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진정한 레트로 피아트 뉴 500..미니 쿠퍼보다 한 수 위!
[칼럼]진정한 레트로 피아트 뉴 500..미니 쿠퍼보다 한 수 위!
  • 이준호 에디터
  • 승인 2020.05.09 09:00
  • 조회수 3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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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산을 계승하는 디자인이 있다. RollsRoyce, Jeep, Porsche, MINI, Beetle 그리고 500이 대표적이다. 이들 디자인은 변치 않는 변화라는 모순의 과정이다. 모순에 빠지면 디자인이 어려울 수 있다. 2020년 la Prima, Giorgio Armani, B500 "MAI TROPPO", Kartell 총 4가지 한정판을 필두로 모습을 드러낸 3세대 피아트 500은 디자인 정수를 보여준다.
왼쪽 - 불가리가 꾸민 B500 "MAI TROPPO"
가운데 - 이탈리아 오뜨꾸튀르 Gorgio Armani 에디션
오른쪽 - 조명, 가구회사 Kartell의 터치가 빛난다

제네시스는 한국의 색채라며 여백의 미를 들고 나왔다. 각국 디자이너들은 자국의 아이덴티티를 디자인에 녹여내려 애쓴다. 그 결과 프랑스 차는 이렇고, 미국 차는 저렇다고 나름의 해석을 내놓는다. 해석일 뿐이지 정답은 아니다. 자칫하면 일반화의 오류로 변질될 수 있다.

페라리, 람보르기니, 파가니와 같은 슈퍼카가 즐비한 이탈리아 차는 멋지고 섹시하다고만 할 수 있을까? 당연히 그럴 수 없다. 왜냐하면 대중 브랜드인 피아트가 있어서다.

피아트의 지난해 베스트셀링 모델은 소형차 판다(Panda)다. 그 다음이 500이다. 이 두 모델은 미니카 세그먼트 1, 2위를 석권하는 유럽 베스트셀링 카다. 1957년에 등장한 원조 500은 18년 동안 4백만 대 넘게 팔았다. 2007년 등장한 현대판 500은 12년 동안 2백만 대를 넘겼다.

 

MINI 쿠퍼와 피아트 500은 꽤 닮았다. 브랜드의 아이코닉 모델이고, 레트로 디자인으로 환생시킨 디자이너도 같다. 2년 먼저 태어난 500(1957)보다는 MINI 쿠퍼(1959)의 인기가 높았다. 동생인 쿠퍼는 무려 2000년까지 생산되면서 5백만 대를 넘게 팔았다. 현대화를 거친 쿠퍼는 2012년에 이미 누적 판매 대수 2백만 대를 훌쩍 넘겼었다. 현대화 작업은 쿠퍼가 6년이나 빨랐다는 점을 감안하면 500의 판매량도 만만치 않은 셈이다.

현재 쿠퍼는 4세대로 진화했다. 500은 이제 3세대가 등장했다. 500은 국내에서 안타깝게 철수한 경험이 있다. 이런 결과로 한국에선 500의 인기가 쿠퍼보다 덜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물론 미국을 비롯 제3지역에서 MINI 쿠퍼의 판매량은 피아트 500을 압도한다. 반면, 고향인 유럽에서는 기를 피지 못한다. 2019년 500의 유럽 전체 판매량은 17만5,017대이지만, 쿠퍼는 13만4,594대에 그쳤다. 500은 2세대이지만, MINI는 4세대다. 적어도 유럽 사람들 눈에는 구형인 500이 더 매력적인 셈. 그 이유는 무엇일까?

 

레트로 감성을 더 입혔지만, 모던함도 잃지 않았다. 변치 않는 변화라는 모순된 디자인

이탈리아는 르네상스의 본거지다. 신 중심에서 인간 중심으로, 인간 본연을 탐구하는 인문학이 발달했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은 이탈리아 르네상스를 대표한다. 군주의 부도덕성(?)을 옹호하는 내용이다. 이에 신하의 덕목을 다룬 책도 등장했다. 발레사르 카스틸리오네의 <궁정인>이다. 이 책에선 신하의 덕목으로 스프레짜투라(Sprezzatura)를 겸비해야 한다고 했다. 사전적 의미로 스프레짜투라는 '거만하게 굴다'라는 뜻이다. 카스틸리오네는 신하가 갖춰야 할 덕목과 교양, 인간관계가 드러나는 경지로 여겼다. 이후 스프레짜투라는 연습을 일컫는 데코로(Decoro)와 최고의 경지인 그라치아(Grazia) 사이에 자리를 잡았다. 이 3 단계는 음악, 미술, 장인 등, 정신과 기교가 융합해 최고의 결과물을 내는 과정에 쓰였다.

이렇게 시작이 거창한 이유는 피아트 500의 디자인 변화가 언급한 과정과 상응하기 때문이다.

 

FIAT New 500 Full Electric

 

데코로(Decoro)의 시기 - 500

데코로는 기본과 원칙을 지킨 끊임없는 연습 또는 노력을 뜻한다. 자기 것을 만드는 과정의 전 단계다.

2007년 피아트 500은 프로토타입으로 세상에 얼굴을 내밀었다. 2004년 Roberto Giolito가 그린 콘셉트카 트레피우노(Trepiuno)가 등장한지 3년 만이다. Trepiuno는 당시 유럽 시장에서 히트를 친 스마트 포투의 대항마 콘셉트였다. Trepiuno란 이름은 3+1이다. 3명의 어른과 아이 1명이 탈 수 있다는 의미다.

디자인은 500의 환생이었다. 트윈 헤드 램프, 콧수염 그릴, 피라미드 실루엣이 그대로다. 충분히 매력적임에도 양산이 3년이나 미뤄졌다. 참고로 Roberto Giolito는 세계에서 가장 못생긴 자동차로 이름을 날리는 멀티플라(Multipla)를 디자인한 장본인이다.

 

맥라렌 디자인에 지대한 영향을 끼진 Frank Stephenson, 그는 MINI 현대화 작업도 주도했다

Trepiuno의 양산이 빨라진 건 2006년 Frank Stephenson이 피아트, 란치아 디자인을 맡고 부터다. 그는 페라리에서 피아트로 옮기자마자 500 디자인에 투입됐다. Frank Stephenson는 미국 ACCD를 졸업하고 BMW에서 11년간 실력을 쌓았다. 대표작은 X5와 MINI 쿠퍼다. 이후 페라리, 마세라티 그룹 디자인 디렉터로써 페라리 F430, 612, 마세라티 그란투리스모 등의 디자인을 했다. 그의 커리어가 정점을 찍은 건 맥라렌에서다. P1, 570S, 720S 등 맥라렌 디자인 아이덴티티를 확립했다.

Frank Stephenson은 모티브를 찾아내고 패턴으로 응용해 아이덴티티를 만드는 귀재다. MINI의 경우 원을 모티브로 인, 익스테리어 모든 형태에 대입했다. 맥라렌에서도 마찬가지다. 부메랑 모양의 엠블럼을 헤드라이트, 테일램프, 에어 인테이크 등에 고루 썼었다.

 

FIAT New 500 Full Electric 휠 사이즈를 키우고, 휠 베이스도 넓혔다

Frank Stephenson의 이런 역량은 500 양산에 큰 도움을 줬다. 원이란 모티브는 MINI 쿠퍼와 동일하지만, 500만의 개성을 제대로 살렸다. MINI에서 빛을 봤던 레트로 디테일, 예를 들어 크롬 장식과 같은 설루션은 500 디자인의 완성도를 끌어올렸다. MINI와 FIAT는 브랜드 급이 다르다. 쿠퍼와 500의 가격차이만큼 소재나 품질에서 차이가 날 수 밖에 없다. 그럼에도 500에는 MINI만의 프리미엄 루틴이 엿보인다.

1950년대 원조 모델을 레트로로 부활시키는 방법은 쉽지 않다. 레트로 디자인이라고 다 성공하는 것도 아니다. MINI는 성공했을지라도 폴크스바겐 비틀은 실패했다. 어찌 보면 Frank Stephenson의 레트로 디자인 해석은 피아노의 체르니 교본과도 같다. 첼로의 스트링 빌더 연습곡이다. 피아트 500은 그렇게 연습하고 반복했다. 다음 단계인 스프레짜투라에 오르기 위해서다.

 

불가리가 꾸민 FIAT New 500 인테리어 - "MAI TROPPO"는 과하지 않다는 뜻. 더 과할 수 있는데 안 했다는 반어법이다

 

스프레짜투라(Sprezzatura)의 발현 - new 500

스프레짜투라를 한 문장으로 줄인다면 이렇다. '무기교의 기교' 우리나라 최초의 미술사학자 고유섭이 한국의 美에 내린 정의다. 좀 더 쉽게 풀자면 '피나는 연습과 훈련을 통해 편하고 자연스러운 단계에 다다름'이다. 데코로가 기본기 수련의 단계라면 스프레짜투라는 나만의 것을 형성하는 시기다. <궁정인>에선 '무심한 듯 세심하게 유유자적하면서도 능란하게'로 표현한다.

 

FIAT New 500의 헤드라이트는 신선할 뿐만 아니라 기교도 좋다

13년 만에 500은 풀체인지 됐다. 2020 제네바 모터쇼에서 등장할 예정이었다. 불행이도 코비드 19란 변수가 생겼다. 이에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한 채 밀라노에서 조촐히 공개됐다. new 500은 정말로 새로워졌다. EV 전용 모델이란 점이 제일 크다. 다음이 디자인이다. 얼핏 보기엔 변화가 없어 보이지만, 다가서면 완성도에 놀란다.

Jeep, MINI, 비틀, 포르쉐 모두 원형의 헤드라이트를 아이코닉으로 여기는 디자인이다. Jeep의 경우 원형의 헤드라이트를 버린 경우는 34년 역사에서 한 번 밖에 없다. 코드명 YJ이다. 일명 맥가이버 랭글러다. 네모난 헤드라이트로 가장 Jeep 답지 않은 디자인이란 혹평을 받았다. 포르쉐는 어떤가? Bug's eye란 혐오를 받은 모델이 있었다. 원형의 헤드라이트에 변형을 가했기 때문이다. 동양인인 핑크 라이가 수석 디자이너 시기였다. 이 때 모델은 중고차 값이 가장 저렴하다.

 

엠블럼에 전기차임을 센스있게 알리고 있다

누군가는 말한다. 지켜야 할 유산이 많은 아이코닉 디자인을 하기 가장 힘들다고! 변치 않는 변화를 만드는 디자인은 힘들다. 스프레짜투라의 경지에 오르지 않으면 말이다. 스프레짜투라의 경지에 오르면, 누군가에게 어려워 보이는 일을 쉽게 한다. 내공이 쌓였기 때문이다.

원형의 헤드라이트가 불문율이라며 변화의 시도조차 못하는 디자이너는 데코로 수준이다. new 500의 헤드라이트는 멀리서 보면 원형이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반원이다. LED 광원은 넓은 면적의 헤드라이트를 필요치 않는다. 포르쉐나 MINI, Jeep처럼 광원의 모듈은 소형화됐는데, 원형을 고집하느라 넓은 여백을 놔두는 건 스프레짜투라하지 못하다.

new 500은 보닛을 타공하고, 눈썹 같은 선을 넣었다. 변화를 위한 억지스러움이 아니다. 눈썹은 DRL의 기능적 역할이다. 여백을 한껏 줄인 헤드라이트는 밀도가 충만하다. 충분히 새로운 디자인이고, 생산 단가도 올라가는 높은 수준이다. 보닛의 파팅라인과 잘린 헤드라이트의 절묘함은 덤이다. 지극히 피아트 new 500만의 Flow(힙합 용어 - 억양, 강약 조절, 템포와 같은 래퍼 특유의 스타일)다.

 

FIAT New 500은 오리지널리티를 고집스럽게 추구하기에 매력을 잃지 않는다

아이코닉 디자인 중 스프레짜투라가 결여된 대표 디자인은 무얼까? MINI는 4세대로 넘어가면서 변신을 했다. 고질적인 열관리 문제로 쿠퍼 S에선 4기통 2.0리터 엔진을 들였다. 환경을 위한 다운사이징의 흐름에 역행하는 처사다. 그 뿐 만이 아니다. 엔진이 커졌으니 오버행도 비대하게 늘었다. 무게 또한 늘어났다. 연비 향상을 위해 공력 계수도 낮춰야만 했다. 헤드라이트는 저항을 줄이기 위해 뉘였다. 문제는 그 각도가 처참하다. 싱글 프레임을 따라간 그릴은 완성도가 엉성하기 그지 없다. 아울러 영국은 테일램프를 키우지 않는 독특한 유산이 있다. 레인지로버, 롤스로이스의 테일램프는 앙증맞을 정도로 작다. 오리지널 MINI 쿠펴 역시 작고 귀여웠다. 하지만 4세대 MIN 쿠퍼의 테일램프는 역대급으로 커졌다. 원조 MINI 쿠퍼가 갖고 있던 비율, 비례, 프로파일, 스탠스 모든 게 무너졌다. 유럽인들의 반감을 사기에 충분했다.

 

FIAT New 500의 사이드 리피터는 에어로 핀의 기능까지 갖춘 뛰어난 디자인이다

스프레짜투라가 충만한 new 500은 원형(原形)의 비율과 비례를 지독스럽게 고집한다. 여기에 더해 휠 사이즈를 늘렸고, 휠 베이스도 넓혔다. 스탠스 부분에서 현대적인 매력도 챙겼다. 캔버스 컨버터블 루프와 사이드 크롬 몰딩도 추가했다. 전통성의 회귀다. 기본과 원칙의 지킴은 흐트러짐이 없다. 반면 사이드 리피터는 정교한 하이테크다. 피아트 엠블럼을 떼고, 500 레터링으로 대체한 브랜딩도 젊어졌다. 그 결과 태초의 500이 갖고 있던 앙증맞음과 귀여움을 100% 계승하면서도 현대적으로 변신했다. 기교는 별로 없어도 농익은 변화가 수준 높다.

 

이런 감각은 오로지 이탈리아 디자인의 몫이다 by FIAT New 500 Giorgio Armani Edition

인테리어 디자인은 단순하다. 단순하다고 표현까지 소홀하진 않다. 대시보드는 짜임 있는 패브릭 같은 재질로 쌌다. 신선하다. 다시 대시보드는 광택 나는 몰드로 둘러졌다. 몰드의 상단 중앙엔 500 엠블럼이 이어진다. 신경 써 보지 않으면 모른다. 인포테인먼트 디스플레이 뒤에 반쯤 숨겨 놓아서다. 숨김의 미학이다. 대놓고 드러냄은 매력이 없다. 겉으로는 관심 없는 척 하지만, 속으론 끊임 없이 사랑을 갈망하며 타이밍을 기다리는 남자에게 이성은 끌리기 마련이다. 이것이 스프레짜투라의 우아함이다. 우아함은 초짜에게선 찾을 수 없다. 우아한 백조도 수면 아래선 열심히 물갈퀴질을 하지 않던가? 이런 우아함을 통달하면 그라치아의 경지에 오르게 된다.

어서 빨리 10년의 시간이 흘러 갔으면 좋겠다. 그라치아의 경지에 오른 3세대의 all new 500이 기대되기 때문이다. 누군가 이탈리아 디자인은 어떻냐고 물어본다면 난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하기 힘들고 어렵다고 하는 디자인을 가장 쉽게 하는 디자인이라고"

이준호 에디터 carguy@carguy.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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