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명차①] 변치 않는 성공의 대명사..현대 그랜저 1~3세대
[한국명차①] 변치 않는 성공의 대명사..현대 그랜저 1~3세대
  • 남현수 에디터
  • 승인 2022.09.11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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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자동차 1세대 그랜저
현대자동차 1세대 그랜저 V6 3.0L

현대차 그랜저는 한국 경제의 성공 신화와 맥을 같이 한다. 1980년대 중반부터 '성공한 사람이 타는 차=그랜저'라는 등식이 생긴 지 오래다. 그랜저는 어느덧 30여 년이 흘러 올해 11월 7세대가 나온다. 2022년 자동차 시장 최대어로 꼽히며 출시 전부터 뜨거운 관심을 받는 중이다. 이미 4만대 넘게 계약됐다는 소식이다. '고급차의 대명사'로 자리매김한 현대자동차의 대표 플래그십 세단 그랜저 역사를 짚어본다.

현대 포니 광고 영상 중, 연료 절약이라는 문구를 확인 할 수 있다
현대 포니 광고 영상 중, 연료 절약이라는 문구를 확인 할 수 있다

그랜저의 역사는 197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 시기만 해도 국내 자동차 시장은 변방에 불과했다. 수출은커녕 마이카 붐이 불기 직전이었다. 국산차로는 처음 소형차가 등장했다. 1976년 현대차가 출시한 대한민국 최초 고유 모델인 '포니'가 주인공이다. 포니는 출시 첫 해 1만여대를 판매하며, 당시 내수 판매량의 40%를 차지했다. 1973년 중동전쟁에서 비롯된 제1차 석유파동은 소형차 붐에 불을 지폈다. 전 세계적으로 석유 수급이 불안정해지자 정부는 에너지 절약 운동과 더불어 국산화율을 높인 소형차의 판매를 장려했다. 이제 막 발걸음을 뗀 포니에게는 희소식이었지만 현대차는 마냥 기뻐할 수 없었다.

현대자동차 그라나다
현대자동차 그라나다

이 시기만 해도 자가용은 기사를 두고 타는 게 일반적이었다. 이런 최고급 승용차 수요를 흡수하기 위해 현대차는 제휴선인 포드를 통해 그라나다 수입을 부단히 노력했다. 고급차 판매로 수익성을 개선하기 위한 선택이었다. 오일쇼크를 직격탄으로 맞은 정부는 6기통 자동차의 생산을 금지했다. 제한이 풀린 시점은 1978년으로 6기통 모델을 판매할 수 있게 됐지만 몇 가지 조건이 붙었다. 수출 물량의 20% 이내, 회사당 한 가지 모델, 배기량 3천cc 이하, 국산화율 20% 이상 등이었다. 발 빠르게 움직인 현대차는 1978년 그라나다를 출시했다. 울산공장에서 조립하는 형태다. 이렇게 현대차 플래그십의 역사는 어렵사리 싹을 틔웠다. (이전에 조립 판매하던 고급 대형차 ‘포드 20M’이 있었다)

V6 3.0L 현대자동차 1세대 그랜저
현대자동차 1세대 그랜저 V6 3.0L
현대자동차 1세대 그랜저
현대자동차 1세대 그랜저

1세대 그랜저 - ‘그라나다를 훨씬 능가하는 대형 고급 승용차입니다’

이제 막 자동차 산업에 발 들인 현대에게 포드는 양날의 검이었다. 품질이 보장된 모델을 판매할 수는 있었지만, 변수가 생길 때마다 포드의 눈치를 봐야 했다. 또 다른 문제는 1987년 예정된 수입차 개방이었다. 고급차를 독자 개발할 여력이 없던 현대차는 포드 대신 미쓰비시와 손을 잡고 일명 ‘L카’ 프로젝트에 돌입했다.

미쓰비시와 현대차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다. 당시 ’86아시안게임’과 ‘88서울올림픽’을 앞두고 마이카 붐이 일기 시작했다. 거액의 로열티를 지급하는 그라나다의 뒤를 이을 새로운 플래그십 세단이 필요했다. 미쓰비시는 1세대 대형 세단 데보네어가 일본 내수시장에서 실패했던 것을 만회할 새로운 시장이 필요했다. 두 회사는 손을 잡고 미쓰비시의 데보네어&갤랑 공용 플랫폼을 바탕으로 대형 세단을 개발했다. 파워트레인은 미쓰비시, 내외관 디자인은 현대차가 맡았다. 그렇게 탄생한 모델이 1986년 7월 등장한 1세대 그랜저다. 1985년 단종된 그라나다의 뒤를 잇는 현대차 플래그십 세단이다. 그랜저는 위대함, 장엄, 웅장 등의 뜻을 가지고 있다.

1세대 그랜저는 당시 대우자동차 로얄 시리즈가 장악하고 있던 국내 대형세단 시장을 단숨에 휘어잡았다. 출시와 동시에 국산 브랜드를 대표하는 플래그십이자 대한민국 부유층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했다. 각진 디자인은 플래그십 세단의 위용을 드러냈다. 이런 디자인으로 인해 지금까지 ‘각그랜저’라는 별명으로 회자된다. 대우 로얄 시리즈가 후륜 구동을 사용했다면, 1세대 그랜저는 국산 최초 전륜구동 대형 세단이라는 시장을 열었다. 전륜 구동의 장점을 십분 활용한 넓은 실내 공간이 특징이다. 현재까지도 전륜 구동을 유지하는 그랜저의 변함없는 전통 중 하나다.

플래그십 모델이라 편의안전장비도 화려했다. 당시 시대를 뛰어넘는 수준이었다. 풀오토 에어컨, 네 바퀴 모두 벤틸레이티드 디스크 브레이크, ABS(안티록브레이크), 크루즈 컨트롤, 파워 스티어링휠, 파워 윈도우, 전동식 사이드미러(접는 것은 수동), 헤드램프 워셔 등이 대표적이다.

그랜저는 최고출력 120마력을 발휘하는 2.0L 가솔린 엔진(시리우스)과 5단 수동 변속기 사양으로 먼저 나왔다. 미쓰비시의 시리우스 엔진은 정숙성으로 일가견이 있었다. 플래그십 세단에 수동 변속기가 장착된 점이 의아하지만 당시에는 4단 수동변속기가 일반적이었다. 5단 수동 변속기는 최고급차에 달리는 사양 중 하나였다. 추후 최고출력 130마력을 내는 2.4L 가솔린 엔진(시리우스)을 추가하면서 4단 자동변속기 옵션도 마련했다. 대형세단에도 오너 드라이버 시대가 열리면서 자동 변속기 수요가 늘기 시작했다. 4기통 엔진 제한이 풀린 1989년에는 최고출력 164마력을 내는 V6 3.0L 가솔린 엔진(사이클론)을 추가하며 진정한 플래그십 면모를 갖췄다. ABS와 ECS 등 안전사양이 추가됐고 소폭의 디자인 변화도 거쳤다. 대중들이 기억하는 격자 그릴과 투톤 도색, 알루미늄 휠 모두 이 시기에 적용됐다.

1986년 등장해 1992년까지 판매된 1세대 그랜저는 9만 2574대로 대성공을 거뒀다. 판매가격은 1,690만원부터였다.

현대자동차 2세대 그랜저
현대자동차 2세대 그랜저
현대자동차 2세대 그랜저 V6 3.5L
다이너스티에 밀려 단종된 현대자동차 2세대 그랜저 V6 3.5L

2세대 그랜저 – ‘한 시대를 이끌어가는 명차가 있다’

1992년 9월 등장한 2세대 그랜저 역시 미쓰비시와 공동 개발했다. 여전히 미쓰비시 데보네어&갤랑의 플랫폼을 사용했다. 각진 1세대와 달리 2세대는 유선형 디자인을 사용해 한층 수려해졌다. 그랜저라는 차명을 트렁크 정중앙에 붙이기 시작한 것도 이 시점이다. 현재도 유지 중인 디테일이다.

세대가 진화하며 덩치도 키웠다. 전장이 4,980mm로 5m에 육박한다. 6세대 그랜저가 등장하기 전까지 역대 그랜저 중 가장 길었다. 2세대 그랜저는 커진 차체를 바탕으로 실내공간이 엄청나다. 단순히 크기만 키운 것이 아니라 편의안전사양도 고급스러웠졌다. 국산차 최초로 운전석 에어백, 냉장 쿨 박스, 3존 에어컨(연식 변경을 거치며 4존으로 변화), ECM 룸미러 등을 적용했다. 초음파로 노면 상태로 파악해 서스펜션의 감쇄력을 제어하는 프리뷰 전자 제어 서스펜션 역시 뉴 그랜저에서 처음 선보였다.

1세대 그랜저와 동일한 2.0L, 2.4L, 3.0L의 엔진 라인업을 갖추고 있었다. 추후 2.0L 엔진은 SOHC에서 DOHC로, 2.4 엔진은 V6 2.5L DOHC로 진화했다. 택시 버전을 추가하며 2.4L와 3.0L LPG가 탄생했다. 1994년 대우에서 V6 3.2L 가솔린 엔진을 장착한 아카디아(혼다 레전드)를 판매하자, 현대차는 그랜저에 최고출력 210마력을 발휘하는 V6 3.5L 엔진으로 맞불을 놨다. 결과는 성공적. 판매량이 많지 않았지만 국산 승용차  최고 배기량 기록을 갈아치우며 명실상부한 최고급차 자리에 올라섰다.

1996년 그랜저는 정체성 혼란을 겪는다. 그랜저를 바탕으로 길이를 늘린 다이너스티 등장 때문이다. 다이너스티의 최초 계획은 그랜저의 부분변경 모델이었으나 중도 선회해 그랜저 고급화 버전으로 탄생한다. 다이너스티 탄생과 동시에 대우 아카디아를 견제하기 위해 그랜저에 선보인 V6 3.5L 가솔린 엔진은 다이너스티로 이관, 그랜저는 3.5L 엔진을 단종한다.

말년에 다이너스티에게 플래그십 왕좌의 자리를 빼앗겼지만 2세대 그랜저 역시 1세대와 마찬가지로 성공한 부자의 차라는 이지지는 그대로였다. 1992년부터 1998년까지 판매된 그랜저는 16만 4927대였다. 가격은 1.860만원부터다.

현대자동차 3세대 그랜저
현대자동차 3세대 그랜저
현대자동차 3세대 그랜저 부분변경 'L'자형 테일램프는 최악이라는 평가
현대자동차 3세대 그랜저 부분변경, 'L'자형 테일램프는 최악이라는 평가

3세대 그랜저 – ‘큰 남자의 여유’

3세대 그랜저가 가지는 의미는 남다르다. 미쓰비시의 도움없이 EF 쏘나타의 플랫폼(Y4)을 바탕으로 현대차가 독자 개발한 첫 그랜저다. 또한 울산 공장에서 생산한 1,2세대와 달리 3세대부터는 쏘나타와 함께 아산 공장에서 생산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1999년 에쿠스 출시가 예정되면서 그랜저는 단종 위기에 처했다. 기존 그랜저의 자리는 마르샤가 대체할 예정이었지만, 예상 외로 마르샤가 흥행에 실패하자 현대차는 마르샤를 단종하고, 그랜저를 존치하는 것으로 방향을 선회한다. 우여곡절 끝에 탄생한 3세대 그랜저는 쇼퍼드리븐 성격이 강했던 1,2세대와 달리 확실한 오너드리븐 세단으로 포지션을 변경했다. ‘성공한 중장년층의 상징’으로 이미지 전환을 시도했다.

차체 크기와 디자인에서 이런 특징이 확실하게 드러난다. 3세대 그랜저의 전장은 4,865mm로 1세대 그랜저와 동일하다. 전장은 2세대에 비해 짧아졌지만, 휠베이스는 2,750mm로 오히려 길어졌다. 전륜 구동 특유의 프론트오버행이 긴 꺼벙한 디자인을 탈피하고 중후하면서 세련된 디자인이 도드라진다. 고려청자를 모티브로 한 디자인은 직선과 곡선을 조화롭게 그려냈으며,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프레임리스 도어를 사용해 눈길을 끌었다.

3세대 그랜저는 두 번의 페이스리프트를 거치며 디자인이 변화한다. 이 중 메르세데스-벤츠 E클래스의 테일램프를 오마주한 것으로 알려지는 첫 번째 부분 변경은 ‘L’자형 테일램프를 적용한다. 이 시도는 '기존 모델만 못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해당 디자인을 본 북미 딜러들이 판매를 거부해 북미 전용 디자인이 새로 나왔을 정도다. 북미형 디자인은 국내서 두번째 부분 변경 모델에 적용했다. 구형 테일램프를 살짝 변경한 방식으로 회귀했다. 당시 현대차 플래그십은 대형 세단 에쿠스가 맡았다. 에쿠스보다 크기가 작았지만 여전히 고급차라는 콘셉트에 맞게 편의안전장비는 최고급이었다. 에어백, TCS, 오토 윈도 우, 오토 에어컨, 사이드 미러 컨트롤러, 페달식 주차 브레이크, 전자동 열선 시트, 슈퍼비전 클러스터, 트립 컴퓨터, EPS 등이 적용됐다.

3세대 그랜저는 역대 모델 중 유일하게 전 엔진을 V6로 구성한 점이 특징이다. 엔트리 모델인 2.0L부터 2.5L 최상위 모델인 3.0L을 갖추고 있었다. 사이클론 엔진을 개량한 V6 3.0L 엔진(최고출력 196마력, 시그마)을 제외한 2.0L(최고출력 148마력, 델타)과 2.5L(최고출력 180마력, 델타)는 현대차가 독자 개발했다. 첫 번째 부분변경을 거치며 렌터카, 장애인, 택시 모델 등에 적용한 2.7L LPG 엔진(델타)을 추가했다. 변속기는 4단 자동을 기본으로 3.0L에는 국산차 최초 5단 자동변속기를 장착했다. 2.0L 가솔린 엔진만 5단 수동 변속기를 선택할 수 있었다. 이는 그랜저 역사상 마지막 수동 변속기 모델이다. 전륜에 더블 위시본, 후륜에 멀티링크 서스펜션을 사용한 승차감은 당시 ‘역대급’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소위 ‘구름 위를 떠가는 승차감’으로 불렸다.

한층 젊어진 3세대 그랜저는 이 때부터 대중과 친숙해지기 시작했다. 그랜저 구입층 역시 젊어졌다. 30,40대 젊은 성공한 중상층이 상당수였다. 판매량도 소위 대박이었다. 1998년부터 2005년까지 31만 1251대를 기록했다. 현대차가 독자 생산한 준대형 세단으로는 최초로 북미, 유럽, 중동 등지에 수출했다. 가격은 2,100만원부터였다.

다음 편에서는 그랜저 4~6세대가 이어진다.

남현수 에디터 hs.nam@carguy.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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