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시승] 경차가 원룸만큼 넓네..10년간 일본 1위 혼다 N박스
[현지시승] 경차가 원룸만큼 넓네..10년간 일본 1위 혼다 N박스
  • 김태진 편집장
  • 승인 2023.08.31 08:30
  • 조회수 28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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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0cc 경차 엔진에 F1 기술 접목

일본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경차는 어떤 차일까. 10년 넘게 1위를 질주하는 일본 국민 경차는 바로 혼다 ‘N박스’다. 연간 20만대 내외로 팔리면서 2011년 데뷔이래 경차 판매 1위를 지키고 있다. 

철저한 실용성 위주의 박스형 디자인, 뛰어난 연비와 준수한 가속력, 여기에 혼다 특유의 좁은 공간의 디테일이 돋보여서다. N박스는 200만엔 이상 고급 옵션을 잔뜩 넣은 고가 트림 판매가 절반을 넘는다. 중장년뿐 아니라 1인가구 또는 젊은 부부의 자가용으로도 인기다. 

 

일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박스형 경차는 일본의 특수한 좁은 도로(주로 시골 골목길) 및 작은 공간도 제대로 활용하는 환경이 만들어 낸 독특한 차다. 제한된 크기 안에서 최대한 공간 활용도를 높이기 위해 네모반듯한 상자 모양으로 깎았다. 

 

유럽이나 미국 자동차 마니아들은 “박스형 차는 차도 아니다”라고 혹평한다. “자동차가 실용성만 추구하는 상자가 아니다”라는 식의 비판이다. 주행 감성이 더 중요하다는 것. 혼다 N-박스는 박스형 경차의 정석이다. 

 

‘슈퍼 하이트(super height)’라고 불리는 박스형 경차의 실용성은 일본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정평이 나 있다. 전장이 3.4m에 불과하지만 체감 실내공간은 중형 세단보다 넓다. 

 

공간 활용도를 극대화하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곳곳에 접목해 불편함이 없다. 일본의 박스형 경차를 벤치마킹한 기아 레이만 보더라도 압도적인 공간 활용도로 차박까지 가능하다.  

 

현재 일본에서 시판하는 50여종의 경차 중 박스형이 60% 이상이다. 연간 약 280만대의 경차 시장을 놓고 치열한 경쟁이 벌어진다. 혼다 N박스는 일본에서만 매달 1만5000대 이상 팔린다. 2022년에도 20만대가 넘게 팔려 1위에 올랐다.
 

지난달 일본 미에현에서 어렵게 N-박스를 빌려 시승을 했다. 100km 이상 주행해보면서 예상보다 달리기 성능이 좋은데다 ADAS까지 달려 있어 운전이 무척 편했다. 시승차는 중하위 L트림으로 177만2650엔(한화 약 1600만원)이다.

 

직물 시트에 운전석 열선, 왼쪽 전동 게이트, ADAS가 달린 차량이다. 작은 차체에 타이어가 14인치에 불과해 승차감은 그저 그랬지만 경차를 감안했을 때 큰 불만을 찾기 어려웠다. 휠도 알루미늄이 아닌 스틸이다.

 

현재 N박스는 3세대 모델까지 진화했다. 파생 모델도 여럿이다. 기본형인 N박스 외에 휠체어를 싣거나 뒷좌석을 침대로 만드는 등 다양한 공간 활용이 가능한 N박스+, 쿠페 디자인으로 보다 감각적인 느낌을 주는 N박스 슬래쉬 등이다. 여기에 N박스 커스텀이라는 스포츠 디자인 버전도 마련된다. 물론 상용 밴도 있다. 

 

N박스가 박스형 경차 중에서도 독보적 인기를 끄는 건 디자인과 성능, 실내공간의 조화가 완벽해서다. 일본 경차는 차체 크기와 배기량, 출력 모두에 제한이 있어 성능 차별은 불가능한 게 일반적이다.  

혼다 F1 기술이 들어간 660cc 경차 엔진이 탑재됐다
귀여운 헤드라이트와 전면 모습..라디에이커 그릴은 반만 쓴다

게다가 N박스를 포함해 대부분 경차가 규격을 가득 채워 박스형으로 만들다 보니 디자인 차별화가 어렵다. 그런 혼전 속에서 혼다의 선택은 ‘경차의 고급화’였다. 200만엔대 고급 경차의 출현이다.

 

여기에 고급차 못지않은 각종 장비를 탑재했다. 경차 천국 일본에서도 결국 경차는 저렴한 차라는 인식이 있었다. 100만엔대 초중반 가격에 첨단 주행보조장치는 사치였다. 

 

혼다는 여기서 패러다임 전환을 시도한다. 전방충돌경보 시스템(FCWS)과 능동형 긴급제동(AEB), 차선이탈경고장치(LDWS) 등 당대 중형차 이상에나 탑재되던 안전장치를 속속 N-박스에 탑재했다. 

뿐만 아니라 운전석·동승석 듀얼스테이지 에어백을 비롯한 6-에어백, 안전벨트 프리텐셔너 등을 적용해 충돌 안전성도 비약적으로 끌어 올렸다. 좀 더 스포티한 개성을 표현하고 싶은 소비자를 위해 N박스 커스텀이라는 디자인 옵션을 마련했다. 가격대가 200만엔을 넘어서는 고급 경차다. 

 

경차에서는 보기 드문 프로젝션 타입 HID 헤드라이트와 LED 테일램프가 장착되고 전용 블랙 휠로 멋을 부렸다. 실내는 컬러 앰비언트 라이트와 스티치로 멋지게 꾸몄다.  N박스 실내는 매력 그 차제다. 압도적인 공간을 보여준다. 우선 실내 높이가 무려 1.4m로 어린이는 차 안에서 일어설 수 있다. 

 

1열에는 벤치형 시트를 적용해 일본 경차의 좁은 전폭에도 불편함이 없도록 설계했다.  2열은 2개의 독립 시트다. 각 시트는 독립적으로 슬라이딩과 리클라이닝 기능을 적용해 성인 2명이 여유 있게 탈 수 있다. 

 

주목할 부분은 2열의 공간 활용이다. 양쪽 도어를 모두 슬라이딩 타입으로 설계해 타고 내리거나 짐을 싣기에 최적이다. 시승차는 중하위 트림이라 왼쪽만 전동으로 열린다. 200만엔 넘는 고급 트림을 선택하면 좌우 모두 전동을 선택할 수 있다. 테일게이트도 전동이 가능하다.

 

실내공간은 마법 그 자체다. 2열에 탑승하면 무릎 및 머리공간에 주먹 서너개가 충분히 들어간다. 소형 SUV보다 넓게 느껴진다. 혼다의 엔지니어링 강점을 살려 연료탱크를 트렁크 하단에서 차량 중앙 아래로 옮겼다.

 

그 결과 2열과 트렁크 공간을 완전히 평평하게 설계하고 2열 시트를 다양한 형태로 접을 수 있다. 기본적인 플랫 폴딩 외에도 2열 시트 방석을 뒤로 젖혀 밴처럼 사용하는 등 응용 방법도 무궁무진하다. 평평한 바닥의 장점을 살려 자전거를 싣고도 성인 3명이 탈 수 있다.

 

 

 

N박스 기본형은 일본에서 140만엔, N박스 커스텀은 190만엔(한화 약 1635만원)부터 시작한다. 여기에 갖가지 옵션과 튜닝 파츠를 붙이면 250만엔까지 올라간다. 실제 200만엔 이상 고급 모델의 판매가 절반이 넘는다.

 

시승 차례다. 시동을 걸면 경차 특유의 660cc자연흡기 엔진음이 들려온다. 드라이브에 놓고 악셀을 밟으면 경쾌하게 질주를 시작한다. N박스 엔진은 혼다 F1 엔진 개발팀에서 설계했다. 최고출력은 58마력, 최대토크는 6.6kg.m에 불과하지만 최소한의 출력을 최대한 활용하는 CVT 변속기와 맞물려 경쾌한 주행성능을 낸다. 

 

개선형 ISG를 기본 탑재한다. 일반적인 ISG 시스템이 완전 정차 후에만 작동하는 반면, N박스는 정차를 위해 속도를 줄일 때도 과감히 시동을 꺼 연료 소모를 줄인다. 공인연비는 일본 기준 26km/L나 된다. 공기 역학에서 불리한 박스형 차가 ‘기름 냄새만 맡아도 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터보 옵션을 선택하면 최고출력은 64마력, 최대토크는 10.6kg.m으로 오른다. 터보 엔진은 2600rpm의 실용 영역대에서 동급 최고의 최대토크를 발휘한다. 

 

리얼타임 4WD 옵션을 더할 수도 있다. 박스형 경차임에도 운전 재미를 위해는 패들 시프트도 선택할 수 있다. 자연흡기 N박스는 시속 80km/h까지 가속은 무난하다. 100km/h를 넘어가면 엔진 회전수가 3000rpm에 육박하면서 고음이 들려온다. 예상보다는 가속이 더디지 않다. 

 

시속 120km/h까지 밟았지만 꾸준히 가속이 이뤄진다. 통상 일본에서 경차는 시속 100km/h 이상을 달릴 일이 거의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충분한 가속 성능이다. 연비는 시속 90~100km/h로 정속 주행을 하면 25km/L 이상이 줄곧 나온다. 시내 정체구간에서도 20km/L 이하는 좀처럼 볼 수 없다. 

좁근 골목 주차나 사각 지대를 볼 수 있는 거울

N박스의 성공은 혼다를 일약 경차의 왕으로 만들었을 뿐 아니라 이후 S660, NSX같은 스포츠 모델을 개발하기 위한 발판을 마련했다. 고객의 니즈를 철저히 분석하고 독자적인 엔지니어링 기술로 이를 현실화한 것이다.  

 

한국 자동차 시장은 소형차보다 중대형차 위주다. 소비자들이 넓고 편안한 차를 좋아한다. 여기에 국어 사전에 없는 하차감(?) 을 중시한다. 점점 실버 세대가 인구의 주축으로 자리를 잡고 있는 게 현실이다. 

 

나이가 들수록 작은 차가 편리하다. 작지만 실내공간이 넓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혼다 N-박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늘어나는 실버 세대와 1인 가구를 위한 개성을 뽐낼 수 있는 작지만 넓은 소형차 말이다. N박스가 갖고 싶어 지는 이유다. 

 

미에현(일본)〓김태진 에디터 tj.kim@carguy.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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