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유신 자동차컬럼
임유신 자동차컬럼
  • 카가이 취재팀
  • 승인 2015.09.20 06:29
  • 조회수 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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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들의 개성이 뚜렷해지면서 차종 세분화 물결이 거세다. 소수의 취향까지 만족시켜 판매를 늘리고자 하는 시도다.
다운사이징에 이어 차종 세분화가 자동차 시장의 트렌드로 자리를 잡는다. 가능한 많은 차종을 만들어 소수의 고객까지 끌어오려는 노력이 곳곳에서 벌어진다.

차종 세분화는 풀기 힘든 숙제다. 핵심은 파워트레인(동력장치)이다. 디자인과 차의 형태 변화도 파워트레인이 따라주지 않으면 효과는 반감된다. 엔진과 변속기 같은 파워트레인은 만들고 싶다고 뚝딱 만들 수 있는 게 아니다. 기술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단시간 내에 만들기 힘들다. 하나의 차체에 출력이 다른 여러 종류의 파워트레인을 집어넣는 것도 기술이다. 차종을 세분화하고 싶어도 기술이 없어 포기하는 경우도 수두룩하다.

요즘은 세분화가 대세다. 독일 프리미엄 브랜드를 중심으로 이런 경향이 강하다. 프리미엄 브랜드가 차종 세분화에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대중 브랜드도 그 추세를 따르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프리미엄 브랜드의 세분화 능력은 탁월하다. 차의 형태, 파워트레인, 구동방식, 디자인의 조합으로 하나의 차를 수십 종으로 쪼갠다. 엔진은 디젤과 가솔린이 다양한 배기량으로 존재하고 수퍼차저나 터보차저 같은 과급기 사용도 활발하다. 변속기도 수동·CVT·자동·더블클러치로 각 엔진 특성에 맞게 다양하게 갖췄다. 차체는 세단을 기본으로 해치백·왜건·컨버터블·쿠페· 크로스오버 등으로 다양하게 가지를 친다. 굴림방식도 앞바퀴굴림이나 뒷바퀴굴림을 기본으로 네바퀴굴림이 가세한다. 이론상으로는 수백 종류까지 가능하고 실제로도 수십 종류에 달한다.

BMW 5시리즈 세단의 경우 엔진을 구분하면 13종류에 이른다. 여기에 수동과 자동, 뒷바퀴굴림과 네바퀴굴림, 왜건과 GT(그란 투리스모) 등이 조합을 이루면 세부 차종은 순식간에 수십 종으로 불어난다. BMW의 다른 모델이나 메르세데스-벤츠, 아우디 등도 상황은 비슷하다. 세부 차종이 워낙 많기 때문에 고객이 원하는 차가 없는 경우는 드물다. 예를 들어 고출력 디젤 엔진을 얹은 네바퀴굴림 컨버터블, 낮은 배기량 터보 가솔린 엔진을 쓰고 수동변속기를 얹은 뒷바퀴굴림 왜건 등 어지간한 차는 다 있다. 특이한 개성을 찾는 소수의 고객까지 끌어모을 수 있는 기반을 확고하게 갖췄다.

이에 반해 일본이나 한국 자동차 메이커는 라인업 확대에 인색하다. 특히 파워트레인이 취약하다. 글로벌 시장을 염두에 두고 세분화하기 보다는 자국 시장 또는 대규모 시장을 염두에 둔 모델에만 집중한다. 패밀리 세단의 대표모델인 토요타 캠리는 세단이 유일하다. 엔진은 2.5L와 3.5L 가솔린, 하이브리드 세 종류뿐이다. 변속기도 자동변속기와 CVT 밖에 없다. 글로벌 기준으로 본다면 단조롭기 그지 없다. 토요타뿐만 아니라 다른 일본 메이커들도 사정은 비슷하다. 미국 시장에서는 크게 문제되지 않지만 한국 시장에서는 위험 요소다. 수입차는 디젤이 유행인데 일본차는 디젤이 없다. 그나마 닛산과 인피니티가 최근 디젤을 추가해 대응한다. 토요타 캠리나 혼다 어코드는 해외에서 차급으로 보면 실질적인 경쟁 상대는 현대자동차 쏘나타다. 쏘나타는 최근 파워트레인을 일곱 개로 늘렸다. 가솔린, 디젤, 가솔린 터보, LPG, 하이브리드,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등 기본적으로 종류별로 다 갖췄다. 캠리는 국내에 2.5L 가솔린과 하이브리드 두 종류만 판다. 세부 차종만 놓고 본다면 쏘나타와 경쟁에서 밀릴 수밖에 없는 구조다.

차종 세분화에 인색한 일본과 한국





▎일본·한국차는 차종세분화에 인색하다. 단조로운 파워트레인으로 미국 같은 큰 시장에만 주력한다.
국산차도 세부차종이 단조롭다. 현대·기아가 쏘나타와 K5의 파워트레인을 늘린 것도 그나마 올해 들어서다. 현대·기아가 최근 차종 세분화에 나선 이유는 수입차 강세의 영향에 따라 국내 소비자의 취향이 급격하게 바뀌었기 때문이다. 다양한 수입차가 쏟아져 들어오면서 파워트레인에 눈을 뜨는 소비자가 늘어서다. 디젤이 강세를 보이면서 디젤에 취약한 현대·기아의 약점이 더 크게 부각됐다. 게다가 현대·기아는 별도의 프리미엄 브랜드를 운영하지 않는다. 대중차와 프리미엄 브랜드를 현대·기아 브랜드로 동시에 상대한다. 거대 시장인 유럽과 미국, 일본 자동차 메이커들과도 경쟁해야 한다. 프리미엄 브랜드와 유럽 브랜드는 대개 세부 차종이 많다. 일본과 미국 브랜드는 세부 차종이 적다. 현대·기아는 이들과 전방위적으로 경쟁해야 하기 때문에 이들의 중간 형태를 띨 수밖에 없다.

현대·기아의 차종세분화는 아직도 멀었다. 최근 1.7L 디젤과 1.6L 가솔린 터보, 더블클러치 변속기 등이 더해져 사정이 나아졌지만 여전히 부족하다. 디젤 엔진은 2.0L가 가장 널리 쓰이는데 세단 라인업에는 2.0L 엔진이 아예 없다. 1.7L 디젤이 그 역할을 대신하지만, 2.0L 디젤 엔진이 없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수입 중형세단의 대항마인 제네시스의 경우 가솔린 3.3L, 3.8L 엔진 두 종류다. 메르세데스-벤츠 E-클래스, BMW 5시리즈, 아우디 A6 등이 다양한 가솔린, 디젤 엔진을 라인업에 배치한 것과 비교된다. 현대·기아 고급차 중에서 디젤 엔진을 쓰는 차는 그랜저가 유일하다.

중소형차도 마찬가지다. 폴크스바겐 골프의 경우 국내에는 1.4L 가솔린 터보, 1.6/2.0L(150, 184마력) 디젤, 2.0L 터보(211, 300마력) 등 여섯 종류나 된다. 독일 현지로 가면 이 수는 더 늘어난다. 골프의 경쟁 모델인 현대 i30는 2.0L 가솔린과 1.6L 디젤이 전부다. 동급이라고 할 수 있는 현대 아반떼도 1.6L 가솔린과 디젤, LPG 세 종류에 불과하다. 변속기와 굴림방식까지 고려하면 세부차종의 차이는 더 크게 벌어진다. 홈그라운드의 이점이 없다면 세부차종에서 이미 경쟁력이 한풀 꺾이고 들어간다.

이제 중형 세단에 2.0L 가솔린 엔진 하나로 잘 팔리던 시절은 끝났다. 누가 더 세부차종을 많이 만들 수 있느냐가 판매의 성패를 판가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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