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터 소믈리에 윤 하, ‘로마네 꽁티’보다 더 맛있는 와인?
마스터 소믈리에 윤 하, ‘로마네 꽁티’보다 더 맛있는 와인?
  • 카가이 취재팀
  • 승인 2016.02.15 16:17
  • 조회수 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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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은 정복하거나 마스터 할 수 없다는 점이 매력입니다.



전 세계 202명 뿐인 MS로 유일한 한국계 ‘윤 하’
소믈리에(Sommelier)는 와인을 서비스하는 직업이다. 좀 더 심도 있게 말하면 음식의 맛을 더하기 위해 요리와 와인을 매칭하는 전문직이다. 이들은 때로는 마술사 같은 쇼를 보여준다.병을 가린 채 품종뿐 아니라 해당 지역과 생산 연도까지 척척 맞춰낸다. 세계에서 202명뿐인 마스터 소믈리에(MS)에는 아직 한국인이 한 명도 없다. 유일한 한국계로 ‘윤 하(47·한국명 하윤석)’ 가 있다.

지난 1월25일 서울 더프라자 호텔에서 미국 노스웨스트 와인협회 주최로 열린 ‘오리건·워싱턴주(州) 와인 데이’에 강사로 참가한 ‘윤 하’를 만났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퓨전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 ‘베누(benu)’. 2010년 8월 문을 연지 4년 만인 2014년 세계적인 식당 평가 ‘미슐랭 가이드’로부터 최고 등급인 3스타를 얻어 화제가 됐다. 샌프란시스코 최초의 3스타다. 별 셋을 받으려면 음식은 물론 와인 서비스까지 완벽해야 한다.



1월25일 서울 더플라자호텔에 열린 ‘노스웨스트 와인 & U.S. 푸드쇼’에서 워싱턴, 오리곤 와인에 대해 강의하고 있다.
이 식당은 오너 셰프인 미국인 코리 리(41·한국명 이동민)가 운영한다. 음식의 맛을 더해 주는 와인 매칭 역시 한국계 미국인 윤 하가 담당한다. 하씨는 “베누에서 둘이 와인을 곁들여 식사를 하려면 1000 달러(약 120만원) 예산을 잡아야 한다”고 살짝 귀띔한다.

베누는 통상 13가지 이상 요리가 나오는 저녁 코스 요리만 있다. 하씨는 2012년 영국에 본부를 둔 ‘MS’ 자격증을 땄다. 그 다음해 미국 음식 전문지 푸드&와인이 올해의 소믈리에로 선정했다. 당시 지역 일간지인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은 “그보다 와인과 음식을 잘 매칭하는 사람을 떠올릴 수 없다”고 극찬했다.

베누 같은 유명 고급 레스토랑에 갔을 때 소믈리에를 어떻게 활용할 지 물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요리 종류와 와인 예산을 결정하는 겁니다. ‘와인에 쓸 돈이 300달러인데 요리와 맞는 걸 추천해 달라’고 말하면 됩니다. 소믈리에는 답을 찾는 서비스 맨이죠. 와인에 대해 자세히 물어보고 몇 번 확인해도 실례가 아닙니다. 고객의 소중한 시간을 빛나게 해주는 조연이라고 할 수 있죠.” “전 고객의 예산보다 항상 적게 가려고 해요. 손님이 와인에 500달러를 쓰겠다고 저는 400달러 와인을 권합니다. 손님 입장에서 ‘내가 분위기에 취해 바가지를 썼구나’하는 느낌을 받지 않아야죠. 소믈리에가 고객의 돈을 더 쓰게 만드는 직업이 아니라는 겁니다.”



윤 하 마스터 소믈리에가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 대사와 와인 테스팅 이야기를 하고 있다.
8살 때 이민가 최고 소믈리에 반열 올라
불광동에 살다 아버지를 따라 8살 때 샌프란시스코로 이민을 갔다.
“미국에 처음 갔을 때 김치는 두려운 존재였어요. 친구들이 놀러와 음료수를 마시기 위해 냉장고 문을 열면 ‘이게 뭐야, 무슨 냄새야’라고 묻곤 했죠. 아침마다 김치를 냉장고 안쪽에 넣 고 우유랑 쥬스로 가려놨어도 친구들이 금방 찾아내곤 했어요 (웃음).”

와인과 접할 수 없던 학창 시절을 보낸 그가 소믈리에로 변신한 데는 대학(캘리포니아 산타바바라대학 영문학과) 시절 레스토랑 아르바이트가 동인이다. 그는 어릴 때부터 식당 일을 유독 좋아했다고 한다. 레스토랑에서 새벽 2시까지 일하던 대학생은 음식의 맛을 더해주는 와인의 세계에 빠진다. 이어 소믈리에 직업에 눈을 뜬다.

“평범한 샐러리맨이 될 뻔 했는데 아르바이트가 직업이 되고 와인에 빠져 나파밸리로 이사까지 했어요. 지구상에 인디안· 멕시칸·유럽 음식까지 이렇게 다양한 음식의 맛을 돋구어줄 수 있는 음료가 와인 말고 어디 있겠어요. 또 얼마나 많은 종류의 와인이 있나 보세요. 거의 기적이죠.”

많은 와인 애호가가 ‘한식과 와인은 맞추기가 쉽지 않다’고 말한다. 하씨는 “한식은 반찬이 여럿 나오고 양념장 같은 다양한 식재료를 섞는 게 많아 와인 매칭이 어렵다”고 설명한다. “베누에 보쌈과 비슷한 요리가 있어요. 문제는 김치나 굴을 와인을 맞추는 게 매우 어렵지요. 힘들게 고른 와인을 고객에게 서빙하는데 순간 김치를 두려워했던 기억이 떠오른 겁니다.

손님에게 ‘어릴 때 김치 때문에 왕따 당할까봐 걱정을 했는데 지금 미슐랭 레스토랑에서 김치와 맞는 와인을 서빙하고 있다’는 이야길 들려줬죠. 고객이 저를 다시 보더군요. 무언가 믿을 수 있다는 듯이…”



그가 좋아하는 와인을 물었다. “너무 많은 와인이 생각납니다. 집에서 음식 없이 가볍게 한 잔 할 때는 프랑스 샤블리를 즐기죠. 요리와 함께 마실 때는 선택이 매번 달라지죠. 가장 맛있는 와인은 ‘좋은 사람이랑 마시는 와인’입니다. 빈티지나 고급 와인 같은 것보다 마시는 사람이 더 중요하죠.” 달변가인 그 다운 이야기다. 어려운 질문마다 그는 이런 식으로 빠져(?) 나간다.

하씨가 높이 평가받는 이유는 쉽고 일상적인 말로 와인을 설명한다는 점이다. 어려운 와인 용어를 잔뜩 늘어놓는 여타 소믈리에와 다르다. 인터뷰하는 1시간 반 동안 한국어와 영어를 섞어가며 기자를 시간 가는 줄 모르게 했다. 정말 말을 잘했다.

“소믈리에에게 제일 중요한건 와인 지식이 아닌 ‘피플 스킬’, 즉 손님의 마음을 헤아리는 능력입니다. 코나 혀로 테스팅 하는 게 아니라 고객을 이해하는 뇌로 승부하는 직업이라는 거죠. 고객을 파악할 단서는 테이블에 널려 있지요. 서비스하는 사람이라면 모든 단서에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하씨가 “소믈리에는 입이 아니라 뇌로 승부하는 직업”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그가 당황했던 경험도 있을까. “지난해 한국을 찾았을 때 손님 분이 ‘MS라면 어떤 와인이라도 알 수 있지 않냐’며 라벨을 가린 와인을 따라 주면서 맞춰 보라더군요. 블라인드 테스팅을 하려면 준비가 필요한데 너무 당황했어요. 고객에게 와인 설명을 하다 열지도 않은 와인을 따랐던 기억도 나네요.”

그는 소믈리에의 블라인딩 테스팅에 대해선 “여러 종류가 아니라 한잔만 테스팅 할 때가 제일 어렵다”고 한다. 서로 비교를 할 수 없어서다.

“포도 품종, 해당 지역, 생산연도지 정도를 80% 맞춘다면 대단한 실력을 지녔다고 볼 수 있죠. 제 경우에도 ‘리슬링일까, 슈냉 블랑일까’ 이런 거는 한 끝 차이로 틀리기도 합니다.” MS 시험에 대해선 “엄격한 필기와 테스팅을 통과해야 해 보통 4,5수를 하는 등 평균 10년 준비를 한다”며 “합격하면 평균 연봉이 15만달러(약 1억8000만원) 정도로 껑충 뛴다”고 소개했다.
이어 “MS들은 라스베이거스나 뉴욕 같은 대도시의 유명 레스토랑에서 주로 활동하며 점점 역할이 중요해지고 전문직으로 대우를 받는다”고 덧붙였다.



추가로 유명 소믈리에 자격증을 비교해 달라고 했다. “MS는 레스토랑 비즈니스를 위한 소믈리에로 보면 됩니다. ‘마스터 오브 와인(MW)’ 이나 WSET는 상대적으로 이론 위주 이죠. MW는 와인 평론가나 수입사, 컨설턴트 분야가 많아요. 저는 레스토랑 일을 좋아해 자연스럽게 MS를 따게 됐지요. 10년 준비했어요.”

소믈리에가 되기 위해 와인 공부를 할 때 주의할 점에 대해선 이렇게 말한다. “언어가 굉장히 확실(specific) 해야 합니다. ‘신의 물방울’ 만화처럼 창의적으로 말하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과학적이고 정형화된 언어가 있고 대부분 수치화 돼 있지요. 레드 와인을 평가할 때 우선 잔을 살짝 눕혀 색깔을 봅니다. 진한 보라 빛이고 농도가 높고 테두리 색을 파악하죠. 그리고 잔을 세워 다시 색을 본 뒤 눈물이 많이 생겼다면 알코올 농도가 높고 잘 익은 과일을 판별할 수 있습니다. 어느 정도는 공식화 돼있어 많이 마시면서 외워야 합니다. ‘나파 밸리 까베르네 쇼비뇽이랑 정어리 요리는 안 맞는다’ 이런 정도는 알아야죠.”



소믈리에 자질에 대해 물었다. “제 철학이지만 우선 사람들과 다 잘 어울릴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해요. 사람과 공감을 나눌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죠. 두 번째는 레스토랑에 온 손님을 편하게 하고 그들을 이해해야 합니다. ‘내가 와인을 제일 잘 안다’는 식으로 잘난 체를 하면 안 됩니다. 셰프 없이 소믈리에가 있을 수 없다는 것이죠. 아울러 술을 좋아하더라도 과음하면 안 됩니다. 담배는 개인의 호불호라 큰 관계는 없습니다.”



마스터 소믈리에 윤 하(Yoon Ha)씨가 와인 향을 맡고 있다. 그는 “와인은 음식의 맛을 끌어올리는 최고의 조미료다”고 말했다.
그를 벤치마킹하려는 소믈리에 지원자에게 조언을 부탁했다. “와인은 정복하거나 마스터 할 수 없다는 점이 매력입니다. 소믈리에는 늘 공부하는 직업이죠. 제 경우 거의 매일 실수를 합니다. 하지만 ‘내일 더 잘하라’는 신호라 하루가 즐겁습니다. 부모가 유망 직업이라고 시켜서 하는 소믈리에, 돈 벌려고 하는 소믈리에는 오래 못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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