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로 보는 디젤...친환경 사기에 거짓말처럼 사라진 환경오염
역사로 보는 디젤...친환경 사기에 거짓말처럼 사라진 환경오염
  • 카가이 취재팀
  • 승인 2016.11.15 11:04
  • 조회수 3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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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유신 에디터 carguy@globalmsk.com

기술 발전은 신세계를 연다. 과거에는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일들이 눈 앞에 펼쳐진다. 가솔린과 디젤로 나눠진 차종에서 ‘승용차=가솔린’이 라는 공식이 성립했다. 디젤은 시끄럽고 진동이 심해서 트럭이나 기차 등 대형 운송수단에만 쓰이는 엔진으로 여겼다. 디젤 기술이 발전하면서 디젤의 단점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정숙성이나 진동도 대폭 줄어서 가솔린과 별 차이가 없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단점이 사라지면서 강한 토크와 높은 효율성이 부각됐다. 디젤은 승용차 시장을 빠르게 파고 들었다.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지구 온난화의 주범인 이산화탄소 배출이 가솔린 엔진보다 적다는 사 실이 알려지면서 친환경의 대표주자로 급부상했다. 승용차의 대표 엔진으로 여겨지던 가솔린 엔진의 시대가 곧 저물 것처럼 디젤은 승승 장구 했다.

디젤 천국이 도래했지만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디젤이 환경오염의 주범이라는 연구 결과가 잇따르고 폴크스바겐 디젤 사태가 터지면서 친환 경 디젤은 허구로 드러났다. 이산화탄소 배출 량에 가려 있던 질소산화물과 입자상물질의 유해성이 부각되기 시작했다. 이제 디젤은 더티 디젤, 사람 잡는 디젤 등 오염의 주범으로 떠올랐다. 기술 발달로 단점을 모두 극복하는가 싶었지만 결국 과거의 특성을 완전히 떨쳐 버릴 수 없었다.



다시 오염의 주범으로 낙인 찍힌 디젤이 시장에서 퇴출될까? 100년 동안 시장을 지켜오던 디젤이 하루아침에 사라질 리는 없다. 디젤 비중이 절반이 넘는 유럽 시장의 자동차를 일순간 가솔린이나 대체연료 자동차로 바꾸기는 힘들다. 우리나라만 해도 디젤 비중이 상당하다. 이미 2014년부터 승용차 판매에서 디젤 비중이 절반에 달했다. 수입차는 디젤 비중이 70%에 이른다. 디젤에 길들여진 소비자 취향이 단번에 가솔린으 로 바뀌지는 않는다. 폴크스바겐 디젤 게이트로 디젤에 대한 인식이 나빠지긴 했지만 여전히 디젤은 60% 넘는 비중을 차지한다.

주목해야 할 부분은 디젤의 방향이다. 오염물 질 배출을 기술로 극복하고 과거의 명성을 되찾을 수 있을지 따져봐야 한다. 환경 규제는 날로 엄격해진다. 현재 유럽에서는 유로6 규제를 시행 중이다. 미국은 주별로 다르다. 캘리포니아주가 가장 강력하다. 미국의 규제는 유럽보다 엄격하다. 폴크스바겐이 미국에서 문제가 된 것도 까다로운 규제를 맞추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현재 유로6 규제를 만족시키기 위해서 들어가는 비용은 차 한 대당 800만~1100만 선이다. 값비싼 배출가스 후처리 장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대량생산이나 보편화로 기술 비용을 줄일 수 있지만 한계는 분명히 따른다. 높은 비용 때문에 유럽 시장에서는 디젤 점유율 하락의 주요 원인으로 유로6 배출 규제를 꼽는다.

규제가 더 엄격해지고 있다는 점도 디젤의 앞날을 어둡게 한다. 엄격한 배출가스 기준을 맞추기 위해서는 더 많은 기술 비용이 들어간다. 규제를 맞추더라도 차 값은 올라간다. 높은 토크와 연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디젤을 써야 하는 상용차 시장에서 디젤은 살아남을 수 있다. 승용차 시장에서는 생존을 장담하기 힘들다. 하이브리드와 전기차 등 대안이 있기 때문이다. 일반 가솔린도 힘과 효율을 높이는 기술이 발달하면서 디젤과 격차가 줄어들었다. 연비와 힘 때문에 굳이 값비싼 디젤을 사지 않아도 될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

자동차 업체들도 디젤에 회의적인 시각을 드러낸다. 디젤 기술을 선도하는 브랜드 중 하나인 벤츠가 디젤을 포기한다는 소문이 돈다. 엄격한 규제를 맞추려면 후처리 장치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차 값을 맞추기 힘들다는 이유다. 후처리 기술을 개발하는 비용과 시간도 디젤 발전을 가로막는 요소다. 벤츠 같은 프리미엄 브랜드는 차 값을 비싸게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첨단 기술 비용을 흡수할 여력이 크다. 프리미엄 브랜드조차 디젤 기술 비용을 감당하기 힘들 정도이니 대중 브랜드는 상황이 더 열악하다고 볼 수 있다. 벤츠는 디젤 대신 가솔린 하이브리드 쪽으로 친환경차 개발 방향을 틀었다. 세계 최초로 디젤 트럭과 승용차를 양산한 벤츠가 디젤에서 방향 전환을 한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디젤이 한창 주가를 올리던 시절에 유럽과 미국, 일본의 친환경차 전략은 뚜렷이 구분됐다. 유럽은 디젤을 고수했고 미국과 일본은 하이브 리드와 전기차를 밀어붙였다. 지금은 유럽 업체들도 하이브리드와 전기차로 방향을 돌렸다. 디젤은 이제 설 자리를 점차 잃어간다. 차세대 환경규제가 본격화되면 디젤을 쓰는 차는 상용차만 남는다는 극단적인 전망까지 나온다.

시장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디젤이 일순간 사라지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대반전을 이뤄 화려하게 부활할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가솔린과 어깨를 나란히 하던 양대 산맥의 지위는 약해지 고 점차 세력이 축소될 가능성이 크다. 지금 이 순간에는 디젤이 없는 세상을 예견하기보다는 디젤의 세력 축소로 인한 시장 변화를 대비해야 한다.

[디젤의 태생과 발전] 완벽에서 미완으로...디젤 엔진 1세기 영욕의 역사


디젤 엔진은 19세기 말 등장해 산업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직분사⋅터보⋅커먼레일 등 기술을 도입해 소음⋅매연⋅진동 등 단점을 해소하면서 승용차 분야에도 주력엔진으로 자리잡았다. 친환경까지 인정 받으며 승승장구하던 디젤엔진은 환경 문제가 발목을 잡으면서 완벽한 엔진에서 미완의 엔진으로 위상이 추락했다.


디젤 사태 이후 디젤 엔진에 대한 인식이 부정적으로 바뀌었다. 하루아침에 디젤 엔진이 없어지지는 않겠지만 규제가 강화되고 인증이 까다로워지는 등 디젤 엔진의 앞길은 험난하기만 하다. 디젤 엔진이 개발 된 지는 100년이 넘었다. 1세기가 넘는 기간 동안 디젤 엔진은 산업 발전에 기여하고 자동차의 핵심 엔진으로 자리 잡았다. 이제 디젤은 새로운 전기를 맞이했다. 발전적 미래보다는 위기 극복이 우선 과제다. 이쯤에서 디젤 엔진이 어떤 과정을 거쳐 지금까지 이어져 왔는지 짚어볼 필요가 있다.

디젤이 만든 디젤 엔진


연비 좋은 차는 디젤로 통한다. 자동기어를 얹은 소형차의 연비는 1L에 20km를 넘는다. 중형차도 1L에 17~18km에 이를 만큼 디젤은 높은 연비로 정평이 나 있다. 힘 좋고 연비 높은 디젤을 타고 있지만 막상 디젤(Diesel)이 무엇인지에 관해서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그저 휘발유와 대비되는 기름의 한 종류로 알고 있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디젤은 디젤 엔진을 만든 개발자의 이름이다.

루돌프 디젤은 새로운 엔진을 개발해 자신의 이름을 붙였다.


루돌프 디젤은 1858년 3월 18일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났다(독일인 부모 사이에 태어난 독일인이다). 디젤은 1893년 ‘합리적인 열기관의 이론과 구조’ 설계 방식을 출원해 특허를 받았다. 1894년 실린더 안에서 공기를 압축해 자연발화 시키는 엔진을 개발했다. 당시에는 경유가 없었기 때문에 석탄 가루를 연료로 사용했다. 개발은 했지만 완성은 아니었다. 작동은 계속해서 실패했고 사고를 일으켜 경제적 손실도 입었다. 이때 만(MAN)에서 후원을 해 개발을 이어갔다.

1897년 드디어 완전한 개발에 성공한다. 그가 개발한 디젤 엔진은 산업에 일 대 혁명을 일으켰다. 열효율이 높고 경제성이 우수해 공장 기계나 선박, 기차 등 대형 엔진이 필요한 곳에 폭발적으로 수요가 늘었다. 디젤 엔진은 초창기에 열 엔진, 고압 엔진 등으로 불렸다. 이후 디젤이 자신의 이름을 따서 디젤 엔진이라 이름 붙였다. 디젤 엔진의 성공으로 디젤은 엄청난 부를 얻었다.

초기 디젤 엔진은 크기가 크고 고정해서 쓰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그의 인생은 그리 행복하지 않았다. 디젤에 밀린 휘발유와 증기 엔진 제조업자들의 중상모략이 그를 괴롭혔다. 그가 쌓은 막대한 부를 둘러싸고 회사 내부에는 부정부패와 암투가 끊이지 않았다. 이런 환경이 계속되면서 정신착란 증세가 나타나는 등 건강에도 문제를 겪었다. 디젤은 디젤 엔진 기술을 누구나 쓸 수 있도록 개방했기 때문에 해외에도 기술을 팔았다. 군사적으로 쓰고자 국외 유출을 꺼리던 독일 정부와도 갈등을 겪었다. 1913년 루돌프 디젤은 영 국에 세워진 디젤 공장 준공식에 참석하기 위해 도버 해협을 건너던 도중 배에서 실종됐다. 2주 후 북해에서 바다에 떠 있는 그의 시신이 발견되었다. 디젤의 사인은 정신분열증으로 인한 자살에 무게를 두고 있지만, 타살설도 끊이지 않고 제기되는 등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기차와 트랙터에 이어 자동차로


디젤이 만든 엔진은 1898년 러시아 정유 회사 선박에 처음 쓰였다. 1904년 프랑스에서는 잠수함 엔진으로 디젤 엔진을 채택했다. 디젤 엔진을 처음 쓴 기차는 1912년 덴마크에 선보였다. 대형 운송 수단 중심으로 디젤 엔진 사용이 늘었다. 20세기 초반, 당시 ‘벤츠&시에’(Benz&Cie)사의 엔지니어였던 프로스퍼 로랑주는 루돌프 디젤이 개발한 고정용 엔진을 자동차에 사용할 수 있도록 발전시켰다. 1922년 벤츠 디젤 엔진이 바퀴가 세 개 달린 트랙터에 처음 쓰였다. 2기통 엔진은 800rpm에서 25마력의 힘을 냈다. 1923년 드디어 자동차에 디젤 엔진이 처음으로 쓰였다. 세계 최초 디젤 트럭은 벤츠가 만들었다. 5k3이라는 이름을 지닌 트럭은 4기통 8.8L 45마력 엔진을 얹었다. 가솔린 엔진 5톤 트럭에 비해 25% 연료가 덜 들었다. 비슷한 시기에 다임러와 만도 디젤 트럭을 내놓았다.

트랙터와 트럭, 승용차 등 다양한 이동 수단에 디젤 엔진이 쓰였다.


놀랍게도 승용차에 디젤이 쓰이기에 앞서 모터스포츠에 디젤 엔진이 먼저 선을 보였다. 1931년 커민스사의 디젤 스페셜 경주차가 미국 데이토나와 인디 500에 등장했다. 피트 스톱을 하지 않아도 되는 높은 연비가 장점이었다. 1933년에는 디젤 엔진을 얹은 벤틀리 경주차가 몬테카를로 랠리에 출전했다. 1933년 시트로엥은 로잘리라는 디젤 엔진 승용차를 처음 선보였다. 법적인 문제로 1935년까지 생산하지 못했다. 실제로 판매된 최초 디젤 승용차는 1936년에는 벤츠가 내놓은 260D다. 트럭용 디젤 엔진을 기반으로 개발한 OM138 엔진을 얹었다. 배기량은 2.6L이고 4기통으로 45마력의 성능을 냈다. 최초 타이틀을 달았지만 완성도는 높지 않았다. 승차감이 떨어지고 시끄러워서 판매량은 그리 많지 않았다. 디젤 엔진은 크기가 크고 무거웠기 때문에 승용차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주로 트럭과 대형 운송 수단에 쓰였다.

1950년~1960년대 들어 디젤 승용차가 서서히 시장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벤츠·푸조·오스틴·이스즈·피아트 등 여러 업체들이 디젤 승용차를 만들었다. 주로 택시, 구급차, 왜건 등에 주로 상용 목적에 이용됐다. 1967년 푸조는 204BD라 는 고속 디젤 승용차를 내놓았다. 폴크스바겐이 1976년에 선보인 골프도 대중 차 시대를 여는 동시에 디젤 시장 확대에 한몫했다.

터보, 직분사, 커먼레일


디젤은 힘은 좋았지만 시끄럽고 매연 많아서 승용차에 쓰기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터보차저는 디젤 엔진을 승용차용으로 탈바꿈하게 만든 주역이다. 자연흡기 디젤은 저속 토크는 강하지만 고속에서 출력이 떨어지는 단점이 있다. 디젤 엔진은 롱 스트로크 타입이라 출력 발생이 더딘 편이다. 터보는 이를 보완해 보다 넓은 영역에서 출력과 토크를 높이는 역할을 해낸다. 자연흡기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은 산소를 공급하고 압축비를 높여 엔진의 연소 효율성을 높인다. 디젤 엔진은 가솔린에 비해 노킹 등으로 인한 문제가 적기 때문에 가솔린 엔진에 비해 터보 장착이 쉬운 편이고 효율성도 높다. 순발력과 가속성도 높아지기 때문에 디젤과 터보는 궁합이 잘 맞는다. 승용차에 알맞은 터보 디젤은 1960년대 등장했다. 1963년 로버는 2.5L 4기통 터보 디젤 엔진 시제품을 개발했지만 실제 양산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양산 터보 디젤 승용차는 1978년 선보인 벤츠 300SD 모델이다. 이듬해 푸조는 604 터보 디젤 모델을 내놓았다. 이후 터보 디젤은 급속하게 퍼졌다.



최초 양산 터보 디젤 승용차인 벤츠 300SD(위). 이후 디젤은 다양한 차종에 두루 쓰였다(아래).


직분사는 디젤에 쓰이는 대표 기술이다. 연소실에 연료를 직접 분사해 냉각 손실을 막고 유동 손실을 줄여 연비를 높인다. 단점이라면 분사 압력이 크기 때문에 소음과 진동이 크다. 이런 단점에도 불구하고 요즘 승용차에 쓰이는 디젤 엔진은 대부분 직분사 방식을 이용한다. 연료를 뿜어내는 인젝터를 개선해 직분사의 단점을 해소했기 때문이다. 직분사 방식 중에서는 커먼레일 이 대표 기술이다.

커먼레일이 나오기 전까지 디젤 엔진은 연료 분사를 위해 기계식 펌프를 사용했다. 분사 압력은 속도가 높아지면 함께 늘어난다. 엔진 속도와 연동하기 때문에 저압에서는 분사압력이 높지 않아서 정밀 제어가 힘들다. 커먼레일은 고압 펌프에 의해 고압화된 연료를 커먼레일이라고 부르는 레일(관)로 보내고 그 레일에서 고압 상태 그대로 연료 분사장치를 통해 연료실로 분사하는 시스템이다. 기계식 연료 분사와 달리 연료를 고압화해 각 실린더에 균일하게 분사한다. 1000바를 넘는 높은 압력으로 연료를 뿌리면 입자가 잘게 부서져 공기와 잘 섞이면서 완전연소가 이뤄진다. 디젤은 가솔린에 비해 점도가 높다. 입자를 작게 만들려면 1500바 이상의 높은 압력이 필요하다. 커먼레일 시스템을 쓰면 연료의 분사량과 분사압을 회전수와 상관없이 독립적으로 정밀하게 제어할 수 있다. 덕분에 배기가스 유해물질이 줄어든다. 커먼레일은 정교한 제어와 예민한 반응을 실현할 수 있기 때문에 소음과 진동은 줄어들고 연비는 높아진다. 커먼레일을 이루는 주요 부품은 인젝터다. 이전에 쓰던 솔레노이드식에 비해 응답성이 뛰어나기 때문에 이상적인 연소에 가까운 정밀제어를 할 수 있다.



커먼레일 기술이 나오면서 디젤은 급속히 승용차에 적합한 엔진으로 거듭났다.


상용화는 1990년대 후반이지만 커먼레일 시스템은 이미 1960년대 후반에 나왔다. 일본 덴소사가 실용화에 성공해 1995년에 히노 트럭에 처음 사용했다. 승용차는 피아트와 마그네티 마렐리가 전자식 커먼레일을 개발했다. 이 기술을 보쉬가 사들였다. 1997년 알파로메오 156 모델에 처음 쓰였고 같은 해 벤츠도 커먼레일 시스템을 선보였다. 커먼레일은 계속해서 발전했다. 연료 분사 압력에 따라 세대 를 나누는데 1세대 1300바, 2세대 1400바, 3세대 1600바 이상으로 계속해서 분사압이 높아졌다. 4세대 커먼레일은 2000바까지 올라간다. 직분사·터보·커먼레일의 조화로 디젤은 승용차에 없어서는 안 될 엔진으로 자리 잡았다. 유럽 시장에는 디젤 비율이 절반을 넘을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1세기 동안 디젤은 발전을 거듭했다. 매연·진동·소음 등 단점은 걷어내고 힘 좋고 연비 좋은 엔진으로 자리 잡았다. 이산화탄소 배출량까지 가솔린 엔진보다 적어 ‘친환경’ 엔진으로 여겨졌다. ‘클린 디젤’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디젤은 깨끗 한 엔진 취급받았다. 그렇지만 클린 디젤은 현 단계에서는 허상으로 판명 났다. 1세기를 거치며 완성단계에 접어든 줄 알았던 디젤 엔진은 아직도 해결할 문제가 산적한 미완의 엔진으로 전락했다. 현 단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가솔린에 밀려 퇴출 되느냐 혁신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해 명성을 되찾느냐 기로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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