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의 레이스 르망24시 도전이 꿈
지옥의 레이스 르망24시 도전이 꿈
  • 카가이 취재팀
  • 승인 2015.08.01 18:57
  • 조회수 2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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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 전향한 강병휘 레이서


프로 데뷔 첫 해 우승컵 … 평일에는 수입차 직원, 주말에는 드라이버

2013년 10월 20일 전남 영암 코리아 인터내셔널 서킷에서 열린 코리아 스피드 페스티벌(KSF) 최종전. 이번에도 우승자는 스쿠라 모터스포츠팀의 강병휘(33) 선수였다. 그는 이번 경기 우승으로 총 7경기 가운데 세 번 우승했다. 우승을 포함해 모두 6번을 포디엄(3위 안에 입상하는 것)에 올라 종합 우승을 차지했다.

눈길을 끈 건 그가 크라이슬러코리아에서 차장으로 근무한다는 점이다. 주말에는 프로 드라이버로, 평일에는 크라이슬러 지프와 피아트 딜러 10여개를 관리하는 지역 총괄 매니저로 일한다. 그는 지난해까지 KSF의 아반떼 챌린지 레이스에서 여러 번 우승했다.

아반떼급 경기에서 적수가 없던 그는 올 시즌 프로로 전향, 제네시스쿠페20 클래스에 도전했다. 결과는 예상대로 대성공이었다. 그는 “팀에서 경기 운영에 조언을 많이 해줘 첫 해 우승할 수 있었다. 앞으로 본격적인 레이서로 해외에서 활약하고 싶다”고 말문을 열었다. 프로팀에서 드라이버로서 기량 이외에 엔지니어와 경주차 성능에 대한 의견 교환 같은 팀워크가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는 것이다.

강씨는 올해 처음 프로의 문을 두드렸지만 레이싱계에선 이미 유명인이다. 연세대 4학년이던 2003년 레이싱을 시작한 이래 클릭 스피드 페스티벌 최연소 우승(2003년 5월), 화성 카트빌컵 레이싱 카트 1위(2003년 11월), 용인스피드웨이 베스트 레코드상 수상(2004년 2월) 등 화려한 경력을 쌓았다.





 
군 제대 후 2006년 복귀하자마자 ‘포르셰 월드 로드쇼 슬라럼 대회’에서 우승했다. 2007년 포르셰가 전 세계에서 뽑은 ‘드라이빙 인스트럭터(레이싱 지도자)’ 6인 중 한 명으로, 한국인으로선 유일하게 선정됐다. 2011, 2012년엔 KSF 아반떼 클래스에서 우승 기록을 이어갔고 2012 한국모터스포츠 어워즈가 주는 ‘올해의 드라이버상’도 받았다.

강씨의 이런 성적은 모두 직장생활을 병행하면서 거둔 것이라 이채롭다. 첫 직장은 삼성교통박물관 학예연구팀 에디터(2006~2007년)다. 이어 포르셰 홍보팀(2007~2009년)을 거쳤다. 그는 드라이버 가운데 엘리트 이력을 보유했다. 대원외고(영어과)와 연세대 영문학과를 졸업했다.

자동차 인연은 유치원 때부터다. 그는 “유치원에 다닐 때 크레파스를 쥐여주면 자동차만 그렸다”고 말한다. 첫 운전은 열 살 때다. 전북 전주에서 병원을 하는 의사인 아버지가 그에게 운전을 가르쳤다. 강씨는 “처음으로 운전을 배운 날이 아직도 생생하다.

기아 콩코드 세단인데 엑셀 페달에 발이 닿았다. 1t이 넘는 차를 내 마음대로 움직인다는 게 신기했다”고 기억했다. 그는 스무 살때 아버지에게 “왜 그리 일찍 운전을 가르쳤느냐”고 물었다. 아버지는 “집중력이나 판단력을 키워주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고 생각해 위험하지 않은 선에서 시켰다”고 말했다.

그는 이후 자동차를 향한 꿈을 키워나갔다. 고교 시절에는 몰래 운전을 했다. “하도 운전을 하고 싶어 부모님을 같이 태우고 운전을 했다. 몰래 아버지 차를 타고 밤 12시 정도에 중부고속도로에 간 적도 있다. 시속 230㎞까지 속도를 내봤더니 과속 딱지 수십 장을 받았다. 아버지는 화를 내지 않고 내 방에 ‘아들아, 천천히 달리자’라고 적어 놓으셨다.”




열살 때 운전대 처음 잡아

강씨는 수능시험이 끝나자마자 자동차 면허를 땄다. 연세대 진학 후 공대 동아리에서 활동했다. 125㏄ 오토바이 엔진을 쓰는 1인승 차를 직접 설계하고 용접했다. 현대자동차 설계 공모전에도 도전해 장려상을 받았다. 대학 시절 거의 ‘공돌이’처럼 지냈다. 내연기관·엔진과 관련된 열역학, 로켓 엔진 관련 수업까지 망라했다. 공대 수업은 모두 성적 A를 받았다.

졸업을 앞두고 그는 레이싱에 꽂혔다. 자동차를 제대로 알려면 레이싱을 알아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하지만 처음 부모의 반대에 부닥쳤다. “대학 4학년이라 취업 준비를 해야 하는데 엉뚱하게 자동차 레이서를 한다고 나무랐다. 위험하다고 걱정도 했다. 하지만 곧 한 경기, 두 경기 나가고 성적이 잘 나오니까 오히려 응원을 해주셨다. 지금은 1년에 2, 3경기는 꼭 보러 현장에 오신다.” 그는 군대에서도 운전병을 했다. 부대에선 그를 ‘레이서 강’이라고 불렀다.

그에게 “왜 레이싱을 하느냐”고 물었다. 그는 “속도를 내면 아드레날린이 분비된다며 스릴을 즐기는 선수도 있다. 내가 원하는 대로 정확하게 조작할 수 있는지 스스로에게 도전하는 묘미가 있어 좋다. 게임도 레이싱 관련만 주로 한다”고 답했다. 그가 기억한 최고 시속은 330㎞다.

빠른 속도에 대한 두려움을 이겨내는 방법으로 “내 자신이 할 수 있는 범위까지만 하는 것”을 꼽았다. 그래서 그는 평소 운전할 때도 제대로 달릴 수 있을 때만 달린다. 길거리에서 차선을 바꿔가며 요리조리 폭주족처럼 운전하는 사람을 보면 한마디 해주고 싶단다. 레이싱은 서킷에서라고.

강씨는 레이싱을 하면서 어려움도 많이 겪었다. 후원업체 없이 활동하다 보니 경제적 부담이 컸다. 각종 대회 상금으로 3000만원 정도를 받았지만 차량 개조 등에 드는 관리비로는 턱없이 모자랐다. 그는 직장생활을 계속 병행할 생각이다. 아직 한국에선 레이싱만으론 생활이 어렵기 때문이다. 한국의 프로 레이서는 150명 남짓이다. 그들 중엔 레이싱 비용 때문에 자영업을 하거나 직장에 다니는 이가 많다고 한다.

한국 드라이버 수준에 대해 물었다. 그는 “유럽이나 미국의 프로 드라이버들과 비교해도 크게 떨어지지 않는다. 어떤 급의 레이스에서나 상위 선수들은 다른 경주에 나가도 잘 할 수 있다”고 답했다. 한국에서도 레이싱의 최고봉인 F1(포뮬러 원)이 열리지만 모터 스포츠는 불모지에 가깝다. 레이싱 역사가 20년이 넘지만 여건은 여전히 척박하다.

그의 꿈은 야무지다. 레이싱에서 가장 많은 체력을 소모해 ‘지옥의 경기’라 불리는 프랑스의 ‘르망24시 레이스’에 도전하는 것이다. 미국 최고의 경주인 나스카 도전도 가늠해보고 있다. 이런 게 가능하려면 스폰서도 필요하다. 그의 도전은 이제부터다.

제네시스쿠페20 클래스: 현대자동차 제네시스쿠페(원 메이크)를 경주차로 사용하는 경기다. 성능이 똑같아 드라이버의 기량 차이로 승부를 낼 수 있다.

경주차: 양산형 제네시스쿠페 3.8을 기본으로 튜닝했다. 중량을 약 200kg 줄이면서 동시에 차체 강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보강재를 사용했다. 조절식 서스펜션과 레이싱 슬릭타이어, 대용량 브레이크시스템을 달았다. 안전을 위해 비상전원 차단장치와 엔진 열을 식혀주는 공기역학 장치(에어로파츠)를 추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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