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뇌 해부하면 알파고 단 자율주행차 될까
[칼럼]뇌 해부하면 알파고 단 자율주행차 될까
  • 안혜린 인턴
  • 승인 2017.08.24 16:55
  • 조회수 66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경섭 카가이 베를린 특파원 carguy@globalmsk.com

몇 년 전만 해도 자동차에 인공지능이 탑재되는 건 퍽 낯선 일이었다. 기계공학의 총아인 자동차와 스스로 학습하며 진화하는 인공지능의 접점이 잘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었다. 사람의 운전을 돕는 운전 자동화에서 더 나아가 자동차가 스스로 상황을 판단하고 결정을 내리는 자율주행에 이르기까지 인공지능은 자동차 안에서 인간의 역할을 하나씩 대체하고 있다.



20여 년 전 독일 베를린공대 자동차공학과 석사과정 첫 학기 과목은 '뇌구조해부학'과 '인공지능(AI)'이었다. 자동차 공학에 웬 뇌구조해부학에 인공지능이라는 조합이 어색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선각자적 시각이다. 엔진·조향·현가·제동 등 자동차 의 기계 장치만을 생각하다가 뜬금없는 뇌구조해부학·인공지 능이라는 단어를 접했을 때의 그 당혹감을 잊을 수가 없다. 뇌의 기본 구조인 뉴런과 시냅스부터 시작한 뇌구조해부학과 앨런 튜링 머신의 이야기를 다룬 인공지능 과목은 제어공학과 접목돼 퍼지 논리를 활용한 퍼지 드라이버(Fuzzy Driver) 모델로까지 나아갔다. 지금 생각해도 제어공학에 인공지능을 접목하는 시도는 매우 진보적인 것이었고 그런 첨단지식을 학교에서도 배울 수 있다는 것이 경이로웠다.

그 뒤 실제로 퍼지 제어 모델이 일반화되면서 폴크스바겐에서 클라우스(Klaus)라는 자동차 내구테스트 드라이버 로봇을 만들었다. 자동차 최초의 실험적 운전자동화의 완성이자 자율 주행의 시작이었다. 이게 1999년의 일이다. 18년이 지난 지금은 어떻게 상황이 변했을까?

우선 그동안 자동차 제어공학은 운전 자동화(automated system)와 자율주행(autonomous system)으로 개념이 세분화됐다. 운전 자동화는 스마트 브레이크시스템, 차간거리 자동 조정 시스템, 자동 주차 시스템 등 어느 정도 부분적으로 상용화되었지만 자율주행의 상용화는 아직 요원하다. 그럼에도 많은 전문가들은 자율주행의 구현이 멀지 않았다고 전망하고 있다.

운전 자동화도 폴크스바겐의 클라우스와는 전혀 다른 개념으로 변했다. 폴크스바겐이 2017년에 공개한 로봇 택시를 봐도 그렇다. 로봇이 운전하는 택시라는데 차안에 로봇 클라우스는 이제 보이지 않는다. 1990년대 당시 폴크스바겐에게 자율주행은 운전 자동화의 끝이 될 것이라는 막연한 개념이었을 뿐이다. 한 회사에서 나홀로 시작한 비밀 개발이었고 그것의 한계는 주어진 조건과 일정한 환경에서만 운전이 가능한 로봇이었다. 2017년은 무선으로 언제 어디서든 인터넷 연결이 가능한, 소위 그물망(network)의 시대다. 인간과 기계, 기계와 기계, 그리고 다시 기계와 인간 사이가 촘촘히 연결되면서 동시에 경험치가 자체 축적 될 수 있는 스마트한 세계다.



이제 자동차를 운전 자동화 기능들로만 가득 채운다고 해서 자동차가 어디든 자유롭게 자율적으로 주행 할 것이라고 믿는 엔지니어는 없다. 자동차의 운전 자동화 모듈은 기본이고 도로 환경과 더불어 함께 달리는 다른 자동차들의 자동화도 병행돼야 한다. 도로는 공공 인프라이기 때문에 완성차 업체는 물론 공공기관의 협력, 사회적 합의와 해킹방지를 위한 법적·제도적 정비도 있어야 한다.

앞으로 말과 글로 표현된 모든 명시적 지식 (explicit knowledge)들은 디지털화돼 네트워크 안에서 돌게 된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4차 산업혁 명의 일부분인 '디지털화'다. 이것만 실현돼도 단순한 명시적 지식 전달 장소로 기능했던 조선시대 서당 같은 대학 강의실은 사라질 수 있다. 이제 웬만한 명시적 지식들은 모두 스마트폰 안에서 언제든지 꺼내 볼 수 있으니 말이다. 반면 디지털화에 많은 걸림돌이 있는 것은 아직 말과 글로 표현되지 않은 암묵적 지식(implcit knowledge)이다. 일정한 룰과 형식을 갖고 공유와 전달이 가능한 형식적 지식과 대비되는 암묵적 지식의 개념은 헝가리 출신의 철학자·의사이자 화학자였던 마이클 폴라니(Michael Polanyi: 1891-1976)에 의해 처음으로 정립됐다.


가령 스마트폰으로 자동차 레이서처럼 운전하는 법을 보고 그 즉시 레이서처럼 멋지게 운전한다거나, 피아노치는 법과 악보만 익혀 곧장 바흐의 평균율 클라비어 연주곡을 기막히게 연주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운전 실력이나 악기 연주, 생명을 다루는 고도의 수술 등은 상당히 오랜 기간 몸으로 체득하지 못하면 절대 할 수 없는 경험 지식들이다. 암묵적 지식은 끊임없이 반복되는 경험과 시행착오를 통해서만 축적되는 특성 때문에 현장에서의 노력과 더불어 실무와 연습에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특히 책이나 매뉴얼에 나와있지 않은 돌발 상황에 대한 유연한 대처능력은 오랜 경험 없이는 얻을 수 없다.

그물로 촘촘히 연결된 신경정보망(neural network)의 세계에서 자율주행 자동차는 초기에 입력된 명시적 자료 및 정보 외에 무한한 정보를 스스로 받아들이고 판단해 최적의 결과를 뽑아낸다. 말하자면 신경정보망을 통해 들어오는 정보들을 바탕으로 스스로의 경험을 축적할 수 있는 유기체가 된다. 수많은 빅데이터들이 디지털화돼 맞물려 돌아가는 네트워크 안에서 비로소 일리야 프리고진이 주장한 인공신경망들의 '자기조직화' 가 가능해지는 셈이다. 물론 독일은 이미 20년 전부터 퍼지 논리를 적용한 인공지능 신경망 이론을 도입 한 바 있다. 여기에는 뉴런의 심층구조에서 멀티 퍼셉트론을 거쳐 딥러닝에 이르기까지 지난했던 개발의 역사가 있다.

자동차의 운전 자동화 모듈은 일개 회사가 추진할 수 있는 프로젝트지만, 제대로 된 자율주행 자동차를 만 드는 건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자율주행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사회적-법적·제도적·정치적으로 합의된- 디 지털망도 필요하다. 자동차가 디지털망 안에서 서로 연결돼 상호 통용될 수 있는 커뮤니케이션 개발이 우 선 이뤄지면 자동화된 자동차에 인공지능을 넣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독일은 폴크스바겐뿐만 아니라, 아우디·벤츠·포르쉐 등 거의 모든 완성차 업체와 연방교육연구부(BMBF)· 교통건설부(BMVBS)·경제기술부(BMWi) 등 정부 관련부처가 발 벗고 나서 교통시스템 커뮤니케이션의 네트워크화를 추진 중이다. 독일 자동차 네크워크화의 첫 번째 프로젝트 이름은 SIMTD였다. 이 프로젝트의 목적은 자동차와 자동차(Vehicle-to-Vehicle: V2V), 자동차와 인프라(Vehicle-to-Infrastructure: V2I), 자동차와 정보센터(Vehicle-to-IT-Backend : V2B) 간 에 실시간으로 정보가 교환될 수 있는 V2X 커뮤니케 이션 구축이다. V2V 통신은 가령 보이지 않는 위험, 즉 앞 차에 가려 보이지 않는 앞 차가 브레이크를 밟았을 때 뒷 차에게 경고를 준다. 차와 차의 실시간 네트워크 연결이 제대로 돼야 자율주행의 안전이 보장될 수 있 다. 이 필드 프로젝트는 2011년부터 독일 전역에서 실 제 테스트가 이뤄졌고 몇몇 결과물은 이미 상용화됐 다. 그간 안전한 자율주행을 위해 V2X 네트워크에 축적된 경험과 자료는 방대하다. 덕분에 인간의 눈보 다 더 넓은 범위를 볼 수 있는 자동차의 인공눈과 인공귀가 그물망 안에서 실시간으로 전달되는 수많은 정보를 활용, 안전하게 주행할 수 있다.


알파고와 같은 딥러닝 인공지능의 등장으로 인간의 컴퓨터 프로그래밍만으로 구현할 수 없었던 운전 자동화 구현에 탄력이 붙었다. 이제 인간은 알파고로 대변되는 인공지능을 능가할 수 없다. 캄캄한 한밤중 길 위에 있는 게 사람인지, 장애물인지를 사람보다는 자동차가 정확하게 인지하는 게 더 중요해 진 것이다. 인간보다 뛰어난 지각능력을 지닌 센서 개발과 그 정보를 처리할 수 있는 네트워크 커뮤니케이션 개발은 과거 어느 때보다 핵심 과제로 떠올랐다.

따라서 완전한 자율주행은 인공지능과 연결될 수 있는 스마트 센서 테크놀로지로부터 시작된다. 3 차 산업혁명 당시의 공장 자동화를 뛰어넘는 4차 산업혁명의 가장 중요한 요소산업이기도 하다. 소통이란 정보의 원활한 교환을 말한다. 정보들이 원만하게 교환되지 못하고 흐름이 막힌다면 올바른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질 수 없다. 정보는 속성 상 반드시 기밀이 있고 기밀유지는 돈과 권력을 지탱해주는 좋은 수단이지만, 그렇다고 정보 유통을 가로막고 일부만 소유해서는 더 이상 발전을 기대하기 어려운 세상이 됐다. 서로 다른 계층, 다른 분야의 원활한 소통을 위해 커뮤니케이션의 기본적인 토대를 마련하는 것은 이제 정치뿐만 아니라 기술 분야에서도 불가피한 시대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