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능은 형태를 따른다
기능은 형태를 따른다
  • 이준호
  • 승인 2016.04.26 11:10
  • 조회수 2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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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랫폼 공유는 디자인의 다변화를 위해 엔지니어링의 다변화를 양보한 형세다. 플랫폼은 기능이 형태를 따르는 대표적인 케이스다. 아직도 엔지니어링 계에선 유효하다고 정의내리는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는 명제는 이제 바뀌어야 한다.

자동차는 크게 섀시와 패널로 구성된다. 섀시는 프레임·파워트레인·조향장치·제동장치 등을 포함하는 엔지니어링 파트다. 엔지니어링은 자동차가 움직이는데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는 ‘기능이이다. 반면에 패널은 섀시를 감싸는 외부 형태를 일컫는 ‘디자인’이다. 디자인은 자동차의 형태를 구성하는데 영향을 끼친다. 겉보기에 둘 사이는 완벽하게 구분돼 보이지만 실상은 경계를 허물며 서로 영향을 미친다.

지금까지 유래 없는 구동방식을 이용한 자동차를 개발한다고 가정을 해보자. 엔지니어링 부서가 뼈대가 되는 섀시를 먼저 만들어야 할까? 아니면 전체적인 스케치 콘셉트를 디자이너가 먼저 제시해야 할까? 고민되는 문제지만 답은 이미 나왔다. 누가 먼저를 떠나 엔지니어와 디자이너는 유기적인 토론을 통해 콘셉트를 프로토 타입화 시킨다. 초기 자동차는 코치 빌더에 의해 섀시를 바탕으로 개발됐다. 엔지니어가 디자인까지 전담했을 정도로 디자인의 개념은 미비했다. 100여년의 시간이 흘러 자동차는 단순 운송기기를 떠나 인류의 라이프 스타일까지 반영하는 매개체가 됐다. 스타일이 형성되고 유행이 생겨났다. 당장 하늘을 나는 자동차를 개발하기 위해서는 엔지니어링이 우선이다. 이미 아카데믹 예비 디자이너의 창의력 속에서는 외형 렌더링을 끝마쳤을 정도로 디자인의 발전도 빠르다.




[su_quote]모더니즘 시대의 자동차 디자인은 제조사가 대량 생산을 손쉽게 하도록 기능을 따랐다. 짧은 시간에 많이 생산해야만 이윤을 보장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su_quote]

자동차 산업에서 디자인이 전문적으로 영향을 끼친 때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Transportation Design’이라고 해서운송기기만을 전문적으로 디자인하는 학과는 1948년 미국 ACCD(ArtCenterCollege of Design)가 최초다. 운송기기 디자인 전공자들이 본격적으로 자동차 디자인의 수준을 높인 시기는 1980년대다. 각 메이커들은 디자인 부서를 경영진으로 끌어 올렸고 수석 디자이너에게 부회장(Senior Vice President) 직급을 부여했다. 자동차라는 제품에서 디자인의 중요성을 강조한 결과였다.

디자인을 중시한 결과가 꽃을 피운 1990년대 이전의 자동차 디자인은 모더니즘이 완성된 시기였다. 디자인에서 모더니즘이란 독일의 예술교육 기관이자 정신이기도 한 바우하우스에 토대를 둔다. 세계대전 후 빠른 도시 재건을 위한 시대적 배경을 깔고 있는 바우하우스의 철학은 산업적 기능주의에 입각한다. 사용자를 위한 기능은 기본이고 공업적 생산을 위한 기능까지 신경을 써야 한다는 주의다. 손쉽고 빠른 생산에 위배되는 디자인은 가치가 없었다. 디자인적으로 형태는 단순해야 했다. 그래서 칸딘스키를 교수진으로 내세워 기하학 중심으로 형태연구를 했다. 디자인은 예술적 외모 뿐 아니라 생산자의 기능성까지 겸비해야 했다.

미국의 건축가 루이스 설리번(Louis Sulivan 1856-1924)이 남긴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Form follows function)’라는 명제는 바로 바우하우스가 주장한 기능 중심 디자인의 토대가 되는 정신이다. 건축의 장식적인 요소들은 모두 기능적으로 존재 가치가 있어야 한다는 루이스 설리번의 주장은 바우하우스에 와서 모더니즘으로 발전한다. 대량생산·대량소비로 일컫는 산업화에서 형태가 기능을 따르는 시대를 모더니즘이라고 일컫는다.




자동차 디자인에서 모더니즘을 실천한 인물이 바로 조르제토 주지아로(Giorgetto Giugiaro, 1938~)다. 그의 디자인 랭귀지는 직선의 쐐기형 스타일이라고 정의 내릴 수 있다. 1976년 그의 손을 거쳐 나온 한국 자동차 역사에 길이 남을 만한 모델인 현대 포니를 보자. 거의 자로만 그렸을 것 같은 직선 위주의 외형은 정확한 치수에 의해 계산된다. 지금은 보편화된 3D 설계 프로그램이 없던 당시, 직선과 평면으로 구성한 바디 패널은 개발 리스크를 줄이는 데 기여했다. 복잡한 금형을 필요로 하지 않기에 생산 단가도 낮아졌다.

1초에 몇 대를 생산하는가를 놓고 싸우던 자동차 산업화 시대에 주지아로식 모더니즘 디자인은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물론 쐐기형인 형태만 놓고 보자면, 풍부한 볼륨으로 치장한 1960년대 디자인의 진부함을 미래지향적으로 탈바꿈시켜다는데 의의가 있다. 예술사적인 디자인에서 1960년대 스타일은 주지아로 시대보다 높은 가치를 평가 받는다. 아름답기 때문이다. 아름답지 않다는 것은 형태의 본질만을 고심하지 못하고 기능을 더욱 따랐기 때문에 생성된 결과다.

[su_pullquote]생산자 기능 중심의 모더니즘 철학은 소비자 기능 중심의 미니멀리즘 방식으로 디자인에 영향을 끼쳤다. 미니멀리즘은 빼는 디자인을 실천한다. 기능에 방해되는 형태는 무시한다. [/su_pullquote]

자동차 산업은 규모의 경제효과가 큰 산업이다. 디자인 역시 생산적 기능을 소홀히 할 수 없다. 디자인의 성패를 판매 결과로 결정하기 때문이다. 1990년대에 들어서는 안전과 효율이라는 새로운 기능이 자동차 디자인에 영향을 끼친다. 보행자와 충돌 시 상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싱글 프레임이란 이름으로 범퍼 존재를 없애기도 했다. 연비 향상을 위해 에어로 다이내믹을 바디 패널에 적용했다. 공기저항을 일으키는 모든 요소는 없앴고 각 패널들의 파팅라인은 더욱 치밀하게 조였다. 안전과 효율을 위한 장식성 거부가 미니멀리즘(Minimalism)이다.

미니멀리즘은 모더니즘의 한 장르이지만 자동차 디자인에서는 모더니즘의 연장선이자 완성이다. 미니멀리즘은 지금까지도 많은 제품에 영향을 끼친다. 애플의 아이폰이 대표다. 미니멀리즘은 생산자를 위한 기능성을 중시한 모더니즘을 넘어서 소비자를 위한 기능을 중시한다. 소비자가 사용하기에 편리하도록 인터페이스와 에르고노믹스를 간단 명료하게 디자인해야 한다.




1L로 111km를 갈 수 있다는 폴크스바겐 XL1 모델은 이 시대의 대표적인 미니멀리즘 디자인이다. 극단적인 연비향상을 위해 장식적인 내장재는 모두 제거했다. 공기 와류를 줄이기 위해 뒷바퀴에는 커버를 씌웠다. 바디 패널에서는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장식적인 디테일을 찾아볼 수 없다. 형태는 철저하게 효율적 기능을 따른다. XL1 디자인에 시도한 콘셉트는 1934년도에 등장한 인류 최초의 에어로다이내믹 디자인인 타트라 T77 모델과 다를 바 없다. 미니멀리즘은 그만큼 진부해졌다.

미니멀리즘이 최신 자동차 디자인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부분은 인테리어다. 테슬라는 센터페시아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을 위해 커다란 태블릿을 달았다. 수많은 버튼들로 이뤄진 오디오와 공조기 시스템과의 이별이 매우 신선했다. 비록 새 시스템은 직관적이지만 원가를 따지는 생산성으로나 스마트폰으로 길들여진 습관을 고려하면 메리트가 적다. 관습적 시각만 버린다면 말이다. 한국 출신인 신용욱 푸조 수석 디자이너의 손길을 거친 푸조 308 센터페시아에는 기계적인 버튼 류는 볼륨·비상점멸등·도어락·내외기순환과 앞뒤 윈도우 김서림 제거 버튼 등 6개가 전부다. 미니멀리즘적 미학을 충실하게 실천했으면서도 아름답다. SM6의 인포테인먼트도 그렇고 진보한 아이덴티티로 감탄을 이끌어낸 볼보 S90도 미니멀리즘을 반영했다. 인포테인먼트는 미니멀리즘을 충실히 따르지만 크롬과 우드패널, 스티치 가죽을 사용해 남은 버튼과 대시보드에 장식성을 높이는 인테리어 디자인 기법의 등장은 새로운 시대를 예고한다.



[su_pullquote]미니멀리즘에 대한 반기가 구체화한다. 기능이 형태를 따르는 시대가 다가왔다. 다채로운 소비자의 취향을 맞추기위해 디자인은 다변화 하고 장식은 부활했다.[/su_pullquote]

2016년 제네바모터쇼에 등장한 최신 자동차 디자인 트렌드 중 가장 먼저 눈에 띄는 모습은 장식의 부활이다. 모더니즘 시대에 미니멀리즘으로 완성한 디자인은 장식을 혐오했다. 생산자 중심 기능의 토대 위에 소비자 중심의 기능까지 따르는 형태의 변화였다. 소비자 중심의 자동차는 안전해야 하고 연비 효율이 높아야 한다. 안전과 효율을 위한 디자인을 추구한 결과로 간결하고 매끈한 바디 패널을 최상으로 여겼다. 물론 장식의 부활이 갑작스럽게 이뤄지지는 않았다. 2006년 아우디는 A6에 LED DRL(Daytime running light)을 세계 최초로 적용해 장식적 익스테리어로서 활용하는 면모를 보여줬다. 초기 LED를 촘촘히 박은 모양에서 현재 면발광을 통한 조형술로의 발전은 업체의 아이덴티티를 형성하기에 이르렀다. 나만의 개성을 중시하는 소비패턴에서 장식으로 발전한 DRL은 디자인에서 커다란 부분을 차지한다.
DRL 다음으로 눈여겨볼 장식 트렌드는 크롬 가니쉬다. 모더니즘 이전 시대에 고급스러움을 강조하기 위해 사용된 크롬은 현재 라디에이터 그릴, 프런트 에이프런, 리어 컴비네이션 램프, 송풍구 테두리 등에서 다채롭게 사용된다. 장식 역할 이외에 어떤 기능성도 찾아볼 수 없다. 형태는 기능을 따라야 한다는 시대의 트렌디함과는 거리가 먼 디테일이다.




미니멀리즘이 주류를 이루던 시대에 장식을 제거하는 디자인은 에어로다이내믹을 위한 소극적인 대응방식이었다. 지금은 장식을 적극 활용해서 에어로다이내믹 효과를 높이는 적극적인 방식으로 전환됐다. 엔지니어링에서 효율을 명목으로 터보차저를 이용한 다운사이징의 결과 파워트레인은 점점 고성능화되고 있다. 퍼포먼스가 증가할수록 요구되는 안전의 수준도 높아진다. 공기 흐름을 적극 이용해서 다운포스를 높이고 타이어 접지력을 키우는 일은 안전을 위한 중요한 해결책이다.

프런트 에이프런은 뛰어난 조형적 형태를 자랑하면서도 동시에 스플리터 기능도 한다. 에어 인테이크를 구성하는 그릴의 부분만 변경해서 브레이크 냉각용으로 공기흐름을 변환시킨다든지, 범퍼 가장자리에 에어 커튼을 만들어 측면의 에어 브리더를 통해 공기 흐름을 컨트롤 한다. 이후 공기는 리어 덕트로 빠져나가면서 에어 터널을 만든다. 리어 디퓨저는 고성능차가 아니더라도 이젠 장식으로 다 갖추는 시대가 도래했다. 형태에 장식이 늘어나고 이로 인해 형태는 새로운 트렌드를 만든다. 모더니즘을 거쳐 포스트 모더니즘 시대로 변모하는 자동차 디자인은 안전과 효율을 위해 기능을 형태로 끌어들여 이용한다.

애프터 마켓을 이용해서 공력 성능을 높이는데 사용된 드레스업 부품이 이제는 양산차에 장식으로 버젓이 달린다. 튠업이란 이질감 없이 마치 유니 바디의 형태로 디자인에 녹아있는 장식들은 심미적이다. 단순히 공력 성능을 높이기 위해 앞 범퍼에 카나드를 붙이고 대형 스포일러를 달았던 형태를 무시한 장식이 아니다. 형태에 녹아 드는 게 첫 번째 목표이고 기능까지 겸비하는 게 두 번째다. 이런 결과를 만들어낸 것은 기술의 발전이다. 시뮬레이션을 통해 형태 변화에 따른 cd계수 측정이 간편해졌기 때문이다.




[su_pullquote]기능이 형태를 따르는 증거들[/su_pullquote]

BMW Vision Next 100 컨셉트는 ‘기능이 형태를 따른다’를 증명하는 뛰어난 모델이다. 단순히 휠을 가려 공기저항 계수를 높이려는 모더니즘식 발상을 뛰어넘어 휀더 패널 전체를 변형시키는 포스트 모더니즘식 시도를 했다. 생산자와 소비자를 위한 기능을 우선한 형태가 아닌 자동차 디자인의 본질적 매력을 십분 발휘하기 위한 형태다. 자동차는 기계이기 이전에 섀시와 패널이 한데 어우러지면서 곡선이 만들어지고 아치가 생성되며 볼륨이 아름다워지는 행태가 우선이란 걸 주장하는 디자인이다.

지금은 생산과잉 시대다. 소수의 모델로 거대한 자동차 산업을 유지하기 힘들어졌다. 단일 모델이 밀리언셀러를 기록하는 건 밀레니엄 시대가 지난 후로 어려워졌다. 소비자의 취향과 라이프스타일이 다양해지면서 디자인도 다변화를 요구한다. 메이커가 이런 추세를 뒤따르기에는 생산효율이 맞지 않는다. 고육지책이 바로 섀시의 플랫폼화다.

현재 엔지니어링의 트렌드는 공유 가능한 새시 즉, 모듈을 개발해서 플랫폼화 시킨다. 모델은 다양하지만 뼈대는 공통된 경제적인 엔지니어링을 구사한다. 이런 경우 자동차 개발 전체를 놓고 볼 때 엔지니어링의 입김은 상대적으로 약해진다. 플랫폼의 변화는 신모델이 등장할 때마다 필요치 않기 때문이다. 디자인의 다변화를 위해 엔지니어링의 다변화를 양보한 형세다. 플랫폼은 기능이 형태를 따르는 대표적인 케이스다. 아직도 엔지니어링 계에선 유효하다고 정의 내리는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는 명제는 이제 바뀌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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