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기아 신차 더 무거워진 진짜 이유는
현대·기아 신차 더 무거워진 진짜 이유는
  • 카가이 취재팀
  • 승인 2015.08.02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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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소 관료화, 본사 부서 이기주의 탓?


전체 개발 프로세스 감안한 부서 간 공조 흔들려 ... 제네시스·쏘나타·쏘울 무거워져 연비 손해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이 2월 안전 점검을 위해 불시에 당진 현대제철을 방문했다. 정 회장은 현대·기아 남양 연구소도 예고없이 방문하곤 한다.


‘기아 뉴 쏘울 60㎏↑, 현대 제네시스 150㎏↑, LF쏘나타 45㎏↑’. 최근 출시된 현대·기아자동차 신차들의 공차 중량 성적표다. 전 세계 주요 자동차 업체들은 2000년대 중반 이후 신차 개발에서 중량을 줄이는 ‘다이어트’에 목숨을 걸고 있다. 이유는 연비 효율성 때문이다. 가벼워져야 기존 모델보다 좋은 연비를 받을 수 있어서다.

글로벌 톱5 자동차 업체로 발돋움한 현대·기아에 요즘 무슨 일이 생겼기에 나오는 신차마다 무거워졌을까. 차량의 무게 증가는 전반적인 성능향상에도 연비를 떨어뜨린 최악의 요인이다. 자동차 전문가와 서울 양재동 현대기아 본사, 경기도 화성 남양연구소의 전·현직 고위 간부 여러 명에게 물어봤다. 답은 뜻밖이었다. 기술력 부족이 아니라 ‘숲은 보지 못하고 나무만 보는 연구소의 관료화와 본사와 얽힌 부서간 이기주의’가 원인이라는 것이다.

물론 미국 등 주요 시장에서 충돌시험 기준이 강화돼 안전장비를 추가로 단 것이 무거워진 이유다. 현대·기아 홍보실은 “최근 나온 신차가 무거워진 이유는 충돌 시험에서 우‘ 수’ 등급을 받기 위해 강성을 보강하고 안전장비를 달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지난해 하반기 미국 고속도로안전보험협회(IIHS)의 ‘스몰오버랩’ 테스트에서 현대·기아의 6개 차종 성적이 좋지 않았다. 아반떼와 K5는 ‘양호’, YF쏘나타는 ‘보통’을 받았지만 K3·투싼·스포티지는 ‘불량’ 등급을 받았다.

IIHS의 충돌 테스트는 현지 소비자들이 신차 구매 때 안전성 척도로 삼는 지표다. 우수·양호·보통·불량 4등급으로 나뉜다. 하지만 현대·기아의 경쟁상대인 폴크스바겐·도요타·혼다의 신차는 같은 조건에서 경량화를 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국자동차공학회 교수는 “세계 주요 자동차 업체들은 안전성을 강화하면서도 경량화에 성공하고 있다”며 “강성을 보강했다고 무게가 증가했다면 현대·기아신차 개발 과정에 문제가 생긴 것으로 봐야 한다”고 지적한다.

현대차는 지난해 12월 신형 제네시스를 출시하면서 초고장력 강판(AHSS)을 대거 적용(51%)해 안전성을 강화했다. 통상 초고장력 강판은 일반 강판보다 10% 이상 가볍지만 강도는 2배 이상 높아 경량화 소재로 꼽힌다. 문제는 기존 모델보다 사양별로 150~200kg나 살이 쪘다는 점이다. 이런 결과 연비가 나빠졌다. 기존 모델의 연비가 9.3~9.6km/L였는데 신형 제네시스는 8.4~9.4km/L의 공인 연비를 받았다. 무릎 에어백 같은 안전장비를 기본으로 달았다고 하지만 세계 자동차 업계의 경량화 추세와는 동떨어진 경우다.






현대·기아의 신차 제네시스·뉴 쏘울·LF쏘나타(왼쪽부터).
초고장력 강판 쓰고도 무거워지면 개발 과정에 문제

현대차는 이런 해명을 내놓는다. 세계 최고 수준의 안전을 요구하는 미국 스몰 오버랩 충돌 테스트에서 최고 등급을 통과하기위해 강철 프레임을 보강하고 무릎 에어백을 기본으로 추가했다는 것이다. 연구소 측은 “자체 스몰 오버랩 테스트에서는 만족할 만한 답을 얻었다”며 “고급 승용차 고객은 차량을 선택할 때 안전성과 편의성을 경제성보다 우위에 둬 연비 감소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3월 24일 나온 신형 LF쏘나타도 마찬가지다. 초고장력 강판 비중을 기존 YF쏘나타의 21%에서 51%로 높였다. 초고장력 강판이 늘면 가벼워져야 하는 데 무게는 1460㎏으로 YF보다 45㎏ 무거워졌다. 이 때문에 동력 효율은 좋아졌지만 연비는 기존 11.9㎞/L에서 소폭 개선된 12.1㎞/L를 받았다.

지난해 10월 출시된 기아 뉴 쏘울도 중량이 60㎏이나 증가하면서 연비(가솔린 기준)가 기존 12km/L에서 11.6km/L로 오히려 나빠졌다. 그 결과 뉴 쏘울은 신차 효과도 없이 판매가 곤두박질했다. 내수에서 월 평균 1500대를 팔겠다던 게 출시 5개월 동안 월 평균 400대를 넘길 정도다.

연구소내 파벌 싸움 소문 무성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은 지난해 10월 말 토요일 오전 서울 양재동 본사에서 헬기로 예고 없이 남양연구소를 방문했다. 당시 연구소에는 신형 제네시스 출시를 위한 막바지 작업에다 미국발리콜과 일부 납품업체의 가격 담합이 불거졌었다. 정 회장은 토요일에 한 주도 빼놓지 않고 출근하는 스타일이다. 이날 출근하지 않은 중역이 많은 것을 확인하고 대노했다.

연구소에 없던 임원들의 이름을 적어 사유 파악을 지시했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2주쯤 뒤인 11월 11일 권문식 연구개발본부장(사장)과 김용칠 설계담당 부사장, 김상기 전자기술센터장(전무)가 경질됐다. 정 회장이 연구개발 조직 전체에 ‘놀 때 다 놀고 언제 연구하냐. 각성하라’는 메시지를 전한 것으로 당시 그룹 내 소문이 파다했다.

그리고 3개월 뒤인 올해 2월 24일. 권문식(60) 고문이 다시 연구개발본부장으로 돌아왔다. 그 자리를 대신했던 김해진 사장은 시험·파워트레인 담당으로 한 단계 강등(?)됐다. 글로벌 톱5 자동차 업체의 연구개발 총책임자가 불과 몇 개월 만에 물러났다 복귀한 것이다. 그러면서 연구소와 본사 인사부문이 가세한 파벌 싸움이 극심하다는 소문이 흘러나왔다. 최근 2년 간 연구소에서 전무급 이상 자리를 떠난 사람이 10명이 넘는다. 이들은 30년 이상 경력자로 국내 첫 독자개발 모델인 포니 개발 때부터 노하우를 쌓았던 핵심 연구원이다.

퇴사 이면에는 양웅철(60) 현 연구개발 총괄 부회장과 권 사장 간의 세력 다툼에 상당수 희생됐다는 소문이 연구소에 파다하다. 양 부회장은 미국 포드 연구소 출신으로 2004년 권 사장의 추천으로 합류해 2011년 연구개발 총괄 부회장에 올랐다. 쏘나타 하이브리드 등 하이브리드 개발을 주도했다. 권 사장은 1991년 현대정공으로 입사해 20년 넘게 정 회장을 모셔온 측근이다. 두 사람은 서울대 기계과 동기로 양 부회장은 광주고, 권 사장은 경복고를 졸업했다. 정 회장은 올해도 설날을 전후해 토요일에 또 연구소를 불시 방문, 임원들의 출근현황을 체크했다.

이처럼 정 회장이 연구소 분위기 잡기에 나선 것은 강화되는 안전도 충족과 경량화에서 연구소 역할이 절대적이라는 판단에서다. 전직 연구소 임원들은 한결같이 “연구소에 열정이 사라지고 부서간 장벽만 높아졌다”고 지적한다. 신차 개발에 공을 들이는 것 이외에 자신의 부서가 공을 차지하는 데 목을 맨다는 것이다.

이런 문화는 2000년대 중반부터 잉태돼 지금은 고질적인 병이 됐다고 한다. 설계팀·원가팀·엔진팀·차체팀·안전팀 등이 따로놀며 나무만 보면서 자기 부서의 공로를 따진다는 것이다. 그동안 숲을 보며 전체 신차 개발을 지휘했던 노장이 물러나면서 열정으로 가득 차야 할 연구소가 관료화한 것도 한 이유로 꼽는다. 또 연구소 인사를 본사에서 관여하면서 ‘양재동’으로 줄을 서는 풍
조가 생겼다고 한다.

100㎏ 감량한 7세대 골프 들여다보면…

자동차 전문가들의 진단도 비슷하다. 현대·기아 신차 개발에 여러 번 참여한 자동차공학회 회원들의 이야기다. 안전장비를 여기저기 달아 신차 테스트에서 높은 점수를 받는 것은 초보 자동차 업체의 신차 개발방식이라는 것이다. 5, 6년 전 연구개발 조직이 무너진 쌍용자동차가 신형 체어맨을 내놓으면서 외국에서 개발한 첨단 안전장비를 잔뜩 달았다. 그 결과 중량이 대폭 증가해 뒤뚱거리는 주행성능을 보인 게 대표적이다.

무릎 에어백을 달지 않고도 탑승객을 보호하는 게 숲을 보는 보디 설계의 핵심이다. 잘 설계된 신차는 충격을 분산, 무릎 에어백 없이 탑승객을 보호한다. 쏘나타와 같은 체급의 혼다 어코드, 아우디 A6가 대표적이다. 무리하게 무게를 감량했던 BMW 5시리즈는 스몰 오버랩 충돌 시험에서 나쁜 성적을 받자 결국 지난해 무릎 에어백을 추가해 이 문제를 해결했다. 무릎 에어백을 달면 10㎏ 정도 무거워진다.

무게 감량에 안전도까지 보강한 대표 사례는 지난해 5월 한국 시장에 출시된 폴크스바겐 7세대 골프다. 6세대 모델보다 무게를 100㎏ 가량 줄였고 연비도 10% 이상 좋아졌다. 이런 이유로 골프는 출시되자마자 월 평균 1000대 이상 팔리면서 수입차 베스트 셀링 모델로 떠올랐다. 현대차의 경쟁 모델인 i30·i40 두 차종을 합친 것보다 많이 팔린다. 판매점은 현대차가 800개가 넘고 폴크스바겐은 불과 30여개다.

7세대 골프의 경량화를 분석해보자. 우선 차체 설계부터 경량화에 초점을 맞췄다. 전륜구동 전용으로 가로로 엔진을 배치하는 MQB 플랫폼을 개발했다. 차체는 커졌는데도 가벼워졌다. 실내 크기를 좌우하는 휠 베이스가 59㎜ 늘었고 차폭도 13㎜ 증가했다. 중형차도 아닌 소형차에서 이런 감량은 혁신적이다. 세부적으로 보면 전자장치 -3kg, 엔진 -22kg, 차량 상부구조-37㎏, 주행장치 -26kg, 부품 신기술 -12kg 등이다.

상부구조 감량만 구체적으로 따져 보자. 대시보드 -0.4kg, 대시보드 하부 -1.4kg, 에어컨 -2.7kg, 보디 -23㎏, 앞뒤 좌석-7kg, 기타 -2.5kg 등이다. 특히 보디는 안전도 확보가 최우선이라 강하고 견고해야 한다. 중요한 점은 알루미늄처럼 가벼운 비싼 소재를 사용해 감량을 하지 않았다. 골프는 연간 60만대 이상 판매된다. 골프 차체를 이용한 변종 모델(티구안 같은 SUV)을 합치면 연간 200만대가 넘는다. 최대한 원가를 절감해야 하는 이유다. 이에 따라 설계 단계부터 알루미늄이나 마그네슘 또는 탄소섬유와 같이 비싼 소재 사용은 아예 배제했다. 대신 설계를 혁신적으로 바꿔 감량에 성공했다.

운전석 계기판 옆 대시보드에서 0.4kg를 줄인 것은 발상의 전환이다. 가벼운 열가소성 수지 발포제를 샌드위치처럼 플라스틱사이에 주입했다. 시트 감량도 마찬가지다. 뒷좌석 등받이 설계변형 등을 통해 앞뒤 좌석을 7kg나 줄였다. 골프는 100㎏ 이상 경량화를 했지만 안전성은 더 좋아졌다. 유럽 충돌 테스트인 ‘유로앤캡’에서 최고 등급인 별 5개를 받았다. 자동차 업계 전문가는 “차량 경량화는 골프에서 보듯이 ‘티끌 모아 태산’이라는 자세가 중요하다. 전체 개발 프로세스를 보면서 부서 간에 경량화를 통합 지휘할 사람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스몰 오버랩 테스트 시속 40마일(64㎞)로 달리는 차의 운전석 앞부분 맨 왼쪽 25%를 장애물과 충돌시켜 차가 얼마나 부서지는지, 운전자는 얼마나 상해를 입는지 등을 따져보는 실험이다. 미국 고속도로안전보험협회(IIHS)가 2012년 도입했다. 기존에는 정면 충돌만 테스트했지만 전봇대 같은 장애물에 모서리 부분이 충돌했을 때 사망이나 치명적인 부상 사고가 더 많다는 사고조사 데이터가 나오면서 도입됐다. 이 시험결과 안전했던 자동차들이 대거 보통이나 불량을 받아 자동차 업체 사이에서 연구개발비를 증대시키는 ‘죽음의 테스트’로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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