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섭 칼럼]독일 최초 전기차는 베를린올림픽 공식빵 배달 '비틀러' 화물차
[이경섭 칼럼]독일 최초 전기차는 베를린올림픽 공식빵 배달 '비틀러' 화물차
  • 이경섭 에디터
  • 승인 2017.11.06 15:06
  • 조회수 2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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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최초의 전기차는 무엇일까. 폴크스바겐 아니면 벤츠가 개발한 승용차일까. 정답은 2차 대전이 한창이던 1943년, 독일의 수도 베를린에 등장한 빵 배달용 전기 화물차다.

전쟁 때문에 가솔린과 경유 등이 군수물자로 차출되는 탓에 당시 유럽에서 가장 규모가 큰 비틀러 제빵(Wittler Baeckerei) 공장에서 전기차로 독일의 전통 호밀 통곡빵 '코미스브로트(Kommissbrot)' 배달을 시작한 것이다.



호밀과 밀가루를 섞어 만드는 검은색의 먹빵 코미스브로트, 16세기부터 독일에서 군용으로 사용되었던 군량 먹빵이다.  딱딱하고 껄그럽지만 씹고난 후 뒤늦게 은은하게 올라오는 고소함이 있다.  입에 넣자마자 부드러운 달콤함이 순식간에 혀를 마비시키는 순백색의 하얀빵에  길들여진 우리는 독일 먹빵의 고소함을 기다릴 여유를 갖기 어렵다. 호밀 코미스브로트에  스위스 아펜젤러 치즈와  쟝봉(혹은 하몽)햄(Eichelschiken)을 얹어 베를리너뢰스터라이(Berliner Rösterei) 블랙 커피를 곁들이는 베를리너의 아침 식사는 여유와 느긋함이 있다.

이 전기 화물차는 당시 기관차 제작으로 유명한 넥카(Neckar)강 주변의 에슬링엔 기계제작(Maschinenfabrik Esslingen) 공장에서 제작했다.  알루미늄 같은 가벼운 소재를 사용할 수 없었던 당시 비틀러 빵공장 전기화물차는 납축전지 무게를 포함 5톤에 가까운 중량에 최고 시속 28km, 항속거리는 60km였다.  납축전지 충전시간은 6시간. 오늘날 같은 급의 상용 전기차와 비교해도 그리 크게 뒤지는 기술력은 아니었다.



독일 괴팅엔 인근 빵박물관에 있는 비틀러 빵 배달 전기화물자동차




베를린 클래식자동차 전시장이자 경매장인 클래식레미제에 전시되어 있는 비틀러 배달차


약 300마리의 말들이 배달하던 마차 대신 전기 화물차 도입으로는 비틀러 빵 공장은 인력과 비용을 절감할 수 있었다.  베를린에서 최초로 전기차를 상업용으로 이용해 경쟁력을 갖춘 것이다.

독일 수도 베를린 시내 중심가에 자리 잡았던 비틀러 제빵 공장은 1898년도에 설립됐다. 당시 가내공업 형태로 제작하던 코미스브로트(일명 군용 통곡빵)를 대량 생산 시스템으로 바꿔 1943년 당시 2000명의 종업원들이 매일 5000톤의 밀가루로 6만6000개의 빵을 생산했다. 군용으로 납품하고 나머진 시중에 팔았다. 이는 당시 유럽 최대 규모였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이 개최되었을 때 나치당(정식명칭은 국가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과 친했던 비틀러 제빵회사는 올림픽 공식 빵으로 지정돼 올림픽대회 참가선수들에게 공급됐다. 이로 인해 독일의 검은 호밀빵을 전 세계에 알리는 일등공신이 됐다.  어쩌면 당시 베를린 올림픽에 참가했던 손기정 선수가 비틀러가 제공한 독일의 정통 호밀 통곡빵 코미스브로트를 나라 잃은 서러움에 눈물로 맛본 최초의 한국인이 아니었을까?

어쨌든 비틀러의 빵 배달용 전기자동차는 ‘Wittler Brot Regelmaessig essen : 날마다 먹는 비틀러 빵)’이란 문구를 달고 1970년대까지 베를린에서 빵을 배달했다.  하지만 나치에 군수목적의 식량을 제공했다는 이유로 2차 대전이 끝난 직후 사장이 체포됐다. 여러 우여곡절을 겪고도 살아 남았던 비틀러는 결국 1982년에 도산하고 만다.

1970년대까지 10여대가 남아 베를린시내에서 빵 배달을 하던 비틀러 전기자동차는 빵 공장이 도산한 뒤 거의 사라지고 현재 두 대만 남아있다.  물론 이 두 대의 자동차는 모두 박물관으로 갔다.  그 중 한 대는 베를린 독일기술박물관(Deutsch Technische Museum)과 베를린 응용과학대학(HTW: university of applied science)의 문화재 복원학과가 공동으로 복원해 현재 베를린 클래식 자동차 전시장이며 주차장이자 경매장인 클래식 레미제(classic remise)에 전시되어 있다.



베를린 응용과학대학의 문화재 복원학과에서 복원한 비틀러 전기자동차는 일반 클래식 자동차 복원과는 약간 다르다.  일반적으로 클래식자동차는 차의 원본이 존재하느냐 아니냐 따라 복원과 복제로 나뉜다.  차대번호가 있는 차체와 차적증명서가 원본이라면 복원이고 그렇지 않고 사진이나 그림을 참고로 차체나 차대번호를 다시 제작한다면 그건 복제다.  클래식 자동차라도 상품인 경우는 복원이던 복제이던 완벽하게 새 것으로 제작한다.  하지만 문화재 복원은 완전히 망가지지 않았다면 완전히 새것으로 대체하지 않고 가능한 한 옛 상태 그대로 보존하는 것에 더 집중한다. 문화 상품과 문화재의 차이다.






비틀러 전기자동차를 복원했던 베를린 응용과학대 문화재 복원학과의 루트 켈러 교수는 가능한 한 원상태를 유지하는데 초점을 맞췄다고 했다. 차체에 묻어있던 시간과 콘텐츠를 흩트리지 않고 그대로 점착시켰다는 것이다. 

원본이 없는 클래식자동차의 복제품에는 닮음의 정도에 따라 등급이 주어진다.  이른바 상사와 유사다.  상사는 시간의 차이가 존재하지만 유사는 같은 시대다.  즉 상사는 아버지와 아들의 닮음과 같고 유사는 형제 간의 닮음과 같다고 할까?  닮음에도 시간의 변화에 따른 위계 질서가 있는 세상이다. 그 차이만큼 경제적 가치가 부여된다.  오래된 자동차에 점착된 시간과 그 자동차가 오랜 시간 담고 있던 콘텐츠가 돈으로 평가되어 문화재와 문화상품으로 거듭난다.

전쟁으로 뒤숭숭하던 1940년대 초, 베를린시내를 처음으로 매일 아침 독일 전통의 검은 통곡빵 코미스브로트를 배달하던 전기자동차는 이런 연유로 이제 문화재가 되었다.

베를린 이경섭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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