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디자인 파워로 IT·자동차 판도 바꾼다
한국인 디자인 파워로 IT·자동차 판도 바꾼다
  • 카가이 취재팀
  • 승인 2015.08.05 17:16
  • 조회수 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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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으론 첫 선임 기록 유학 교육열이 산업 강국 만들어 






한국인(해외 교포 포함) 디자이너들이 세계 자동차 신차 개발에서 핵심 인재로 각광을 받고 있다. 메르세데스 벤츠·BMW·폴크스바겐·GM·포드·혼다·닛산·푸조 등 세계적인 자동차 업체에서 활동하는 한국인 디자이너들은 100여명에 이른다. 메르세데스-벤츠 CLS를 디자인한 이일환을 필두로 BMW 4시리즈 강원규, 도요타 FJ 크루저 김진원, 신형 콜벳 스팅레이 이화섭, 쉐보레 카마로 이상엽, 푸조 208 신용욱, 닛산무라노(부분변경모델) 최정규, 링컨 신형 MKC 인테리어 강수연 등이 대표적이다. 요즘 나오는 해외 신차 가운데 한국인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다.

이런 한국인 파워는 유학파가 주도한다. 디자인 전문가들은 세계 3대 자동차 산업디자인 대학교로 영국 RCA(RoyalCollege of Art), 미국 로스앤젤레스 ACCD(Art Center College of Design), 미국 디트로이트 CCS(College for Creative Studies)를 꼽는다.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올해 1월 CCS 부총장에 선임된 최수신(57) 교수를 단독 인터뷰했다. 그는 지난 8월 한국의 주요 대학과 교류를 위해 방한했다. 최 부총장은 지난해 말까지 오하이오주 신시내티대학 디자인학부장을 역임했다. 그는 “한국이 세계 IT·자동차 강국으로 올라선 데는 해외 유학을 통해 안목을 넓힌 디자이너들이 큰 힘이 됐다”며 “앞으로 세계 주요 IT 제품과 신차 디자인에 한국인 디자이너의 능력에 따라 판도가 바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CCS의 자동차학과 신입생 가운데 40%가 한국인으로 디자인 교육열은 한국이 세계 최고”라고 덧붙였다.

1906년에 설립된 CCS는 1950년대 포드자동차를 설립한 헨리 포드 일가가 거액을 기부하면서 급속히 발전했다. 최 부총장이 디자이너로 입문한 곳은 1978년 새한자동차(대우자동차 전신)다. 그는 “입사 당시만 해도 디자이너란 직업 분류가 없어 그냥 스타일리스트라고 불렀다”고 회고했다. 그는 1982년 로얄XQ를 시작으로 로얄살롱·르망 디자인에 참여했다. 초기 시절 대우차는 GM·오펠과 제휴해 차체 대부분을 오펠에 의존했다. 이런 한계에 답답함을 느낀 그는 1986년 기아자동차로 옮겨 첫 독자 모델인 세피아를 디자인했다. 1993년에는 한국 자동차 역사에 길이 남는 디자인 가운데 하나인 스포티지를 디자인했다. 카니발도 그의 작품이다.



CCS 자동차학과에 한국인이 가장 많다는 데 실력은 어떤가.







“CCS의 여러 학과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게 자동차학과다. 미국 빅3(GM·포드·크라이슬러)가 디트로이트에 위치해 취업을 노리고 CCS에 인재들이 몰린다. 현재 50명의 신입생 가운데 20명 정도가 한국계다. 한국 학생들은 기본기가 충실하고 성실하다는 평을 받는다. 이런 점 때문에 이곳 교수들이 서로 가르치고 싶어한다. 자동차학과 이외에 다른 클래스에서도 우수한 학생을 꼽으라고 하면 한국 학생들이 빠지지 않을 정도다. 졸업후 산업계 취업률도 93%로 월등히 높다.”

CCS 유학을 준비하는 학생에게 조언을 해준다면.

“기본적인 고등학교 학업과 자신이 직접 그린 포트폴리오 두 가지를 다 잘해야 한다. 영어는 의사소통에 문제가 없으면 된다. 한국 학생이 많아지면서 외국인을 위한 별도의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다. 물론 성적에 따라 추가 장학금을 지급한다.”

앞으로 CCS를 어떤 학교로 키울 계획인가.

“CCS는 전 세계 유명한 예술·디자인 대학과 확실한 차별화를 추구한다. 우선 학교 이름에 ‘아트(art)’나 ‘디자인(design)’이라는 용어가 들어있지 않다. 이는 창의적인 능력에 바탕을 둔 교육에 중점을 둔다는 것이다. 부총장으로 취임하면서 입학, 교과 과정, 취업 등을 포함한 모든 분야를 향후 50년을 내다보고 혁신적으로 바꾸는 작업을 시작했다. 아직 공개할 수 없지만 5년 후면 다른 디자인 대학들이 벤치마킹 대상으로 삼는 학교가 될 것이다.”

요즘 자동차 디자인 추세는 어떤가. 크리스 뱅글 전 BMW 디자인 총괄이 삼성전자 디자인에 참가하는 등 융합 디자인이 각광을 받는데.

“디트로이트를 상징하는 자동차 산업이 3년 전부터 완전히 회복돼 CCS가 무척 바쁘다. CCS 재학생들은 3학년 때 대부분 취업이 내정될 정도다. 요즘 신차 디자인에는 사용자 경험(UI·UX), 고강성 플라스틱 같은 신소재, 에탄올·배터리 같은 새로운 연료 사용이 큰 영향을 준다. 외관 스타일 위주의 디자인에서 사용자 경험, IT를 기반으로 하는 운송 시스템와의 연계, 환경에 대한 관심 등이 거미줄처럼 얽혀 서로 영향을 주는 디자인으로 발전하고 있다. 변화하는 트렌드에 맞게 융합 디자인이나 컬러·소재학과 같은 새로운 학과도 개설했다.”

페터 슈라이어 기아차 디자인 총괄이 사장으로 승진하면서 지난해 현대차도 맡았다. 현대·기아차 디자인은 어떻게 보는가.

“디자인은 세계 유수의 자동차 회사와 비교해도 떨어지지 않는다. 품질의 완성도에 걸맞게 디자인의 완성도가 아주 높다. 실력이 입증된 외국 디자이너 영입도 일조했을 것이다. 디자이너를 사장에 임명하는 것은 디자인에 역점을 둔 기업 경영이라고 볼 수 있다. 이에 걸맞게 디자인 완성도도 높아졌다. 하지만 앞으로 숙제도 만만치 않다. 디자인 아이덴티티가 불분명하지 않다는 점이다. 소비자에게 현대·기아차를 물었을 때 간단·명료하게 연상되는 게 없다. 이는 자동차뿐 아니라 한국의 거의 모든 제품에서 공통으로 발견되는 문제다. 품질도 좋고, 브랜드있고, 성능 경쟁력이 있고, 생산량도 받침이 되는데 디자인 아이덴티티가 부족하다는 것은 경쟁 회사보다 앞서기에는 역부족이라는 걸 의미한다. 아이덴티티란 단순히 작은 차부터 큰 차까지 라디에이터 그릴 모양이 비슷하다는 식이 아니다. 메이커의 개성(personality)과 소비자가 추구하는 개성이 겹치는 부분을 의미한다.”

점점 친환경과 안전 규제가 강화돼 디자이너의 자유도가 그만큼 떨어진다는 평도 나온다.

“친환경이나 안전 강화로 디자이너의 자유도가 제한된다고 보지는 않는다. 오히려 더 새로운 디자인이 가능해진다고 할 수 있다. 1970년대 범퍼는 충격 완화가 주된 기능이라 금속 재료를 사용했다. 1980년대부터 사브·볼보 등이 보행자의 안전을 고려해 충격 완화 기능이 내장된 플라스틱 범퍼를 만든 후부터 디자인 자유도는 급속도로 확대됐다. 같은 연장선상에서 더 좋은 자동차를 만들기 위한 기술이나 규제가 진보하는 것에 발맞춰 디자인도 진보한다. 오늘날 자동차 디자인 업계는 혁신을 대표하는 스마트폰이 나오기 전과 이후의 디자인에 비유할 수 있다. 아직도 이상적인 자동차 디자인과 거리는 한 참 멀다.”

전기차 시대가 오면 자동차는 기존 3박스(엔진룸·실내공간·트렁크) 형태를 벗어나 상상 이상의 제품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한데.

“전기차나 수소차가 현실화하면 자동차의 기본인 3박스 구조에 큰 변화가 올 것이다. 카메라에서 필름이 사라지면서 필름을 넣고 감고 하는 부분이 없어지고 디자인의 자유도가 넓어진 것과 같다. 중요한 것은 자동차를 이동수단(mobility)으로 이해하는 폭넓은 사고의 변화라는 점이다. 대부분의 자동차 디자이너들은 기존 자동차라는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다. 더 큰 그림인 이동수단으로 이해하면 다양한 상상을 할 수 있다. 자동차를 동력장치가 달린 전자제품이나 움직이는 가구 같은 식으로 보는 것이다. 전혀 다른 제품군의 시각으로 본다면 완전히 새로운 디자인이 가능해진다. 광학기기였던 카메라가 전자기기로, 또 최근에는 통신기기로 분류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자동차에서도 이런 변화는 시작됐다. 무섭지만 큰 기회다.“

요즘 수입차가 대박이다. 독일·미국·일본 차의 디자인 특성은.

“일본차는 사용자를 배려하는 섬세함, 미국차는 여유로움의 존재감, 독일차는 자신감이 조형화된 디자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구분은 각 메이커별 디자인 아이덴티티와 연결된다. 이와 달리 해외에서 현대·기아차를 선택하는 소비자들은 이런 구체적인 아이덴티티보다는 가격과 디자인, 성능과 품질이 고루 쓸만한 자동차라는 인식이 지배적일 것이다.”

수많은 도전과 역경을 이겨내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좌우명은.

“상식적으로 지금 직업을 디자이너·교육자나 학교 경영자라고 구분할 수 있다. 내 스스로는 ‘도전가’로 분류한다. 18년을 자동차 업계에서 일했다. 이후 사무용 가구회사 중역으로 옮겼다가 40대 초반 미국에 대학원생으로 식구들과 함께 유학을 떠났다. 유학 도중에 디자인보다 기술을 중요하게 여기는 유명 회사의 디자인 임원으로 스카우트됐다. 여기서 좋은 대우를 받았지만 직장을 떠나 대학 교수로 도전을 했다. 4년만에 종신교수가 됐지만 올해 종신교수 제도가 없는 CCS로 옮겼다. 이런 결정의 순간에 늘 주변 동료가 만류를 했지만 나에겐 도전이 중요했다. 결과는 주변의 우려와는 반대로 기대를 넘는 성공이었다. 내 디자인 철학은 ‘예견할 수 없는 것을 만들어 새로운 가치를 만든다’다. 성공의 의미도 똑같다. 이런 믿음이 나를 한 번도 져버린적이 없다. 현재의 도전은 CCS를 단순히 세계 최고의 디자인 대학교로 만드는 것이 아니다. 유래를 찾기 힘든 디자인 학교로 만드는 것이다. 10년 이상 걸릴 거대한 프로젝트다. 이런 도전이 기다려 매일 아침을 설렘으로 시작한다.”



최수신은 누구인가? 마흔 셋에 유학 떠나 종신교수로

경기공전·서울과학기술대학을 졸업하고 홍익대학교에서 산업디자인 석사를 받았다. 기아자동차 시절 영국 RCA에서 자동차디자인을 공부했다. 대우·기아차에서 18년 자동차 디자인을 하다 퍼시스·일룸에서 5년 간 시스템 가구 디자인을 하면서 영역을 넓혔다. 23년 직장생활을 접고 마흔 셋이 되던 2000년 미국유학을 떠나 오하이오주립대에서 산업디자인을 공부했다. 현재50여개의 디자인 및 실용 특허를 갖고 있다. 2001년 미국 데카(DEKA) 연구소 디자인 디렉터로 옮겨 세그웨이(두 바퀴로 가는 이동수단)·iBOT 같은 혁신제품의 디자인의 맡았다. 2003년 신시내티대학 디자인학과로 이직했다 종신교수가 됐다. 미국 산업디자이너협회(IDSA)의 교육 부회장(12∼14)을 역임하고 올해 IDSA의 전미 디자인 교육자상을 받았다. 2016년 IDSA 국제회의 의장으로 내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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