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km시승기]토요타 GR 수프라…마지막 낭만 담은 퓨어 스포츠카
[500km시승기]토요타 GR 수프라…마지막 낭만 담은 퓨어 스포츠카
  • 김태현
  • 승인 2023.06.03 09:00
  • 조회수 4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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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7마력, 직렬 6기통 트윈터보, 후륜구동, 2시터 쿠페"

 

자동차를 좋아하는 이들의 심금을 울릴 수밖에 없는 단어 조합이다. 가장 토요타스러운 디자인이지만 가장 토요타스럽지 않은 자동차 'GR 수프라'를 시승했다. 이 차는 BMW Z4를 생산하는 오스트리아 공장에서 함께 생산된다. 디자인은 토요타가 담당했지만 엔진과 차체는 BMW것을 쓴다. 뱃지 엔지니어링으로 생산되는 차량이다. 

 

시동을 걸면 BMW제 ‘B58’ 3.0L 직렬 6기통 엔진이 우렁찬 소리를 내뱉는다. BMW Z4 M40i를 비롯해 X7, 7시리즈 3.0L급 모델에 두루쓰이는 엔진이다.

양손에 쥐기 좋은 두께와 크기를 가진 스티어링을 돌리면 즉각적인 조향이 이루어진다. 서서히 악셀에 발을 얹자 6기통 엔진 특유의 부드럽지만 웅장한 배기음이 지하 주차장을 뒤덮는다.

 

오스트리아의 마그나슈타이어 공장에서 생산하는 GR 수프라는 형제 차종인 BMW Z4와 같이 생산된다. 50:50의 무게 배분과 앞머리가 저 멀리 있음에도 민첩하게 코너를 돌아나간다. 토요타 엠블럼이 달려있지만 영락없이 BMW 섀시 기술이다.

FT-1 콘셉트

수프라의 콘셉트 시절이었던 FT-1은 원형 토요타 수프라와 과거 판매했던 대형 쿠페 토요타 소아라와 비슷한 장거리 주행에 적합한 그랜드 투어러의 형태였다. 문제는 렉서스 LC와의 판매 간섭 우려가 나오면서다. BMW Z4와 플랫폼을 공유하고 퓨어 스포츠카로 그 성격이 변하면서 디자인도 얌전해졌다.

첫 인상은 생각보다 작다. 작은 차체지만 볼륨이 넘친다. '롱 노즈, 숏 데크'의 전형을 따라 길고 넓은 후드는 클램쉘 타입으로 양 옆이 휠 아치를 따라 크게 부풀려져 있다. 루프는 2000GT에서 원형을 따온 더블 버블 디자인이다. 뒤로 갈수록 좁아지는 루프와 빵빵한 리어 휀더 끝은 덕테일로 치켜 올린 웅크린 맹수 같은 모양새다.



보편적인 아름다움과는 다소 거리가 있지만 눈길을 끌기에는 충분하다. 일본 차 특유의 레이스 DNA에서 느껴지는 기계적 아름다움과 수프라의 헤리티지 탓일까. 디자인은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스바루 임프레자 STi가 디자인으로는 혹평을 받아도 랠리에서 보여주는 퍼포먼스 덕분에 선망의 대상에 올랐던 것처럼 말이다.

엔진 부품 대부분에 찍혀있는 BMW 엠블럼
스마트키도 BMW 그 차체다

외관에서는 도어 핸들, 사이드미러, 앞 유리는 BMW 부품을 사용했지만 전체적인 디자인은 다행히도 일본 차스럽다. 토요타 다운 디자인이 적용되어 로봇 내지 도마뱀 같다. 차대를 제외한 대부분의 보디패널을 알루미늄으로 구성해 6기통 스포츠카 치고는 1525Kg의 가벼운 무게로 날렵한 몸놀림을 보여준다.

안쪽으로 길게 뻗은 DRL은 하나로 이어질 듯 각각의 길이가 길다. 7개의 프로젝션이 달린 LED 헤드 램프는 매트릭스 하이빔까지 지원한다. F1 레이스 카를 닮은 범퍼 하단부는 마치 튜닝 파츠를 붙인듯한 스포티한 형태다. 조수석 측 그릴에는 전방 레이더 센서가 자리 잡고 있다.



다만 번호판의 위치가 너무 상단이라 어색하다. 일부 국가에서는 하단에 위치하거나 전방 센서가 없는 우측에 부착하는 경우도 종종 있는데 그 방식이 더 나아 보인다.

후면은 트렁크 리드 일체형 덕테일 스포일러가 핵심이다. 하단엔 F1 레이스 카에서 따온 후방 안개등을 겸한 후진등 좌우로 스포티한 디퓨저 디자인이 적용됐다. 별다른 장식 없이 무심히 한발씩 달린 테일 파이프에서는 순정임에도 꽤나 스포티한 배기음이 뿜어져 나온다.

디자인적인 디테일은 우수하나 군데군데 그저 장식에 불과한 흡입구 디자인은 눈엣가시다. 헤드램프 끝단, 테일램프 끝단, 도어와 리어 휀더 사이, 후드에 있는 모든 벤트는 장식에 불과하다. 최근 패밀리카조차 기능 없는 벤트 디자인은 적용하지 않는 것이 정석인데 아쉬운 부분이다.

 

1,305mm에 불과한 낮은 전고는 타고 내리기에 불편하지만 공기역학을 개선한 더블 버블 루프 디자인으로 생각보다 헤드룸은 넉넉하다. 신장이 182cm인 기자가 탑승해도, 헬멧을 쓰고 달리는 데에도 무리는 없어 보인다.

외관을 먼저 보지 않고 실내를 둘러보면 스티어링 휠 중앙의 토요타 엠블럼을 제외하면 BMW 그 차체다. 인테리어는 BMW의 부품을 폭넓게 적용했다. 토요타의 부품이라면 스티어링 휠과 계기판 정도를 꼽을 수 있다.

 

공조기 컨트롤러, 기어노브, 인포테인먼트 디스플레이, 스티어링의 리모컨, 심지어 iDrive 다이얼까지 BMW 제다. 다행히 무선 애플 카플레이를 지원하는 디스플레이는 터치 반응이 빠르고 iDrive는 운전 중 조작하기 좋다.

 

전자식 주차 브레이크를 적용하고 차간 거리를 스스로 조절하는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을 갖췄지만 오토홀드가 없다는 게 단점이다.

오디오는 12개의 무난한 JBL 사운드 시스템을 갖췄다. 스포츠 모드에서는 사운드 제너레이터를 출력한다. 엔진, 배기 사운드를 증폭시켜주는 사운드는 스포츠 드라이빙 감성에 적절하다. 다만 오랜 시간 동안 듣기에는 다소 거북한 감이 있어 따로 끄는 기능이 필요해 보인다.

트렁크는 예상보다 넓다. 골프 캐디백 1개 또는 작은 여행 가방 두 개를 넉넉히 실을 정도의 깊이를 갖췄다. 밖에서 여는 버튼이 없어 불편하다. 스마트키를 사용하거나 도어 트림에 달린 버튼으로만 열어야 한다. 오랜 시간 주행하면 트렁크 안쪽에서 후끈해질 정도로 열이 올라온다. 

낮은 시트 포지션을 갖춘 전동시트는 퓨어 스포츠카 치고는 호화스럽다. 메모리 기능을 갖췄고 가죽과 직물 소재가 결합된 세미 버킷 시트는 조작 기능이 많았다. 시트 포지션 역시 스포츠카 답게 낮게 깔려있다. 디자인이 훌륭한 데다 급격한 거동에도 몸을 꽉 잡아주는 능력이 탁월하다.

트랙션 컨트롤을 비활성화하고 스포츠 모드에 둔 채 왼발은 브레이크를 오른발은 악셀 페달에 힘을 주자 런치 컨트롤 기능이 활성화된다. 왼발을 빠르게 떼면 최적의 트랙션으로 가속을 시작한다.

 

정지 상태에서 100km/h까지 4.1초 만에 가속한다. 꼬리가 좌우로 살랑살랑 요동치지만 그 느낌 자체가 불안하지 않다. 엉덩이 바로 뒤에 놓인 뒷바퀴는 387마력을 온전히 아스팔트 위로 쏟아낸다.

 

처음 착석했을 때 앉아있는 위치가 뒷바퀴 바로 앞이다 보니 다소 어했지만 점차 드라이브 포지션에 적응이 된다. 펀 드라이빙이 가능한 적절한 자세다.

파워스티어링 오일 탱크가 보인다

브레이크를 밟고 코너에 앞머리를 집어 넣었다. 독특하게 유압식 파워 스티어링이 적용되었는데 이질감 없는 조향 감각이 인상적이다. 돌리는 만큼 앞머리가 돌아 나간다. 칼 같은 코너링 감각은 전형적인 BMW 느낌이다. 다만 이 설계 탓에 차선 중앙 유지 같은 주행보조 장치의 추가는 기대할 수 없다.



자세제어장치를 완전히 해제한 채 악셀을 조금만 깊게 밟으면 카운터 스티어링이 들어가야 할 만큼 역동적인 움직임을 보여줬다. LSD가 장착된 후륜구동인데다 오버스티어 성향이 강하다. 경우에 따라서 드리프트를 할 수도 있다.

재가속하기 충분한 출력을 뒷받침하는 것은 빠른 미션 반응에 있다. ZF의 자동 8단 트랜스미션은 듀얼 클러치 변속기 만큼 빠르지만 부드러운 출발이 가능하고 변속 충격도 크지 않다. 일상 영역에서 주행에 부담이 없었다. 다만 노말 모드에서도 지나치리만큼 공격적인 트랜스미션 세팅 탓에 좋은 시내 연비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고속도로에서 항속하면 12km/L 까지 나오지만 스포츠카 답게 밀어 붙이면 6km/L 밑를 맴돈다. 500km를 주행한 평균연비는 8.7km/L였다. 가혹주행이 시승의 절반내내 이어지고 시내와 고속항속을 번갈아 진행한 것을 감안하면 나쁘지 않은 수치다.



해외에는 3.0 모델에 한 해 6단 수동 트랜스미션도 마련되어 있는데 이 정도 반응성과 스포츠성이라면 오토매틱이어도 큰 아쉬움은 없어 보인다.

브레이크는 프런트에 4피스톤 리어에 1피스톤 구성이다. BMW M340i에 장착된 것과 같은 캘리퍼는 보이는 크기가 크지만 실제 패드의 대용량 1P 수준으로 크기가 작다. 브레이크 답력이 앞에 쏠려있는 경향이 강하다. 고속 영역에서는 안정적인 제동력을 보여줬다.

 

항속 중에 악셀 페달을 조금만 깊게 밟고 있기만 해도 시속 200km/h를 가볍게 넘긴다. 387마력의 출력은 전기차의 등장으로 그렇게 대단해 보이는 수치는 아니지만 여전히 일반인들이 쉽게 다룰 출력은 아니다. 전자 장비의 성능이 워낙 뛰어나 함부로 비활성화하지만 않는다면 시원시원한 가속력을 안정적으로 느낄 수 있다.



고속 영역에서의 안정감도 돋보인다. 컨버터블을 기반으로 한 쿠페는 차대 강성이 동급 쿠페보다 월등히 좋다. 토요타의 전설적인 슈퍼카 렉서스 LFA의 카본 프레임 보다 좋은 비틀림 강성과 특유의 하체 설계로 초고속 영역에서도 안정적이다.

 

전자식 가변제어 서스펜션이 적용되어 댐핑값을 조정할 수 있다. 노말 모드에서는 생각보다 컴포트하고 생각보다 차고가 높아 긁힐 걱정이 적다. 2인승 쿠페치고는 일상영역에서 불편을 감수하지 않아도 된다.

GR 수프라는 잘 달리게 생긴 만큼 잘 달린다. 퓨어 스포츠카 다운 설계와 패키징을 갖췄다. 

 

BMW와의 공동 개발은 현실과의 타협이다. 개발비용을 절감해 가뜩이나 줄어든 스포츠카 시장에 대한 리스크를 최소화했다. 생산성을 올리는 것이 우선이다 보니 토요타 GR86 같은 일본산 스포츠카 특유의 즐거움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GR86은 오랜 시간 동안 잘 길들여진 조랑말과 함께 들판에서 신나게 내달리는 기분이라면 수프라는 뛰어난 실력을 가진 명마지만 친밀도가 떨어져 그 한계를 끝까지 활용하기엔 부담스럽다.

1990년대 일본산 스포츠카 3대장 중 하나로 불리었던 토요타 수프라는 1970,80년대 일본 버블경제 전성기의 마지막을 장식한 모델이다. 17년 만에 부활한 GR 수프라는 직렬 6기통 트윈터보 엔진과 후륜구동, 매끈하지만 볼륨이 살아있는 보디를 가졌다.

 

BMW Z4와 차별점이 사실상 외관 밖에 없지만 가격은 1천만원 정도 저렴한 것은 강점이다.

 

전동화와 자율주행의 시대로 더 이상 고성능에 대한 선망이나 펀 드라이빙에 대한 가치가 바래가는 지금, 오랜만에 제대로 된 가성비 좋은 퓨어 스포츠카가 나왔다는 점에서 반길만한 요소다.

 

스포츠카 시장이 다시 활기를 띠긴 어렵겠지만 이러한 합작 형태로라도 충분히 매력적인 스포츠카를 만들어냈는 점에서 박수를 보내고 싶다.

 

 

 

한 줄 평

 

장점: 레이스카 감성의 볼륨 디자인, 387마력의 넉넉한 출력

 

단점: 토요타 헤리티지를 이어가기엔 너무나도 많은 BMW 느낌

 

김태현 에디터 th.kim@carguy.kr

 

토요타 GR 수프라

 

엔진

3.0L 직렬 6기통 트윈터보

변속기

자동 8단

구동방식

후륜구동

전장

4,380mm

전폭

1,855mm

전고

1,305mm

축거

2,470mm

공차중량

1,525kg

최대출력

387마력

최대토크

51kg.m

복합연비

10.2km/L

시승차 가격

8,040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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