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클래식 카, 박물관을 뛰쳐나오다
[칼럼] 클래식 카, 박물관을 뛰쳐나오다
  • 이재욱 에디터
  • 승인 2017.08.18 10:58
  • 조회수 20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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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에게 클래식 카는한국인에게 클래식 카는 조선시대 문화재보다도 낯선 존재다. 대중적 인지도는 미미하고 불합리한 제도는 국내에 클래식 카 문화가 정착할 토양을 만들어 주지 못하는 실정이다. 하지만 클래식 카를 일부 마니아의 고상한 취향으로 치부하기엔 아깝다. 자동차 문화와 산업 전반에 획기적인 성장 동력을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이제는 박물관이 아닌 도로에서 클래식 카를 만날 때다.


클래식 카(classic car)는 역사적 가치를 지닌 올드 카의 통칭이다. "이것이 클래식 카" 라는 명문화된 규정은 없지만, 그 가치를 부정하는 사람은 없다. 통상 차령(車齡) 15년 이상 30년 미만인 차를 영 타이머(young timer), 차령 30년 이상인 차를 올드 타이머(old timer)라 부르며 영 타이머와 올드 타이머를 합치면 올드 카(old car)가 된다. 올드 카 중에서 희소성이나 상징성을 지닌 차는 클래식 카가 된다.

같은 클래식 카라도 관리 상태나 주행 가능 여부에 따라 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는다. 자동차 문화 선진국인 미국이나 유럽, 일본 등지에서는 클래식 카를 아예 독립된 세그먼트로 분류해 정비·관리·매매 등 다양한 부대 산업이 발달해 있다. 당대의 시대정신과 문화를 담은 클래식 카는 콜렉터들에게 고가의 미술품 못지않은 인기 소장품이자, 일반인들에겐 자동차 문화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문화의 매개다.



우리나라의 자동차 산업 역사는 50년이 넘는다. 드럼통을 펴서 만든 시발자동차 이래로 산업화와 함께 눈부시게 성장해 온 자동차 산업은 이제 생산량 세계 6위 규모로 한국의 핵심 산업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그러나 짧지 않은 역사에도 아직까지 '문화' 라고 할 만한 것은 자리잡지 못했다.

국산차의 상품성이 좋아지고 운전자들의 구매력이 증가하던 1990년대, 모터스포츠와 자동차 콜렉션 문화도 태동기를 맞이했지만 이내 찾아온 IMF 경제위기로 자동차에 돈을 쓰는 것이 곧 사치로 여겨진 까닭이다. 자동차 문화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과 관료주의적인 정부정책이 맞물리면서 자동차 문화는 꽃을 채 피우기도 전에 시들어버렸다.

신차 위주의 척박한 자동차 문화 토양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도 클래식 카 문화가 다시금 싹을 틔우고 있다. 다양한 계층에서 올드 카와 클래식 카 소장이 유행처럼 번지는 추세다. 특히 요 몇 년 새 수입차가 대량 보급되면서 수입차만으로 자신의 개성을 드러낼 수 없다고 느낀 젊은 세대들이 클래식 카 문화를 선도하고 있다. 60년대 메르세데스-벤츠나 80년대 BMW의 시세가 2~3년 만에 몇 배로 치솟은 것을 일시적인 유행으로 치부할 수 없는 이유다.



클래식 카 오너들은 자동차에 단순한 이동수단 이상의 의미를 부여한다. 이들에게 자동차는 자신의 분신이자 소중한 동료다. 컬트적인 디자인과 요즘 차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기발한 아이디어, 곳곳에 숨은 위트까지 더해져 새 차에서는 느낄 수 없는 만족감을 준다. 직접 차에 대해 공부하고 틈틈이 손수 차를 고쳐가며 얻는 지식과 노하우는 덤이다

이미 새로운 클래식 카 오너들 사이에서는 알음알음 전문 정비사와 전문 딜러가 생겨나고 나름의 시장이 구축됐다. 이것이 서브컬처를 넘어 주류 문화의 일부로 자리 잡는다면 창출될 미래 가치는 신차 시장에 못지않다.

이번에도 관건은 법과 제도다. 우리나라 자동차 관리법은 오래된 클래식 카에도 신차와 같은 수준의 환경 및 안전 성능을 요구한다. 특히 전자적으로 차량의 각종 기능과 배출가스 상태를 진단할 수 있는 OBD-2 단자 의무 장착 조항은 현실적으로 올드 카와 클래식 카가 국내에 반입되는 걸 전면 통제하고 있다. 그나마 이삿짐으로 오래된 차를 들여올 수 있지만, 이 마저도 최근에는 세관의 부당한 제재 조치로 원활치 않다는 것이 현장의 목소리다.



미국, 유럽 등도 배출가스와 안전 규제가 엄격하기는 마찬가지다. 하지만 오래된 차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검사를 면제해 주고 출시 당시의 기준만 통과하면 주행이 가능하도록 승인한다. 현실적으로 오래된 차들은 주행 빈도가 적어 환경이나 교통안전에 미치는 영향이 미미할뿐더러, 사정당국도 클래식 카의 문화적 가치를 인정하기 때문이다. 100년 넘게 자동차 문화를 성숙시켜 온 문화 선진국들의 저력이다.

클래식 카가 자동차 문화 보급에서 맡는 역할은 작지 않다. 우선 오래된 차를 새 차처럼 유지·보수하기 위해서는 믿을 수 있는 정비 인프라가 갖춰져야 한다. 자연스레 특정 브랜드나 차종의 정비 노하우가 풍부한 스페셜리스트(specialist)가 등장하고, 이에 따라 올드 카에 대한 진입 장벽이 낮아진다.

정비가 수월해지면 상태 좋은 클래식 카도 늘어나고, 매매가 활발해지면서 클래식 카만을 대상으로 하는 딜러십이나 경매도 활발해져 부가가치를 창출한다. 자동차를 정비하면서 자신의 입맛대로 커스터마이징 하는 튜닝 문화도 활성화된다.

오래된 차의 가치가 높아지면 완성차 업체에게도 이득이다. 애써 홍보하지 않아도 소비자들에게 브랜드 헤리티지를 인정받을 수 있다. 헤리티지는 브랜드의 부가가치와 소비자 충성도를 높여 준다. 전통 있는 여러 제조사들이 신차만큼이나 자사의 헤리티지를 홍보하는 데에 공을 들이는 것도 그런 까닭이다. 즉, 클래식 카 문화의 정착은 자동차 산업 전반의 성장 선순환을 통해 시장의 새로운 전환점을 가져올 수 있는 기회인 셈이다.

Festival of Speed 2017- Stephanie O'Callaghan


자동차가 산업을 넘어 문화의 일부분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클래식 카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절실하다. 문화적 가치를 존중하고 법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작은 변화의 불을 당기면 제반 문화와 산업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건 시간 문제다.

세계 6위의 자동차 생산 대국에서 언제까지 박물관에 박제된 클래식 카만을 감상해야 하는가? 이제는 클래식 카를 박물관 밖으로 끄집어내 과거와 미래의 연결고리로 삼아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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