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콘 부재의 시대
아이콘 부재의 시대
  • 카가이 취재팀
  • 승인 2015.08.16 11:17
  • 조회수 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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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을 지키느냐, 현실에 눈을 뜨느냐 갈림길에서 방황하는 사이 아이콘의 위상은 점차 떨어진다. 아이콘의 생명력 회복이 절실한 때다. 5도어 미니 쿠퍼, 폴크스바겐 더 비틀, 포르셰 911, BMW M3, 포드 머스탱 등 아이콘 카의 현실을 들여다봤다.



전통은 쌓기도 어렵지만 지키기는 더 어렵다. 잘 지키면 영광이지만, 제대로 지켜내지 못하면 변절자 취급을 받거나 약발이 다했다는 평을 받기 일쑤다. 자동차 역사에는 아이콘으로 인정 받는 차들이 꽤 있다. 오랜 역사를 거치면서 자신만의 전통을 지켜온 차다. 젊은이들을 위한 아메리칸 스포츠카를 대표하는 머스탱, 자유와 개성의 상징 미니, 컬트카의 대명사 비틀, 고성능 모델의 대표 주자 BMW M3, 살아있는 스포츠카의 전설 911 등이 시대를 대표해온 아이콘이다.

영원할 줄 알았던 아이콘의 위상이 최근 들어 흔들리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예전의 모습을 잃어버려서다. 사람들은 아이콘 모델을 회고하면서 한결같은 모습을 원한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할 수밖에 없지만, 그 변화는 최소화하기를 바란다. 하지만 요즘에는 필요 이상의 변화로 전통은 무너지고 정통성이 옅어진다. 보편성을 높여 더 많은 사람에게 팔기 위해, 아니면 생존을 위해, 또는 이미지 쇄신을 위해서다.

미니는 자유와 개성, 젊음을 상징하는 아이콘이다. 사람들의 머리 속에는 작고 통통 튀듯 경쾌한 동력 성능을 뽐내는 미니 쿠퍼를 정통 미니로 받아들인다. 왜건 스타일 클럽맨은 정통에서 빗겨난 모델처럼 보이지만 이 역시 미니 역사에 있던 모델의 현대판이다. 미니의 정통성에 부합한다. 그런데 어느 순간 덩치 큰 SUV 컨트리맨이 등장했다. 미니가 SUV를 만들기 시작한 것이다. 미니의 디자인 요소를 그대로 구현했지만, 쿠퍼를 뻥튀기한 듯한 모습은 어색하기 그지없다. 컨트리맨은 시작에 불과했다. 컨트리맨의 쿠페 버전인 페이스맨이 나왔다. 쿠퍼의 쿠페 모델과 로드스터까지 등장했다. 단촐한 미니 라인업이 어느새 시끌벅적해졌다. 미니처럼 라인업이 적은 브랜드는 살아남기 위해서 모델 수를 늘려야 이익을 낼 수 있다. 문제는 새로 나온 모델이 정통성을 살리지 못하면 역효과가 난다. 미니는 갑자기 모델이 많아졌다. 미니를 접할 기회가 많아졌지만, 미니의 정체성은 옅어졌다.

2014년 첫 선을 보인 3세대 미니는 디자인에서 감동을 주지 못했다. 한눈에 미니인지 알아볼 수 있는 정체성은 살아 있지만, 이전보다 못하다는 평이다.

최근에는 미니 쿠퍼 5도어 모델까지 나왔다. ‘쿠퍼=2도어’라는 공식이 무너졌다. 소비자의 요구에 대한 대응보다는 판매를 위한 무분별한 라인업 늘리기로 비추어진다.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미니 쿠페와 로드스터, 페이스맨은 판매가 부진해 단종설이 흘러나온다. 미니 팬들 사이에서도 ‘미니가 미니답지 않다’는 평이 나올 정도로 미니는 변했다.

폴크스바겐 비틀은 컬트카의 대명사로 통한다. 앞뒤 대칭인 차체와 귀여운 외모는 자동차이면서 장난감처럼 여겨질 정도로 자동차 이상의 존재로 받아들여졌다. 오리지널의 복원으로 통하는 뉴 비틀은 1997년에 나왔다. 2011년까지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디자인의 변화 없이 버텼지만, 독특한 디자인으로 꽤 인기를 끌었다. 이후에 나온 더 비틀은 형태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남성적인 이미지로 바뀌었다. 뉴 비틀은 귀여운 외모 때문에 여성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폴크스바겐은 남성 고객 확대를 위해 남성적인 이미지를 입히고, 동력 성능도 역동적으로 개선했다. 정작 남성들은 더 비틀에 관심을 주지 않는다. 여성들은 비틀의 남성적인 모습에 뉴 비틀 만큼 호감을 느끼지 못한다. 결국 더 비틀은 애매한 차가 됐다. 판매도 부진해 폴크스바겐이 더 비틀의 단종까지 고려한다는 소문이 돌 정도다.

포르셰 911은 스포츠카의 아이콘이었다. 페라리나 람보르기니 같은 희소성이 강한 스포츠카와는 다른 역동성과 일상성이 공존하는 콘셉트로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해왔다. 50년 넘는 역사 동안 7세대를 이어오며 확고한 개성을 유지한다. 911은 아이콘의 위상을 잘 지켜낸다. 위기도 있었다. 4세대인 993이 공랭식에서 수랭식으로 바뀌면서 정체성에 큰 변화를 겪었다. 하지만 한결 같은 모습으로 버티기에는 너무 오랜 세월이었는지, 911의 위상도 서서히 금이 간다. 너무 손쉽게 운전하기 편한 차가 됐고, 수동기어는 사라졌다. 강력한 스포츠카를 대표하는 엔진 사운드도 예전 같지 않다. 911이 아이콘을 잃고 대중화한다는 뜻이다.

전통 잃어버린 아이콘의 아쉬움





고성능 모델의 대표는 누가 뭐래도 BMW M3이다. BMW의 역동성을 가장 잘 드러내는 차로 정평이 나있다. 1985년 처음 나와서 30년 동안 고성능 모델 세계를 주름 잡았다. 하지만 요즘 M3의 위상이 예전만 못하다. M3는 문이 2개인 쿠페가 정통이다. 그런데 쿠페의 이름이 M4로 바뀌었다. 3이라는 숫자에 쌓아 올린 전통이 4에 매끄럽게 연결이 되지 않는다. 자연흡기를 고수하던 엔진도 배기가스 같은 환경규제가 강화되면서 터보로 바뀌었다. 팬들 사이에 아쉬운 탄식이 들려오지만 여전히 극강의 성능을 발휘한다. M3의 아이콘 위상이 흔들리는 이유는 외부에 있다. 메르세데스-벤츠 C63 AMG, 아우디 RS5 등이 이제는 M3와 대등한 급으로, 때로는 더 낫다는 평을 받는다.

포드 머스탱도 예전 같지 않다. 우선 미국차 특유의 마초적인 분위기가 사라졌다. 세련된 유럽 스포츠카를 보는 것 같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유럽 스포츠카 분위기가 유리하겠지만, 정작 본연의 미국 시장에서 머스탱의 아이콘이 퇴색했다는 평이 나온다.

자연흡기 대배기량 엔진으로 뻥 뚫린 도로를 밀어붙이는 넉넉한 여유는 배기량 작은 터보 엔진이 대신한다.(물론 GT는 여전히 5.0L가 넘는 대배기량 엔진으로 넉넉한 여유를 베푼다).

끝없이 뻗은 대륙의 도로에 어울리던 퍼포먼스는 한국이나 유럽 산악 지대의 와인딩 도로를 달리기에 더 적합하게 변했다.

이전의 전통을 버리고 새로운 전통을 시작하는 일은 도박이다. 성공하면 한 단계 도약하지만 실패하면 있던 전통까지 하루아침에 사라진다. 쇠락하는 아이콘이라면 앞으로 어떻게 변신할지 고심해야 한다. 아이콘으로서 생명력을 회복하거나, 새로운 아이콘으로 거듭나야 한다. 아이콘 부재의 시대는 아무도 원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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