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장레터]GM 입장서 본 한국 존속 이유 세가지

“한 여름 80평이 넘는 집에 에어컨을 그냥 켜놓고 출근하더군요. 퇴근했을 때 시원해야 한다고…한 달 전기료만 500만원이 넘게 나왔습니다. 미국 GM본사에서 파견된 ISP(한국GM에 파견된 간부나 임원)는 한국GM을 돈 빼가는 곳간으로 알고 있더군요.” 철수설이 본격화한 2018년 설을 쇠고 만난 한국GM 전직 임원이 한 숨을 쉬면서 내 뱉은 말이다. 정말 기가 찬 얘기다.

한국GM의 경영 악화와 판매 부진으로 지난달 군산공장 폐쇄를 비롯한 한국 시장 완전 철수설이 뜨거운 감자다.  표면적인 이유로는 ‘판매 부진에 따른 가동률 저하->적자 누적->경영악화’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원인이다. 이면에는 미국 GM 본사의 글로벌 전략이 바뀐 것에 기인한다. 그렇다면 GM은 한국에서 완전 철수할까. 2007년까지 77년간 세계 1위 자동차 업체로 군림해온 GM이다. ‘전기차와 모빌리티 서비스로 개편한다’는 글로벌 전략이 달라졌지만 한국은 여전히 사업을 영위할 매력이 상당하다.

가동률이 20%까지 떨어진 상태에서 군산공장 폐쇄는 어쩔 수 없다고 해도 한국GM의 완전 철수를 이야기하기엔 너무 성급하다. 일부에서는 어차피 언젠가는 GM이 떠날 것이니 정부의 자금지원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고 지적한다. 이 논리대로라면 ‘한국GM을 서둘러 철수시켜야 한다’는 식이다. 한국GM의 완전 철수는 한국 경제에 치명타일 뿐 아니라 10만명이 넘는 실업으로 이어진다. 이런 후유증은 GM이 아닌 한국이 모두 해결해야 한다. GM 본사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비롯한 미국 정치권에선 고려할만한 대상이 아니다. 수익과 효율성을 중시하는 GM 입장에서 봐도 군산공장 폐쇄 이외에 답을 찾기 어렵다. 하지만 한국에서 완전 철수를 하지 않을 이유도 상당하다.

GM은 2020년대 전기차를 위주로한 모빌리티 서비스 기업 변신을 위해 강력한 구조조정을 하고 있다. 한국GM 철수설의 근원이다.

 

<한국GM, 글로벌 경소형차 유일한 전초기지>

한국GM은 중국과 한국 시장을 제외한 아시아∙중동 17개국에 소형차의 생산· 판매의 전초기지 역할을 맡고 있다. 한국GM이 연간 10만대 수준인 한국 판매량만 보고 내수 판매가 부진해 완전 철수할지 말지를 결정하기엔 한국GM이 맡은 역할이 크다. 일례로 쉐보레 스파크 차종은 아시아∙중동에서 15개국을 포함한 전 세계 각지에서 판매 중이지만 유일하게 한국 창원공장에서 생산을 담당한다. 또 중형 세단 말리부, 소형 SUV 트랙스는 아시아 지역에서 중국 공장과 한국 부평공장에서 생산을 한다. 중국 공장에서 생산한 물량은 내수용으로만 판매하고 있기 때문에 아시아 수출이 가능한 공장은 한국이 유일하다. 이 밖에도 소형차 쉐보레 아베오를 비롯한 기타 소형 차량 생산과 신차 개발의 베이스 캠프를 담당하고 있다. 하지만 오펠 매각과 인도∙러시아의 수출기지화로 한국GM의 수출 수익성이 나빠진 것은 사실이다. 만약 GM이 한국 공장을 모두 매각하고 한국 시장에서 완전 철수한다면 스파크를 시작으로 가지고 있던 소형차 라인업을 모두 잃게 된다. 가뜩이나 소형차 시장에서 약세를 보이는 GM 입장에서 소형차 라인업을 그렇게 쉽게 정리할 필요가 없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소형차 물량을 다른 국가의 공장으로 넘겨 생산을 하면 되지 않느냐”는 지적이 나올 수 있다. 그러나 지난해 캐나다에 신설한 공장뿐만 아니라 다른 해외 공장의 가동률이 적정 수준에 이르렀다. 소형차 생산을 감당할 규모의 공장이 없는 것이다. 새로 소형차 공장을 짓는 것보다는 수익성을 중시하는 GM 본사 입장에서 한국 만한 소형차 생산 및 연구개발 기지를 찾기 어렵다. 현재 수순으로 보면 군산공장을 폐쇄하고 나머지 연구시설과 소형차 생산기지인 부평,•창원공장은 남겨둘 가능성이 커 보인다.

쉐보레 볼트 EV 기반으로 자율주행을 시험하고 있다. GM은 자율주행 1위를 노린다.

<GM의 유럽 재진출 가능성도 남아>

GM은 오펠을 PSA그룹에 매각하며 유럽 철수를 단행했다. 그러나 여전히 GM의 고급 브랜드인 캐딜락은 유럽에서 철수시키지 않고 판매를 계속한다. 스포츠카인 카마로와 콜벳 등 스포츠카 모델은 캐딜락 딜러를 통해 판매한다. 유럽에 남겨둔 차량은 캐딜락 같은 고급차이거나 가격대가 높고 소수 마니아층이 찾는 스포츠카다. 많이 판매되는 일반 모델을 철수하고 판매량이 적은 모델로 유럽시장을 축소한 것이다.

이러한 GM의 결정은 현재 최소한의 판매를 유지해 추후 유럽 시장 재공략 가능성을 염두에 둔 포석으로 해석할 수 있다. 철수한 후 재진출하는 것이 아니라, 시장 규모를 축소했다가 다시 늘린다는 구실이다. GM이 이런 시나리오를 갖고 있다면 한국GM은 충분히 효용 가치가 있다. 오펠 모카(국내명 쉐보레 트랙스) 모델의 생산시설을 가지고 있고, 실용적인 소형차 플랫폼을 위주로 생산을 거듭해온 한국GM은 유럽 수출 차량을 생산하기에 매우 적합한 구조다.

 

‘ GM의 이익은 미국의 이익’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GM은 2007년까지 77년간 자동차 왕국을 만들었다. 디트로이트 본사 전경

<’먹튀’ 같은 정치적 개입은 역풍 불러>

한국GM의 문제를 더 복잡하게 하는 것은 정치권의 가세다. 정계와 일부 언론은 한국GM이 군산공장 철폐를 시작으로 단계적으로 철수가 이어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철수를 부채질하는 분위기를 조성한다.

좌우를 가리지 않고 정치권에서는 지방선거 표를 의식한 듯 GM을 ‘먹튀’라고 비난한다. 일자리를 볼모로 한국 정부를 협박해 챙길 것만 챙겨간다고 절대 지원은 안 된다고 몰아간다. 이건 말 그대로 정치권의 순진한(?) 생각일 뿐이다. 경제 논리와 전혀 관련이 없다. 생산성과 효율성이 사라진 군산공장을 폐쇄하고 구조조정과 금융 지원을 요청하는 GM을 ‘나쁜 기업’이라고 매도하는 것 역시 눈 가리고 아웅하는 꼴이다. 글로벌 기업의 생리로 보면 사업이 부진하면 철수하는 것은 GM뿐 아니라 한국의 글로벌 기업도 마찬가지다.

오로지 수익성을 최우선 가치로 따지는 글로벌 기업 GM의 생리를 이해한다면 정답은 제대로 보인다.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 같은 글로벌 기업의 생리도 마찬가지다.

제품 사이클이 길고 신차 하나당 수천억원의 대규모 투자가 필요한 자동차산업의 속성을 따져봐야 한다. 한국GM이 살아나려면 경소형차 생산기지에서 벗어나 확실한 개발센터로 육성하겠다는 다짐을 받아야 한다. 기존 한국에 설치한 연구개발센터와 테스트 트랙을 활용해 한국GM이 경차 뿐 아니라 소형차(세단, 해치백,SUV,CUV 등 파생차종 포함)의 글로벌 개발기지로 확대해야 생존이 가능하다. 적어도 정부가 GM과 협상하면서 꼭 해결해야 할 부분이다.

군산공장만 폐쇄하고 부평, 창원공장만 가동한다면 연 50만이상 최대 80만대 생산 규모를 유지할 수 있다. GM 전체 판매의 10%를 점유할 수 있는 수치로 글로벌 경소형차 생산기지로 적합한 수량이다.

마지막으로 이전가격으로 GM이 수익을 모두 가져갔다는 주장은 뜨거운 감자다. 투명하지 않았던 GM과 한국GM의 이전가격 거래 관행에 한국적 시각으로 칼을 댄다면 예상 외의 불똥이 튈 수 있다. 이전가격은 글로벌기업의 생리다.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같은 글로벌 기업도 이전가격에서 자유롭지 않다. 실사는 다짐을 받는 선에서 그쳐야 한다. 불필요한 통상마찰과 한국 글로벌 기업의 미국 시장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카가이 김태진 편집장 tj.kim@cargu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