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장레터]일본의 야심..토요타,혼다-닛산 2강 재편 가속화
[편집장레터]일본의 야심..토요타,혼다-닛산 2강 재편 가속화
  • 카가이 취재팀
  • 승인 2020.06.01 13:39
  • 조회수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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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정부가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 닛산 몰락으로 인한 자동차 업계 구조조정이다. 요약하면 토요타,혼다 2강 체제다. 일본 빅3로 대표되던 닛산을 혼다에 인수시켜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겠다는 밑그림이다. 특히 코로나19 여파로 글로벌 자동차 업계의 위기가 심화하면서 구조조정이 명분을 얻어 가속도를 낼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한국이 1990년대 현대,기아,대우차 3파전에서 현대기아 합병으로 몰아줘 경쟁력을 확보했던 것을 벤치마킹했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그동안 일본 자동차 업체는 9개 회사가 독립 경영을 해왔다. 2010년 금융위기 이후 인수합병이 정부 주도로 활발해지면서 토요타그룹 (마쓰다-스바루-스즈키-다이하츠-히노) ,닛산-미쓰비시 제휴, 혼다자동차 3강 체제로 재편됐다. 혼다만 혼자서 독야청청이다. 2강론이 고개를 든 것은 지난해 닛산자동차가 급격한 실적 부진에다 카를로스 곤 회장 체포로 경영 위기에 가속화하면다. 이미 일본은 대장성 관료를 중심으로 외자계 르노에 팔린 만년 2위인 닛산을 혼다에 합쳐줘야 한다는 의견이 꽤 오래전부터 존재해왔다. 현재 경영 상태가 멀쩡한 혼다가 헐값에 닛산을 인수하도록 일본 정부가 배후 조정을 할 것이라는 시나리오까지 가세한다. 닛산자동차의 시가 총액은 6월 1일 현재 1.76조엔(약 20조원)에 불과하다. 2000년대 중반 전성기 시절의 30%에 불과하다.

5년간 닛산의 주가 흐름
5년간 닛산의 주가 흐름, 꾸준히 하락세다

익명을 요구한 일본 자동차 분석가는 “이미 닛산 주가가 급락해 사실상 5조~6조원에 일부 정부 자금 지원만 있으면 글로벌 톱3인 닛산 인수가 가능하다”며 “정부는 지난해 11월 검찰을 통해 곤 회장 축출 단행했고 이어 혼다를 압박, 닛산을 인수하게 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현재 르노는 닛산 지분 43%, 닛산은 르노 주식 15%를 상호 보유하고 있다. 카를로스 곤 전 회장은 2018년 두 회사의 완전한 합병을 추진했지만, 닛산의 반발이 거세지면서 한발 후퇴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19일 밤 곤 회장 전격 체포에 요코하마 닛산 본사 앞에 모여든 기자단
지난 2018년 11월 카를로스 곤 회장 체포에 요코하마 닛산 본사 앞에 모여든 기자단

닛산은 2019 회계연도에6712억엔(7조7200억원)의 막대한 손실을 기록했다. 이번 적자는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진 2008년 이후 11년 만이다. 한국 경쟁사인 현대기아차는 같은 기간 연결기준 순이익 2조8천억 원을 기록했다. 닛산은 적자전환했지만 현대기아차는 순이익 규모가 33% 늘었다.

닛산은 이미 1998년 경영 위기로 프랑스 르노자동차에 인수됐었다. 이후 곤 회장의 강력한 리더십과 구조조정으로 회생에 성공했다. 곤 회장은 르노 경영이 침체에 빠지면서 2018년 닛산을 완전히 합병하려는 계획에 세웠다. 이에 닛산 경영진과 일본 정부는 강력히 반발, 곤 회장 체포로 맞대응해 이를 무산시켰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현직 일본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기술 자부심이 큰 닛산이 규모도 작고, 기술도 상대적으로 떨어진 르노에 좌우되는 꼴을 더 이상은 못보겠다는 정부 관료의 시각에다 경영진 반발이 곤 회장 체포와 결별을 이끈 원인”이라고 진단한다.

최근 5년간 혼다 주가 흐름
최근 5년간 혼다 주가 흐름

일본 정부는 닛산을 다시 외국자본에 매각하기보다는 혼다에 인위적으로 몰아주겠다는 심산이다. 글로벌 자동차 시장에서 토요타, 혼다 두 개의 거대 브랜드로 중국 자동차 업체들의 등장을 견제하면서 우위를 점하겠다는 큰 밑그림을 그린 것으로 해석된다.

최근 일본 관가와 업계에서 '만년 2등'인 닛산과 혼다가 손을 잡아야 한다는 이른바 '닛산·혼다 제휴설'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게 이런 연유에서다.

이미 르노-닛산-미쓰비시 얼라이언스는 곤 회장 퇴임 이후 동맹이 약화되면서 제 갈 길을 가고 있다. 각자 잘 만드는 차량과 비교우위 지역을 지키고 3사 간에 불필요한 투자와 경쟁을 최소화한다는 암묵적 합의다. 르노는 유럽과 남미, 닛산은 북미와 중국, 미쓰비시는 동남아에 주력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닛산은 르노와 결별 혹은 부분 협력안을 놓고 구조조정에 나서고 있다. 그런 그림 속에 나온 것이 지난 5월 28일 발표한 한국에서 닛산의 철수다.

올해 1월 열린 리노-닛산-미쓰비시 얼라이언스에서 발표를 하고 있는 카를로스 곤 회장
르노-닛산-미쓰비시 얼라이언스에서 발표를 하고 있는 카를로스 곤 전 회장

불과 3,4년 전만 해도 곤 회장은 '연합의 확대'를 추진했다. 2019년 11월 체포 직전에는 르노·닛산·미쓰비시 연합과 FCA(피아트·크라이슬러 연합) 제휴가 거의 성사 단계였다. FCA마저 제휴하면 연간 1600만대 규모의 세계 최대 자동차얼라이언스가 출범한다. 세계 1위를 다투는 연 1000만대 수준의 토요타와 폴크스바겐그룹을 크게 뛰어 넘는 것이다. 1998년 외환위기 당시 김우중(2019년 작고) 전 대우그룹 회장의 철학이었던 대마불사(大馬不死)론이 회상된다. 곤 회장의 당시 전략은 이런 대마불사론과 크게 맞닿아 있다.

이미 2015년 이후 세계 자동차업계는 전기차·자율주행·차량공유 등 기계공학이 아닌 IT  신기술 밀려 생존에 대한 절박함이 거세졌다. 그래서 곤 회장은 생존하려면 덩치를 키워 연구·개발비 부담을 나누는 수밖에 없다는 방침을 굳혔다. 곤 회장이 체포된 이후 FCA는 즉각 방향을 틀어 프랑스 PSA(푸조·시트로앵)와 연합, 연 800만대 수준의 제휴를 택했다.

최근 파이낸셜타임스(FT)도 현지 소식통을 인용해 이런 시각에 힘을 보탰다. 닛산 고위 임원이 르노와의 결별을 위한 내부 시나리오에 들어갔다고 보도했다. 일본인 주도의 닛산 경영진은 이사진 교체는 물론이고, 엔지니어링과 제조 부문을 분리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닛산 경영진은 “르노와의 제휴가 짐이 될 뿐만 아니라 이제는 경영을 악화시키는 독이 되고 있다고 믿을 정도”라고 FT는 전했다.

카를로스 곤의 뒤를 이은 신임 회장, 장 도미니크 세냐르
카를로스 곤의 뒤를 이은 신임 회장, 장 도미니크 세냐르

이런 일본 정부의 토요타-혼다 2강 체제의 큰 그림이 가시화하기 위해서는 넘어설 장벽도 상당수다. 우선 '르노·닛산·미츠비시 3연합체'가 해체될 경우 지분 정리가 매우 복잡하다. 글로벌 소송도 이질 수 있다. 아울러 자율주행과 전기차에 막대한 투자를 해야 하는 혼다가 닛산 인수로 얻을 실익이 크지 않을 수도 있다. 곤 회장 후임으로 르노·닛산·미츠비시 연합체의 회장으로 취임한 장 도미니크 세냐르 회장은 르노·닛산 동맹 존속 가능성에 회의적이지만 어떻게든 연합체를 유지하려는 의지를 내비친 바 있다.

하지만 가능성은 어느 때보다 커 보인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 등장 이후 자유무역보다는 자국 경제 우선주의가 거세졌다. 코로나19 여파로 경제 살리기와 취업률 확보가 각국 정부의 최고 목표가 되고 있어서다.

우치다 마코토 사장
리더십에서 문제를 보이는 우치다 마코토 닛산 사장

닛산은 지난해 부임한 우치다 마코토 사장의 리더십에 대해서도 의문 부호가 잇따라 나온다. 강력한 리더십은커녕 제대로된 구조조정이 아니라 축소 경영으로 닛산을 군소업체로 전락시키고 있다는 비판이다. 아울러 닛산 위기의 근본이 상품 경쟁력이 떨어진 것이 가장 큰 원인으로 지적되는데도 불구하고 이렇다 할 상품 기획 청사진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토요타-혼다 2강 체제로 재편 될 경우 한국의 현대기아차는 엄청난 적에 포위될 수 있다. 막강한 노조와 대립이 이어지고 2세 체제의 혼란과 리더십이 정몽구 회장 시절과 비교되는 상황에서 승승장구하는 중국 자동차업체와 거대 일본 2강에 둘러 쌓인다는 것은 생각만해도 아찔한 시나리오다.

김태진 편집장  tj.kim@carguy.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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