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섭칼럼] 20억원 수퍼카 부가티 로블랑, 백금으로 그린 걸작
[이경섭칼럼] 20억원 수퍼카 부가티 로블랑, 백금으로 그린 걸작
  • 이경섭 에디터
  • 승인 2017.11.23 07:14
  • 조회수 2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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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자기와 자동차 회사, 전혀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두 업체가 공동작업(Collaboration)을 했다면 어떤 결과물이 나올까.

세계 최고속,최고급 스포츠카 업체인 프랑스 엘사스(Elsass)지방의 부가티(Bugatti)와 독일 베를린 왕립 도자기회사(KPM: Koenigliche Porzellan Manufaktur Berlin)가 연합해 공동으로 제작한 부가티는 로블랑(L'Or Blanc: 하얀 도자기로 빚은 금)이 그 주인공이다. 물론 세상 어디에도 없는 단 하나의 모델이다.

부가티 로블랑, '도자기처럼 빚었다'는 표현, 과하지 않다.


최근 성능 좋은 스포츠카에 종종 옵션으로 붙는 개당 수 백만이 넘는 세라믹 브레이크 디스크는 자동차 마니아라면 어느 정도는 알고 있을 법하다. 하지만 자동차 곳곳에 도자기를 쓴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KPM Berlin은 일반인들에게 생소하다. 하지만 우리가 모른다고 해서 유명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KPM은 무려 254년 전인 1763년 독일 프로이센 제국의  프리드리히 대왕(Friedrich der Große)이 만든 도자기 회사(KPM Berlin)다.

독일 도자기로는 로젠탈(Rosenthal)과 빌레로이 운트 보크(Villeroy und Boch)가 있다. 우리에겐 명문가라고 알려졌지만 사실 이들 제품은 명장이 손수 제작한 명품(Meisterstueck : Masterpiece)이라기보다는 일반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제품일 뿐이다. 명장이 손수 제작하는 명품(Masterpiece)은 대량 생산하지 않는다. 브랜드 공장에서 대량으로 생산되는 제품은 명품이라기 보다는 조금 비싼 대량 생산 제품이다. 즉, 매스티지(Masstige: Mass + Prestige)다.


도자기에 백금을 입힌 부가티 로블랑의 외형은 일본 디자이너가 일일이 손으로 수작업해 그렸다. 제품이 아니라 예술 작품에 가깝다.



부가티와 KPM이 공동 작업으로 제작한 로블랑은 매뉴팩처 커스터마이징 제품이다. 두 회사의 이미지 시너지를 효과를 기대하고 제작한 것이다.

부가티는 이탈리아 사람 에토레 부가티(Ettore Bugatti)가 1909년에 프랑스 엘사스 지방의 몰샹(Molsheim)에 설립한 자동차 회사다. 1963년에 망했지만 1998년 폴크스바겐이 인수해 명맥을 이어갔다. 이제 부가티의 디자인, 설계 그리고 엔진 및 구동까지 모두 폴크스바겐에서 한다. 사실상 폴크스바겐 자동차다.


부가티와 KPM 둘은 누가 첫 눈에 봐도 색이 어울린다. 부가티의 색은 파란색, 프리드리히 왕가의 색도 파란색이다. 바탕은 도자기의 기본인 흰색이다.



영국의 귀족 자동차라고 알려진 벤틀리(Bentley) 역시 폴크스바겐이 인수해 독일 드레스덴 폴크스바겐(Volkswagen Automobilmanufaktur Dresden GmbH) 공장에서 생산한다. 드레스덴 폴크스바겐 공장은 똑같은 모델을 대량으로 찍어내는 대량 생산 공장이 아니라 매뉴팩처 공장이다. 여기서 폴크스바겐 최고급 모델인 페이튼(Phaeton)과 영국 벤틀리(Bentley Flying Spur)모델이 같은 라인에서 조립 생산한다. 벤틀리에 들어가는 엔진과 부품은 페이튼과 거의 100% 공유한다.


부가티의 원래 로고는 앞발을 들고 코를 치켜 든 일명 '춤추는 코끼리'다. KPM도자기로 실내 장식한 부가티 로블랑.



그런데 같은 공장에서 같은 부품으로 조립을 했어도 두 모델은 영 다른 모습이다. 가격 차이도 엄청나다. 자동차의 기술적인 내용에 조예가 깊고 실용을 중시하는 대부분의 독일 소비자들은 이 두 모델이 동일(Identisch)하다고 평가한다. 벤틀리는 폴크스바겐 페이튼 모델과 똑같은 부품으로 조립했어도 3배 이상 가격 차이가 난다. 폴크스바겐과 벤틀리라는 브랜드의 차이다. 폴크스바겐이 만들었어도 벤틀리란 브랜드로 판다. 이른 바 있는 자들의 욕망과 허영을 이용하는 ‘프레스티지 효과’다. 프레스티지는(Prestige) 사전적으로 명성, 명문, 일류 등 좋은 뜻으로도 사용되지만 종종 '허세 부리다' '위세 떨다' ' 명성을 뽐내다' 등 좋지 않은 뜻으로도 사용된다. 두 모델 모두 독일에서 생산되지만 독일 내수용으로는 판매가 부진해서 거의 수출한다.


로블랑의 도어손잡이, 연료주입구, 휠캡 등을 KPM에서 세라믹으로 제작했다. 앞으로  새로 나올 부가티 모델은 어떤 부분들이 세라믹으로 변화될지 기대된다.




독일 프리드리히 왕가의 고유색은 진한 파란색인 쾨니히 블라우(Königsblau) 혹은 코발트 블루(Cobalt Blue), 당연히 KPM Berlin회사의 고유의 색도 왕가의 파란색이다.  KPM 파란 꽂병 하나에 우리 돈으로 기천만원... 단순한 파란색 꽃병인데도 가격은 서민들에게 눈탱이 멍드는 파란색이다.



KPM의 찻잔 가격이 1200유로다. 찻잔에 말로만 듣던 진짜 금테를.... 그래서인지 우리 돈으로 150만원이다.  KPM 도자기 명장이 만들고 채색했다. 찻잔 어딘가에 찻잔을 만든 명장 이니셜이 새겨져 있다.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에서 매뉴팩처 생산이란 이른 바 고객 맞춤(Customization)생산이다. 소위 커스터마이징(cusomizing)과 비슷하지만 약간의 차이가 있다. 커스터마이징은 양산 제품을 고객의 취향이나 개성을 맞춰 변형 제작해 준다는 뜻이다. 즉 단 하나의 제품이다.  그러나 공장에서 생산되는 매뉴팩처 제품은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빼어난 성능과 엄청난 가격으로 널리 알려진 부가티도 커스터마이징 제품이다. 거의 모든 부가티 모델은 고객의 취향에 맞게 수제작으로 조립한다. 로블랑 외에도 샹블랑(Sang Blanc), 샹블뢰(Sang Bleu), 라파엘(Rafael), 페가소(Pegaso), 램브란트(Rembrandt)...등등 주문자의 요청에 따라 모델도 이름도 각각 다르다.

부가티가 제작한 샹블뢰 모델. 광택 알루미늄에 파란색 카본을 사용했다. 이름대로 샹블뢰는 '파란 피'란 뜻 .주문제작으로 기본 판매가는 20억부터 시작한다나. 이름대로 그냥 보기만 해도 순식간에 온 몸의 피가 새파랗게 물들 것만 같다.


그래서 세상 어디에도 없는 단 한 대의 부가티를 원하는 일부 소수 하이퍼부자들을 제외하면 커스커마이징 부가티는 브랜드 회사들이 시너지효과를 이용한 이벤트 혹은 광고용으로 사용하는 게 대부분이다. 이른바 서로 다른 분야의 이미지의 공동 작업이자 협업이다.

부가티 로블랑은 2011년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 소개돼 도자기회사 KPM과 부가티 모두에게 이미지를 알리는 최고의 시너지 효과로 이어졌다. 로블랑 이후 서로 다른 분야의 두 브랜드가 합쳐 시너지 효과를 내는 콜라보레이션 마케팅이 활성화하면서 ‘맞춤의 대량화(Mass Customization)‘는 4차 산업혁명을 설명하기 좋은 핵심 단어로 떠올랐다.

부가티는 2006년 첫 모델인 베이런 모델부터 스위스 시계 업체와도 콜라보레이션을 했다. 발음도 어려운 파르미지아니 플뢰르에(Parmigiani Fleurier)는 1996년에 설립된 비교적 신생 기계식 시계 제작 업체다. 이 업체가 제작한 부가티 370모델은 150개 한정판으로 판매했다. 팔목시계 하나 가격이 무려 20만 달러, 한화로는 약 2억2000만원이다.



파르미쟈니 부가티 370모델 시계, 그야말로 문의 를(?) 팍팍 낼 수 있는 하이퍼부자들의 욕망과 허영을 채워주는 하이퍼 브랜드다.


수십억 짜리 차를 파는 부가티는 사실 늘 적자다. 폴크스바겐이 적자를 감수하면서도 부가티를 놓지 않는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는 이미지, 둘째는 신기술 개발이다. 다른 자동차 회사들이 이미지와 기술 개발을 위해 포뮬라원(Formula 1)이나 랠리(Rally)같은 모터스포츠(Motorsports)에 퍼붓는 돈은 천문학적이다. 그에 비하면 폴크스바겐이 부가티에 투자하는 것은 비용과 효과 면에서 모터스포츠에 투자하는 것보다 훨씬 낫다는 게 자체 평가다. 이렇게 부가티에 적용된 엔진 기술과 타이어 기술 그리고 다양한 새로운 옵션 기능들은 몇 년 지나면 일반 자동차에 적용된다. 예를 들면 부가티에 적용됐던 콜라보레이션 마케팅은 다른 일반 자동차 모델에도 적용되기 시작했다. 운행상황에 따라 작동되던 엔진의 실린더 차단 기술도 일반 자동차에 장착되기 시작했다.

그러니 유니카트 제품을 원하는 고객들의 욕구를 채워주고 그에 해당하는 값을 받는다면, 그리고 덕분에 발전한 기술이 일반 자동차에 널리 이롭게 쓰일 수 있다면 눈 튀어나오게 비싼 자동차를 보고 무조건 욕부터 해 댈 일은 아니다. 원래 기술의 발전과 자본주의란 어느 정도 그런 속성이 있는 것이니까. 미구에 닥칠 4차 산업혁명 속의 다양한 콜라보레이션 마케팅도 그런 면에서 긍정적이다.

하지만 부가티 명성을 이용해 이미지를 높이고 덕분에 발전한 기술로 널리 이롭게 할 줄 알았던 폴크스바겐이 디젤 소프트웨어를 조작했다. 900원 있는 자가 100원 갖은 자의 것을 뺏는다는 속담처럼 폴크스바겐이 딱 그 꼴이다.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쓸데없는 욕심으로 화를 불렀다. 역사란 종종 사람들이 기대한 대로만 흘러가지 않는다.  동쪽이나 서쪽이나 그리고 옛날이나 지금이나... 디젤 게이트 여파로 폴크스바겐 드레스덴공장은 전기차 생산기지로 급전환했다. 디젤 게이트가 가져다 준 역효과이지만 시대에 맞는 흐름을 외부 강압에 의해 선택한 셈이다. 새옹지마!

이경섭 베를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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