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과 포뮬러1(F1) 궁합이 맞지 않는 이유 - 복잡한 룰에 애국심 자극할 요인도 없어
한국인과 포뮬러1(F1) 궁합이 맞지 않는 이유 - 복잡한 룰에 애국심 자극할 요인도 없어
  • 카가이 취재팀
  • 승인 2015.08.07 14:09
  • 조회수 42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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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자동차는 이동수단을 넘어 자신의 라이프 스타일을 대신한다고 합니다. 사회적 지위와 부의 과시에서 그치지 않고 개성을 발산하는 중요한 소품으로 자리매김했다는 것이죠. 세계 주요국에서 개발되는 자동차를 들여다 보면 해당 지역의 사회·문화가 그대로 반영됩니다. 도로마다 깃든 역사의 속삭임이 자동차 바퀴를 통해 전해집니다. 카톡(Car Talk)에서는 나의 자동차 생활에 영향을 미칠 품질 문제부터 신차 개발의 뒷이야기, 법·제도의 변경까지 소비자의 눈높이에서 조목조목 따져보겠습니다.






▎F1을 개최한 전남 영암의 서킷에서 일반인들이 주행하고 있다.
자동차 경주의 최고봉으로 꼽히는 포뮬러1(F1)은 올림픽·월드컵과 함께 ‘세계 3대 스포츠 이벤트’로 꼽힌다. 한국에서 올림픽과 월드컵의 인기는 놀라울 정도다. 이들 빅 이벤트 시즌이 다가오면 소비재 기업을 중심으로 앞다퉈 관련 마케팅에 나서면서 국가 전체적인 흥행 이슈로 떠오른다. 공중파 및 케이블 TV는 수백억 원의 중계료를 마다 않고 중계권을 따내기 위한 치열한 막후 경쟁까지 벌어지는 게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하지만 같은 등급의 이벤트인 F1은 한국에서 찬밥이다. 수백 억원은커녕 수십 억원에도 못 미치는 중계료뿐 아니라 국가적 축제는 고사하고 일반 국민의 화제에조차 오르지 못한다. 왜 비슷한 등급의 스포츠 이벤트인 F1이 유독 한국에서 죽을 쑤는 것일까.

천문학적 상처 남긴 코리아F1

한국에서 F1이 열리게 된 것은 2007년 전라남도가 영암에 F1 개최권을 따내면서부터다. 이후 4년 만에 대형 경기장(서킷)이 완성됐다. 2010년 코리아 F1이 무사히 열리면서 한국은 올림픽·월드컵과 세계 3대 스포츠 이벤트를 모두 개최한 나라가 됐다. 하지만 2013년까지 네 번 대회를 유치했을 뿐 계약기간인 2016년을 채우지 못했다. 전남도는 올해 1월부터 1000억원이 넘는 대회 누적 적자에 시달리다 조직위원회 해산을 선언했다. 한국과 F1이 완전히 결별한 셈이다. 코리아 F1 조직위는 전남도 내에 100여명의 위원으로 구성된다. 도지사가 당연직 위원장을 맡는다.

코리아 F1은 국민적 관심은 고사하고 큰 상처를 남겼다. 전남도는 첫 대회부터 수백 억원의 적자를 내기 시작해 지금까지 통산 1000억원이 넘는 천문학적 규모의 재정적자로 신음하고 있다. 갈수록 적자폭이 커지면서 전남도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 대회 개최를 이미 포기했다. 2009년 설립된 조직위의 누적 적자는 1902억원에 이른다. 이는 네 번의 코리아 F1 개최에 따른 순수한 운영 적자다. 경기장 및 인프라 구축 등 시설에 들어간 비용은 제외된 금액이다. F1 유치를 위한 경기장 신설과 도로망 확충 등에 국비 900억원과 지방비 1925억원이 투입됐다. 전남도는 F1대회 운영사인 카보가 자본 잠식으로 사실상 파산하자 경기장 인수를 위해 1980억원의 지방채를 발행했다. 지방채 발행에 따른 이자만 총 400억원을 넘어선 것으로 알려졌다. F1 대회에서 누적된 적자는 전남도의 재정을 압박한다. F1에 대한 대중적 인기가 확보되지 않은 미성숙한 여건과 지속가능성을 고려하지 않은 F1 유치가 애초 잘못된 선택이었던 셈이다.

문제는 개최를 포기했다고 모든 것이 해결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개최 포기에 따른 위약금이 남아 있다. 조직위는 이 협상을 F1 대회를 운영하는 포뮬러1매니지먼트(FOM)와 해야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또다시 수백 억원의 위약금을 물어야 할 수도 있다. 현재 FOM과 조직위의 계약에는 ‘중간에 개최를 포기하면 개최권료 4300만 달러(약 470억원)를 위약금으로 물어야 한다’고 돼 있다. 이 비용에 대해 FOM이 소송을 걸 수 있다는 점이다. 코리아 F1 조직위에서 일했던 이승우 모터 스포츠 평론가는 “좀 더 치밀한 준비를 거쳐 한국 선수가 후보 드라이버라도 참가하는 등 국민적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면 지금과 다른 양상이 됐을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수도권과 거리가 먼 전남도에서 개최돼 적자가 커졌다는 주장도 나온다. 사실상 F1이 ‘호남 민심 달래기’라는 정치적 시각이 개입하면서 애당초 대회 개최에 따른 수백 억원의 적자가 불을 보듯 뻔한데도 정치권뿐 아니라 언론, 유관 단체 등 어느 누구도 이런 지적을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한국자동차경주협회 김재호 사무국장은 “F1을 수도권에서 2시간 전후 거리에서 유치했다면 이 정도로 재정 적자가 심화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외국 언론의 시각도 비슷하다. 뉴욕타임스는 지난 2월 16일자 기사에서 대회 개최권을 반납한 전남 영암의 코리아 F1에 대해 ‘투입된 대부분의 재정이 정부 자금인 영암 F1 대회는 애초 계획부터 잘못된 일이다. 국회 예산처와 정부 연구기관은 예상 수입이 과장돼 있다고 경고해 왔다’고 지적했다. 이어 ‘한국에서 F1은 생소한 스포츠라는 것이 문제’라며 ‘전남도는 F1을 통해 삼성·현대 같은 대기업의 투자를 기대했지만 이들 기업은 전혀 흥미를 보이지 않았고, 모터 스포츠 팬이 부족한 한국에서 거리가 먼 전남도라는 위치 때문에 티켓 판매도 실망스러웠다’고 꼬집었다.

물론 코리아 F1이 긍정적인 효과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코리아 F1 개최로 한국의 경제·스포츠 위상은 올라갔다. 전 세계에 한국의 남서쪽에 위치한 전남 영암을 알리는 기회가 됐다. 아울러 낙후한 이 지역에 대형 서킷이 들어서면서 영암이 경제적 후광을 입은 것은 사실이다. 1000분의 1초를 다퉈 ‘스포츠보다 과학’으로 불리는 F1 개최에 따른 대회 운영 노하우 역시 무시 못할 부분이다. 전남도는 약 1주일의 대회 기간 동안 5만명이 넘는 외국인 관광객을 유치한 경험을 쌓게 됐다.

그렇다면 한국에서 F1은 왜 성공하기 못했을까 하는 의문이 남는다. ‘F1은 애초부터 한국인과는 맞지 않는 스포츠 이벤트일까’하는 의구심이다. 필자는 한국인과 F1이 맞지 않는 이유로 세 가지를 꼽는다. 첫째, F1이 올림픽·월드컵과 달리 국가 대항전이 아니라는 점이다. 한국인이 올림픽이나 월드컵에 열광하는 이유는 국가별 순위를 매기는 대항전이라는 점이 크다. 애국심을 자극하는 요소가 농후하다. 올림픽은 국가별 메달 집계 순위뿐 아니라 메달을 따면 애국가가 울려 퍼진다. 월드컵도 마찬가지다. ‘붉은 악마’로 불리는 한국 대표팀이 신체적 조건이 좋은 축구 종주국인 유럽 국가 대표팀과 피 튀기는(?) 경기를 하면 국민은 애국심의 포로가 된다. 승패를 떠나 국가 대항전 자체에 한국인이 열광한다. 특히 일본 대표팀과 맞대결이라도 하면 서울 광화문 등 주요 거리는 붉은 악마 응원단의 물결로 마비가 된다.

수학공식처럼 어려운 F1 룰

이와 달리 F1에서 국가 대항전은 찾아 볼 수 없다. 영암에서 코리아 F1이 열렸지만 애국심을 자극할 요소는 경기장에 걸린 태극기 딱 하나뿐이다. 애국심을 자극할 한국인 드라이버 선수는커녕 한국 유명 기업 스폰서조차 찾아보기 어렵다. 결국 코리아 F1은 경기장만 한국일 뿐 한국인의 애국심을 자극할 어떤 요소도 갖추지 못한 셈이다. 여태껏 F1에 스폰서를 해 본 한국 기업은 LG그룹과 대한항공·한진해운 정도가 꼽힌다. 한국에서 자동차 경주라는 이벤트에 흥미를 느낄 소비층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둘째는, F1 경기 룰이 무척 어렵다는 점이다. 야구의 경우 룰을 모르고 보면 통 이해가 안 된다. 잘 맞은 공이 아웃이 되고 빗맞은 공이 안타가 되는 식이다. 여기에 주루를 훔치는 도루까지 종종 일어난다. F1은 말 그대로 ‘포뮬러=공식’이다. 경기 룰이 3차 함수 수학 방정식만큼 복잡하다. 룰을 모르면 똑같이 생긴 자동차가 그냥 경기장을 빙빙 도는 것처럼 보인다. 예선은 어떻게 치러지는지, 타이어는 언제 바꾸는지, 경주차의 뒷부분 날개는 언제 각도를 올리고 이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 등 최소 100여 개의 룰을 알아야 경기를 재밌게 볼 수 있다.

더구나 더 복잡한 것은 F1 룰이 매년 바뀐다는 점이다. 2002년부터 F1 경기를 지켜본 필자의 경우도 잠시 한눈을 팔면 새롭게 등장한 룰 때문에 경기의 흐름을 읽어내지 못할 때가 종종 생겼다. 룰을 모른 채 TV 중계를 시청해 보아야 도로아미타불이다. 분명 한국말인데 도대체 무슨 소리하는지 알아들을 수 없을 정도다. 이런 어려운 룰로 인한 소비층의 감소는 F1 경기의 종주국 격인 유럽 이외에 미국·중국에서도 마찬가지다. 미국에서 F1이 인기가 없는 이유로 과학과도 비슷한 공식 같은 룰이 꼽힌다. 그래서 미국인들은 복잡한 서킷 코스로 구성된 F1 경주보다 타원형으로 생긴 경기장에서 경마처럼 단순하게 순위를 가리는 나스카 같은 모터 스포츠에 더 매료된다.

여기에 드라이버와 팀을 이해하지 못하면 재미가 반감된다. LA다저스의 류현진 투수가 메이저리그에서 호성적을 올리면서 자연스럽게 한국 야구팬들은 LA다저스 선발 라인업과 주요 타자, 상대팀 주요 선수까지 줄줄 꿰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 경우다. F1 경기를 주도하는 주요 선수를 모르면 경주의 재미는 찾기 어려워진다. F1은 팀 순위도 중요하다. 드라이버뿐 아니라 팀 컬러에 따라 성적이 바뀐다. 이런 것을 이해하지 못하면 오로지 시끄러운 자동차 경주가 되고 만다.

경기장에서도 비슷한 현상을 발견할 수 있다. 2013년 코리아 F1이 열린 영암 서킷에서 필자는 재미난 풍경을 봤다. 표 1장에 100만원이 넘어 점심은 물론 각종 음료까지 제공하는 패독에서 본 풍경이다. 잘 차려 입은 50대 부인을 대동한 한 신사분이 엄청나게 바가지를 긁히는 모습이었다. 당시 귀부인은 “도대체 이렇게 시끄러운 경기장에 왜 데려와서 고생을 시키느냐. 경주차도 제대로 보기 어렵구먼….”이라며 남편을 구박했다. 그럴 만도 한 것이 부인의 질문에 남편이 경기 룰을 몰라 대답을 못하는 데다 패독 밖 서킷에서는 시속 300㎞까지 질주하는 경주차의 엔진음이 고막을 자극하고 있을 뿐이다. 더구나 눈에 보이는 가시거리는 불과 수 백m라 보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일본에서는 F1 인기





▎한국과 달리 일본에서는 F1의 인기가 높다. 지난해 일본에서 열린 경주 모습.
세 번째는, 한국이 후진적 자동차 문화에서 파생된 모터 스포츠의 불모지라는 근본 현실이다. 코리아 F1이 열리기 전까지 한국에는 변변한 서킷조차 거의 없었다. 영암 서킷이 사실상 국제대회를 치른 첫 경기장이다. 모터 스포츠는 1900년대 초반, 유럽을 중심으로 시작돼 미국으로 건너갔다. 아시아에서는 1960년대 초부터 일본에서 처음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여러 유행 요소가 일본에 비해 10∼20년 후행하는 한국에서 유독 일본과 닮지 않은 것이 모터 스포츠의 비인기다. 일본 대기업을 제친 한국 글로벌 기업이 여럿 나와 세계적인 스포츠 이벤트에 대규모 광고를 하고 있지만 모터 스포츠에 대해선 이들 대기업이 거의 투자를 하지 않는다. 한국에서 자동차는 1980년대 ‘마이카’ 붐을 시작으로 이제는 수입차가 대중화하면서 신분과 지위, 라이프 스타일을 나타내는 소셜 포지션까지 옮겨 갔다. 하지만 자동차로 스포츠를 즐기는 데까지는 아직도 시간이 걸리는 모양새다. 수억원대 대형 세단은 즐비하지만 고성능 차 보급과 거리가 먼 한국에서 모터 스포츠에 관심을 기대하는 건 어불성설이라는 점이다.

최근 4~5년 전부터 자동차로 레저를 즐기는 캠핑 문화가 한국에서 급속도로 인기를 얻는다. 캠핑은 일본에서 1980년대 큰 인기를 끌다 요즘 시들한 것에 비해보면 격차를 느끼게 한다. 이번 F1과의 결별을 보면서 한국은 모터 스포츠의 불모지라는 땅에 콘크리트를 친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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