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르의 망치'를 기억하라! 볼보 부활 이끈 디자이너 파워
'토르의 망치'를 기억하라! 볼보 부활 이끈 디자이너 파워
  • 카가이 취재팀
  • 승인 2016.07.27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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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준호 기자 jh.lee@globalmsk.com

브랜드生死 가르는 디자이너의 파워



  • 자동차 브랜드 디자인 변화는 총괄 수석 디자이너(CDO)에 의해 결정된다.

  • 대중 브랜드까지 패밀리룩을 추구하는 요즘 총괄 수석 디자이너의 역할은 더욱 커졌다.








패밀리룩은 디자인을 언어라 비유할 때 관용구에 해당한다. 캐릭터를 형성하는 디자인 모티브가 모든 세그먼트에 반복적으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총괄 수석 디자이너의 역할은 이런 관용구를 창조 하는 일이다. 디자인을 개인의 취향이라고 폄하하는 시각에서 보면, 총괄 수석 디자이너의 취향에 따라 관용구는 취사선택 된다. 이에 따라 디자인도 변한다. 디자인을 미적인 것으로만 한정 짓는다면 취향은 당연히 존재하지만 디자인은 아름다움만을 추구하지 않는다. 총괄 수석 디자이너는 관용구를 창조해내 기 위해 브랜드의 헤리티지와 컨템포러리 트렌드, 거시적 비전을 갖춘 세련된 감각을 필요로 한다. 이런 요소를 잘 버무렸을 때 디자인 평가는 개인의 취향으로 몰고 갈 수 없다.

VOLVO의 토마스 잉엔라트 디자이너


볼보는 초기부터 스칸디나비아의 거친 기후에 적응하는 안전하고 튼튼한 자동차 만들기를 목표로 삼았다. 1956년 미국에 진출하면서부터 이 점을 마케팅에 본격적으로 접목했다. 대량 생산·판매를 통해 이윤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기업이 대부분인 환경에서 볼보는 자신만의 색채가 두드러졌다. 1970년대에 접어들면서 144와 164 모델이 미국의 교통 안전 기준을 모두 충족시키면서 볼보는 안전과 직결된 브랜드 철학을 확고히 했다.볼보는 아이덴티티가 매우 확실한 브랜드다. 바로 안전이다. 1944년 세계최초의 이중접합 라미네이트 안전유리에서 시작됐고 세계 최초로 개발한 저속 충돌 방지 시스템(시티 세이프티)에 이르기까지 아직도 진행형이다.



P1800ES는 볼보의 디자인 역사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델이다.








볼보 역사 속 트렌드 리더는 P1800


볼보 디자인 헤리티지 풀에서 당대 트렌드를 리드할 만한 모델, 혹은 볼보의 아이덴티티를 독창적으로 표현해낸 모델을 꼽 으라면 단연 P1800이다. 이 차는 볼보 최초의 스포츠 쿠페이자 볼보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모델로 꼽힌다. P1800은 특이하게도 요트 디자이너 펠레 페터슨의 손을 거쳤다. 좀 더 유럽 취향에 어울리고 디자인 가치가 높은 모델은 P1800ES다. 이 차는 테일게이트를 전부 유리로 만든 슈팅브레이크 모델이다. 이런 독특함은 V40과 C30등 이후에 나온 볼보 디자이너들의 작품에 깊은 영감을 줬다. 현 볼보 디자인을 이끄는 토마스 잉엔라트는 P1800ES의 디자인 가치를 부활시켜 2014년 제네바 모터쇼에 ‘볼보 에스테이트 콘셉트’를 출품했다.




볼보 740 GL. 각진 디자인은 안전을 중시한다는 확고한 신념을 부여한다.


P1800ES를 논할 때 볼보 수석디자이너 얀 윌스가드를 빼놓을 수 없다. 그는 1950년부 터 1990년까지 무려 40년 동안 볼보에 머물 며 P1800ES를 비롯해 740·760·780·850등 볼보의 상징적인 모델을 완성했다.

볼보 760은 1982년 미국시장 개척이래 최초로 100만 대 수출을 돌파한 후에 등장한 볼보의 아이덴 티티 모델이다. 1980년대는 조르제토 주지아로가 창조한 쐐기형 디자인이 트렌드를 주도 했다. 생산효율이 좋을 뿐 아니라 미래지향적 이었다. 쐐기형은 각진 직선으로 이뤄진 디자인이다. 운송기기에서 직선을 사용하는 대표 사례는 강인한 힘과 튼튼함이 본질인 SUV나 군용차다. 곡선의 볼륨에 현혹된 소비자의 눈 에 직선은 신선해서 미래지향적으로 보이기 마련이다.

각진 직선으로 이뤄진 디자인은 미적 아름다움보다는 단단함에서 오는 믿음직스러움이 우선이다. 안전을 아이덴티티로 삼는 볼보에게는 아주 제격이었다. 볼보의 수석 디자이너 얀 윌스가드는 직선의 고정관념을 더욱 더 부각시켰다. 다부지고 강력한 직선으로 이뤄진 볼보 760 디자인은 볼보는 안전을 중시한다는 확고한 신념을 부여했다. 이후 등장한 850은 직선 스타일을 그대로 계승하면서 연비와 무게에 강점을 지닌 직렬 5기통 엔진으로 파워트레인을 업그레이드했다. 그 결과 출시되자마자 볼보의 가장 큰 시장인 북미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볼보 시그니처 변화가 미비했던 피터 호버리 시대의 S40, V40.






호버리 시대, 진부한 디자인과 지루한 장수


1999년 볼보그룹은 자동차부분을 포드로 매각한다. 그 원인을 진부한 디자인에서 찾는 이들도 있다. 강력한 직선 디자인이 높은 안전 이미지를 심는 뛰어난 업적을 냈지만 소비자들에겐 ‘볼보 디자인=각진 직선’이라는 고정 관념을 새겼다고 평한다. 그 화살은 얀 윌스가드의 뒤를 이어 수석디자이너에 오른 피터 호버리에게 향한다.

1991년부터 볼보 디자인을 총괄한 피터 호버리에게 시간은 촉박했다. 발 빠른 브랜드들은 이미 직선을 유행 지난 디자인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생산효율성보다는 에어로다이내믹과 미니멀리즘을 미적 기준으로 삼는 새로운 트렌드가 불어 닥쳤다. 호버리는 볼보 아이덴티티가 너무 강하게 자리잡은 디자인 언어에 새로운 트렌드를 접목시켜야 하는 중책을 맡았다. 박스형 디자인이 진부해졌지만 그것이 볼보 디자인의 전부였다.

1995년 호버리의 입김이 들어간 S40과 V40이 선보였다. 헤드라이트와 그릴에 날렵한 비율을 대입해 투박함을 지웠고 선과 선이 맞닿는 접점들은 모두 둥글게 굴렸다. 트렁크 패널과 리어램프, 휠아치는 종전에 느낄 수 없던 부드러운 곡선으로 볼륨을 생성했다. 지극히 트렌드를 반영한 디자인이었다. 변화는 생소할 수밖에 없다. 특히 소비자들의 인식에 아이덴티티가 고정관념으로 박힌 볼보는 더했다.

호버리의 디자인 언어는 트렌드를 적극 반영 했지만 볼보의 아이덴티티를 뒤흔들만한 획기 적인 변화는 이끌지 못했다. 각진 디자인만을 벗어났을뿐 판에 박힌 볼보 이미지를 벗겨내기에는 용기가 부족했다. 이는 판매량으로도 증명된다. 1991년부터 1996년까지 모두 71만 6903대를 팔아 치운 850에 비해 호버리 시대의 첫 결과물인 S40의 판매량은 훨씬 적었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모회사인 포드는 자금의 유동성 위기를 겪다가 2010년 중국 지리자동차에 볼보를 매각했다. 볼보의 대표 SUV인 XC90은 무려 11년 동안 모델체인지 없이 생산됐다. 1998년 등장한 S80은 2006년에 새로운 디자인을 입혔지만 그로부터 10년이나 변함없이 팔리고 있다. 호버리의 디자인 변화는 소극적이었고 변화 주기마저 길었다. 볼보의 디자인은 소비자의 인식에 진부함을 각인시켰다. 그마저도 바꿀 수 없을 정도로 재정이 변변치 못한 브랜드로 낙인찍힌 것은 더 문제였다.






토마스 잉엔라트는 독일인지만 스웨덴 감성을 잘 살린다는 평을 받는다. S90 디자인에 영향을 끼친 쿠페 콘셉트.
토마스 잉엔라트는 독일인지만 스웨덴 감성을 잘 살린다는 평을 받는다.
S90 디자인에 영향을 끼친 쿠페 콘셉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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