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섭칼럼] 운전중 키스 행위는 음주운전과 동일할까?
[이경섭칼럼] 운전중 키스 행위는 음주운전과 동일할까?
  • 이경섭 에디터
  • 승인 2018.01.29 08:08
  • 조회수 2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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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테가 말했다던가... 여자(소녀)와 한 잔의 와인은 모든 문제를 해결하며, 술과 키스의 맛을 모르는 자는 이미 죽은 것과 같다.(Ein Maedchen und ein Glaeschen Wein kurieren aller Not; und wer nicht trinkt, und wer nicht kuesst, der ist so gut wie tot.)

오늘날엔 술에 취한 채 운전을 하거나 자동차 안에서 술 맛을 보다가 경찰에 들킨다면 처벌이나 벌금을 면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운전 중 조수석에 앉은 상대방과 키스를 하다가 경찰에 들킨다면 어떻게 될까? 문화와 풍습 그리고 종교에 따라서 공공장소에서 키스가 금지되는 나라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지극히 사적인 공간인 개인 승용차 안에서의 키스라면...?

‘포스트맨은 벨을 두 번 울린다’ 라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건달 프랭크(잭 니콜슨)가 불륜으로 얻은 여인 코라(제시카 랭)와 운전하면서 진한 키스를 하다가 교통사고로 코라를 잃고 절규하면서 끝난다. 1981년에 상영된 이 영화는 불륜이 살인으로 연결되는 전형적인 멜로 스릴러다.

이 영화에서 사건의 전환은 항상 자동차를 통해 이뤄진다. 주유소 겸 간이식당에서 자동차 정비공으로 일하게 된 프랭크는 식당 주인의 아내와 불륜 관계를 맺고 급기야 자동차사고를 위장해 내연녀의 남편을 살해한다. 그리고 불륜과 살인으로 얻은 신혼 여행에서 돌아오는 자동차 안에서 키스에 열중하다가 중앙차선을 넘어서게 되고 마주오는 반대편 차량과 충돌을 피하려고 급회전 하다가 여자가 차 밖으로 튕겨나가 죽는다.


이 영화와 같은 비슷한 교통사고가 유럽에선 드물지만 실제로 발생한다. 여인과 자동차, 키스라는 단어가 영화와 공통이다.

몇 년전 독일 자르뷔르켄(Saarbruecken)시에서 운전중 애인과 키스하다가 차선을 넘어 반대편에서 마주오던 차량과 충돌해 피해차량 운전자인 아기 엄마를 사망에 이르게 한 사건이 있었다.

사고 당시 피해 운전자인 아기 엄마는 안전벨트를 하고 있지 않아 가해자 보험사 측은 '안전벨트 미착용 규정을 이유로 피해자도 40% 손해배상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으나 자르브뤼켄 법원은 키스를 한 가해자의 운전자 100% 책임으로 결론지었다.

독일은 우리나라와는 달리 교통사고 발생의 직접적인 원인 제공자가 대부분 100% 사고책임을 진다. 피해자가 안전밸트를 착용하지 않았다거나 주차금지 지역에 주차했다거나 하는 것들은 교통사고의 직접적인 첫번째 원인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어쨌든 자르뷔르켄 법원의 가해자 책임 판결 이유는 운전중 키스는 알코올 운전과 똑같은 효과라고 판단했다. 즉, 온전히 운전에 집중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한 상태에서 유발한 교통사고라는 것이다. 따라서 운전자의 운전중 키스의 결과도 고농도의 음주운전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고 판결했다.

괴테는 술과 키스의 맛을 모르는 자는 이미 죽은 것과 같다고 했지만, 오늘 날 자동차 안에서 분별 없는 키스는 '죽음의 키스'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소녀와 키스 맛을 모르면 죽은 목숨이라니... 괴테는 좋아했다던 독일 정통 흑맥주 쾨스트리쪄(Köstritzer)를 마시고 술과 문학에 취해서 언급했다면 몰라도 오늘 날 기준으로 독신주의자들과 알콜을 마시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키스나 알콜을 강하게 권하는 말에 다름 아니고 이런 경우, 상황과 해석에 따라 괴테의 이 문장은 유감스럽게도 괴태(怪胎)의 문장이 되고 만다.

사람이 빠른 시간내 목적지로 이동을 하기 위해 자동차를 타는 것은 핸드폰이나 텔레비전을 사용하는 것과는 좀 다르다. 자동차안으로 사람이 들어간다는...... 즉, 기계와 사람이 합쳐지는 은밀하고도 내밀한 관계다.

사람과 자동차가 합쳐 한 몸이 된 채, 함께 목적지까지 이동하는 동안 자동차와 사람은 생사고락을 같이 하게 된다. 캠핑카 같은 자동차 안에서는 먹고 마시고 잠자는 것은 물론 사랑하는 사람과 키스도 할 수 있고 홀로 자연에서 휴가를 즐길 수도 있다. 하지만 달리는 자동차 안에서 운전자가 하는 행동이나 행위 중 알코올을 마시는 것과 키스는 법적으로 같은 대접(?)을 받는다.  말하자면 해서는 안 되는, 하지 말아야 할 금지 사항인 것이다.

운전자가 운전중 키스에 열중하다 보면 자동차도 덩달아 다른 자동차와 죽음의 키스를 할 수도 있다. 운전자와 자동차가 생사고락을 같이 할 수 있다니...이 얼마나 치열하고 내밀한 관계인가?

오스트리아 잘쯔부르크 중앙역 안내 표지판에는 입술 그림과 함께 키스 앤드 라이드(Kiss and Ride)란 표시판이 있다.




우리나라엔 없는 교통 안내 표지판이다. 유럽에서 이 표지판을 처음 대한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무엇을 표시하는지 얼른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입술도 그려져 있겠다 어설픈 영어 실력이라면 “키스하고 타라”는 말로 해석해도 무리는 아니다. 오스트리아 사람이라고 이 표지판을 보고 야릇한 생각을 하지 않을 리 없다.

2011년도에 수도 비인에 설치된 “키스 앤드 라이드” 표지판에 대해 한밤중 길가에 서 있는 언니들과 연결시키는 오해를 피하기 위해 친절하게 안내문까지 미디어에서 발표했을 정도니까.





“키스 앤드 라이드“ 표지판에서 말하는 키스는 키스를 하라는 뜻이거나 혹은 “키스하고 타세요”가 아니다. 외려 1980년대 맨하튼이라는 그룹의 노래제목 kiss and say goodbye(키스 앤드 세이 굿바이)처럼 “키스하고 안녕”에 가깝다.

“키스 앤드 라이드”란 도시의 공항이나 역 등 공공 교통기관에서 작별키스만 하고 바로 하차나 승차를 한 다음 바로 출발할 수 있는 장소를 표시한 것이다. 짧은 정차는 할 수 있지만 장시간 주차는 할 수 없는 장소를 표시할 때 사용되는 정차 표지판이다. “키스하고 타세요”가 아니라 공공 교통으로 바꿔 타기 위해 키스 할 정도의 짧은 시간만 정차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오스트리아 잘쯔부르크 중앙역 앞에 있는 입술 그림의 “키스 앤드 라이드” 표지판은 산뜻하게 “키스하고 내린 다음엔 바로 떠나주세요”란 정차 표시다. 손님을 내려주는 정차는 가능하지만 주차는 안된다는 표시다.

일부 전문가들은 이 “키스 앤드 라이드” 표시판이 미국에서 처음 시작됐다고 추정한다. 이 표지판은 곧 여러 나라로 퍼져나가 지금은 네덜란드•오스트리아•벨기에•타이완 등에서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유럽의 도시에서 “키스 앤드 라이드”와 비슷한 표지판으로 “파크 앤드 라이드(Park and Ride)”란 표지판이 있다. 이는 “키스 앤드 라이드”와 전혀 다른 개념이다. 자동차 배기가스로 도심지가 오염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오래된 도시나 주차 시설이 턱없이 부족한 대도시에서 자동차를 외곽에 주차하고 지하철이나 시내버스 등 공공 교통기관을 이용해 도심지로 들어오라는 주차 안내 표지판이다.



이 표지판은 1971년 독일 교통부가 처음 생각해냈고 최초로 실시한 곳은 뮌헨시다.

당시 뮌헨 올림픽이 실시되던 뮌헨시에서 올림픽 경기장 부근에 주차 시설이 턱없이 부족해 시외에서 들어오는 자동차를 시 외곽 공공 주차장에 주차하고 공공 교통시설을 이용해 시내나 경기장으로 들어오라고 권고하는 표지판으로 사용했다.

1980년대 동독시절에도 동베를린시로 들어가는 아우토반 출구에 이 “파크 엔드 라이드” 표지판을 설치해 동베를린 시내로 진입하는 차량에 적용하려 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당시 동독 주민들은 비록 도로가 정체되고 주차장을 찾느라고 시내를 몇 바퀴 돌더라도 기필코 자동차를 타고 시내로 진입했다.

하지만 이제 도심 환경문제와 공공 교통 이용을 늘이려는 각국 대도시 교통정책에 따라 “파크 앤드 라이드” 표지판은 점차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독일에서 “파크 앤드 라이드” 표지판은 종종 “파크 운트 라이드존네(Parken und Ridezone) ”같은 독일식 영어(댕글리시 : Denglish)로 표기된다. 독일 철도(DB : Deutsche Bahn)는 이러한 독일식 엉터리 영어 표지판을 퇴치하기로 결정하면서 각 역 앞에 있는 자동차 정차구간을 P+R (Parken und Reisen: 주차하고 여행) 표지판으로 통일해 바꿔나가고 있다. 따라서 앞으로 독일에서 영어식 표지판인 “키스 앤드 라이드” 표지판도 점차 사라져 갈 전망이다.

하지만 선진국 대도시 도심지는 '차 없는 거리'가 점점 늘어나면서 '파크 앤드 라이드'표지판은 계속 늘어나고 있다.

도심지의 교통문제와 더불어 대도시 미세먼지 등 대기질 개선을 위해서 공짜 대중교통 제공보다는 먼저 '파크 앤드 라이드' 표지판을 시행할 수 있는 시스템부터 차근차근  준비해 나가야 할 싯점이 아닐까?

베를린 이경섭 특파원 carguy@carguy.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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