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꼼수 천지 기아 스팅어, 미니스커트에서 배워라
[칼럼] 꼼수 천지 기아 스팅어, 미니스커트에서 배워라
  • 이준호
  • 승인 2017.09.06 15:05
  • 조회수 16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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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습을 타파하며 등장한 크로스오버는 처음엔 실용성을 높이는 게 목적이었지만, 이내 실용성보다 스타일을 추구하는 4도어 쿠페로 발전했다. 세단보다는 섹시하고 쿠페보다는 실용적인 4도어 쿠페 디자인은, 이제 프리미엄 브랜드의 전유물에서 벗어나 대중차까지 아우르는 새로운 트렌드가 됐다.

크로스오버라는 새로운 장르가 문화, 예술에 등장한 시기는 1960년대다. 전쟁에 대한 회의 속에서 탄생한 히피 문화는 자유분방함을 최대 가치로 내세웠다. 철학에서는 포스트모더니즘의 등장으로 관습, 관념의 타파를 외치며 정신적 토대가 됐다. 고정된 틀을 깨부수는 시도가 시작된 것이다. 틀이 부서지면 내용물은 자연스럽게 섞이게 되고, 섞인다는 건 크로스오버를 뜻한다.


1965년 미니스커트를 발명해낸 영국의 패션 디자이너 매리 퀸트는 빨강 스웨터 위에 소매 없는 드레스를 걸쳤다. 겉옷과 속옷의 개념을 허문 것이다. 이를 믹스 매치라 한다. 패션 디자인에서의 크로스오버를 뜻하는 용어다. 1969년 재즈 트럼프 연주자 마일스 데이비스는 재즈와 락을 결합하며 음악에서 크로스오버를 시도했다.

상대적으로 큰 규모의 경제를 굴리는 자동차 디자인에서 크로스오버는 10년 뒤에나 발현되었다. 왜건과 SUV를 크로스오버시킨 AMC Eagle이 시초다. 해는 1979년이었지만 오래가진 못했다. AMC는 미국 빅3에 대항하기 힘겨운 브랜드였다. 세계 최초의 크로스오버가 빛을 못 보고 단기간에 사라진 이유다. 그로부터 또 다시 10년이 흐르고, 이번에 볼보였다. 1998년 V70에 SUV를 접목시킨 XC 모델을 등장시켰다. XC는 Cross Country의 약자다. 지독한 악천후에 시달리는 스칸디나비아 지역에 안성맞춤이었다. 이듬해 아우디도 올로드라는 모델을 출시했다. A6 아반트에 21cm까지 지상고를 높일 수 있는 에어 서스펜션을 장착했다. 스키드 플레이트를 범퍼 하단에 배치했고, 알루미늄 사이드 스커트와 루프레일도 갖췄다. 도색되지 않은 범퍼는 왜건을 SUV답게 만드는 역할을 톡톡히 했다.



주류에 대항, 크로스오버

자동차 산업에서 크로스오버는 주류에 대항하기 위한 비주류의 시도다. 새로운 세그먼트 개발의 성공으로 시장 우위를 선점하기 위함이다. 당시 볼보와 아우디의 브랜드 레벨이 그 수준이었다. 각진 디자인으로 전성기를 보내던 볼보는 밀레니엄 시대의 제2차 에어로다이내믹을 늦게 받아들였다. 아우디는 싱글 프레임 그릴이 등장하기 전 과도기였다. 결과는 나쁘지 않았다. 볼보 V70XC는 미국에서 첫 해 1만5000대 팔렸으며, 2001년에는 2만4000대 팔려 정점을 찍었다. 볼보와 아우디는 지금까지도 XC와 올로드 콰트로를 정식 세그먼트로 분류해서 생산하고 있다. 대중화는 많은 브랜드들이 동참할 때 이뤄진다. 동참은 당연히 선발주자의 성공을 베이스로 삼는다. 크라이슬러의 퍼시피카가 미국 대표로 합류했고 크로스오버는 대중화됐다. 폴크스바겐 파사트 올트랙·메르세데스-벤츠 E 클래스 올터레인·도요타 벤자·혼다 크로스투어 등, 지금에 와서는 많은 브랜드들이 크로스오버를 양산 중이다. 크로스오버는 리스크가 상당하다. 전통적인 세그먼트와 싸워야 한다. 때문에 비주얼에 대한 소비자의 고정관념 파괴가 선행돼야 한다. 왜건과 SUV를 선택하는 소비자는 목적이 뚜렷했다. 왜건은 짐을 많이 실을 수 있는 승용차를, SUV는 높고 우람한 승차감에 실용성을 원하는 소비자가 선택했다. 스타일보다도 운전 습관, 운행 감각, 라이프스타일 고려가 우선시됐다. 반면 크로스오버는 애매했다. SUV도 왜건도 아닌 스타일이라 어중됐다. 그렇기 때문에 아우디 올로드 콰트로 판매량은 볼보 V70XC보다 형편없었다. 볼보는 왜건과 SUV 모두 갖췄지만, 아우디엔 SUV가 존재하지 않았다. 왜건과 SUV를 두고 저울질하는 소비자를 놓친 셈이다. 볼보는 확장성이 좋았다. 크로스오버는 전통을 갖춰놓고, 베리에이션을 확장하는 개념일 때 먹혀들었다.

거대 기업 메르세데스-벤츠는 크로스오버에 대한 리스크 따위는 무시해도 될 정도로 맷집이 좋았다. 2004년 크로스오버 트렌드를 읽은 메르세데스는 파격적인 CLS 클래스를 등장시켰다. “크로스오버는 왜건+SUV”라는 인식뿐이던 소비자들에게 CLS는 센세이셔널했다. 세단과 쿠페를 크로스오버한 CLS는 상당히 ‘노블한’ 시도였기 때문이다. 전통적인 스타일인 3-박스 세단의 실용성을 포기하고 스타일을 위해 쿠페 디자인을 입혔다.

이는 세단 구매를 T.P.O(Time, Place, Occasion)에 맞는 교양적인 삶의 수단이자, 보편적인 실용성의 상징으로 여기는 관념을 해체시킨 결과였다. 승하차는 불편했고, 통상적인 쇼퍼 드리븐은 포기해야 했으며, 트렁크는 좁아졌다. 자동차 구매 요건에 필수적이었던 실용성을 과감히 덜어낸 해체적 사고의 접목이다. 그런데 또 뒤집어 생각하면, 스타일을 위해 쿠페를 구매리스트에 올려놓은 고객 입장에선 실용적이었다. 쿠페를 구매했는데 세단의 실용성을 덤으로 얻었으니 말이다. 태초의 크로스오버는 철저한 실용성 추구였지만, CLS 클래스가 보여준 크로스오버는 해석하기 나름인 혼돈 그 자체였다.

‘왜건+SUV’ 공식 깬 벤츠 CLS

어쩌면 CLS 스타일의 크로스오버는 ‘21세기 자동차 디자인은 정체됐다’며 푸념하는 공상가들을 위한 최소한의 배려였을 수도 있다. 고리타분함을 벗어던진 CLS는 신선했고, 멋졌다. 결과는 대성공이었고 경쟁자들은 앞다퉈 벤치마킹에 들어갔다. 아우디 A7은 리어 윈도우까지 거대하게 열리는 패스트백 스타일을 접목했다. 이름하여 스포트백이다. BMW 6시리즈는 세단으로 변신하며 그란쿠페란 명칭을 부여받았다. 로우 앤 와이드 비례에 날렵함도 갖추었다. 결국 시장의 파이는 커지며 4도어 쿠페란 세그먼트가 생성됐다.
4도어 쿠페의 시작은 전적으로 프리미엄 브랜드가 주도했다. 대중 브랜드가 실용성을 포기하고 스타일만을 취하기엔 리스크가 컸다. 하지만, 소비자의 인식은 시간에 비례하고, 옅어지는 이질감도 리스크를 상쇄시켰다. 4도어 쿠페 세그먼트에선 생활필수품이던 자동차에 대한 인식이 소비재로 전환됐고, 너도나도 우아하고 멋지며, 다이내믹한 디자인을 선호하게 됐다. 프리미엄 브랜드가 B·C 세그먼트에 이어 SUV까지 4도어 쿠페 크로스오버를 시도하며 대중의 인식과 취향을 빠르게 변화시켰다. CLA·4시리즈 그란쿠페·A5 스포트백·X4·X6·GLC 쿠페 등이 대표적이다. 아우디도 Q4·Q6·Q8 등 SUV 쿠페 시리즈를 내놓으며 라인업을 확충할 예정이다.

프리미엄 브랜드가 4도어 쿠페 라인업을 완성하고, SUV 세그먼트까지 확장시킨 시점에서 대중 브랜드들은 리스크를 고려할 필요가 없어졌다. 첫 테이프를 끊은 대중 브랜드의 4도어 쿠페는 폴크스바겐의 파사트 CC다. 파사트 플랫폼을 조금씩 늘려 개발했지만, 스타일은 파사트보다 날렵하고 스포티했다. 쿠페 스타일의 낮은 루프라인이 특징이고, 등화류 디자인에 차별성을 뒀다. 플랫폼이 동일했기에 파사트와 CC를 선택하는 소비자 사이엔 스타일의 범주 빼곤 없었다. 스타일의 범주엔 뒷좌석 승객들의 승하차시 불편함도 속한다. 아이러니하게도 CC는 Comfort Coupe의 약자다. 쿠페의 입장에서 본다면 편한 것이다. 그렇다고 CC를 쿠페 성향이 높은 모델로 봐야 하는가? 그렇지 않다. 폴크스바겐은 D 세그먼트에서 쿠페를 만들어 본 적이 없다. 크로스오버의 성공 원칙인 확장성 결여다. 편한 쿠페를 원하는 소비자를 타겟으로 했지만, 정체성만 모호한 파사트 CC는 성공요건이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대중브랜드도 합류 폴크스바겐 파사트 CC

올해 파사트 CC를 대체할 모델이 등장했다. 아테온이다. 폴크스바겐 디자인 전무 클라우스 비숍은 아테온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아테온은 파사트 CC보다 더 많은 실내공간을 갖추고 있다. 헤드룸이 넉넉하고 승하차가 더 쉽기에 안락하며 기능적이다. 거대하게 열리는 테일게이트로 트렁크에 환상적으로 접근할 수도 있다. 이런 이유로 4도어 쿠페인 파사트 CC란 이름을 계승하지 않았다. 아테온은 4도어 쿠페 그란투리스모다." 아테온은 가로배치 엔진 매트릭스 모듈을 파사트와 공유하지만, CC와 같은 전철은 밟지 않았다. 편한 쿠페를 지향하는 게 아니라 편한 4도어 쿠페를 지향했다. 이번엔 목표점이 제대로 됐다. 변별력 없던 쿠페라이크를 버리고 새로운 스타일의 세단을 만들었다. 그들은 플래그십 피데온과 파사트 중간에 위치한 세그먼트라고 칭한다.

아테온은 4도어 쿠페에 실용성을 입힌 새로운 결과물이다. 대중 브랜드가 해석하는 크로스오버의 재해석이 돋보인다. 이는 전적으로 전륜구동 베이스이기 때문이다. 전륜구동은 후륜구동에 비해 실내 공간과 트렁크 확장에 이점이 있다. 문제는 실용성에서 좋은 점수를 받는 대신, 스타일에선 후륜구동보다 매력이 떨어진다. 쿠페 스타일이라 하면 으레 후륜구동을 떠올린다. 롱노즈 숏데크는 스포츠카의 미덕일 뿐만 아니라, 운전 재미도 배가시키는 절대조건이다. 아테온의 측면 비례는 전륜구동의 티가 난다. 후륜구동보다 프론트 오버행이 길다. A-필러와 앞바퀴의 간격도 좁아 롱노즈의 멋진 스타일이 나올 수 없다. 이런 단점을 탈피하기 위해 디테일에서 스포츠 DNA를 적극적으로 반영했다.

스포츠 DNA라면 제일 먼저 로우 앤 와이드(Low & Wide)를 떠올릴 수 있다. 낮고 넓은 비례와 레이아웃은 스포츠성을 극대화하는 디자인의 필수조건이다. 프론트 엔드의 구성요소인 보닛, 헤드라이트, 라디에이터 그릴, 에이프런의 레이아웃이 낮아졌다. 로우에 대한 조건이 충족된 것이다. 그리고 와이드를 강조하기 위해 새로운 아이덴티티를 등장시켰다. 라디에이터 그릴의 수평 핀을 헤드라이트까지 확장시킨 것이다. 그릴과 헤드라이트의 구분이 모호해졌다. 끝까지 확장시킨 그릴 핀으로 인해 수평적인 효과가 극대화됐고 와이드한 이미지가 강조됐다. 여기엔 기술의 조화도 한몫했다. 그릴 핀은 수평적 이미지화와 더블어 턴 시그널과 DRL의 기능적 역할도 겸비한다. 클라우스 비숍은 “엔지니어와 디자이너의 치열한 노력의 결과”라고 자평했다.

측면도 마찬가지다. 파사트보다 넓은 디멘션으로 휀더의 볼륨이 강조됐다. 와이드한 비례를 만든다. 앞 휀더를 가로지르는 캐릭터 라인은 보닛의 파팅 라인과 역할을 공유한다. 덕분에 보닛이 넓은 면적으로 열린다. 스포츠 DNA가 적용된 디자인이다. 아울러 캐릭터 라인과 파팅 라인을 공유한다는 것은 생산성 면에서도 효율적이다. 로커패널과 웨이스트 라인은 파사트보다 입체감을 부각시켰다. 보닛엔 공격적인 인상을 주기위해 엣지라인을 추가했다. 전륜구동의 부족한 스포츠 DNA를 디테일한 디자인 요소들이 보완하며 전체적인 완성도를 높였다. 아테온은 4도어 쿠페 스타일의 새로운 확장이다.



정통성 따른 스팅어의 혼란

또 다른 대중 브랜드의 4도어 쿠페는 기아의 스팅어다. 스팅어는 출발부터 정통성을 따랐다. 바로 후륜구동 베이스이다. 그렇기 때문에 스팅어 디자인의 가장 큰 특징은 롱노즈 숏데크의 전통적인 스포츠카 비례이다. 노즈도 최대한 낮췄다. 측면엔 에어 브리더를, 보닛엔 에어 스쿠프를 뚫어 공력 성능도 높였다. 스포츠 DNA를 기본적으로 갖춘 모습이다. 여기에 더해 기아 아이덴티티도 계승했다. 타이거 노즈 그릴과 K5에서 선보인 독특한 C-필러 스타일이 그것이다. 테일램프도 트렁크 데크 상단까지 치켜 올라가 자리 잡았다. 이 역시 K5에서 이어 온 레이아웃이다. '빵빵한 궁둥이'라는 표현의 근원이 되는 디자인이다. 물론 독창적인 스타일은 아니다. 아우디로부터 가져온 피터 슈라이어의 영향력이다.

스팅어는 기아 의 아이덴티티를 잘 살린 디자인임에도 출시 땐 브랜드를 달리했다. 기아 엠블럼을 버리고 후륜구동을 형상화한 새로운 엠블럼을 사용했다. 국내 마케팅의 전형적인 꼼수다. 미국 시장에 내놓은 스팅어는 기아 엠블럼을 달고 있다.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정립하기 위한 경우라 할 것이다. 디자인은 차별적 아이덴티티만큼이나 통일성도 중요하다. 겉보기에도 기아 아이덴티티가 넘쳐나는데 통일성을 갖추지 않고 새로운 엠블럼을 가져간다는 것은 차별화된 모델임을 강조하기 위함뿐이다. 라인업 내에서 차별성을 강조하겠다는 건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만들 요량이다. 모하비가 그랬고, 오피러스가 그랬다. 구시대적 마케팅 방식이 아닐 수 없다. 대중성에서 벗어난 고급 모델이기 때문에 기아 엠블럼을 단 미국 판매용 스팅어보다 비싸게 팔려고 그러나 궁금해진다.

최근 기아 디자인은 K 시리즈로 패밀리 룩을 강조하는가 싶더니, 중구난방으로 세그먼트별 개성을 살리는 방식으로 빠르게 전환되는 상황이다. 혼돈스럽다. 하지만, 소비자들은 구매에 열을 올리고 있다. 후륜구동에 4도어 쿠페 스타일은 프리미엄 브랜드가 아니고선 구매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스팅어는 저렴한 가격에 고급 스타일을 취할 수 있게 된 첫 모델이다. 디자인에서도 가성비 좋은 예를 기아가 탄생시켰다. 디자인의 기아답다. 스팅어 디자인은 4도어 쿠페의 스포츠 DNA를 잘 갖추고 있으면서도, 기아의 아이덴티티가 돋보이는 디자인이다. 트렁크 엔드 리드가 돌출된 모습과 테일 램프의 하단 라인을 측면으로 잡아 뺀 디자인도 독특하다. 후한 평가를 줄 수 있다. 하지만 독창성 없는 인테리어 디자인은 아쉬움을 자아낸다. 무엇보다 스팅어 최고의 가치는 4도어 쿠페 세그먼트를 대중화하는데 일조한 점이다. 이는 일본 브랜드보다도 빠른 행보다.

하나 더 있다. 최근 공개된 현대 i30 패스트백이다. 디자인 스타일 용어인 패스트백을 그대로 모델명으로 썼다. 패스트백은 4도어 쿠페 스타일에서 빠져서는 안될 요소다. 쿠페라이크한 매끈한 루프라인을 만들면서 숏데크를 완성한다. i30를 정통 4도어 쿠페로 넣기에는 좀 그렇지만, 적어도 3-박스 디자인의 BMW 1시리즈 세단보다는 트렌디하다. i30 패스트백은 짧은 전장 플랫폼에서 매끈한 라인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 디자인이다. 현대 유럽 디자인센터의 노력은 많은 소비자들이 개성 넘치는 디자인을 즐길 수 있도록 했다. i30 패스트백도 크로스오버 스타일의 대중화로 볼 수 있는 모델이다. 새로운 트렌드의 대중화를 한국 브랜드들이 앞장서고 있다. 쌍수를 들고 환영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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