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량용 반도체 얼마나 귀하길래…중고 세탁기까지 뜯었다
차량용 반도체 얼마나 귀하길래…중고 세탁기까지 뜯었다
  • 남현수 에디터
  • 승인 2022.04.27 09:00
  • 조회수 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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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수급난은 길어질 것으로 보인다
반도체 수급난은 길어질 것으로 보인다

 

요즘 차량용 반도체 시장이 금값이다. 지난해부터 차량용 반도체 품귀 현상이 심화하면서 자동차 업체들이 묘수를 짜내고 있다. 한 글로벌 차량 부품업체는 지난해 하반기 차량용 반도체를 얻기 위해 중고 세탁기를 구매, 내장된 반도체를 뜯어 재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차량용 반도체 공급난은 코로나-19와 일본 르네사스 반도체 공장 화재로 2020년 중반부터 시작됐다. 최근에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한 반도체 소재 품귀, 중국의 도시 봉쇄, 일본 지진으로 인한 현지 공장 가동 차질 등이 겹치며 불난 집에 기름을 붙는 격이 됐다.

지난달 서스퀘한나 파이낸스에 조사에 따르면 반도체 주문 후 납품까지 26.6주가 걸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상 최장 납기 기간이다. 반도체난 전에는 4~8주 가량 걸렸다. 폭스바겐 최고재무책임자(CFO) 아르노 안틀리츠는 최근 독일 뵈르젠 차이퉁과 인터뷰에서 “반도체 수급이 점차 완화될 것으로 예상하지만, 반도체 제조업체가 수요 증가를 완전히 충족할 수 없는 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어 수급난은 2024년까지 이어질 것”이라는 부정적 전망을 내놨다.

자동차에는 적게는 200개에서 많게는 500여개의 반도체가 사용된다. 완전 자율 주행이 가능한 차량에는 최대 2000개의 반도체가 필요한 것으로 알려진다. 차량용 반도체는 여러 전자장비를 제어한다. 일반적으로 센서, 엔진, 전장 등 핵심 부품에 적용된다.

현대차 아산공장
현대차 아산공장

자동차 반도체의 품귀 현상의 원인 중 가장 큰 문제는 수요 예측 실패와 반도체 생산 공정에 대한 이해 부족이다. 자동차 부품은 제조사가 필요한 만큼만 생산해 공급하는 '저스트 인 타임(JIT)' 방식을 우선적으로 운용한다. 재고를 남기지 않기 위해서다. 반도체 생산은 수요가 늘어났다고 해서 즉각적으로 대응하기 어렵다. 반도체는 프로세스 생산이다. 여러 가지 부품을 조립해 하나의 물건을 만들어내는 자동차 생산 방식과 다르다. 프로세스 생산은 분해 할 수 없는 하나의 물건을 만들어내는 산업군을 지칭한다. 시장 수요에 유연하게 대처하기 어렵다. 코로나-19로 인한 팬데믹이 벌어졌을 때 자동차 제조사들은 반도체 등 부품 주문량을 대폭 줄였다. 신차 구매 수요가 급감할 것이라고 예상했기 때문이다. 시장 상황은 예상 외로 돌아갔다. 반도체가 사용되는 비대면 IT기기 판매량이 증가했고, 신차 구매 수요도 코로나-19 이전 수준으로 빠르게 회복됐다. 완성차 업체가 직접 관리하지 않았던 차량용 반도체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자동차는 수직계열화가 가장 잘 되어 있는 산업군 중 하나다. 차량용 반도체는 이미 1차 혹은 2차 부품사에서 장착된 상태로 납품을 받는다. 피라미드 구조다. 여기서 하나의 부품이 삐끗하면 아래서부터 위로 순차적인 문제가 발생한다. 차량용 반도체 공급난 역시 이런 문제에 해당된다.

단순하게 해결점을 생각해본다면 반도체 생산을 늘리는 방안을 고려해 볼 수 있다. 문제는 차량용 반도체 사업에 새롭게 뛰어드는 업체가 없다는 점이다. 반도체는 대부분 파운드리(반도체 제조를 전담하는 생산 전문 기업) 업체들이 생산한다. 파운드리 업체들이 차량용 반도체 생산을 꺼리고 있다. 기술적으로 하위 제품이라 수익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많은 기업들이 반도체 생산을 늘리고 있지만 차량용 반도체가 아닌 IT 제품에 사용되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IT 제품에 사용되는 반도체는 고사양 제품으로 수익성이 높다. 반면, 차량용 반도체는 이보다 성능이 떨어져 생산 대비 수익성이 떨어진다. 단순하게 비교하면 지난해 전세계 스마트폰 판매량은 12억5천만대, 같은 기간 자동차는 7천만대가 팔려나갔다. 또한 차량에 사용되는 반도체는 종류가 다양해 여러가지 반도체를 생산해야하지만 소량이라 더욱 수익성이 떨어진다. 차량용 반도체는 다품종 소량 생산으로 8인치 웨이퍼(반도체의 재료가 되는 얇은 원판)가 사용된다. 12인치 웨이퍼를 사용하는 IT용 반도체에 비해 출하량과 마진이 적다. 더불어 차량용 반도체는 온도와 습도 등 외부적 변화에 견뎌야 하는 소위 내구성이 높아야 한다. 스마트폰은 1~3년 가량 사용하고 새제품으로 바꾸는 반면 차량은 한 번 구매하면 최소 5년 이상, 중고차 시장까지 고려한다면 15년 이상 견뎌내야 한다. 결과적으로 마진이 적고 공급선은 제한되지만 내구성이나 신뢰성이 높아야 하는 차량용 반도체 생산에 나설 업체는 없다.

12인치 웨이퍼(왼쪽)와 8인치 웨이퍼(오른쪽)
12인치 웨이퍼(왼쪽)와 8인치 웨이퍼(오른쪽)

기존 차량용 반도체를 생산하는 업체들이 생산 공장을 증설하고 있지만 단기간에 해결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반도체 생산 설비를 제작하는 업체 역시 반도체 부품이 부족해 반도체 장비를 제때 납품하지 못하고 있어서다. 실례로 반도체 초미세공정에 쓰이는 EUV(극자외선) 노광장비를 독점 생산하는 네덜란드 ASML의 올해 1분기 출하 물량은 3대뿐이다. 지난해 4분기 11대를 생산해 판매한 것과 대비된다. ASML이 올해 총 55대의 EUV 장비를 출하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보다 11대 늘어난 수치다. 대부분의 장비가 올해 하반기 납품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독일 차량용 반도체 업체인 인피니언 테크놀로지는 최근 인도네시아 바텀과 말레이시아 쿨림에 위치한 공장의 반도체 후공정 설비를 증설한다. 이번 투자로 생산 능력이 두 배 늘어난다. 문제는 이 시기가 2년 후인 2024년부터다. 일본의 차량용 반도체 업체 르네사스 일렉트로니스 역시 자체 설비를 투자 할 것으로 알려진다. 해당 시기는 2023년이다. 전세계 파운드리 업체 중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대만의 TSMC 역시 일본 구마모토에 새로운 공장을 짓는다. TSMC는 차량용 반도체 공급난의 핵심인 저가형 마이크로컨트롤유닛(MCU)의 전세계 생산량 50% 이상을 도맡고 있다. TSMC의 새로운 공장은 2024년 12월부터 가동될 것으로 예상된다. 반도체 생산 업체들이 생산설비 증대에 나서고 있지만 2년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 반도체 공급난이 단기간에 해결되기 쉽지 않아 보인다.

차량용 반도체 공급난이 시작된 지난해에는 올해 반도체 공급난이 완화된다는 의견에 힘이 실렸다. 최근에는 2024년은 되야 해결될 것이라는 것이 업계 전문가들의 일관된 평가다.

기아자동차 쏘렌토 하이브리드
기아자동차 쏘렌토 하이브리드

차량용 반도체 공급난은 자동차 시장의 생태계를 바꿨다. 당장 차가 필요한 소비자들이 울며 겨자 먹기로 중고차를 구매하고 있다. 일부 모델의 경우 중고차의 가격이 신차 판매가를 역전하는 현상도 발생한다. 국산 브랜드 중 기아 쏘렌토의 납기일 가장 길다. 쏘렌토 하이브리드의 경우 1년 6개월 이상 기다려야 한다. 4월 기준으로 쏘렌토의 대기 고객은 11만명이 넘는다. 여기에 매 월 1만5천대씩 추가로 계약되고 있다. 쏘렌토의 올해 생산 목표는 17만4800대, 지난해보다 5만대 가까이 생산량을 늘린다. 문제는 부품 수급. 반도체 공급난이 해결되지 않으면 목표치를 달성하기 어렵다.

남현수 에디터 hs.nam@carguy.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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