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큰거, 새거만 찾아...두고보는 재미 클래식카 문화는?
한국은 큰거, 새거만 찾아...두고보는 재미 클래식카 문화는?
  • 카가이 취재팀
  • 승인 2015.08.07 13:54
  • 조회수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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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진 기자 carguy@globalmsk.com

클래식카...유럽·미국·일본에서 문화로 정착!

한국은 큰 차, 새 차만 고집 






▎이탈리아의 유명 클래식카 축제인 ‘밀레 밀리아’. / 사진:SK엔카 제공
5년여 전 일본에 살 때다. 자동차를 좋아하는 필자는 공원에서 도로를 가만히 쳐다보곤 했다. 30여분 지켜보고 있으면 한국과 달리 같은 모델을 보기 어려웠다. 가장 눈에 띈 건 오래된 자동차(올드 카)와 클래식카들이 종종 보인다는 점이다. 모가 나는 걸 병적으로 싫어하는 일본인인지라 병(病)적으로 세차를 해 오래된 차의 외관도 상당히 좋았다. 늘 새로운 트렌드만 좇기 바쁜 한국과 사뭇 다른 도로 풍경이다. 클래식카가 달리는 도로는 더 아름답게 보인다.

통상 올드카는 14,15년 정도 묵은 차다. 신차 라이프 사이클을 7년으로 보면 2세대가 지난 모델이 올드카 범주에 들어간다. 클래식카는 이보다 더 오랜 차로 통상 30년 이상 된 걸로 보면 된다. 최근 필자도 올드카 하나를 구입했다. 1990년대 인기를 끌던 유럽차로 일본에서 건너왔다. 연비를 좋게 하기 위한 공기역학 디자인보다는 브랜드의 전통을 그대로 살린 유려한 선이 매력적이다. 요즘 차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디자인이다. 세차를 게을리하던 필자도 올드카만큼은 광을 내고 닦아 준다.

선진국에선 중산층의 건전한 취미로 자리 잡아

자동차는 단순한 이동수단이 아니다. 그 시대의 사회 생활상과 첨단 기술이 고스란히 반영된 문화의 산물이다. 클래식카에 대한 관심은 그런 점에서 당연하다고 볼 수 있다. 자동차 선진국인 유럽·미국·일본에서는 클래식카 이벤트나 오래된 차를 복원하는 게 자동차 문화의 일부다. 옛 시대를 돌아보면서 오늘에 부족한 것을 찾는 인간 본연의 자세다. 심지어 첨단 기술의 경연장인 ‘르망 24시간’같은 유명한 자동차 레이스에서도 식전 행사로 클래식카 퍼레이드를 빼놓지 않는다.

자동차 문화 선진국에서는 클래식카가 성인의 취미로 자리를 잡은 지 오래다 보니 관련 단체의 활동도 활발하다. 가장 잘 운영되는 클래식카 클럽 중 하나인 미국의 ‘클래식카 클럽 오브 아메리카(CCCA)’는 이미 1950년대 초 설립됐다. 1930년대에 설립된 영국의 ‘빈티지 스포츠카 클럽(Vintage Sport-Car Club, VSCC)’도 다양한 클래식카 랠리 이벤트를 연다. 일반 대중도 참가해 어울릴 수 있는 축제다. 모두 현재까지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이들 국가에서 클래식카를 즐기는 동호인들은 부유층 일색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들여다 보면 중산층이 대부분이다. 자신의 창고(개러지)에서 부품을 주문하고 수리하는 경우도 다반사다. 중산층의 건전한 취미로 클래식카 문화가 뿌리를 내린 것이다. 물론 1950,60년대 유명인이 타던 차를 복원한 클래식카는 수억원을 호가한다. 이건 유명세 때문이다. 대부분 클래식카는 차체가 멀쩡한 1000만∼2000만원 정도의 고물차를 사서 복원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자동차 역사가 유럽·미국보다 짧은 일본에서도 클래식카 문화는 기초가 단단하다. 1980년대 이미 [노스탈직 히어로(Nostalgic Hero)]나 [불릿(Bullet)] 같은 관련 잡지가 출간됐다. 이들 매체는 유럽·미국이 아닌 일본산 클래식카만 중점적으로 다루면서 일본만의 클래식카 문화를 선도하는 게 특징이다. 더구나 [노스탈직 히어로]는 매년 ‘노스탈직 2 데이즈(Nostalgic 2 days)’라는 이름의 클래식카 모터쇼를 개최한다. 다양한 클래식카 복원 업체나 동호인부터 일반 대중까지 참여를 유도해 클래식카의 저변을 넓힌다.

현재 미국과 유럽, 일본 외에 세계 자동차 시장을 선도하는 나라는 대한민국이 유일하다. 후발주자지만 현대자동차그룹은 세계 5위의 생산량을 자랑한다. 수입차 증가율은 세계에서도 유래가 없을 정도다. 2011년 처음으로 수입차 연간 판매가 10만대를 넘어섰다. 본격적인 수입차 대중화 시대가 열린 셈이다. 그러면서 서울 일부 고급 아파트 주차장에는 국산차보다 수입차가 더 많다는 소리도 나온다. 서울 강남 한복판에는 이른바 수퍼카로 분류되는 페라리·람보르기니 등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3억원을 훌쩍 넘는 이런 희귀 차종은 어쩌면 일본보다 한국에서 더 자주 보일지도 모른다.

이런 연유로 자동차 매니어 사이에서는 “급속도로 자동차 선진국을 따라 잡는 한국에 조만간 클래식카 시장도 성장할 것 같다”는 얘기가 심심치 않게 나온다. 박근혜정부가 창조경제를 육성하겠다고 꺼낸 튜닝산업 활성화 방안도 이 전망을 그럴듯하게 뒷받침한다. 튜닝 규제가 완화되면 클래식카 복원도 쉬워질 것이란 얘기다.

그렇다면 한국에서 클래식카 문화가 자리를 잡을 수 있을까. 필자는 먼저 걱정이 앞선다. 우선 국민소득이 앞서 언급한 선진국 대비 30∼50% 부족하다. 한국은 2013년 처음으로 1인당 국민소득이 2만5000달러를 넘었다. 올해 3만 달러돌파가 예상된다. 모터 스포츠카 흥행이 2만5000달러에서 발동을 건다면 클래식카는 최소 3만5000달러 이상이 돼야 한다는 게 정설이다.

문제는 1인당 국민소득이 계속 증가해도 가처분 소득은 크게 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선진국에 비해 교육비·주거비 지출 비중이 훨씬 높아서다. 클래식카 같은 비교적 돈이 많이 드는 취미생활을 즐길 여유가 부족하다는 말이다. 더구나 아직도 자동차를 신분이나 과시의 수단으로 여기는 문화가 여전하다. 자신의 라이프 스타일과 관계 없이 같은 값이면 남들이 잘 알아주는 유명 브랜드의 큰 차, 새 차를 선호한다.

날로 강화되는 환경 규제나 안전 규제 역시 클래식카 문화를 보급하는 데 어려운 장벽이다. 이를 맞추기 위해서는 클래식카 소유자가 많은 시간적 노력과 비용을 들여야 한다. 큰 새 차를 선호하는 일방적인 분위기에서 클래식카라는 다양성이 비집고 들어가기 어려운 요소다.





▎2014년 10월 SK엔카가 서울 신촌에서 개최한 클래식카 축제. / 사진:SK엔카 제공
클래식카 보급 걸림돌 아파트 문화

또 다른 문제는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인정하지 않는 문화다. 클래식카를 취미로 즐기려면 반드시 복원 과정을 거쳐야 한다. 복원은 매우 노동 집약적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에도 많은 공을 들여야 한다. 녹슬어버린 차체를 복원하려면 모든 부품을 탈거해 손으로 일일이 녹을 갈아내야 한다. 삭아버린 부분은 용접으로 복원하는 등 정교할 뿐 아니라 오랜 시간과 숙련된 노동력이 투입된다. 장인(匠人) 정신으로 무장한 기술자가 꼭 필요하다. 정성을 들이면 들일수록 완성도가 높아지는 것은 당연하다. 대신 시간과 비용도 증가한다.

사회 생활상도 클래식카 보급에 아쉬움이다. 대표적인 게 한국의 아파트 문화다. 개러지가 없는 아파트는 클래식카 관리와 복원에 어려움이 많다. 아파트 주차장에 클래식카를 세워 놓으면 ‘문콕(좁은 주차공간에서 문을 열다 옆의 차에 기스를 내는 것)’ 같은 테러(?)를 당하기 십상이다. 더구나 오랜된 엠블럼은 어느새 떼어 갈지도 모른다. 다행히 요즘 30,40대 젊은층을 대상으로 동호인 주택 보급이 활발하다. 이런 점은 클래식카 문화가 태동할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삭막한 한국의 도로에서 고풍스런 자태의 클래식카를 드문드문 보게 될 날이 하루빨리 왔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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