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pa valley - “와인은 토양과 기후 사람에 대한 진실”
napa valley - “와인은 토양과 기후 사람에 대한 진실”
  • 카가이 취재팀
  • 승인 2015.10.26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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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 컨설턴트 필립 멜카의 가장 큰 강점은 지질학 전공자라는 점이다. 프랑스 5대 샤또인 샤또 오브리옹에서 와인 양조를 배운 뒤 15년째 미국 나파밸리에서 토양과 테루아 연구에 몰두한다.



미국 나파밸리의 테루아 강연을 위해 2013년 12월 서울을 찾은 필립 멜카가 WSA 와인아카데미에서 촬영에 응했다.

신토불이(身土不二). 몸과 태어난 땅은 하나라는 뜻으로 제 땅에서 나온 것이라야 몸에 잘 맞는다는 말이다. 대표적인 게 와인이다. 좋은 와인의 기준으로 토양이 중요하다. 프랑스에서는 포도가 자라는 데 영향을 주는 지리·기후와 재배법을 통틀어 ‘테루아’라고 한다.

미국의 와인 평론가 로버트 파커는 업계 최고 권위자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는 매년 100점 만점으로 미국에서 판매하는 와인을 평가한다. 부드러운 탄닌과 목 넘김, 향긋한 오크향과 복합미를 풍기는 와인이 높은 점수를 받는다. 주로 미국인의 입맛을 대변한다.

한국 동아원그룹이 캘리포니아 나파밸리에 설립한 포도원 다나 에스테이트는 로버트 파커 최고점과 인연이 깊다. 미국에서 2013년 9월 판매에 들어간 ‘다나 에스테이트 로터스 빈야드 2010’이 만점을 받았다. 생산량이 3000병에 불과한 컬트 와인이다. 국내에 수입은 안 되지만 미국에서 가격대는 병당 50만원이 넘는다. 다나 에스테이트는 설립 4년만인 2009년 ‘로터스 빈야드 2007’이 만점을 받아 화제가 됐다. 만점은 원산지를 불문하고 매년 10여종에 불과해 유럽의 명문 와이너리도 받기 힘들다.

세계적인 와인 컨설턴트 필립 멜카(45)가 2013년 12월 한국을 찾았다. 그는 동화원에 다나 에스테이트 로터스 토지를 알선한 인물로 서울 WSA와인아카데미에서 ‘나파밸리 테루아’ 강연회를 열었다. 좋은 와인의 기본 조건은 좋은 토양이라는 것이다.

멜카의 가장 큰 강점은 지질학 전공자라는 점이다. 프랑스 보르도 태생으로 보르도 대학에서 지질학 학사(1989년)와 양조학 석사를 받았다. 이후 이탈리아 토스카나와 호주에서 연구하면서 프랑스 5대 샤또(포도원)인 샤또 오브리옹에서 와인 양조를 배웠다. 1998년 미국에 건너가 15년째 나파밸리에서 테루아 연구에 몰두한다.

그는 “졸업반 때 즉흥적으로 와인 과목을 신청했는데 그 수업이 인생을 송두리째 바꿨다”며 “토양과 와인 품질 간의 상관 관계에 큰 매력을 느꼈다”고 했다. 나파밸리에 정착한 이유는 “프랑스 보르도와 비슷한 좋은 토양때문”이라며 “보르도에 없는 화산재 토양까지 있어 나파 와인이 놀라운 잠재력을 갖고 있다고 확신한다” 고 말했다.

지질학이 좋은 와인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되는가.

와인은 토양과 기후, 사람에 대한 진실을 말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지질학은 도움이 된다. 구체적으로 지질학의 한 분야인 토양학(Pedology)은 와인과 밀접하다. 지질학 전공자 가운데 와인 업계에서 엔지니어로 활동하는 사람도 꽤 있다. 하지만 좋은 와인을 만들기 위해서는 토양 지식 이외에도 포도 품종·재배에 대한 다양한 지식이 필요하다.

나파밸리의 토양은 무엇이 특별한가.

우선 좋은 테루아다. 토양의 다양성을 논할 때 세계적인 보르도와 비교를 많이 하는데 나파는 손색 없다. 나파의 면적은 보르도의 20%도 안 될 정도로 작지만 사암·진흙·모래·화산토·자갈토 등 다양한 토양이 숨어있다. 게다가 보르도에는 없고 나파에만 있는 게 하나 있다.

바로 고도(高度)다. 보르도의 와인 산지는 대부분 편평하다. 높아 봤자 생떼밀리옹이 해발 100m를 넘지 않는다. 나파는 해발 800m까지 올라가는 산악지대가 많아 다양한 높낮이의 포도밭이 존재한다. 높낮이의 차이는 햇빛의 노출도, 물의 배수같은 포도 성장에 필요한 여러 조건을 변화시킨다. 나파에 개성적인 컬트 와인이 많은 이유다.

보르도와 비교해 나파밸리의 장점은.

와인의 역사와 스토리 측면에서 보면 나파 와인이 프랑스나 다른 구세계 와인을 따라잡을 수 없다. 그러나 미국도 1800년부터 시작된 짧지 않은 포도 재배의 역사가 있다. 무엇보다 1976년 ‘파리의 심판(눈을 가린 와인 전문가 평가에서 미국 와인이 프랑스를 이긴 사건)’처럼 국제적으로 품질을 입증했다. 여기에 미국이라는 브랜드, 거대 소비 시장이라는 삼박자를 갖추고 있다.

요즘 미국 와인 산업에 대대적인 투자가 이뤄진다. 프랑스 명문 와이너리가 속속 진출할 뿐 아니라 나파에 적합한 포도 재배법과 양조·토양에 관한 수많은 연구가 이뤄진다. 또 한가지 수준 높은 음식이다. 음식과 와인은 불가분의 관계다. 그 유명한 캘리포니아 요리학교(CIA)를 필두로 미슐랭 레스토랑의 천국이라고 할 정도다.

미국 특유의 도전적인 복합 문화와 창의성 또한 나파의 미래를 밝게 한다. 또 한 가지 ‘노동력의 품질’이다. 수십 년을 반복하면서 히스패닉 노동자들의 포도 재배기술이 월등히 좋아졌다. 보르도 특급 와인 품질에 버금가지만 가격이 저렴해 접근성이 좋은 것도 장점이다.

위대한 테루아란 어떤 것인가.

우선 신선함이다. 테루아 자체가 훌륭하면 사람의 기교가 없어도 아름다운 와인이 탄생한다. 순수하고 순도 높은 과실 향이 나온다. 그리고 빈티지(와인 수확연도)마다 품질의 일관성이 중요하다. B·C급 테루아는 후천적인 노력에 따라 잠시 좋은 와인을 만들 수는 있지만 장기적으로 품질이 일정하기 어렵다. 테루아의 특징과 우수성을 가장 잘 알 수 있는 게 바로 숙성이다. 초기에 결점을 감출 수 있어도 7년 정도 숙성되면 한계를 드러낸다.

위대한 테루아는 신선함과 생기, 고도의 풍미를 주고 매년 이런 와인을 만들 수 있게 하는 일관성으로 요약할 수 있다. 역사성도 필요하다. 프리미엄 와인 산지라면 100년 넘는 4세대 이상의 역사를 가져야 한다. 나파밸리는 1850년대 와인 역사가 시작됐지만 금주령과 이후 포도밭 재건으로 근대화는 1960년대 이후에 진행됐다. 1990년대 초반에는 포도나무 뿌리를 갉아먹는 필록세라 병이 돌았다. 나파는 의미 있는 실수를 몇 번 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학습효과가 있었다.

동화원이 운영하는 다나 에스테이트가 로버트 파커 만점을 두 번이나 받았는데.

다나 에스테이트가 가진 3개의 포도밭 가운데 로터스는 내가 직접 알선해 줬다. 로터스 밭 전 소유주는 와인을 직접 만들지 않았다. 수확한 포도를 다른 와이너리에게 판매해 그 포도밭에서 만들어진 와인의 품질을 알기 어려웠다. 근처에 다른 포도밭도 없어 간접적으로도 수준을 알기 어려워 대대적인 토양조사를 했다. 나파 고유의 특징을 제대로 갖춰 매입을 추천했다. 다나 에스테이트의 또 다른 포도밭 허쉬는 생산 와인이 있어 기본기를 알 수 있었다.

지구온난화가 와인에 어떤 영향을 미치나.

2000년대 초반부터 영향을 미쳤다. 나파는 2001~2004 평년보다 더웠다. 이를 계기로 태양열로부터 포도를 보호하기 위해 안개나 스프레이를 활용하는 포도밭 관리법 연구가 활발해졌다. 그런데 2005년 이후에는 평년보다 선선한 해가 많았다. 나파는 포도 완숙보다 과숙(過熟)이 문제라 태양열 경험 측면은 세계에서 가장 앞서 있다.

나파보다 선선한 보르도는 포도의 완숙이 과제다. 과거 역사적으로 10년에 2~3번 ‘그레이트 빈티지(포도가 완벽하게 익는 해)’가 나왔다. 2000년대는 10년간 무려 5번이나 더웠다. 보르도에서 그레이트 빈티지라고 목청 높여 말하지만 속으로는 더워지는 환경변화를 걱정하고 있다.

필립 멜카 로버트 파커가 선정한 ‘세계 최고의 와인 메이커 9인’에 든다. 프랑스·이탈리아로 대표되는 구세계의 전통과 미국·호주의 신세계 와인의 창의성을 융합할 줄 아는 인물로 평가받는다. 양조 과정에서 사람의 인위적 개입을 최소화하는 비간섭주의를 신봉한다. ‘한 병의 와인에 해당지역의 테루아가 빛나게 하라’는 철학을 고집하는 테루아주의자(Terroirist)이기도 하다. 기술적으로는 균형과 우아함, 적절한 산미를 지닌 와인을 추구한다. 충분한 탄닌을 가지면서도 잘 조절돼 부드러우면서 장기 숙성이 가능한 외유내강형 와인이 양조의 핵심이다. 미국 ‘푸드앤와인’ 잡지에서 나파밸리 최고의 와인 메이커로 뽑히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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