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출격 앞둔 제네시스 SUV, 프리미엄 브랜드 조건 갖춰라
[칼럼] 출격 앞둔 제네시스 SUV, 프리미엄 브랜드 조건 갖춰라
  • 이경섭 에디터
  • 승인 2017.11.10 08:20
  • 조회수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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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섭 베를린 특파원

자동차가 프리미엄 모델이 될 조건은 첫째 혁신적 기술, 둘째 익숙하지만 놀라운 디자인, 셋째 브랜드 파워다. 어느 것 하나 하루아침에 뚝딱 되지 않는다. 여기에 각국 시장별 특성에 맞는 성능과 개성을 갖춰야 하니 더 복잡해진다. 독일의 자동차 시장은 리그로 치면 프리미엄 리그이고 월드컵으로 치면 4강 정도에 해당한다.

제네시스 G90( EQ900)에 대한 독일 자동차 전문가들의 평가는 공통적으로 비슷하다.  제네시스의 실내 마무리는 상당한 수준으로 평가한다. 깔끔하고 고급재를 사용해 럭셔리라는 측면에서 좋은 점수를 받는다.  그리고 주행 정숙성과 안락함은 나무랄 데가 없다는 평가다. 하지만 단순한 고급 재질을 사용한 것과 프리미엄은 다르다.

무엇보다 독일의 자동차 전문가들은 지금의 제네시스 G90은 기술적으로 혁신이라고 부를만한 게 없다는 점을  빠트리지 않고 지적한다. 엔진은 실린더 차단 기술(아우디의 실린더 온 디멘드, 벤츠의 다이내믹 다운사이징)도 아직 적용하지 못해 경쟁 상대라는 벤츠·아우디·BMW 동급 차량에 비해 연비에서 밀리고 엔진 효율도 떨어진다. 온실가스인 이산화탄소 배출량도 상대적으로 많이 나온다. 종말이 다가왔다는 내연기관 가솔린 외에 장착할 마땅한 친환경 에너지 모델이나 변환기가 없다는 것도 아킬레스건이다. 8단 자동변속기도 프리미엄 자동차에서는 한물 간 구닥다리 기술이다. 지금 시중에 판매되는 벤츠 E클래스만 해도 이미 9단 자동기어가 장착돼 있다. 제네시스는 하이브리드는 아예 포기했다. 2022년쯤엔 제네시스 전기 구동 시스템을 선보일 것이라고 하지만 그건 5년 후의 일이다. 독일에서 물과 이산화탄소로 만드는  인공석유 '블루크루드'와 전기모터, 배터리 그리고 새로운 에너지변환기 시장은 앞으로 어떻게 변화될지 지금으로서는 5년 후 구동시스템을 단정하기 어렵다.

제네시스 최초의 SUV, GV80 컨셉카


제네시스가 프리미엄 브랜드로서 기본기를 갖추지 못했다는 지적에 대해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만프레드 피제랄드 제네시스 브랜드 총괄은 독일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우리에게 유럽 시장이란 독일·영국·스위스를 의미한다. 이 시장에서 프리미엄 리그에 진출하는 것이 어렵다는 걸 익히 잘 알고 있고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다. 2년 뒤에는 지금의 제네시스와는 전혀 다른 제네시스를 만나게 될 것”이라고 언급했다. 해외 유명 브랜드를 경험한 영입된 피제랄드(람보르기니 출신)나 알프레드 비어만 (전 BMW M 총괄) 부사장 같은 엔지니어는 제네시스 세단으로 독일의 기존 프리미엄 시장에 도전하기보다는 새로 출시할 제네시스 SUV로 프리미엄 시장에 진출하는 게 더 유리하다고 판단하는 듯하다.

독일 현대차 딜러 옥상에서 비 맞은채 6개월째 방치된 제네시스.


절제력 있는 라인(선)에서 품위, 형태의 단순함에서 기품을 깃들게 하는 ‘익숙함 속의 경이로움’

제네시스 디자인은 세계적인 추세는 따라가고는 있는 듯 보인다. 하지만 아이덴티티를 구축하려는 단계이지 확실하게 정립됐다고 보기 어렵다. 추세와 트렌드에는 익숙하긴 하지만 경이롭게 놀랄만한 뭔가가 아직 발현되지 않았다. 독일 프리미엄 디자인의 특징이 절제력 있는 라인(선)에서 품위를 찾고 형태의 단순함에서 기품을 깃들게 하는 ‘익숙함 속의 경이로움’이다. 반면 제네시스는 없는 것을 있어 보이게 하려는 허세의 화려함을 갖췄으나 이러한 실용과 거리가 먼 화려함은 극도의 절제력과 단순함을 미학으로 추구하는 프리미엄급에선 오히려 배제의 대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물론 만후레드 휘쩨랄드가 언급한 대로 2년 뒤 지금의 모델과는 완전히 다른 ‘괄목상대’ 할만한 제네시스 모델들이 나온다면 위 평가들은 의미를 잃을 것이다.

독일의 저명한 자동차 전문가인 뒤스부륵(Duisburg)대학의 두덴회퍼(F. Dudenhöffer) 교수는 앞으로 성장 가능성이 많은 시장은 저가 자동차이지 프리미엄 시장이 아니라고 전망했다. 그럼 제네시스를 통한 프리미엄 시장 진출보다는 현대기아가 지금껏 유럽에서 다져오고 쌓아온 소형 및 SUV 시장에서 굳건하게 발판을 굳히는 전략이 차라리 훨씬 더 나을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럼 왜 굳이 독일 프리미엄 시장 진출을 하려고 하는 걸까? 더구나 전성기가 지난 독일 전문가들을 엄청난 스카우트 비용으로 영입하면서까지 말이다.




최근 중국 같은 자동차 신흥국의 저가 자동차 업체 역시 고급화에 가속도를 내고 있다. 하지만 국내 자동차 메이커들은 그동안 다져온 축적된 경험 값을 바탕으로 아직은 다른 신흥 경쟁자들의 거친 도전을 충분히 잘 대처할만하다고 본다. 그런데 제네시스 브랜드 출시는 기존 시장 방어보다는 새로운 시장에 대한 도전 혹은 공격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어쩌면 미국 시장에서의 좋은 반응과 ‘AutoPacific Vehicle Satisfaction Award’에서 소비자 만족상을 받아 한껏 고무된 상태에서, 그리고 무엇보다 국내 시장에서 대박을 이어가려는 욕심이 과했는지 모른다. 제네시스를 독일 프리미엄 리그에서 당당히 인정받고 싶은 욕망으로 확대돼 스스로 절제하기 어려운 지경일까.

제네시스는 독일 시장에서 2020년부터 직판 체제로 진입하겠다고 한다. 얼핏 중간 딜러를 배제해 상당한 유통 마진을 절약할 것 같지만 운행거리 무제한에 5년 보증기간에 걸맞은 프리미엄 애프터서비스 망을 제대로 갖추려면 그 비용은 상상 외로 클 수도 있다. 더 중요한 것은 독일의 프리미엄 자동차 시장, 특히 리무진이나 세단형 프리미엄 시장은 해마다 시장 파이가 쪼그라든다. 말하자면 저물고 있는 석양이다. 지금 새롭게 떠오르는 프리미엄 시장은 SUV 이다.

2년 뒤 제네시스는 유럽과 동시에 중국에 진출을 한다. 어쩌면 제네시스 모델의 독일 프리미엄 시장 진출은 판매가 목적이라기보다는 인정받기 위한, 궁극적으로 고도의 선전을 통한 전략 차원인지도 모르겠다. 독일 프리미어 시장에 진출했다는 것을 대대적으로 선전하고 이를 기회로 삼아 본격적인 판매는 중국 시장에서 제대로 대박을 터트리려는 성동격서(聲東擊西:동쪽에서 소리를 내고 서쪽에서 적을 친다는 뜻으로, 동쪽을 쳐들어가는 듯하면서 적을 교란시켜서 실제로는 서쪽을 공격하는 것을 이르는 말) 전략이라면 그리 나쁘지 않다. 많아 팔아야 연간 고작 몇 천대에 불과할 독일  시장과 최소 몇 십 만 대 이상의 잠재력을 갖고 있는 중국 시장과는 비교할 수 없으니 말이다.

보증기간이 5년임을 알려주는 스티커


  • 독일에서 현대자동차는 판매하는 모든 모델에 대해 운행거리 제한 없이 5년 보증기간을 준다. 국내 내수용 모델들의 보증기간은 3,4년이라고 한다. 독일 벤츠 S나 BMW 7 같은 프리미엄 메이커도 한국에 판매하는 수입차 보증기간이 3,4년이다. 차별이 아닌 시장 특성에 따른  차이라고 해도 설득력이 전혀 없다. 어떤 이유를 갖다 붙이더라도 우리는 우리를 스스로 호갱 취급하고 있음을 부정하기 어렵다. 



제네시스가 한국에서 생산해 수출을 유지하려면 먼저 국내  노조와 협의를 해야 한다. 생산 단가도 획기적으로 낮추고 생산능력 및 효율을 극대화하는 게 전제다. 이 모든 걸 2년 안에 다 실현하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모든 부품들과 모듈을 가져다가 CKD(Comletely-Knocked-Down) 혹은 MKD(Medium-Knocked-Down) 방식으로 "중국에서 조립생산을 고려 중"이라는 소식도 들린다.

"독일 진출을 서두를 필요 없다"라고 말한 독일 출신 제네시스 최고 경영진들은 지금 여유를 부릴 수도 있다. 하지만 남은 2년 동안 혁신적인 기술과 프리미엄이 갖추어야 할 기품과 품위가 깃든 디자인, 그리고 묻지 마 광팬들을 고정으로 몰고 다니는 브랜드 파워를 생각한다면 시간은 촉박하다. 외부에서 영입한 경영진(독일 용병이라고 불러야 할까)의 마인드가 2002년 월드컵에서 우리나라를 4강으로 올려놓은 히딩크와 같다고 생각하고 있다면 큰 오산일 수 있다. 그들은 오랜 기간 독일 자동차 산업에서 잔뼈가 굳은 사람들이다. 풍부한 경력에 노련할지 몰라도 국내의 공격적인 경영관리 시스템과 강경 노조에서 얼마나 잘 적응해 버티며 ‘괄목상대’ 할만한 정반합의 결과를 내놓을지는 적잖은 시간이 필요하다. 또 지켜봐야 한다.

제네시스가 정말 독일 시장에서 프리미엄급 자동차로 제대로 제네시스(탄생) 하려면 건너야 할 강과 넘어야 할 산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제네시스, 모세의 그 장구하고 지난한 이야기, 창세기의 시작과 겹쳐진다. 태초에….

<제네시스 한국에서 모델 별 보증기간>

▲제네시스 브랜드 모델별 보증기간



이경섭 베를린 특파원 carguy@globalms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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