인증절차는 자동차를 개인의 소장품이 아닌 대기업이 생산한 제품으로만 여기는, 전형적인 관료주의에서 비롯됐다. 국내 자동차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대기업 중심의 편집증적인 법규가 풀뿌리로부터 시작되는 문화의 태동을 저해하는 것이다.

외국의 경우 오히려 오래된 차량의 가치를 인정해 인증 및 검사 절차를 감면해주는 게 일반적이다. 키트카 문화가 발달한 영국은 누구나 자기인증을 받을 수 있을 만큼 절차가 간단하다. 튜닝의 자유를 폭넓게 용인하는 미국의 경우 과장을 좀 보태자면 엔진과 바퀴만 달려 있으면 인증을 받을 수 있을 정도다.

세계 자동차 시장을 선도하는 독일에서는 아예 관리가 잘 된 클래식 카를 '히스토릭 카'로 인정해 자동차세와 검사 의무를 대폭 줄여준다. 또 별도의 번호판을 발급, 문화적 가치를 인정하고 까다로운 관리감독의 대상이 아닌 문화재로 인식한다. 사정당국의 선진적인 의식이 새로운 부가가치를 만들어낸 셈이다.



비록 여러 가지 까다로운 제도적 장벽이 남아 있음에도 한국의 클래식 카 문화는 개개인 오너들에 의해 조금씩 싹을 틔우고 있다. 최근에는 희귀한 차를 소장한 오너들이 모여 미팅을 갖고, 카쇼(car show)를 열거나 그룹 드라이빙을 즐기는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법제도만 바뀌면 한국에서도 유럽이나 미국처럼 클래식 카 문화가 꽃피울 수 있을까? 전문가들은 법규 개정은 시작일 뿐, 중요한 건 의식의 변화라고 지적한다. 우선은 소비 중심의 자동차 문화에서 탈피해야 한다. 올드 카나 클래식 카가 지닌 가치 자체를 직시해야지 단순히 유행한다는 이유로 올드 카를 구입하는 왜곡된 풍조가 정착돼선 안 된다.

류청희 자동차 칼럼니스트는 "우리나라는 애호가들이 바닥을 닦아 놓으면 전문업자들이 돈 냄새 맡고 나서고, 좀 큰 돈이 오간다 싶으면 정부가 나선다" 고 지적했다. 문화를 그 자체로 향유하기보단 산업의 관점으로만 바라보는 탓에 건전한 문화는 망가지고 산업만 남아 '황폐화' 된다는 것.

문화 없이 성장하는 산업은 금전적 이해관계에 따라 왜곡돼 새로운 규제를 불러올 뿐 아니라 이내 성장 동력을 상실하고 무너지기 마련이다. 다양한 분야에서 선(善)성장을 이뤄낼 수 있는 클래식 카 문화가 그렇게 망가지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Festival of Speed 2017- Stephanie O'Callaghan


완성차 업체의 태도 변화도 필요하다. 반세기 넘는 역사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자동차 회사에서는 헤리티지를 찾아볼 수 없다. 불과 10년만 지나도 부품 수급이 어렵고, 기념비적인 자동차를 제조사가 소장하지 않아 외국에서 중고차를 다시 사 오는 웃지못할 촌극이 벌어진다.

자동차의 역사는 산업과 문화의 역사다. 제조사는 스스로 다져 온 역사에 대한 책임감을 갖고 보존에 노력해야 한다. 나아가 클래식 카를 신차 판매에 방해가 되는 걸림돌 정도로 여길 것이 아니라, 헤리티지 구축을 통해 브랜드 가 치를 높일 수 있는 도약의 발판으로 인식하고 제도 개선과 문화 정착을 선도해 나가야 할 것이다.

한국의 클래식 카 문화는 걸음마 단계다. 속상한 일이지만, 한편으로는 앞으로 좋은 토대를 다져나갈 기회가 많다는 뜻이기도 하다. 성숙한 문화와 합리적인 제도 하에 개인과 기업의 쌍끌이를 통해 '코리안 클래식'이 탄생하길 부푼 가슴으로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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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탕바구니 2019-12-05 20:16:15
클래식카를 인정하고 받아줘야 한다에 한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