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디시 젠틀맨 S90, 볼보는 진정한 프리미엄인가
스웨디시 젠틀맨 S90, 볼보는 진정한 프리미엄인가
  • 카가이 취재팀
  • 승인 2016.09.29 09:42
  • 조회수 9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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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진 기자 carguy@globalmsk.com

볼보는 프리미엄 브랜드인가? 자동차를 20년 동안 취재해 온 필자에게 항상 남는 의문이었다.

1990년대만 해도 볼보는 스웨덴의 괜찮은 대중차 브랜드였다. 당시만해도 사브(SAAB)가 볼보 보다 고급 브랜드에 속했다. 2000년대 들어 유럽을 대표하는 대중 브랜드인 독일 폴크스바겐이 프리미엄을 지향하는 것과 비슷하다.

<포드를 둔갑시켜 볼보로 팔던 가슴아픈 시절>

1999년 볼보는 당시로는 어마어마한 금액인 65억 달러(약 7조원)에 포드에 팔렸다. 정체성 혼란의 시대다. 포드는 볼보를 재규어∙랜드로버와 함께 프리미엄을 의미하는 PAG 그룹에 편입시켰다. 기존 포드 링컨과 차별화하기 위해서다. PAG에서 볼보는 한 수 앞선 프리미엄인 재규어 빛에 가렸다. 더구나 볼보 신차 개발은 포드·마쓰다  플랫폼을 이용해 디자인만 달리 했다. 포드 몬데오 플랫폼으로 만든 게 S60·S80이다. 포드를 둔갑시켜 한 단계 윗급인 볼보로 판 셈이다. 이 결과 볼보는 "내장이 고급스런 안전한 차"로 조금 비싼 대중차 대접을 받았다. 기술이나 동력 성능에서 독일 프리미엄 브랜드를 따라 잡기에는 명확한 한계가 존재했다. 대신 디자인만큼은 볼보의 정체성을 유지했다. 특히 전륜구동에만 의존해 후륜구동 대형 세단 라인 업을 갖추지 못한 것은 프리미엄으로 도약하기 어려운 취약점으로 작용했다. 후륜구동은 프리미엄의 기본처럼 여겨졌다. 1960년대부터 태동한 프리미엄 브랜드는 여태껏 전후 50대50의 이상적 무게 배분, 뒷좌석의 안락한 승차감을 위해 후륜구동을 고수했다. 전륜구동인 아우디가 사륜구동 콰트로를 내놓은 게 이런 이유다.  지난해 현대차가 제네시스 브랜드로 프리미엄 도전을 발표하면서 대형 세단을 후륜으로 통일한 게 그런 방증이다.

행운의 여신은 볼보를 외면하지 않았다. 포드 그룹 산하에서 브랜드 정체성마저 흔들리던 2000년대 중반이다. 2008년 갑작스런 미국발 금융위기로 포드 그룹이 부도위기에 직면하면서 볼보는 10여년 만에 다시 시장에 매물로 나왔다. 포드 그룹의 재정 위기를 넘기기 위해 포드 창업일가를 대신해 구원투수로 등장한 앨런 멀럴리 포드 회장(CEO)은 ‘One Ford’ 전략을 내세웠다. 볼보를 비롯, 재규어ㆍ랜드로버ㆍ마쓰다 등 그동안 장바구니에 담아온 여러 브랜드를 모두 정리하겠다고 선포했다.

그 결과 볼보는 2009년 중국 질리자동차에 18억 달러(약 2조원)에 매각됐다. (당시 현대차가 볼보를 담았으면 하는 아쉬움도 있다. 현대차그룹은 2014년 11조원을 주고 서울 삼성동 한전 부지를 인수했다. 볼보 같은 자동차 회사를 서너 개 사고도 남을 금액이다.)

<프리미엄 브랜드 도전을 선포하다>


질리의 CEO 리슈푸는 '중국의 헨리 포드'로 통한다(사진출저 : 블룸버그)


볼보를 인수한 질리의 전략은 간단명료했다. ‘Keep It Simple, Stupid(바보야, 간단히 설명해)’ 그 자체였다. “값 싼 중국차, 안전하지 않은 중국차”라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볼보를 통해 해결하기로 한 것이다. 안전의 대명사인 볼보 이미지는 그대로 살리고 대중차와 프리미엄 사이에서 오락가락했던 볼보를 확실한 프리미엄으로 위치 시키겠다는 전략이다.

문제는 질리가 ‘볼보를 프리미엄 브랜드로 포지셔닝 하겠다’고 발표한다고 해서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프리미엄 브랜드의 기존 조건인 신기술 개발, 대중차와 다른 상품성과 디자인 아이덴티티, 그리고 차별화한 판매∙마케팅 전략이 뒤를 받쳐줘야 한다. 대중차와 프리미엄을 한 곳에 섞어 놓고 팔지 않는 게 그런 이유다. 이런 게 모두 갖춰져야 진정한 프리미엄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이 기준에 비추어 제네시스가 어떤 위치인지 판단해 보시길!)

질리 산하에서 볼보는 확실히 부활했다. 수 조원 투자를 통해 신차 출시도 속속 이어진다. 질리 인수 이후 7년이 지난 지금 볼보는 프리미엄으로 확고히 올라섰을까. 여러 의문이 남는다.

볼보 S90은 렉서스 ES, 캐딜락 CTS, 재규어 XF와 경쟁한다


적어도 ‘스칸디나비안 럭셔리, 스웨디시 프리미엄’이라는 슬로건은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데는 이견이 없다. 한술 더 떠 기존 프리미엄 대표인 ‘벤츠ㆍBMWㆍ아우디와 맞먹는 브랜드가 됐다’고 주장한다면 상당수가 동의하기 어려울 것이다. 대신 ‘준 프리미엄’ 급인 재규어ㆍ캐딜락ㆍ렉서스와 엇비슷해졌다고 한다면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이것만으로도 대단한 성공이다.

요즘 수입차 시장에서 핫한 SUV로 떠오른 Volvo XC90


판단의 근거는 이렇다. 요즘 수입차 시장에서 핫한 SUV로 떠오른 XC90, 따끈한 신차인 중형 세단 S90을 타보면서 느낀 점이다. 적어도 인테리어와 유니크한 디자인은 프리미엄 브랜드로서 자격을 제대로 갖췄다. 주행성능이나 질감, 가격 포지션도 덩달아 프리미엄으로 끌어 올렸다. 대신 중고차 가치를 포함하는 가성비와 브랜드 파워에서 밀린다. 아직까지는 기존 프리미엄 보다 10∼15% 저렴해야 경쟁력이 있다고 보는 게 시장의 판단이다. 1980년대 후반 프리미엄에 도전한 렉서스가 그랬다. 현재 볼보는 ‘준 프리미엄’ 에 턱걸이했다. 볼보가 부족했던 프리미엄 자질을 보강하는 동안 경쟁 브랜드는 볼보에 뒤졌던 안전에 대한 이미지를 보강했기 때문에 격차를 유지하는 셈이다. 지금처럼 경쟁력 있는 신차를 계속 내놓는다면 볼보의 프리미엄 등극은 시간 문제다.

프리미엄 브랜드가 되려면 조직능력도 과거 볼보와 달라야 한다. 신차 개발부터 이어지는 판매,마케팅이 대중차 시절과는 천지개벽을 이뤄 내야 한다는 얘기다.

볼보코리아는 S90의 마케팅 슬로건으로 '스웨디시 젠틀맨' 을 내세운다. 참 어렵다. 잉글리쉬 젠틀맨은 알겠는데 스웨디시 젠틀맨은 잘 다가오지 않는다. 북극의 나라 스웨덴의 차가운 신사인지, S90을 타면 신사가 된다는 건지 도대체 알 수가 없다. 어떤 신사도 한국에서 운전을 하면 거칠어 지는 조폭이 되는 운전 문화에서 말이다. 조직능력을 판단할 근거다.

자동차는 경영이 아니라 상품성으로 말하는 대표적인 업종이다. 스티브 잡스 같은 천재 경영자는 헨리 포드 이후 단 한 명도 없다. 오로지 명작 모델만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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