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섭칼럼] 현대차,독일서 디젤차 1300만원 할인하는 이유
[이경섭칼럼] 현대차,독일서 디젤차 1300만원 할인하는 이유
  • 이경섭 에디터
  • 승인 2017.12.04 07:23
  • 조회수 237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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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자동차가 독일에서 사용하던 중고차를 폐차하면서 디젤 차를 새로 구입하면 무려 1만유로(1300만원)까지 할인하고 있다. 차종에 따라 최대 50%에서 80% 정도 된다. 한국에서는 5% 할인에도 벌벌떠는 현대차가 독일서 파격 할인을 내건 이유는 무엇일까?


디젤게이트의 주범인 폴크스바겐 같은 독일 자동차 업체야 당연하다고 해도 우리나라 현대차까지 나서서 독일 국민에게 환경보너스 1만유로(한화 1300만원)씩 챙겨줄것까지야. 독일보다 더 심한 미세먼지 오염 방지를 위해 한국 국민에게 먼저 좀 그렇게 하면 오죽 칭찬 받을까!


이런 이유에는 베를린 중심가 프리드리히거리 70번지 건물안에는 205 지역(크바티어 Quartier 205 : 군대식 용어로 부대 주둔지의 뜻이다. 2차대전 이후로 일반에서는 잘 사용하지 않는 단어다.)과 연관성이 좀 있다. 이 곳은 광장 비슷하게 사방이 탁 트인 공간으로 12m정도 높이의 탑 형태의 조형물이 하나 있다.

탑 조형물은  폐자동차의 크롬도금 자동차범퍼와 차체를 모아 사각형 모양으로 쌓아 제작한 것이다.



아방가르드 예술에서 뻗어 나간 전형적인 정크아트(Junkart: 쓰레기예술 혹은 폐품예술)다.

이를 제작한 작가는 누보 레알리즘(Nouveau Realisme)과 추상표현주의(Absract expressionim)파에 속하는 아상블라주(Assemblage)의 거장인 존 안구스 챔벌레인(John Angus Chamberlain)이다.

아상블라주란 3차원 콜라주를 말한다. 쉽게 말하자면 평면에 '찢어 붙이기' 하던 것(콜라주)을 공간에서 한다는 말이다.

작가는 이 폐차 조형물에 대해 '크리티의 탑:Der Turm von Klythie'이라 명명했다.



크리티란 "단번에 알아차리기보다 잠시 뒤에 알아볼 수 있는 특성을 갖는 형태"를 일컫는다. 작가 챔벌레인은 "폐차 부품들을 쌓아 제작한 이 조형물을 통해 현대 산업 현장에서 발명해 생산하고 파괴하는 산업사회의 적나라한 현실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고백한다.

챔벌레인의 이 정크아트 아상블라주는 1995년에 제작됐다. 14여년 지난 2008년 쯤에서야 비로소 대중의 주목을 받았었다.

예술 작품으로서가 아니라 '폐차보너스(압브라크프레미: Abwrackpraemie)' 제도 때문이었다.

당시 독일 정부는 미국발 금융위기로 인해 판매가 급격히 얼어붙은 독일 자동차 산업의 침체와 위기를 타파하고 자동차와 리싸이클 산업의 활성화를 도모하기 위해 10년 이상 된 자동차를 폐차하는데 보조금을 지원해주는 제도였다.

이 폐차보너스 제도는 비록 한시적이긴 했지만 결과적으로 성공이었다.

2009년에는 '폐차보너스(압브라크프레미:Abwrackprämie)'가 독일에서 올해의 단어로 선정되었으니까.

폐차보너스란 2008년 가을부터 퍼져나간 세계적 금융 위기로 인해 독일 경제도 휘청거리자 독일 정부는 독일 경제를 받치고 있는 자동차 제조업체를 지원하고 더불어 오래된 자동차에서 나오는 배기가스로 인한 환경 문제도 해결하기 위해서 새 차 구입 시 10년 이상 된 중고 자동차를 해당 자동차업체에서 2500유로(당시 한화 350만원정도)에 매입하는 제도였다.

당시 이 제도에 대한 독일인의 반응은 아주 좋았었다.

많은 사람들이 10년 이상 된 중고차를 폐차보너스로 보상받으며 처분하고 새 차를 구입함으로써 독일 자동차 산업 경제는 위기에서 벗어나 다시 활성화 될 수 있었다.

독일이 1930년대 경제 대공황에서 히틀러가 전쟁 준비를 위한 군비 확장을 통해 가장 먼저 경제적 공황위기에서 빠져 나온 이후, 소위 폐차보너스라는 인위적인 수요팽창 정책으로 금융경제 위기를 타파한 셈이다. 경제학자 케인즈의 유효수요 이론의 효과가 독일에서 다시 한번 빛을 보는 순간이기도 했다.

물론 히틀러는 케인즈의 유효수요 이론을 잘 이해하고 실행한 것이 아니라 전쟁 준비를 하기 위해 강제 동원한 군비 확장에 우연히 수요팽창 효과를 본 것이라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어쨌든 불황 극복이라는 결과는 같았다.

덕분에 10년 이상된 자동차들이 대거 폐차장으로 가면서 신차 수요가 늘었고 폐차장에도 공급이 늘면서 자동차 리싸이클링 산업도 활기를 띄게 됐다. 또 오래된 자동차에서 내뿜는 매연과 공해 등 환경문제도 동시에 해결한 일석삼조의 효과를 거둔 것이다.

이 제도는 지금도 진행중이다.

처음 시작했을 때는 독일정부가 정책적인 지원으로 시작돼 유지했지만 이젠 생산 전과정 평가(LCA :Life  Cycle Assessment)인증 인프라가 갖춰지자 자동차 제작사들이 자발적으로 실시한다.

새 차를 구입하는 조건으로 10년 이상 된 자동차를 제작사와 차종에 따라 2000에서 5000유로까지 보상해준다.

정확히 말하면 폐차보너스가 아니라 리싸이클링 자원으로 보상하는 것이다. 물론 여기엔 자동차 LCA라는 유럽연합이 합의한 인증제도(ISO 14040)에 따른 제작사에 대한 세제 혜택 덕분이다. 결국은 국민들 세금으로 자동차기업이 생색을 내는 것이다.

최근 디젤 게이트 사건 이후 이 폐차보너스는 환경 보너스(Umweltprämie) 혹은 디젤보너스(Dieselprämie) 라는 다양한 이름으로 각 자동차 회사들이 배기가스 기준이 유로5 이하의 구형 디젤엔진 자동차를 신형으로 교환하면 최고 1만 유로까지 자발적(?)으로 보상해준다.

헌집 주면 새집으로 돌려준다는 동요 비슷한 것은 들어봤어도 헌차주면 새차 얹어 준다는 것은 처음이다.



독일정부가 환경을 위해 사용했던 보상 전략을 이제 디젤 엔진 퇴출을 막으려 자동차 제작사들이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이다.  2009년도 독일 정부가 거의 반강제적으로 실시했던 폐차보너스는 성공했지만 지금 자동차 메이커들이 자발적으로 실시하는 환경보너스나 디젤보너스는 기대만큼 성공할 것인지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디젤엔진 배출가스를 조작한 메이커들이 '환경 또는 디젤보너스'로 둔갑시켜 디젤차 시내 운행금지 정책을 무산 시키려는 것은 또 다른 꼼수로 보는 독일 소비자들의 매서운 시각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과 다른 독일 소비자의 시각이다.



많은 사람들이 폐차보너스와 챔벌레인의 작품 크리티 탑을 연관 지어 생각하지만 탑이 제작된 것과 폐차보너스 제도와는 무려 20여년이 넘는 시차가 있다.

예술가가 예언가는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예술적 작품이라면 어떤 테마의 미래에 대한 감각적 통찰은 어딘가에 표출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 면에서 폐차쓰레기를 예술 작품으로 승화시키면서 자동차 산업의 미래까지 꿰뚫어 본 챔벌레인의 날카로운 감각을 우연으로만 볼 수 있을까?

베를린 이경섭 특파원 carguy@globalms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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