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승기]풍요로운 12기통 GT…애스턴마틴 DBS 슈퍼레제라
[시승기]풍요로운 12기통 GT…애스턴마틴 DBS 슈퍼레제라
  • 남현수 에디터
  • 승인 2019.08.05 08:00
  • 조회수 6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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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에서 온 신사를 만날 생각에 밤잠을 설쳤다. 첫 만남의 감동이 지워지지 않는다. 애스턴마틴은 잘 다린 수트 안으로 잘 다진 근육을 숨겼다. 영국의 품격이 오롯이 전달된다.
2019 애스턴마틴 DBS 슈퍼레제라
2019 애스턴마틴 DBS 슈퍼레제라

브랜드 가치가 좋다는 물건은 지금까지 이어져 온 역사와 전통이 중요하다. 영국 스포츠카 애스턴마틴을 이해하기 위해선 브랜드 탄생 배경을 알아야 한다.

애스턴마틴 역사는 레이스에서 시작된다. 1913년 설립된 애스턴마틴 전신인 ‘뱀포드 앤 마틴(Bamford&Martin)’은 라이오넬 마틴과 그의 친구 로버트 뱀포드가 동업해 만든 자동차 튜닝 회사다. 하지만 기존 튜닝만으로는 자동차에 개성을 담기는 어렵다는 판단 아래 결국 자체 브랜드를 단 자동차를 제작하게 됐다. 애스턴마틴의 시작이다.

라이오넬 마틴은 자신이 제작한 차량을 가지고 ‘애스턴 클린턴 힐클라임(aston Clinton Hillclimb)’대회에 참가해 좋은 성적을 거두게 된다. 1914년 애스턴마틴이라는 이름을 갖게 된 것도 자동차 경주에 참가하게 되면서다. 자동차 경주의 앞 글자와 자신의 이름을 따 ‘애스턴마틴’이라는 브랜드를 설립하게 된다.

1967년 처음 선보인 DBS는 DB시리즈의 고성능 라인업이다
1967년 처음 선보인 DBS는 DB시리즈의 고성능 라인업이다

애스턴마틴 창업자 라이오넬 마틴은 소수를 위한 투어링카 제작을 원했다. 현재도 애스턴마틴이 고성능 투어링카 성격을 가진 이유기도 하다. 애스턴마틴을 대표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DB시리즈는 1948년 시작됐다. DB1을 시작으로 현재는 DB11까지 나왔다. 1967년 처음 선보인 DBS는 DB 시리즈 고성능 모델이다. 이번에 시승한 DBS 슈퍼레제라는 뱅퀴시 S가 단종된 이후 애스턴마틴 플래그십 역할을 하고 있다. 또 다른 의미에선 애스턴마틴을 위기에서 구해낸 앤디 팔머 CEO의 역작이다.

애스턴마틴 모델의 줄기를 보면 DBS 슈퍼레제라는 DB11의 고성능 버전이다. 그러나 외관만 놓고 보면 완전히 다른 차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다. 페라리나 람보르기니 같은 슈퍼카 브랜드가 기존 모델에 에어로 파츠를 추가하고, 다이어트를 감행한 후 엔진 출력을 다듬어 고성능 버전을 내 놓는 것과 완전히 다른 방향이다.

2019 애스턴마틴 DBS 슈퍼레제라 외관
2019 애스턴마틴 DBS 슈퍼레제라 외관

DBS 슈퍼레제라는 베이스 모델인 DB11과 공통점을 찾기가 어렵다. 차체 곳곳에 카본과 알루미늄을 적극적으로 사용해 차대(Chassis) 무게를 72kg 경량화했다. 사이드미러를 제외하면 동일한 부분을 찾을 수 없다. 고성능 버전임을 암시라도 하듯 보닛에 뚫린 에어덕트에는 슈퍼레제라(이탈리아어로 초경량)라는 레터링이 붙어있다. 그릴 디자인도 달리 했다. 기존 DB11이 가로로 길게 뻗은 크롬바를 사용한 반면 DBS 그릴은 검정색으로 도색된 벌집 모양 패턴을 적용했다. 후륜 구동임을 자랑이라도 하듯 한껏 부풀린 펜더와 공력 성능을 최대치로 끌어 올린 사이드 스커트는 과격한 인상을 자아내기에 충분한 요소다. 후면에도 고성능 모델임을 암시하는 요소를 발견할 수 있다. 리어 범퍼 하단의 과격한 형상과 좌우로 각각 2개씩 뻗어 나온 테일파이프가 그 증거다. 리어 램프 디자인이 다른 것 역시 DB11과 DBS의 차이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디테일이다.

2019 애스턴마틴 DBS 슈퍼레제라
윤기 흐르는 말의 갈기를 움켜쥐고 우아하게 달리는 승마선수에 가깝다

매끈하게 이어진 측면 캐릭터 라인은 잘 다린 슈트를 닮았다. 우락부락한 근육질 몸매를 가진 스프린터 선수보단 윤기 흐르는 말을 타고 우아하게 경기장을 달리는 승마 선수에 가깝다. 긴 보닛과 상대적으로 짧은 트렁크 라인은 뒷바퀴에서 뿜어져나오는 괴력을 뽐내기라도 하듯 볼륨감이 넘친다. 패널 안 쪽으로 숨어버린 도어 핸들을 눌러 당기자 백조가 날개를 펼치는 모습을 형상화한 스완 윙 도어가 훌쩍 열린다. 

2019 애스턴마틴 DBS 슈퍼레제라 실내
2019 애스턴마틴 DBS 슈퍼레제라 실내
질 좋은 가죽이 아낌없이 쓰인 실내
질 좋은 가죽이 아낌없이 쓰인 실내, 좁은 공간은 중요하지 않다

DB11과 닮은 실내는 사치스러움 그 자체다. 질 좋은 가죽으로 실내 전체를 감쌌다. 적재적소에 자리잡은 카본 패널 역시 고성능 모델이 갖춰야할 기본 소양 중 하나다. 화려한 패턴을 수놓은 버킷시트는 탄탄함보다는 안락함을 선택한 모양새다. 센터페시아에 자리잡은 디스플레이와 공조기 조작 버튼은 실용적이진 않다. 터치를 지원하지 않는 벤츠의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을 그대로 가져왔다. 그럼에도 이전 모델보다 나아진 점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오너들의 불만을 받아들이고 고급감은 그대로 유지했다
오너들의 피드백은 받아들였지만 불편함은 여전하다 

계기반은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바뀌었고 키를 꽂아 시동을 걸어야 했던 수고로움을 덜어내고 버튼 시동을 택했다. 다만 스마트키를 주머니에서 꺼낼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을까? 키의 디자인은 크리스탈 조각을 덧씌운 이전 모델의 것이 더 나아 보인다. 장거리를 여유롭게 달리는 GT카답게 뱅앤울룹슨 오디오를 적용했다. 시동을 걸면 스르르 올라오는 전면 스피커는 눈을 즐겁게 한다. 오디오 시스템과 DBS 보닛 뒤에 숨겨진 12기통 풀 오케스트라가 맞물려 귀를 즐겁게 한다.

2019 애스턴마틴 DBS 슈퍼레제라
2019 애스턴마틴 DBS 슈퍼레제라
다운사이징 트렌드 속에서 묵묵히 새로 개발한 12기통 엔진

신사다운 외모 뒤엔 과격한 본성을 숨기고 있다. 5204cc 12기통 트윈 터보 가솔린 엔진은 다운사이징 흐름을 제대로 거스른다. 최고출력 715마력 최대토크 91.8kg.m의 폭발적인 힘이 터질듯 뒷바퀴에 전달된다. DB11에서 처음으로 선보인 12기통 자체 개발 엔진은 ZF 8단 자동변속기와 짝을 이룬다. 트윈 터보를 달아 저RPM부터 뿜어져 나오는 토크감이 상당하다. 정지상태에서 시속 100km에 도달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단 3.4초다. 최고속도는 335km/h다. 숫자만으로는 출력을 제대로 표현하긴 힘들다. 스포츠 플러스 모드에 두고 가속페달을 끝까지 밟으면 정신이 아득해진다. 시간이 완전히 멈춰 버린 듯 도로는 온전히 DBS 만의 것이 된다.

3-실린더 구성의 디지털 계기판은 스포티한 느낌을 더한다
3-실린더 구성의 계기판은 스포티한 느낌을 더한다
시종일관 부드럽지만 과격한 상황에서는 한껏 진지해진다

폭발적인 가속력과 더불어 조율이 잘 된 서스펜션은 편안함과 스포츠성을 동시에 버무렸다. GT모드에선 바퀴와 차가 분리된 듯 부드러운 승차감을 보여준다. 서스펜션 세팅을 스포츠 혹은 스포츠 플러스 모드로 바꾸면 바퀴와 차체가 하나가 된 듯 한순간에 단단해진다. 아수라백작 같은 서스펜션은 코너에서 진가를 발휘한다. 고성능 스포츠카에서 흔히 느낄 수 있는 신경질적인 반응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운전자가 제어할 수 있는 선에서 가볍게 돌아나간다.

스티어링휠 반응도 인상적이다. 적당히 무거운 스티어링휠은 운전자 마음을 꿰뚫어 보는 듯하다. 진중하면서도 경쾌한 움직임은 DBS에서만 느낄 수 있는 매력 포인트다. 카본 세라믹 브레이크 성능도 수준급이다. 땅에 내려 꽂히는 듯한 제동력은 715마력 고출력을 충분히 감당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

2019 애스턴마틴 DBS 슈퍼레제라
2019 애스턴마틴 DBS 슈퍼레제라

DBS 슈퍼레제라는 스포츠카와 GT카 그 사이에 위치한다. 여유로운 출력과 고급스러운 실내는 GT카의 풍요로움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달리고 싶을 땐 GT 모드에서 스포츠 플러스 모드로 바꾸기만 하면 된다. 원하는 만큼 달려주고 생각보다 잘 돌아나가는 탄탄한 서스펜션을 경험한다면 누구라도 애스턴마틴의 매력에서 헤어나오지 못할 것이다. 과거 조악한 품질의 애스턴마틴을 기억하고 있다면 이젠 그 기억을 놓아줘도 될 것 같다. 애스턴마틴의 마감 품질은 럭셔리 모델과 견줄 수 있을 만큼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한 줄 평

장 점 : 부드러움과 조합된 강력한 달리기 성능

단 점 : 4억인데 터치도 안되는 센터 디스플레이…

애스턴마틴 DBS 슈퍼레제라

엔진

5204cc V12 트윈터보 가솔린

변속기

ZF 8단 자동

구동방식

FR

전장

4712mm

전폭

1968mm

전고

1280mm

축거

2805mm

공차중량

1693kg

최대출력

715마력

최대토크

91.8kg.m

복합연비

8.8km/L

기본 가격

3억8500만원


남현수 에디터 hs.nam@carguy.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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