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아이폰 탄생 전과 후, 자동차 산업을 바꾸다
[칼럼] 아이폰 탄생 전과 후, 자동차 산업을 바꾸다
  • 안혜린 인턴
  • 승인 2017.08.07 13:34
  • 조회수 109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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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의 기록에 따르면 인간의 역사는 창세기 이전과 이후다. 요즘 사람에게 역사는 iPhone 발매일인  2007년 6월 29일 이전과 이후가 될 것이다.

아이폰이 만들어낸 스마트폰 시대를 겪은 사람과 겪지 못한 사람, 두 가지 라는 점이다.  아이폰 탄생 이전과 이후로 세상을 나눌 수 있다는 얘기다. 

아이폰은 당연히 자동차에도 변혁을 가져왔다. 필자는 2003년~2007년 르노삼성에서 전기전자 부품의 상품성 평가를 담당했다. 그 덕에 당시 완성차 업체들의 전기전자 부품, 특히 인포테인먼트(information, entertainment의 합성어로 차 안에서 이용하는 인터넷 등 정보 및 오락 기능)에 대한 태도를 엿볼 수 있었다. 당시만 해도 무관심에 가까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로부터 10년, 르노삼성이 속한 르노-닛산 얼라이언스는 물론 전 세계 완성차 업체들의 최신 전기 및 전자부품에 대한 태도는 180도 바뀌었다. 테슬라 차종의 OTA(Over the Air) 업데이트, 볼보 XC90이나 S90, V90 등 최신 차종에 탑재되는 9인치 디스플레이 등이 완성차 업체들의 태도 변화를 잘 보여주는 좋은 예다. 그렇다면 이들 업체에 변화를 가져 온 것은 무엇일까?

2007년 여름 애플이 출시한 아이폰은 핸드폰 업체들은 물론 통신·영화·디스플레이·메모리·반도체 업체들을 비롯해 사회 전반에 거대한 변화를 가져왔다. 특히 소비자들은 한 손에 들어오는 스마트폰을 보고 자동차 실내에 달린 무심한 플라스틱 덩어리와 비교하기 시작했다. 통상 센터페시아(center fascia)라고 불리는, 운전석과 동승석 사이 공간 앞의 이 영역은 라디오·CD플레이어 등 음향기능, 실내냉난방을 통제하는 HVAC(Heated, Ventilated and Air Conditioning의 약어) 기능 등에 대한 제어가 이루어지는 곳이다. 완성차 업체들은 오랫동안 이 영역을 그들만의 자리로 남겨 두고 싶었다. 지난 30년간 IT가 비약적으로 발전했지만 센터페시아는 완성차 업체들의 보수적인 개발 철학 탓에 지난 수십년간 과거와 크게 다르지 않은 형태를 유지했다. 이 영역은 특히 완성차 업체들의 전문성이 가장 떨어지는 곳이다. IT업체들의 자동차 산업 진입을 꺼리는 마당에 더더욱 방치됐던 것이 아닌가 싶다.



기억에 남는 완성차 업체들의 보수성 사례 중 하나다. MP3 파일 형태의 음악을 구동할 때 파일명이 길면 센터페시아 디스플레이에서 좌우로 스크롤해야 제목을 제대로 읽을 수 있다. 한국과 일본의 완성차 업체들은 운전자가 파일명을 읽을 수 있도록 스크롤을 허용했다. 하지만 독일 완성차 업체들은 안전 운전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스크롤을 허용하지 않았다. IT산업이 발전한 한국·일본 등 아시아의 완성차 업체들은 그래도 MP3 파일명이 운전 중 움직이게 했다. 하지만 200km/h 이상의 고속주행이 가능한 아우토반의 나라 독일의 완성차 업체들은 한 눈을 팔다 발생할 수 있는 사고를 방지한다는 명목으로 그 기능을 허용하지 않는다. 자동차를 100년 넘게 개발한 완성차 업체들의 IT기술에 대한 자세는 마치 공무원이 시민을 대하는 것 같다.

이런 환경에서 전기차 전문 메이커 테슬라(Tesla)는 업계 처음으로 모델 S의 센터페시아를 17인치 대형 터치스크린으로 대체했다. 공교롭게도 테슬라 대표 일런 머스크는 IT업체 출신이다. 그에게 기존 완성차 업체들의 개발 철학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에게 자동차는 단순한 이동수단을 넘어 각종 IT기술이 전폭적으로 적용돼야 하는 기기(device)일 뿐이었다. 그에게 자동차는 한 마디로 이동기기(mobile  device)였다. 스마트폰이나 스마트 워치와 같은 범주에 속하는 기기! 이런 접근 방식은 기존의 업체들과 테슬라를 확실하게 차별화시켰다. 테슬라가 시장에 안착하는 데 결정적인 도움이 됐음은 물론이다.

테슬라의 이런 접근을 모방한 업체가 있다. 바로 볼보다. 1927년 스웨덴에서 탄생해 90년 역사를 자랑하는 볼보는 과거 다른 완성차 업체들과 마찬가지로 IT에 대해 보수적이었다. 하지만 2009년 지리자동차를 거느린 중국 지리홀딩스에 인수되면서 개발 철학이 달라졌다. 기존 방식으로는 최강의 독일 고급업체 메르세데스-벤츠, BMW, 아우디와의 경쟁에서 이길 수 없다고 판단한 지리와 볼보의 경영진은 새로운 제품 철학을 강구했다. 센터페시아에 대한 개발철학도 바뀌었다. 테슬라에 이어 볼보는 거대한 디스플레이를 장착했다. 오디오, HVAC는 물론 자동차의 여러 기능을 통제할 수 있도록 했다. 흥미롭게도 볼보의 신형 차종에 탑재된 디스플레이는 테슬라 것보다 약 50% 작은 9인치다. 완성차 업체의 보수성을 완전히 탈피하지는 못한 것 아닌가 싶다.

터치스크린 최적화한 스마트폰 OS



스마트폰의 대중화는 각종 센서, 배터리, 메모리, 디스플레이는 물론 데스크탑과 노트북을 작동시키는 OS의 소형화로 이어졌다. 작아진 크기, 낮아진 가격으로 누구나 자동차에 쉽게 장착할 수 있게 됐다. 특히 테슬라는 업계의 이단아답게 이런 기능은 물론 자율주행 기능을 어느 업체보다 적극적으로, 어쩌면 공격적으로 탑재해 화제를 모았다.

실리콘 밸리의 리더들은 오랫동안 완성차 업체에 대한 단순 공급업체로 여겨졌던 굴욕적인 과거를 순식간에 반전시킨 테슬라의 성공에 열광했다. 완성차 업체들에게 실리콘 밸리보다 무서운 건 소비자들의 태도 변화였다. 완성차 업체가 출시하는 제품에 길들여진 소비자가 스마트폰의 대중화로 취향이 바뀐 것이다. 자연스럽게 자동차에서도 스마트폰 이상의 기능이 구현돼야 한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리서치 회사들의 소비자 조사 결과가 이를 방증한다. 다수의 소비자들은 이러한 기능이 차내에서 구현된다면 3000달러를 더 낼 용의가 있다고 답변했다.

이로써 완성차 업체들은 어려운 선택의 기로에 놓였다. 테슬라 같은 신흥 주자들이 자동차를 모바일 장치(mobile device)처럼 만들어 시장에서 인기를 끄는 것을 묵묵히 지켜만 보거나, 아니면 과거 공급업체였던IT업체들과 좀 더 적극적으로 협력해 시장의 트렌드에 부합하거나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반대로 IT업체들은 완성차 업체들의 눈치를 보던 저자세를 완전히 버렸다. IT기술이 자동차에 서서히 적용되는 것을 바라만 보던 과거와 달리, 소비자들이 최신 IT기술을 적극 수용하자 자신감을 얻은 것이다. IT업체들은 시장과 소비자가 원한다는 구실로 더 많은 신기술을 시장에 선보였다. 특히 디스플레이와 통신업체, 콘텐츠 업체들은 자율주행 시대 최대 수혜주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들 업체에 자동차라는 새로운 블루오션이 열린 것이다.

삼성과 LG는 스마트폰, 가전, 디스플레이 및 리튬배터리 분야에서 세계적인 선두업체다. 더욱이 자동차 시장의 변화에 적합한 제품군을 거의 모두 보유하고 있다. 무엇보다 두 회사 모두 해당 제품의 개발 및 제조를 맡은 자회사를 그룹 안에 두고 있다. 이른바 수직 계열화다. 경쟁력 있는 원가, 정확한 납기, 업계 최고 수준의 품질을 구축해 전 세계 완성차 업체들의 관심을 끌게 됐다. 이로써 향후 5년~10년 LG와 삼성을 비롯해 IT에 강한 글로벌 기업이 자동차 분야에서 더욱 활발히 사업을 전개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 삼성전자의 하만그룹 인수는 그 시작일 뿐이다. 아이폰 탄생 20주년이 되는 2027년 자동차는 지금의 모습과 너무도 달라져 있을 것이다. 거대한 전자제품이라고 해도 될 것이다. 알아보지 못할까 걱정이라고 하면 기우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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