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비선수가 만든 와인, 랑그독의 거인 제라드 베르트랑
럭비선수가 만든 와인, 랑그독의 거인 제라드 베르트랑
  • 카가이 취재팀
  • 승인 2016.02.19 16:19
  • 조회수 15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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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개의 와이너리를 소유한 베르트랑 대표가 지난 1월 한국을 처음 찾았다.



끌로 도라 와이너리.
와인 애호가에게 프랑스 특급 와인 산지를 물으면 열 명 가운데 아홉은 보르도나 부르고뉴를 꼽을 것이다. 프랑스 남부 지방인 랑그독이 뛰어난 품질과 지중해성 기후를 앞세워 특급 와인 산지로 발돋움한다.

남프랑스에 위치한 랑그독은 지중해 연안 지역이다. 온화한 겨울을 동반한 반건조성 지중해 기후가 특징이다. 한 때 고대 문명이 번성해 그리스·로마 시대의 유적이 많은 관광지로 유명하다. 랑그독은 2000년대 들어 또 다른 명성을 얻었다. 보르도·부르고뉴·상파뉴와 함께 프랑스를 대표하는 프리미엄 와인 산지에 새롭게 추가된 것이다.

랑그독은 1990년대까지 5대 샤또로 대표되는 보르도와 저가 와인 생산지인 스페인 사이에 끼인 샌드위치 모양새였다. 여기에 품질도 들쑥날쑥해 중저가 와인으로 취급받았다. 이런 랑그독을 보르도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명품 산지로 올려놓은 인물이 바로 ‘랑그독의 황제’로 불리는 제라드 베르트랑(Gerard Bertrand·51)이다.



제라드 베르트랑.
이 지역에만 11개의 와이너리를 소유한 베르트랑 대표가 지난 1월 한국을 처음 찾았다. 그의 와인 인생을 건 랑그독 최초의 플래그십 와인인 끌로 도라(Clos d’Ora)와 화이트 와인 시갈루스 홍보를 위해서다. 그는 “랑그독 와인은 천혜의 떼루아와 첨단 농법인 바이오 다이나믹을 접목해 프리미엄 시장에서 급부상하고 있다. 프랑스 와인의 미래는 랑그독에 있다”며 말문을 열었다.

베르트랑은 젊은 시절 프랑스 프로 럭비팀의 촉망받는 선수였다. 190cm 장신의 거구인 그에게 럭비는 딱 맞는 운동이었다. 선수 생활을 하던 그에게 인생의 전기가 찾아온다. 22살이던 1987년 부친 조지 베르트랑이 갑작스런 교통사고로 세상을 떴다. 베르트랑은 부친이 운영한 소규모 와이너리인 도멘 빌마주(Domaine Villemajou)에서 막 와인 일을 배우기 시작한 터였다.

그는 아버지에 대해 이렇게 회고했다. “부친이 돌아가시고 갑작스럽게 가족 사업을 물려받아 와인업계에 발을 들여 놓았다. 10살 때 아버지가 도멘 빌마주에 데려가 포도 수확과 와인 메이킹 기술을 가르쳤던 기억이 있다. 이 때 아버지로부터 ‘와인은 기술이 아닌 열정으로 만든다’는 것을 어렴풋하게 느낄 수 있었다. 이 작은 경험이 오늘날 성공으로 이어진 디딤돌이 됐다.”



끌로 도라 와인 저장고.
그가 와이너리를 맡으면서 가족경영 와이너리는 새 국면을 맞이한다. 럭비에서 익힌 룰과 팀워크를 중시하는 스포츠맨십을 경영에 접목한다. 아울러 자신의 고향에 대한 자부심을 바탕으로 와인 제조에 변혁을 가져온다.

베르트랑의 비전이 남달랐던 것은 단순히 양조기술이나 품질로 승부를 건 게 아니라는 점이다. 그는 자신의 뿌리인 랑그독의 떼루아(토양)를 와인에 그대로 담아낼 수 있는 ‘바이오 다이나믹 농법(Bio Dynamic Farming)’으로 도전했다.

“어떤 화학적인 물질도 사용하지 않는 유기농법을 넘어서서, 월력(月曆)에 따른 농사짓기와 와인 메이킹을 하는 바이오 다이나믹 농법으로 자연의 기운을 담으려 했다. 몇 년을 기다려야 할지 몰라 주변에서는 ‘헛수고’라고 만류를 했다. 차분히 기다리며 땀을 흘렸다. 랑그독의 떼루아는 내 믿음을 저버리지 않았다.”



그는 1992년 자신의 이름을 따 제라드 베르트랑 와이너리를 설립하고 프랑스 오드 지역의 ‘도멘 드 시갈루스(Domaine de Cigalus)’와 에로 지역에 여러 와이너리를 매입해 확장한다. 아울러 1993∼1994년 럭비팀 주장까지 맡아 운동과 와인 사업을 병행했다.

2002년 자연경관이 수려한 지중해 섬에 위치한 샤또 로스피탈리(Chateau l’Hospitalet)를 사들이면서 운동을 접고 와인에 매진한다. 10여 년 동안 모두 11개의 와이너리를 인수해 오늘의 랑그독에 베르트랑 와인 제국을 건설한다. 전형적인 스포츠맨십과 자신의 고향에 대한 자부심을 바탕으로 짧은 시간 동안 이뤄낸 성과다.

베르트랑 대표는 “럭비에서 배운 팀워크와 승리에 대한 목표와 전략이 와이너리 경영에 큰 도움이 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가 만든 여러 와인이 평론가로부터 90점대의 눈에 띄는 점수를 받는다. 와인 애호가들 사이에서 “바이오 다이나믹 농법을 접목한 랑그독에서 프리미엄 와인이 나올 수 있다”는 목소리도 서서히 나오기 시작했다.



끌로 도라 와이너리의 바이오 다이나믹 농법. 월력에 따른 농사짓기와 말이 쟁기를 끌던 고대 농법을 접목했다.
베르트랑 대표의 다음 도전은 랑그독 지역 최초의 플래그십 와인이자, 바이오 다이나믹 와인인 ‘끌로 도라’로 내닫는다. 2014년 그의 와인 인생 승부를 건 그랑크뤼급 와인을 생산할 끌로 도라 와이너리를 세운다.

“보르도가 오랫동안 프랑스 와인의 전통을 만들어 왔지만 미래는 남프랑스에 있다고 확신한다. 보르도는 유명세 때문에 지나치게 가격이 비싸다. 남프랑스를 대표하는 랑그독 와인은 가장 진보적인 트렌드인 유기농과 바이오 다이나믹 농법을 사용한다. 이런 랑그독이 어떻게 빛을 보지 않을 수 있겠는가.”



제라드 베르트랑이 남프랑스 와인 철학을 담아 출간한‘와인, 달과 별(Wine, Moon and Star)’
현재 제라드 베르트랑 와인은 125개국에 수출한다. 20년 전 20여개국에 비하면 괄목할만한 성장이다. 그와 250여명의 직원이 하나의 럭비 팀처럼 완벽한 호흡을 맞추고 있다. 지난해 2월에는 그의 남프랑스 와인 철학을 담은 ‘와인, 달과 별(Wine, Moon and Star)’을 출간했다.

* 끌로 도라 2012
랑그독 최초의 그랑크뤼급 와인인 끌로 도라 2012가 세상에 나오기까지 7년이 걸렸다. 남프랑스의 전통적인 포도 품종인 그르나슈·쉬라·무르베드르에 까리냥 품종을 섞었다. 2시간 정도 디켄딩 이후 시음한 끌로 도라는 보르도 특급 와인에서 나오는 독특한 후추향이 피니쉬에 느껴진다. 바이오 다이나믹 농법에서 나오는 신선하고 섬세한 미네랄 풍미가 인상적이다. 베르트랑 대표는 “까리냥은 남프랑스 최초의 포도품종으로 남프랑스의 정신을 상징한다”고 강조한다. 프렌치 오크통에서 12개월 숙성을 통해 부드럽게 다듬었다. 30∼40년 장기 숙성이 가능한 잠재력을 지녔다. 끌로 도라(Clos d’Ora)의 레이블은 독특하다. ‘Ora’는 라틴어로 기도를 뜻한다. 베르트랑은 “오라는 시작과 끝을 의미하는 알파와 오메가 사이의 연결고리를 나타낸다. 7세기에 랑그독에 출현한 서(西)고트족의 십자가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설명했다. 소비자가 50만원대.








* 도멘 드 시갈루스 (Domaine de Cigalus) 블랑 2012
필자가 이날 맛 본 와인 가운데 가장 놀란 게 시갈루스다. 부르고뉴 특급 화이트 와인에 뒤지지 않는 풍미와 밸런스가 감성적으로 다가왔다. 이 역시 바이오 다이나믹 농법을 사용했다. 샤도네이 70%, 비오니에 22%에 특이하게 소비뇽블랑 8%를 블렌딩했다. 버터링한 견과류 향이 매력으로 다가온다. 소비자가격 16만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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