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미국 대통령의 차, 링컨 컨티넨탈 전륜 럭셔리로 거듭나다
[스토리]미국 대통령의 차, 링컨 컨티넨탈 전륜 럭셔리로 거듭나다
  • 카가이 취재팀
  • 승인 2016.10.12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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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홍재 기자 carguy@globalmsk.com


'링컨 모터 컴퍼니’(이하 링컨)는 1917년 헨리 리랜드와 그의 아들이 설립한 자동차 회사다. 링컨이라는 사명은 미국의 초대 대통령인 아브라함 링컨의 이름을 따왔다. 당시 미국은 세계 1차대전에 참전 중이었고 링컨은 당시 12기통 전투기 엔진을 조립해 돈을 벌었다.











모델 L














링컨의 첫 번째 차인 모델 L은 1917년 나왔다. 8기통 엔진을 얹은 럭셔리 모델로 캐딜락과 경쟁했다.









포드의 지분 인수







1920년 대 링컨은 다른 자동차 제작사와 마찬가지로 재정난에 시달렸다. 또한 모델 L은 값이 비싸서 판매량이 많지 않았다. 1922년 2월 4일, 링컨은 포드에 800만 달러에 매각됐다. 링컨은 포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 포드는 모델T 외에도 럭셔리한 고가 차를 여럿 출시했는데 브랜드 인지도가 낮아 잇달아 실패했다. 링컨 브랜드 인수 후에는 당시 최고의 럭셔리 회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됐다.






1940년 - 링컨에 집중하다






포드 산하에 별도 회사였던 링컨은 1940년 부서를 포드 밑으로 옮겨 회사의 모든 자원을 집중했다. 이는 당시 경쟁차들과 더욱 차별화하기 위한 전략이었 다. 당시 링컨 H시리즈가 출시됐는데 쿠페·세단·리무진 형태로 나왔다. 모두 12기통 엔진이 기본이었다.







컨티넨탈의 등장






과거 럭셔리 차들은 여럿이 즐기는 큰 차였다. 당시 경영자였던 에드셀 포드는 자신의 휴양지인 플로리다에서 탈 수 있는 유선형의 아름다운 유러피언 럭셔리카를 원했다. 이때 등장한 차가 바로 링컨 제퍼를 개량해 만든 컨티넨탈이었다. 리어 트렁크에 스페어 타이어를 붙였다. 이 디자인은 1980년 대까지 링컨 컨티넨탈의 트레이드 마크가 됐다. 차의 콘셉트도 휴양지에서 즐길 수 있는 개인 럭셔리카로 만들어서 매우 아름다웠다.





1956년 - 링컨 컨티넨탈 부서의 탄생






링컨은 컨티넨탈이라는 최상급 라인을 탄생시켰다. 첫 모델은 컨티넨탈 마크2였다. 이 모델은 1세대 등장했던 오리지날 쿠페를 다듬었다. 트렁크에 있던 타이 어는 사라졌지만 마치 스페어 타이어가 있는 듯한 유선형 디자 인은 남겨 놨다. 디자인 철학은 미니멀리즘이었다. 당시 미국차와 달리 크롬은 거의 없었고 거대한 리어 펜더 날개도 찾아볼 수 없는 깔끔한 디자인이었다. 이 차는 오늘날에도 부르는 게 값이다. 아름다움에는 비싼 비용이 따랐다. 링컨은 이 차의 기본 가격을 무려 1만 달러로 책정했다. 오늘날 가치로는 9만 달러에 달하는 금액이다. 당시 미국에서 가장 비싼 차 가격이었다.






손해 보면서 만든차






오늘날 소비자가 알고 있는 미국차는 못생기고 매력 없는 차들이 주류지만 컨티넨탈 마크 2는 지금 봐도 아름다운 차다. 수제작으로 만들었는데 대당 1000달러씩 손실이 발생했다. 안타깝게도 생산은 1955년부터 1957년까지만 이뤄졌다.





1958년 - 모노코크 바디 시대


1960년대만 해도 대부분 자동차들은 프레임 바디 형태였다. 정확한 명칭은 ‘바디 온 프레임’ 이다. 이 구조의 특성은 거대한 프레임이 하부에 있어서 차체 강성이 요즘 차보다 튼튼하다. 하지만 비싼 철이 많이 투입되고 무게도 무거워진다. 생산비가 비싸 경제성이 떨어졌다. 링컨은 이 때부터 모노코크 바디로 전향 했다. 컨티넨탈 마크2는 마크 3로 대체됐고 차 가격은 무려 4000달러나 낮아졌다. 이후 링컨 컨티넨탈 부서는 1960년 마크5까지 출시했다.





1961년 - 새로운 컨티넨탈의 시대






링컨 컨티넨탈은 서브 브랜드로 링컨의 최상급 모델 브랜드였다. 1961년부터 링컨은 모델 수를 줄이고 컨티넨탈을 더 이상 브랜드가 아닌 모델명으로 바꿨다. 1961년 컨티넨탈 컨버터블은 당시 미국차보다 체구가 좀 작았고 미니멀리즘 디자인을 표방했다. 뒷문은 오늘날 롤스로이스에서 볼 수 있는 코치도어 형식이었다. 이 미니멀리즘 디자인은 요즘에도 인기다. 할리우드 영화에 단골로 나온다.





1968년 - 링컨 컨티넨탈 마크3 출시






1968년에는 트렁크의 스페어 트렁크 주름을 계승해 최상위 모델인 컨티넨탈 마크3를 출시했다. 프런트 그릴은 롤스로이스를 연상케 했다. 헤드램프는 롤링 방식으로 감춰진 스타일이었다.





1970년대 - 석유파동 여파






1970년대는 석유 파동으로 인해 전세계가 충격에 빠졌다. 미국 자동차 회사도 큰 위기에 부딪혔다. 링컨 또한 마찬가지로 큰 변화가 왔다. 라인업을 완전히 개편했다.





1980~1990년대






링컨은 미국의 연비규제(CAFE)를 만족시키기 위해 차체 사이즈를 대폭 줄이기 시작했고 전략도 대폭 수정했다. 링컨은 물침대같은 승차감으로 유명한데 1993년 마크8 모델은 당시 미국에서 생산하는 유일한 독립 서스펜션을 장착한 뒷바퀴 굴림 세단이었다.





1998년 이후






링컨은 계속되는 일본 브랜드의 공격으로 힘든 시기를 보낸다. 링컨은 유럽 어떤 나라에도 수출을 하지 않는 북미 전략형 브랜드다. 이로 인해 일본 브랜드의 북미침공상처는 컸다. 링컨은 힘든 시기에 더욱 허리띠를 졸라 맸다. 라인업을 대폭 다듬고 플랫폼 대부분을 포드와 적극 공유했다. 판매량은 눈에 띄게 좋아지지는 않았지만 대형 SUV모델의 인기는 꾸준하다.




2012년 이후






링컨 브랜드는 미국 전략형 럭셔리 브랜드다.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먼저 진출한 시장 중 하나다. 일본도 그 뒤에 소개됐다. 아직도 유럽에는 진출하지 않았다. 포드는 럭셔리카의 시장성을 다시 한번 중요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2014 년에는 MKZ를 간판 모델로 내세워 중국에 진출했다. 이 외에도 디자인 센터를 새로 설립하고 사명도 하나 새로 만들었다. 이제 포드 산하가 아닌 링컨 모터 컴퍼니 산하에서 나온다. 링컨은 2016 년에 컨티넨탈을 다시 부활시킨다. 자동차 역사에 큰 업적을 남긴 이름이 다시 돌아온다. 합리적인 가격을 항상 내세워 온 링컨은 가격 외에도 경쟁력이 크다. 안락한 승차감, 조용한 실내가 그 예다. 국내 소비자들이 중시하는 부분이라 시장의 반응이 기대된다.

올해 출시예정인 링컨 컨티넨탈





미국 대통령과 링컨 컨티넨탈








링컨 컨티넨탈은 미국의 대통령 차로도 유명하다. 1961년에는 컨티넨탈이 대통령차로 등장했 다. 정확한 모델명은 ‘SS-100-X’로 가장 유명한 대통령차다. 존 F 케네디는 이 컨버터블 모델을 타고 있다가 암살당했다. 1969 년, 닉슨 대통령도 컨티넨탈을 탔다. 1972년 모델도 대통령 차로 사용되었는데 포드, 카터 그리고 레이건 대통령까지 컨티넨탈을 탔다.

1961년 미국대통령차로 등장한 SS-100-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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