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한국서 대박난 제네시스, 독일서 철수한 이유
[칼럼]한국서 대박난 제네시스, 독일서 철수한 이유
  • 이경섭 에디터
  • 승인 2017.11.04 00:06
  • 조회수 31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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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섭 특파원(베를린)

독일 친구에게 물었다. 제네시스(Genesis)하면 무엇이 먼저 떠오르는가?

그의 첫 대답은 80년대 팝 아이콘 필 콜린스가 활약했던 영국의 록밴드 Genesis 이름이었다.  두 번째로는 창조 이야기 즉, 성경의 창세기(Schöpfungsgeschichte)였다.  세 번째 대답은 Geburt (탄생)이라고 말하면서 배시시 웃는다.  누구나 다 아는 단어의 원뜻을 물어볼리 없는 네가 원하는 진짜 대답이 뭔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맞다!  내가 원했던 대답은 단어의 원뜻이 아니라 현대자동차그룹의 프리미엄 브랜드 '제네시스' 모델을 아느냐였다.  독일 친구는 현대나 기아자동차는 알아도 제네시스는 아직 모르고 있었다.

베를린 시내에 있는 현대 자동차 딜러점에 가봤다.

전시장안에 제네시스는 없었다. 딜러 판매원에게 물었다.

"혹시 제네시스 모델이 있는지" 대답은 "딜러 건물 옥상에 중고로 한 대가 전시돼 있다"




어느 업체가 3년간 장기 리스로 사용했다가 반납한 모델이다. 총 운행거리는 2만7000km로 판매가는 3만8990유로(약 5000만원).  당장 현금이라면 3만 5000유로에 주겠단다. 제대로 흥정 붙으면 3만에도 가능할 것 같은 분위기다. 게다가 일반 소비자가 아닌 사업자라면 19% 부가세도 면제 받을 수 있다(독일은 한국처럼 부가세 10%가 아니다).  독일에서 이 제네시스 새차 가격은 무려 6만8000유로였다. 거의 반값 수준이다.

3년이 지난 제네시스 중고차 값은 현금 할인에 부가세 면제를 받으면 새 차 값의  반값도 안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일 중고차시장에서 제네시스의  가격 경쟁력은 제로 상태다. 이 중고차는 지금 몇 개월채 옥상에서 비만 맞고 있다.

제네시스가 독일 시장에 첫 선을 보인 이후 4년여 동안 겨우 몇 백대 정도 팔리는 데 그쳤다. 독일 자동차등록소의 통계에도 잘 잡히지 않을 정도다. 독일 시장 출시 이후 판매 실적은 참담하다.  2017년 5월 이후 이제 제네시스는 더 이상 독일 딜러에게 공급하지 않는다. 현대차 독일법인 스스로 판매를 중단하고 독일 시장에서 철수한 것이다.





얼마 전 제네시스 사장으로 영입된 람보르기니 탑 매니저 출신 만프레드 피제랄드(Manfred Fitzgerald)는 독일 언론을 상대로  "새로운 제네시스 모델들로 2020년 독일 시장을 다시 두드릴 것"이라고 발표했다. 현대자동차 브랜드가 아닌 제네시스 독일 현지의 독립법인으로 정비해 직접 판매할 것이라고 한다.  올 5월에 판매를 중단한 제네시스를 2020년 재도전을 하겠다는 주장이다. 쉽게 말해 올해 떨어졌으니 재수, 삼수하겠다는 거다. 좋게 말하면 와신상담 하겠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 방법은 이미 도요타가 렉서스란 별도 법인 브랜드로 1990년대 써 먹은 전략이다.  당시 렉서스는 미국 시장에서는 통했으나 유럽 특히 독일 시장에서는 이 전략이 통하지 않았다.  누군가 성공하면 따라하는 아류 업체들도 나타나기 마련이다. 닛산 인피니티, 혼다 어큐라 등이 렉서스 브랜드 전략을 답습했다. 미국 시장과 다른 시장에서 나름의 성공을 거두었다. 이 때가 도요타의 생산방식을 대표하는 린 프로덕션, 카이젠, 저스트인 타임, 린 매니지먼트의 TPS(Toyota Production System)로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을 때였다. 렉서스와 마찬가지로 닛산 인피티니, 혼다 어큐라 등도 미국에서는 어느 정도는 판매했지만 독일의 프리미엄 시장에선 제대로 진입도 못하고 초전박살이 났다.  렉서스와 인피니티 관련자들은  BMW 7, 아우디 A8, 벤츠 S클래스 등 쟁쟁한 프리미엄들이 치열한 경쟁을 하는 독일 프리미엄 리그에 서게 됐다고 박박 우기지만 독일 사람들은 렉서스나 인피니티 모델를 결코 프리미엄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독일 딜러 옥상에서 비를 맞고 6개월째 주인을 찾지 못하고 있는 제네시스 중고차.



마찬가지다. 한국 시장에서 지금 잘 나가는 제네시스 G70, G80, G90(국내는 EQ900) 같은 모델로는 유럽이나 독일의 프리미엄 자동차 시장 진출은 언감생심이다.  재수 삼수를 해도 제네시스 리무진이나 세단 모델로는 독일 프리미엄 리그에 진출하기 어렵다.  그 이유는 피터 슈라이어, 루크 둥커볼케 같은 독일 디자이너들과 BMW M의 엔지니어 알프레드 비어만, 그리고 만프레드 피제랄드 같은 현대기아의 탑 매니저들이 더 잘 안다.  실제로 피제랄드 제네시스 브랜드 총괄은 독일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우리에게 유럽 시장이란 독일, 영국, 스위스 시장을 의미한다. 이 시장에서 프리미엄 리그에 진출하는 것이 어렵다는 걸 익히 잘 알고 있고, 상응하는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다.  2년 뒤에는 지금의 제네시스와는 전혀 다른 제네시스를 만나게 될 것”이라고 했다.  아마 영입된 피제랄드나 비어만 등 독일 디자이너나 엔지니어는 리무진이나 세단형 제네시스로 독일의 기존 프리미엄 리그 시장에 도전하기보다는 새롭게 형성되는 SUV 프리미엄 시장 진출이 더 유리하다고 전망하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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