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점 커지는 돼지코 키드니 그릴..도전 직면한 BMW
점점 커지는 돼지코 키드니 그릴..도전 직면한 BMW
  • 이준호 에디터
  • 승인 2019.09.07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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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 브랜드도 고급 소재와 하드웨어를 써서 프리미엄을 표방하는 시대다. 그래야 가격을 높일 수 있어서다. 이런 거센 도전에 전통 프리미엄 브랜드 입지가 위태로워 보인다.

장면#1 BMW 3시리즈 발표회 현장에서 인테리어 디자이너와 문답

"이 반무광 크롬 부분은 알루미늄을 쓴 건가요?"

"아뇨, 도금이죠 플라스틱에 크롬을 입힌 거예요.(원가가 저렴해서요)"

장면#2 1980년대 독일차를 복원하는 재미에 빠진 배칠수 씨가 어느 유튜브에서 한 말

"이 당시 독일차는 대단하다. 20년이 지났는데도 헤드라이트, 테일램프 플라스틱 커버가 변색 없이 그대로다. 엔진은 두말할 것도 없다. 손볼 게 없다. 지금 벤츠는 벤츠가 아니다."

프리미엄 브랜드들이 지나치게 원가절감을 한 것인지, 대중 브랜드 소재가 프리미엄 급으로 고급스러워진 것인지 혼돈스러운 요즘이다. 당연히 프리미엄 브랜드는 비싼 값어치를 한다. 질 좋은 소재와 하드웨어 사용과 그것들을 잘 다듬는 소프트웨어적 조율을 뜻한다. 이는 어디까지나 엔지니어링 분야다. 그럼 디자인은 어떨까? 프리미엄 브랜드의 디자인은 대중 브랜드 디자인보다 더 값어치가 있을까? 당연히 가시적인 하드웨어 부분은 더 비싸고 좋을 수 있다. 좀 더 질 좋은 가죽, 좀 더 비싼 헤드라이너 또는 고급 수종의 우드 패널 같은 소재에서 말이다. 소프트웨어라 할 수 있는 디자인 랭귀지 감각은 평가하기 애매하다.

요즘 국내에서 가장 큰 피해를 보는 프리미엄 브랜드가 있다. 바로 BMW이다. BMW는 영종도에 드라이빙 센터까지 설립하며 승승장구했다. 자만이었을까? 디젤엔진 화재 사건에 대한 부실한 대응은 치명적이었다. "독일식 프리미엄이라고 해봐야 별 것 없다"는 인식이 팽배해지면서 가치가 떨어졌다.

BMW와 롤스로이스 디자인을 이끌 두마조 두덱과 조제프 카반
BMW와 롤스로이스 디자인을 이끌 두마조 두덱과 조제프 카반

독일 본사 쪽에서는 이전부터 문제가 발생한 디자인도 한몫 거들었다. BMW 디비전 수석 디자이너가 BMW 그룹 전체를 총괄하는 대표 디자이너로 진급하는 게 선례였다. 크리스 뱅글이 나가고 BMW 디비전 수석 디자이너였던 아드리안 반 후이동크가 총괄 자리에 앉았다. 그의 빈자리는 카림 하비브로 채웠다. 그러나 카림 하비브는 5년 만에 갑작스럽게 떠났다. 같은 시기, 미래 전략에 중요한 브랜드 i 디비전의 대표 디자이너들이 물갈이 됐다. 어수선한 환경에서 조제프 카반과 도마조 두덱이 새로이 영입됐다. 조제프 카반은 폴크스바겐 산하 체코 브랜드 스코다를 매력적으로 변신시킨 장본인이다. 기대도 잠시, 이번엔 롤스로이스 쪽에서 터졌다. 롤스로이스 디자인 헤드인 질 테일러가 '중국의 롤스로이스'로 불리는 홍치를 만드는 FAW로 스카우트됐다. 올해 3월 말 조제프 카반은 롤스로이스로 옮겼고, 도마조 두덱이 BMW 디비전을 맡았다.

BMW 디비전 디자인은 지금 매우 어수선하다. 7년 동안 3명의 수석 디자이너가 바뀌었다. 리더가 자주 바뀐다는 것은 디자인 랭귀지가 일관되지 않음을 의미한다. 프리미엄 디자인에서 디자인 랭귀지는 매우 중요하다.

최근 등장한 7시리즈의 키드니 그릴은 전보다 2배나 커졌다. 이에 기함급에 걸맞은 웅장함이 부여됐다는 긍정 반응이 있는가 하면, "돼지코처럼 키드니 그릴만 커졌다"는 불만의 소리도 나온다. 이에 대해 아드리안 반 후이동크 BMW 총괄 수석 디자이너는 "중국 시장의 취향을 반영했다"고 답변했다. 중국 부유층의 취향이 BMW 디자인을 좌지우지하는 셈이다.

양산을 앞둔 BMW i4와 iX3
양산을 앞둔 BMW i4와 iX3

BMW의 경영 노선은 변했다. 프리미엄 브랜드만의 차별화된 아이덴티티를 내세우기보다는 양적 확대에 사활을 걸었다. i 디비전은 혁신적인 브랜드다. i3는 미래지향적인 시티 커뮤터의 모습을 갖췄을 뿐만 아니라, 천연 소재로 꾸민 인테리어를 통해 지속 가능성까지 제시했다. 카본파이버플라스틱(CFRP)로 빚은 i8의 패널은 예술 그 자체이다. 순수 전기차 브랜드 중에서 디자인이 가장 앞선다. 그럼에도 판매량은 지지부진했다. 이유는 엔지니어링 때문이다. i3는 가격 대비 주행가능 거리가 짧았다. i8은 고성능 외모만 갖췄을 뿐이었다. 디자인에서 비용 지출이 많다 보니 엔지니어링 투자가 아쉬운 상황이었다.

결국, i 신모델들은 평범한 세단 디자인의 i4, 기존 SUV 디자인의 iX3 등으로 바뀌었다. CFRP로 얻을 수 있는 형태의 자유로움 없이 양산차와 디자인이 거의 같다. 이렇게 되면 대중 브랜드와 비교해 브랜드 값 빼곤 우위점이 없다.

Vision M Next Concept
Vision M Next Concept

BMW는 최근 순수 전기차 콘셉트 Vision M Next를 선보였다. M 디비전의 미래를 엿볼 수 있는 전략 모델이라지만 실상은 양산 가능성 없는 콘셉트이다. BMW M은 메르세데스 벤츠 GT, 아우디 R8과 다르게 양산차 베이스에 튜닝하는 스타일이다. BMW에서 고성능만을 위한 디자인은 M1이 유일했다. 조르제토 주지아로 손에서 탄생했다고 하여 전설적인 모델로 추앙받는 M1은 아직도 전설로 남아있다. 아쉬운 성능의 i8을 제외하고는 멋들어진 슈퍼카가 없는 BMW다. M1을 부활시켜도 좋을 듯한데, BMW는 1M과 8시리즈를 선택했다. 이미지보다는 판매량이다. Vision M Next는 그동안 매번 만지작거리기만 했던 M1 카드의 2019년 버전일 뿐이다.

위로부터 1979년 M1 - 2008년 M1 컨셉트 - 2019년 Vision M Next 컨셉트
위로부터 1979년 M1 - 2008년 M1 컨셉트 - 2019년 Vision M Next 컨셉트

Vision M Next 디자인은 한마디로 뉴트로다. 뉴트로란, 복고풍의 새로운 유행이란 뜻이다. 패션계에서 70~80년대 레트로 분위기를 트렌드로 삼는 것에 편승한 디자인이다. 바로 전에 내놓은 Garmisch Recreation 콘셉트도 동일한 맥락이다. 1970년 베르토네에 몸담았던 마르첼로 간디니 디자인을 레플리카 수준으로 재창조한 모델이다.

결론적으로 Vision M Next는 패션카다. 이런 콘셉트는 또 하나 있다. X7 Pick-up 콘셉트이다. 언뜻 생각하면 스포츠 메커니즘을 추앙하는 BMW에게 픽업트럭은 어울리지 않는다. 이 시장에 대한 미련이 있었는지 모르겠으나, 2011년 M3를 픽업으로 만든 전례가 있다. 고성능 승용형 픽업 시장은 오로지 호주 밖에 없다. 재미 삼아 만들어 봤다는 결론이다. 그런데 이번엔 X7을 베이스로 제대로 된 픽업트럭을 만들었다. 예상컨대 메르세데스 벤츠의 X-Class를 의식한 모양새다.

X7 Pick-up Concept
X7 Pick-up Concept

X7 Pick-up은 적재함을 나무로 장식하며 프리미엄을 뽐냈으나, 그것 뿐이다. 키드니 그릴과 엠블럼을 빼면 어떤 프리미엄적 차별이 있는지 모르겠다. 우드데크, 필러 손잡이, 리어램프 가니쉬 모두 투 머치 디테일이다. 심지어 자사 브랜드 모터바이크도 완벽하게 실리지 않는다. 트럭, 승합밴까지 탈 것은 다 만드는 메르세데스 벤츠와 비교해도 BMW X7 Pick-up은 터무니없다.

대중 브랜드와 프리미엄 브랜드, 가격 차이가 있는 만큼 디자인에서도 가격 차이가 존재할까? 그러려면 플라스틱에 크롬 도금을 했을 때와 리얼 알루미늄을 썼을 때와 가격 비교가 되듯이 디자인에도 값을 매길 수 있어야 한다. 지금까지 살펴본 BMW 콘셉트들의 디자인에 가격을 매길 수는 없다. 디자이너의 연봉으로는 차별을 둘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이 또한 어불성설이다. 벤틀리에서 현대차로 온 이상엽 디자이너를 보면 알 수 있다. 연봉은 중국 브랜드가 더 많이 준다. 롤스로이스를 버리고 떠난 질 테일러가 그것을 말해준다.

소재만 달리해서는 프리미엄 디자인에 걸맞을 수는 없다. 이제 대중 브랜드도 소재의 고급화는 기본이다. 최첨단 옵션들도 부품회사에서 구입해 쓰면 그만인 시대다. 프리미엄급 옵션은 자체 개발이 아니고선 경쟁력이 없다. 브랜드 이미지를 빼면 디자인의 값어치를 장담할 수 없는 시대다. 이런 시대를 맞이하는 BMW의 행보가 불안하다. 그렇다고 전통적인 프리미엄 브랜드 BMW가 프리미엄을 지키는 방법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Copyshop, 1999, Thomas Demand
Copyshop, 1999, Thomas Demand

Vision M Next 오피셜 사진에서 유독 독특한 구도가 있다. 사진작가 토마스 디만트(Thomas Demand, 1964)의 작품이다. 그는 마분지와 색종이로 실제 대상과 똑같은 스케일로 모델을 만든 후 사진을 찍는다. 사진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진짜처럼 보일 수도 있고, 이상하게 인공적으로도 보일 수 있다. 가짜 같은 진짜와 진짜 같은 가짜 사이에서 오는 이질적 경험을 선사한다.

토마스 디만트의 Vision M Next

토마스 디만트의 실제와 같은 크기의 종이 작품과 마치 종이접기처럼 각진 패널의 Vision M Next엔 동질 코드가 있다. 실제 사물이 가진 디테일과 그것의 빛 반사, 그로 인해 알 수 있는 질감의 사실적 코드를 제거한 느낌이 Vision M Next의 디자인과 통한다. Vision M Next의 디자인엔 어떤 장식적 디테일과 글래머러스한 볼륨이 없다. 간결하고 선명한 선과 반듯한 면만 남았다. 패널의 장식은 재활용된 CFRP와 화려한 컬러의 금속과 플라스틱이 맡았다. 이 단순함으로 디자인에 평면적이면서도 다채로운 변화를 만들었다. 눈을 현혹할 만한 디자인이 아니라면, 디자인은 잘 꾸며져야 한다. 디자인은 의미 부여이기도 하다. BMW는 토마스 디만트를 빌려 디자인에 의미를 부여했다. 또 다른 방법도 찾는다면 얼마든지 있을 것이다. 유기적으로 잘 짜인 의미 부여는 디자인 값어치에서 소프트웨어 영역이다. 이제 디자인에서 프리미엄을 논하려면 소프트웨어를 신경 써야 할 때이다.

이준호 에디터 carguy@carguy.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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